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일상적인 하루였습니다. 뉴욕 항구부두에서 크레인 전문 운전기사였던 주인공 톰 크로즈는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해 달라는 부두관리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와서, 이혼하면서 전처와 살고 있는 아들과 딸을 주말마다 만나서 그날도 평범하게 아들과 딸에 대한 특별한 애정없이 지내던 중이였습니다.
갑자기 집이 흔들려 밖으로 나가보니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며,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번개가 구름에서 땅으로 내리쳤지만, 그후에 나타나야 될 천둥 소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전개과정에 대한 복선이겠지요.
불안한 주인공은 딸을 집안에 있게 한 후,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나간 아들을 찾을 겸 밖으로 나가보니, 불안한 시민들도 주인공처럼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길거리에는 전부 자동차가 멈춰져 있었고, 주위의 모든 전기는 정전이 되어서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인 군중들 밑에서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땅에서 엄청나게 큰, 빌딩 높이만한 세 발이 달린 기계(머리 부분은 타원형의 문어대가리 모양?)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필버그는 외계인이 만약 지구를 침공할 거면 대기권 밖에서부터 들어올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려고 하였지만, 이 구상이 그렇게 치밀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계가 땅에 묻히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거든요.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쯤 되면 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죽도록 도망을 가야지요. 그런데 인간의 호기심은 죽기까지 끝이 없는 것 같더군요. 아니, 죽고 나서도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까요? 여기가 어딘가??? 그래서 호기심 천국 아니면 호기심 지옥인가?(썰렁~) 도망을 가면서도 그 기계의 실체에 대해서 계속 뒤를 돌아보며, 궁금해 하던 사람들... 그러면서 죽어가는 사람들... 이 기계는 드디어 가공할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두 눈처럼 생긴 촉수같은 곳(자동차의 전조등과 비슷하게 생김)에서 자기장 광선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을 재로 만들고, 빌딩과 자동차들을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저히 감당이 안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상상속의 일들이,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현실로 발생하다니!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지구의 멸망을 예고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비상식량을 챙기고 아들과 딸을 데리고, 멈춰진 자동차들 중 주인공의 이웃인 자동차정비공이 유일하게 수리한 남의 자동차에 타고, 위 저주받은, 아니 외부로부터 침공을 받은 뉴욕을 떠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갈 때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뉴욕에서의 위기를 모면하여야 하지만 어디를 가야 안전한가?
특별한 대안없이 그저 이 기계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여기서 자동차정비공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인공이 남의 자동차를 타고 가려니, 당연히 자동차정비공이 문을 열면서 내리라고 합니다. 남의 자동차를 가져가면 자기가 물어주어야 한다나요... 그런데 이야기하는 중에 뒤에는 기계가 자기장 광선을 싸대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며 다가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너도 빨리 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세히 설명을 할 시간이 없으니 내 말을 믿고 타라고 하는 주인공의 간절한 눈빛을 대하던 자동차정비공은 이것을 외면한 채 주인공을 끌어내리려고 하고, 주인공은 사정없이 자동차문을 닫고 출발을 합니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정비공은 자기장 광선을 맞고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립니다.
출발은 하였으나 갈 때는 없고, 일단 이 기계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무작정 길을 떠났습니다. 도로는 정차된 자동차들과 피난가는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가면서 주인공의 간절한 바램은 무엇이였을까요? (영화를 그냥 즐기면 되는데, 뭐한다고 주인공의 생각까지 알려고 하냐고 핀잔을 줘도, 궁금한데 어떻게 합니까?, 역시 호기심은 끝이 없죠?) 제발 주인공이 본 이 기계가 1대만 있기를 간절히 바랬을 것이고, 그러면 살 희망은 있다. 이 기계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일부 세상에 대해서 비관적인 정신병적인 과학자가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찌 살 방도를 찾아볼 수도 있는데... 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를 저 혼자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가면서 주인공이 경험한 것은 공격하는 기계들이 하나 둘이 아니고, 무수히 많다는 것과 이 기계들의 공격 범위가 전지구적이라는 것과 이 기계들이 점령한 지역은 거의 초토화되어 있어, 전부 핏빛으로 물들어 있으며, 생존한 인간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또한 기계들의 목표는 지구에 사는 인류들을 포로로 잡아 부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류 멸망이였습니다. 여기에서 오는 절망감을 이루 말을 할 수 없겠지요? 흐르는 강물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떠내려가고, 푸르러야 할 산과 들에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지구를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보셨나요? 이것이 현실로 나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보셨나요?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이고, 실제 현실이 가상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경험을 매트릭스 영화나 진중권의 책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가요?
