완역 이옥전집 1 :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완역 이옥 전집 1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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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은 자신을 경금자(絅錦子)라 칭한다. 絅은 홑옷, 錦은 비단을 뜻하니 곧 화려한 옷을 가리기 위해 그 위에 홑옷을 덧입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재주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옥은 문재는 빼어났으나 행정업무처리 능력은 어리버리 했던 모양이다.

이옥의 과거 시험 답안지의 문체가 괴이하다고 여겨 정거停擧(유생에게 주는 형벌의 하나. 얼마간의 연한 동안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정지시키는 것)를 명했던 정조는 충군으로 명령을 바꾼다. 정거를 당하게 되면 과거에 다시 응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조는 이옥이 편적된 읍에 명하여 과거에 응시할 휴가를 주라고 배려한다. 황공하고 감격하여 울기까지 한 이옥은 다시 서울로 와서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정조는 ‘초쇄’가 심하다고 하여 또다시 좀 더 먼 곳으로 충군을 명한다. 경상도 삼가현에 편적하고 다음해 2월 초시에서 수석을 하지만 임금은 이옥을 꼴찌로 강등시킨다. 국법에 수석이든 꼴찌든 충군된 자가 한번 과거에 붙으면 죄를 용서해준다고 하였는데 그 삼가현에 옮겨둔 적을 다시 서울로 옮기지 않아 용서는커녕 삼가현으로 다시 끌려가 죄수처럼 몇 개월을 빌어먹다시피 보내다가 1800년 다시 과거를 보러 돌아오는 길에 사면 소식을 듣는다. 30대 후반을 욕되고 비참하게 보낸 셈인데 부친상까지 당하여 ‘거적자리에서 흙덩이 베개를 베고 울부짖으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했다. 해배이후 이옥은 과거를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한다.

이옥 전집 1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는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賦)/서(書)/서·발(序·跋)/기記/논論·설說·해解·변辨·책策이 그것이다. 賦는 지금의 시와 같다. 개구리, 거미, 벼룩, 나비 등의 자잘한 동물과 흰 봉선화, 초룡(포도)등 식물에 관한 시 뿐만 아니라 규장각을 거하게 칭송하는 규장각부, 판소리 한마당 같은 삼도부 등도 있다. 특히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쓴 <흰 봉선화를 읊은 부>는 겨울 새벽에 내린 서리처럼 맑고 아름답다. <거미를 읊은 부>와 <벼룩을 읊은 부>는 논리가 정연하고 호기롭고 거침없으며 그 표현들이 과녁의 중심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화살 같다.

 
마치 은바늘로 터진 솔기를 꿰매는 듯

재빨리 살갗을 파고드는데,

장미꽃에 잘못 부딪혀

붉은 가시에 살갗이 찔린 듯

피와 신경이 놀라고 자지러져

사람으로 하여금 배겨내지 못하게 한다.

 

벼룩이 사람을 물었을 때의 상태를 형상화한 글이다. 어렵게 벼룩을 붙잡아 손톱 밑에서 꿈틀거리며 살려는 생각이 남아있는 벼룩을 꾸짖는 장면은 이렇다.

너는 미물로서

침상과 자리에 모여 사는구나.

마침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석 달 동안 소제를 하지 않았으니

목마르면 땀을 마실 수 있고

굶주리면 때를 빨아먹을 수 있다.

 

<주자대전> 한 질을 암송하여 몇 페이지 몇 째 줄에 무슨 구절이 있는지 정확히 기억했다고 하고 문장이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문이재도의 문장론을 주장한 정조가 이 글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래놓고는 이옥은 또 비단에 꽃을 수놓 듯 페르시안 카펫보다도 더 화려한 <규장각부>를 적었다.

서書는 편지글을 말한다. 과거 준비를 위해 서울에서 머물 때 교유한 인물로 여겨지는 최구서에게 보내는 편지가 한통 실렸다.

서序·발跋 은 지금으로 말하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듯하다. <묵토향> <묵취향>뿐만 아니라 <노자를 읽고>,<초사를 읽는 법>, <주자의 글을 읽고>등 책을 읽고 난 후의 독후감도 있다. 노자, 초사, 주자 등을 읽기는커녕 보지도 못한 내가 무어 할 말이 있겠냐마는 이옥의 글은 비유에 능하고 막판 뒤집기에 유의해야 한다.

기記는 말 그래도 일상을 기록한 글이다. 신기한 이야기나 소풍간 이야기에서부터 심지어 충군을 명령받고 삼가현에 가며오며 적은 글도 있다. 그가 경유한 여정도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이옥의 심신의 고단함을 헤아리노라면 엄숙해지고 혀를 내두르며 경탄해야 마땅하겠지만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삼가현의 적을 서울로 옮겨두는 것을 잊었듯이 이옥은 자기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깜빡 깜빡 잊었던 건 아닐까해서다.

