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그것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찾아서 (아사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왜 화를 내서는 안 되는가? 왜 아픈 사람은 미안해하고, 사력을 다해 명랑하게 보이려고 애써야 하는가? 아서 프랭크는 이런 환경과 조건이 환자가주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하는 ‘거래‘의 일종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돌봄과 도움의 대가로 환자에게 명랑함과 용감함을 바라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점, 누구도 평생 건강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일이다. 질병이 일탈의 상태가 아니라 건전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환자에게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아서프랭크는 말한다. 병듦과 고통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은유적 관념, 노화·질병·장애 · 죽음을 은폐하고 외면하는 사회적 시선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 P254
질병에 시달려본 사람은 자신도, 세계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안다. 아서 프랭크 역시 아프면서 자신이 주변을 천천히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격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때로 반짝이는 햇살을 느끼고 비를 맞으며 몸의 경이로움을 인식했다. 배우자의 돌봄에 감사함을 느끼고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 돌봄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곰곰 되새겼다.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의 경험도 소중한 권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하는 데서 질병이라는 것이 환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 P254
아서 프랭크는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고통은 견딜 만한 것이되고, 남의 인정을 받을 때 고통은 줄어든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양쪽 모두 인생의 어떤 기회를 얻거나 잃어버릴 위험에 직면한다. 놀라운 점은 질병이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한쪽 측면으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모두 죄책감 안에 가두는 일은 위험을 지속하는 일이며 돌봄의 핵심은 ‘너그러움‘에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자신을 돌볼 때도 마찬가지다. 너그러움은 종교적 자비심과도 연결된다. - P255
페미니즘 제2물결로 자기 몸의 통제권을 가져오려는 운동을 펼치던 여성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룹인 ‘보스턴 여성건강서 공동체‘는 1970년 《우리 몸우리 자신》이라는 역사적인 책을 남겼다. 지은이들은 몸의 정치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가부장제가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여성의 몸을 다시 여성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 기획을 선보인다. 그들의 목표는 의학적 전문 지식을 자원 삼아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는데, 아서 프랭크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환자가 자기 몸에 관한 담론의 주도성을 갖고 다양한 질병과 고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그는 아픈 몸은 침묵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 P256
‘몸‘이란 개념은 구체적 분석 대상이지만, 환자들의 이야기는 의학적 몸이 아니라 ‘경험된 몸‘lived body, ‘체현된 몸‘embodied body에 관한 것이다." 이런 접근은 몸에 대한 지식을 창출하는 권력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의사는 될 순 없지만, 누구나 환자가 되는 현실에서 ‘몸의 증언‘을 기록하고 말하는 일은 지나치게 편중된 ‘의료 권력‘을 좀 더 평등하게 재구조화하는 일로도 이어진다. ‘치료‘가 빼앗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되찾기 위해 아픈 사람들은 누구나 스토리텔러가 될 필요가 있다고 아서 프랭크는 말한다. 아픈 사람들의 상처는 몸뿐 아니라 살아온 역사와 치료 과정 속에도 남아 있다.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을 치유의 길로 나아가게 하며 서로를 연결한다. - P257
-마음의 그림자, 잘 다뤄내야할 중년의 과제
영원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아이로 살아가는 피터는그림자가 없는 삶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를융은 ‘아이다움‘에는 ‘완벽한 자신의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문명화된 어른은 아이를 볼 때 어떤 갈망을 느낀다. 채우지 못한욕구와 필요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에게서 그가 느끼는 묘한 감정은 성인이 가진 ‘페르소나‘, 곧 연극적인 가면에서 떨어져 나간 인격의 한 부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 P283
존슨은 어둠을 거부하고 부정할수록 내면 다른 곳에 어둠이 저장되고 축적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기 위해선 잠깐 쉬거나 의례를 갖는 것도 좋다고 한다. 까다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끝냈을 때, 힘든 일을 마치고 어두움이 올라온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림자를 내려놓지 않도록 잠시시간을 두고 적극적인 명상을 하는 등 시간을 갖는다. 창조적인일을 한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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