주인공은 추락된 비행기에서 생존한 여기자(?)로부터 기계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는데, 여기서 스필버그 감독은 다소 황당한 설정을 합니다. 이 기계들이 땅에서 나왔는데, 이 기계들이 땅 속에 있었던 기간은 인류가 생기기도 훨씬 전에 땅 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이지요. 진화론에 의하면 인류가 100만년 전에 생겼나요? 그전에 땅 속에 묻혀 있었다면서 외계인의 지구침공 계획은 인류가 지구에 있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스필버그의 의도는 인간이 이 지구상의 주인공이고, 주인이라는 거만한 생각을 떨쳐버리라는 멧세지인가요? 아무튼 이 땅속에 묻힌 기계들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번개 속에 비밀이 있습니다. 또한 번개가 치면서 천둥소리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구요. 외계인(외계인의 모습을 보니 이미지가 E.T나 골룸과 비슷한데,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징그럽다는 것이지요. 이것도 인간을 기준으로 한 편견인가요?)들이 지구 땅 속에 묻혀 있는 기계에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번개(자기장?)를 통해서였습니다.
그후 영화는 기계들이 인류를 공격하는 장면들과 인류들은 전혀 대항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들로 수를 놓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이혼한 전처가 있는 보스톤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인간 생존본능을 경험하게 되는데, 자동차가 피난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 피난하는 사람들이 유일한 이동수단인 이 자동차에 함께 타려고 주인공의 자동차를 공격하게 되고, 급기야 주인공과 아들, 딸은 자동차에서 쫒겨나고, 이 자동차를 탈취한 사람은 5미터도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총격을 당하여 살해되고, 다시 이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할 것이고....
지구 멸망의 위기에서, 자기 목숨에 대한 생존본능은 가히 상상도 할 수가 없는데,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여기에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타인의 목숨은 나의 목숨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면,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이 인간 실존의 모습을 스필버그 감독은 상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도 자기 생존본능과 딸의 안녕을 위해서, 지하실에 함께 숨어있던 사람을 살해한다는 암시가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는 인간애라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기계들의 무차별 공격만이 있고, 무력한 미군의 방위력은 이 기계들 앞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생존본능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스필버그가 끝까지 놓치지 않는 부분은 가족애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가요??? 전지구적 멸망의 위기에서 대책없는, 그래서 너무도 두려운 주인공이 아들과 딸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자기의 목숨조차 아까와 하지 않습니다. 실제 딸이 기계에 잡혀서 기계 속으로 사라졌을 때, 우리의 주인공은 수류탄 주머니를 들고 과감하게 기계에 잡혀 기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서 이 기계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문어대가리 모양의 머리 부분의 안쪽에는, 양쪽으로 철창이 있고, 그 철창안에는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이 빨판으로 빨아드리려는 기계의 촉수를 이리저리 피하고 있는 아수라장이였습니다. 거기서 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주인공이 그만 이 빨판의 표적이 되어 잡혀, 빨판 안쪽으로 계속 밀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실제 주인공이 머리부터 다리까지 빨려들어가다가 다른 사람이 다리를 잡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도와주어서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주인공은 죽다가 살아남은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영화의 특징인 주인공은 죽을 수 없다. 죽더라도 영화가 끝나갈 때 죽는다는 철칙이 나타납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주인공은 빨판에서 빠져나오면서 수류탄 주머니를 빨판에 던지고, 멋도 모르는 기계는 이 수류탄을 삼킨 후 수류탄이 폭발하여 기계는 쓰러지고 철창 속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왜 기계나 외계인들은 인간의 피를 원할까요? 영화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진 의문이였습니다. 기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피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외계인들의 에너지원으로서 필요한 것일까?