논論 설說 해解 변辨 책策은 말 그대로 이다. 곡식을 계량하는 말(斗)에 대해 논하고 북관기생의 한밤중 통곡의 의미를 논한다. 과거 급제자에게 촉규화의 형태를 취한 꽃을 내려주는데 본받을 만한 것도 쓸모도 없는 것의 모양을 왜 본 땄는지 설하고 진정한 군자란 어떠해야 하는가 설한다.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를 해하며, 강철(짐승이름)에 대해 변하고 과거시험장의 고쳐야할 점을 책한다.

조선시대 다양한 글의 갈래를 직접 읽으며 내 깜냥으로 가늠해보았다. 기억을 헤집거나 도움을 받고자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나 그냥 두기로 한다. 형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마츄어라고 말하더라마는 옛날의 이옥에게서 본받아야할 것은 그 형식이 아니라 정신임을 명심해두기로 한다. 정신에 대해서는 전작을 다 읽고 난 다음에라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옥의 전집 5권 중 3권을 마련했다. 값이 적지 않았으나 책을 읽고 나니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하고많은 독자중의 하나일 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이 책을 번역한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와 출판사에게 독자로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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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완전 탐나는 걸요~
이 사람이 정조때의 인물이라는 것도 재미있구요.^^

반딧불이 2010-11-01 15:56   좋아요 0 | URL
저도 예상외로 재미있어하고 있는 중이에요. 박지원과는 전혀 다른 글맛을 느끼고 있어요.

넙치 2010-11-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이 외국어보다 더 낯설게 다가와 잘 읽게 되는데;;;
인용문과 반딧불이님 조목조목한 글을 읽으니 저도 용기를 내서 읽어야겠어요.
좋은 책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반딧불이 2010-11-01 15:57   좋아요 0 | URL
저같은 아무 생각없는 사람도 번역자들의 수고로움을 감사하고 있으니 따로 용기를 내실 필요는 없으실듯 해요.

글샘 2010-11-0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옥의 글 같은 것을 '소품문'이라고 하는데 정조때 '문체반정'이라고 소품문을 못쓰도록 강제하기도 했지요. 박지원의 글들은 오픈되지 않았던 것이었답니다. 이옥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블로그질에서 묻어나는 자유로움이 <왕조의 굳건함>에 금을 가게 한다는 선견지명으로 막았던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바가지로 벼락 막기일 뿐이었습니다.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죠.

반딧불이 2010-11-02 01:03   좋아요 0 | URL
네에..막았던 막혔던 저는 이옥의 생김생김이 궁금해서 못견디겠습니다.

cyrus 2010-11-0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알라딘에서 보기 드문 연속 리뷰인가요? ^^
올해가 끝나면 끝날수록 읽고 싶은 책들이 수두룩하지만,,
반딧불이님이 소개하신 이옥 전집 1권은 읽고 있답니다ㅎㅎ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 못 읽어도 이옥의 글을
음미하면서 읽으렵니다.

반딧불이 2010-11-02 01:12   좋아요 0 | URL
아..지난번에 쓴 것은 이옥의 글을 읽고 취해서 토한 것으로 페이퍼로 분류해야하는 건데 제가 실수를 했어요.

사이러스님..저한테 낚이실줄은 전혀 몰랐는걸요.~ 즐거운 낚임이셔야할텐데말이죠. 후반부에 연못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전 그 짧은 글을 읽으면서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서간 모더니스트였다고 깔깔거렸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옥은 흙덩이 베개를 뱄군요? 성경의 야곱은 집을 나와 돌베개를 뱄다고 하던데요.
그 야곱이 죽기 전 이집트왕 앞에서 자신의 인생이 130년을 떠돌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옥은 자신의 인생을 어찌 정리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반딧불이 2010-11-03 09:58   좋아요 0 | URL
이옥이 어떻게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지 눈여겨 보며 읽겠습니다. 야곱과 비교하니 재미있어지는걸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11-0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끝난(?) 성균관 유생 이야기였나, 그 드라마나,
저번에 나왔던 "이산" 같은 드라마로
요즘 정조 이야기가 각광을 받는 것 같던데,
이옥의 불우함을 보면서 역시 정조 시대에도 피해자는 있었다는 느낌을 받네요.
"패관의 문체"가 왜 세태를 흐트러트린다고 정조로 하여금 판단하게 했는지,
21세기를 사는 저로서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반딧불이 2010-11-03 16:50   좋아요 0 | URL
정조는 아무리 개혁군주라 해도 왕이었고 주자학자였어요. 왕권을 위협받는자로서 정통성을 확보하는것이 최우선이었겠죠. 자신의 왕권을 보호해주는 사상의 갑옷으로 주자학을 사용했구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을만큼 감각적이고 감상적인 소품문은 글을 읽은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했을테구요. 자신이 추구하는 정도에서 벗어나 경박한 풍조에 빠져들게 된다고 여졌지요. 이것을 왕의 지배적 사고나 권위에 대한 저항이라고 봤을거에요. 그러니 탄압을 아니할 수 없었을테구요.

이옥을 불우하다 하시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정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옥을 읽고 있지 못했을거에요. 비록 이옥이 원하는대로 관직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집안은 물고기 천마리가 노닐 정도의 연못을 만들정도로 부유했어요. 그러니까 관운은 없었지만 문운은 있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