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라는 습관은 질기다. 레너드 말로는 외로움을쓸모 있는 고독으로 바꿔내지 않는 이상 난 영영 엄마의딸일 거란다. 물론 그 말도 맞기는 하다. 사람은 이상화된타자의 부재로 인해 외롭지만, 그 쓸모 있는 고독 속에스스로를 상상의 동반자 삼아 침묵에 생명을 불어넣고지각 있는 존재라는 증거를 방 안 가득 채워 넣는 ‘내‘가있다. 이런 통찰의 기틀을 마련하는 법은 에드먼드 고스로부터 배웠다. 그는 탁월한 회고록 『아버지와아들Father and Son』에서 아버지의 거짓을 발견한 여덟 살 아이가 내면의 혼란에 빠져드는 과정을 묘사한다. - P184
아이는 속으로 질문한다. 아빠라고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면,아빠가 아는 건 대체 뭐지? 사람들이 하는 말이랑 그 사람이랑은 무슨 관계일까? 뭘 믿고 뭘 믿지 않을지 어떻게 결정할까?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이는 문득 자기에게 말을 걸고 있단 걸 깨닫는다. - P185
고스는 이렇게 적는다. "그 위태로운 상황에 아직여물지도 발달하지도 못했던 내 작은 뇌로 몰려들던 온갖 생각 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건, 내가 동행해줄 이도, 비밀을 나눌 친구도 전부 내 안에서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엔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은 내 것인 동시에나와 같은 몸을 쓰는 누군가의 것이기도 했다. 우리 둘이 있었고 우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 나 자신의 가슴속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를 발견한다는 건 크나큰 위안이었다." - P185
뉴욕은 일자리가 아니에요, 기질이죠. 그들이 그렇게 답해준다. 뉴욕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인간의 자기표현력에 대한 증거가 그것도 대량으로 필요해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다. 가끔씩도 아니고 매일 필요해서. - P218
그들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거라서. 감당할 만한도시로 떠나버리는 사람들은 뉴욕 없이도 살 수 있는사람들이지만, 뉴욕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뉴욕없인 못사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뉴욕 없이 못 사는 건 나라고 말하는 게 더맞을지도. - P219
파크애비뉴에서는 마나님처럼 말끔히 차려입은 여자가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나 젊었을적엔 남자들이 메인 요리같았는데 지금은 죄다 양념 같아." - P220
두 시간 뒤 집에 돌아온 나는 식탁에서 저녁을 먹으며창밖으로 도시를 내다본다. 오늘 내 앞을 가로질러간 모든 사람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들의 목소리가들리고 그들의 몸짓이 보이며, 나는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본다. 그들은 순식간에 나의 동행, 근사한 동행이 된다. 속으로 생각한다. 아는 사람과 함께하느니 오늘밤은 차라리 당신들과 여기 있겠노라고. 뭐, 그것도 아는사람 나름이지만 말이다.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 시간과 함께 날짜까지 알려주는 그 시계를 바라본다. 레너드에게 전화를 걸 시간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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