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역시 마찬가지다. 고장이 덜 나고 수리가 편한 게 명작이다. 튼튼하기로는 파커51이 1등이다. 파커51은 내장부품의 균형이 좋다. 사람으로 치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서 장수하는 셈이다. - P222
파커51이 처음부터 내부가 균형이 잡혔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장착된 잉크 저장 장치는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나면 고장이 나곤 했다. ‘버큐메틱vacumatic‘이라 불린 이 장치는 복잡했고, 수리도 쉽지 않았다. 당시 파커의 CEO는 케네스 파커였다. 그는 지금으로 치면 만년필계의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었다. - P222
그는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버큐메틱을 하루라도 빨리 치우고 싶었나 보다. 기능을 유지한 채 복잡한 물건을 단순하게 만드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파커는 몇 년간 치열하게 연구했고, 결국 1940년대 말에 30년을 사용해도 문제없다는 에어로매트릭 Aerometric 잉크 충전 장치를 내놓았다. - P224
새로운 장치는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쉽게 잉크를 넣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제작됐고 고장이 나지 않았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처럼 파커51이라는 명작 역시 계속된실패와 부단한 노력이 더해진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 P224
파커51에 필적하는 몽블랑149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만년필 회사 중 하나였던 펠리칸에서시작한다. 펠리칸은 새로운 잉크 저장 장치인 ‘피스톤 필러‘의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과감히 만년필 세계에 뛰어든 회사로서, 1929년에 처음으로 만년필을 시장에 내놓은 회사다. - P224
이때만 해도 몽블랑은 펠리칸의 성공을 점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펠리칸이 만년필을 만들 수 있도록 펜촉을 공급한 회사가 몽블랑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몽블랑은 1924년에 이미펠리칸의 ‘피스톤 필러‘와 유사한 잉크 저장 장치에 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펠리칸보다 5년은 앞서 피스톤필러가 장착된 만년필을 양산했을 것이다. - P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