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죽음의 모습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죽는가

1929년에 파리의 15구에 있는 병원에서 몇 주를 보낸적이 있다. 창구 직원들은 평소대로 내게 고문과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그들은 입원을 허가하기까지 얼추 이십 분 동안 내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라틴계 국가에서 서식을 작성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가 말하는 질문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알 것이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 며칠 동안 나는 열씨로 잰 체온이 화씨로 몇 도가 되는지 몰랐지만 체온이 화씨 103도 정도였고, 면담이 끝날 때쯤에는 두 발로 서 있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 뒤로는 체념한 듯 보이는 환자들 무리가 색이 들어간 손수건으로 싼 꾸러미를 들고 면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P88

질문 다음은 목욕이었다. 감옥이나 구빈원에서처럼 신입환자들이라면 무조건 거쳐야 할 단계였다. 옷을 벗은 후, 깊이가 13센티미터 정도 되는 미지근한 물속에서 몸을 덜덜 떨면서 몇 분을 앉아 있다가 나오자 리넨 환자복과 짧은 파란색 플란넬 가운이 주어졌다. 슬리퍼는 내 발에 맞는 큰 것이 없다면서 주지 않았다. 그다음 나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 P88

때는 2월의 어느 밤이었고 나는 폐렴을 앓고 있었다. 200야드쯤 떨어진 병동으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병원 정원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 같았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랜턴을 들고 비틀대며 앞장서고 있었다. 자갈이 깔린 통로에는서리가 내려앉았고 바람이 세게 불어 맨살 종아리를 덮고 있는 환자복이 펄럭였다. 병동 안으로 들어서니 묘하게 익숙한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밤늦게야 알게 됐다. 병동은 세로로 길었으며 천장은 좀 낮았고, 조명은 어두웠고, 웅얼거리는소리가 가득했다. 병상은 세 줄로 놓여 있었는데 충격적이게도 병상 간의 간격은 붙어 있다시피 할 정도로 좁았다. 똥 냄새와 약간 달짝지근한 냄새가 섞인 악취가 진동했다.  - P89

 그 두 사람이 내게 보인 비인간적인 태도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각인돼 있다. 병원의 공중 병동에 입원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으며,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인간적인 의미에서 환자가 앞에 있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 의사에게 치료를받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들이 한 일은 그저 내 몸에잔 여러 개를 붙이고 난 후 물집이 잡히면 물집을 터뜨리고는 다시 유리잔을 붙이는 것뿐이었다. 잔 하나하나에서 디저트용 숟갈 하나 분량의 검은 피가 나왔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모욕감, 역겨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 P90

X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처음 몇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다양하고 모순된 일련의 처치를 받았는데 나는 이 점이 이해가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이 의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아니거나 의학적 지식을 늘리는 데 도움이될 만한 것이 아닌 한 치료는 좋든 나쁘든 아주 조금만 받는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새벽 5시면 간호사가 와서 환자들을 일일이 깨워 체온을 쟀지만 씻기지는 않았다. 혼자 씻을 수있는 상태면 혼자 씻었고, 그렇지 않으면 걸어 다닐 수 있는환자의 호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병상용 소변기와 찜 냄비라는 별명이 붙은 역겨운 병상용 대변기를 치우는 일 역시대부분 환자들 몫이었다. 
8시에는 군대식 수프라 부르는 메뉴가 아침 식사로 나왔다. 가느다란 채소와 눅눅한 빵 조각이 둥둥 떠 있을 뿐이었지만 이름대로 수프는 수프였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키가 훤칠하고 근엄하게 보이는 검은 턱수염을 기른 의사가 회진을 했다. 인턴 한 명과 의대생들 한 부대가 의사를 따라다녔다. 병동에는 나를 포함해서 환자가 예순 명 정도 됐고 이 의사는 다른 병동의 환자도 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P91

