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논하는 사람은 드물어졌지만, 
적어도 연애담에서는 행복이 여전히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문학에서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은 자주 암울하고, (톨스토이처럼) 기쁨보다는 고통을 강조하며, 난기류가 만족감보다 먼저 찾아오고, 로맨스보다 비극이 앞선다. 제인 오스틴이나 발자크, 동화, 로맨틱코미디, 로맨스 소설처럼 이 규칙에는 수많은 예외가 있지만, 사랑을 분홍빛으로 전망하는 시각조차, 사랑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획득하는 것에 집중한다. - P224

"그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결말이지 이야기가 아니다. 이 표현은 행복을 고정된 상태로 간주하며,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으로 본다. 이런 유형의 사랑은 찾아내면 이내 
지루해진다. 더 나쁘게는, 실제로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 P224

이는 고릿적부터 끈질기게 이어진 관념이다. 낭만적인 사랑이란 실제로는 한낱 욕망이며, 욕망은 늘 아직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것이라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마침내 사랑을 찾아낸 이후가 아니라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전한다.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소년이 소녀를 잃고, 소년은 소녀를 다시 만난다. 낙관적인 이야기에서도 사랑을 얻는 순간 종결이 찾아온다. 우리 대부분이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는 바로 그 순간에. - P225

다시 말해서 로맨스 작가들은 대개 사랑의 시작이나 끝에 매달리면서 그 중간을 무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별로 관심이 없기에 작가들은 중간을 최대한 짧게 만들 방법을 강구한다.  - P225

하지만 실제 연인들은 정확히 반대를 행한다. 중간을 가능한 한 길게 만들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중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미 가진 것을 욕망하는 일이 완벽히 가능하다는 의미다.  - P225

나는 C가 바로 옆에 있지만 짜증 나 있거나 
딴생각에 빠졌을 때, 그녀가 다른 도시에 가 있는데 나는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그녀를갈망한다. 그녀는 내 품에서 잠들어 있는데 나는 실존적인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그녀가 내 곁에 있기를 절망적으로 원하면서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그녀를 갈망한다. 응답받은 연인들은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욕망이 항구적으로 형태를 바꾸기에 고통받는다. 우리가 욕망하는 건 동시대 문화가 기본적으로 갈구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 P225

상실은 세계를 축소하지만, 발견은 풍성하게, 풍부하게, 재미있게 한다. 나는 C와 만나고 사랑에 빠져 있었고, 바람이 불어와 눈부시게 반짝이는 겨울철 밀은 내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녹색으로 보였다. 나는 들판 한구석에서 필멸자들의 세상을 떠나 저들만의 마법 왕국으로 향하는 듯 날아오르는 수백 마리의 흰기러기들을 보았고,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시골로 이사를 왔고, 바다의 힘으로 대지 위에서 장애물 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기대어 오후 달리기를 했고,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처럼 순수한 상쾌함을 느꼈다. 
나는 C의 부모님과 자매들을 비롯한 대가족들과 가까워졌고, 부활절 아침이면 그들과 같이 교회에 가고, 크리스마스면 그들의 트리 아래 선물을 놓는다. 나는 태어난 집과 마찬가지로 근사한 또 하나의 집을 발견했고, 그 전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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