내 병상에서 약간 떨어진 병상에는 간경화를 앓고 있는57번 환자(57번이 맞을 것이다.)가 있었다. 우리 병동 환자들 모두가 이 환자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환자가 가끔씩의학 강연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오후에 그 키 크고 근엄한 의사가 병동에서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는 했다. 
그들은 나이든 57번 환자를 소위 환자운반차에 태워 병동 한가운데로 데리고 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의사는 이 환자의 환자복을 배 위쪽으로 말아 올린 후 환자의 배에서 튀어나온 부분(내 추측으로는 그 부분이 병든 간인 듯했다.)을 손가락으로 눌러 팽창시키고는 와인을 마시는 나라사람들이 알코올중독 때문에 이런 병에 흔히 걸린다고 진지하게 설명을 하곤 했다. 
여느 때처럼 의사는 환자에게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미소도 전혀 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 같은 것을 결코 하지 않았다. 꼿꼿이 선 채 매우 근엄하게 강연을 이어 가는 의사는 중간중간 피폐해진 환자의 몸을 두 손으로 잡고서 마치 아녀자들이 밀가루 반죽을 밀대를 굴리듯 환자를살짝살짝 앞뒤로 밀곤 했다. 57번 환자는 이런 식으로 취급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 P94

어느 날 아침, 구두수선공인 환자가 내 베개를 확 잡아 빼나를 깨웠다. 간호사가 오기 전이었다. "57번!"이라고 외치면서 머리 위로 양팔을 머리 위로 휙 들어 올렸다. 병동에는 전구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사물을 분간할 정도는 됐다. 
57번 노인 환자는 몸을 구겨서 모로 누워 있는 듯했다. 내 쪽을 향한 얼굴이 병상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사망 시간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난밤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간호사들이 와서 그 환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무덤덤하게 전해 듣고는 곧장 자기 일들을 하러 갔다. 한 시간도 더 지난 후에 다른 간호사 두 명이 군인처럼 나란히 줄을 맞춰 저벅저벅 발소리를내며 병동으로 들어와서는 시신을 병상 시트로 싸맸다. 시신은 그날 늦게야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 날이 좀 더 밝아져서 57번 환자를 더 잘 살펴볼 수 있었다. 그를 잘 보려고나도 아예 모로 누웠다. 신기하게도 죽은 유럽 사람을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죽은 사람들을 그전에도 여럿 봤었지만 거의가 다 아시아 출신 사람들이었고
그 전에도 험하게 죽은 사람들이었다.
57번 환자의 눈은 여전히 떠져 있었고 입도 벌어져 있었으며, 작은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 P96

그의 창백한 얼굴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얼굴은 그 전에도 창백했었지만 지금은 병상 시트보다 약간 짙은 정도로 창백했다. 작고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카트에 실려 해부실 시체 안치대 위로 던져 버려질 이 같은 역겨운 쓰레기도 연도 기도의 대상이 되는 자연사의 한 사례로 여겨지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나는 이십, 삼십, 사십 년 후 우리를 기다리는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 P96

 자연사는 얼추 더디고 역한 냄새가나고 고통스러운 뭔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또한 자연사는 심지어 집에서 벌어지느냐 공중시설이 아닌 곳에서 벌어지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이 환자처럼 촛불이 꺼질 때처럼 깜박거리다가 한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가련한 노인은 임종하는 사람 한 명 없을 정도로 보잘것 없었다. 그는단지 숫자에 불과했고 의대생들 수술용 칼의 실험 대상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곳에서, 즉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죽어 가야 하는 추악한 현실이란! 병원은 병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병상 사이에 칸막이도 없었다.  - P96

가렁 한때 나와 발을 맞대고 지내던, 병상보가 몸에 닿기만 해도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던 그 작은 환자를 상상해 보라! 감히 말하건대 "오줌 나온다!"라는 말이 기록상 그의 마지막 말이었을 것이다.
죽어 가는 사람은 그런 일에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적어도 그런 것이 표준화된 반응이다. 그럼에도 죽어 가는 사람도 죽기 하루 이틀 전까지는 정신이 멀쩡한 경우가 흔하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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