영화 중간에 기계들의 점령지인 지하실에서 주인공과 딸, 그리고 집주인이 숨어 있는데, 기계의 촉수가 지하실로 내려와서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지를 탐색하는 장면과 외계인 몇이 지하실에 나타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외계인을 보게 되죠. 그런데 이 장면들(기계가 탐색하는 장면)이 낯이 익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봤더라? 그렇죠. 쥬라기공원에서 공룡들이 주인공들을 잡으려고 탐색하는 장면과 흡사하더군요.
영화는 종반으로 치달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주인공이 외계인의 약점을 밝혀내고, 이를 이용하여 외계인과 기계들을 물리쳐서 자기도 살아남고, 가족들을 살리고, 그리고 우리의 바램인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의외로 단순하게 해결이 되더군요. 너무나 간단해서 얼척(?)이 없을 정도로....
자 그러면,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하였던 인류멸망의 위기상황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어떻게 위기를 해결하면서 마무리를 짓는지 살펴볼까요. 우선 주인공이 기계들의 공격으로부터 피하면서, 기계가 파괴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미군에게 물어보죠. 어떻게 이 기계가 쓰러졌냐고. 미군의 대답은 기계가 그냥 빙빙 돌더니 쓰러지더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기계들을 보니 까마귀가 기계들 위에 달라붙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장으로 보호막을 치고 있던 기계들에게서 자기장 보호막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 보호막 때문에 미군의 화력이 소용이 없었던 것이구요. 그러면 까마귀가 지구를 구했냐구요? 아닙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원인을 찾지 못합니다만 미군에게 보호막이 사라진 기계들을 향하여 화력으로 공격하라고 하고, 미군들은 이 기계들에게 공격을 가하여 기계들이 하나 둘 쓰러집니다.
주인공은 딸과 함께 무사히 보스톤으로 가서 이혼한 전처와 그리고, 피신 중간에 미군을 도와서 지구를 구하겠다며 떠난 아들도 만나면서 영화는 엔딩을 하는데, 원래 주인공의 목표인 가족들의 생존은 이루어졌군요. 역시 대단합니다.
아직 기계가 쓰러진 원인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을 나레이터는 지구에 존재하는 미생물들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 미생물들은 지구가 생겨나면서부터 있었을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진화한 인류는 미생물로부터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지만, 외계인들은 다르다는 거죠. 이 외계인들이 인류는 죽일 수 있지만, 이 지구상에 있는 미생물들에게는 적응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외계인들의 입장에서는 지구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외계인들이 미생물에 감염되어 하나 둘 죽으면서, 기계들도 쓰러졌던 것이구요. 그러면 지구는 누가 구하였는가요? 스필버그의 대답은 미생물이라는 것이지요. 어째 좀 황당하지 않은가요?
그러면, 이 영화의 주제는 뭐일까요? 지구는 인류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인도 아니니까 조금은 겸손하게, 그리고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살자! 아니면 역시 지구는 누가 지키던 멸망하지 않아! 하는 안도감? 글쎄요? 과연 그런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이상으로 영화평을 적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져버렸습니다.
여기서 주님 재림과 비교하여 느낀 점을 간략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1. 주님 재림은 이 영화처럼 우리의 일상중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 때처럼,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중에.....
2. 이 재림은 인간 누구나가 감당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인류처럼, 기계들의 무차별 공격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듯이....
3. 이 세상 심판 때 인간들은 생존본능으로 몸부림칠 거라는 것이지요. 몇 시간이라도 더 살려고....
4. 그러나 갈 때가, 피할 때가 없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심판은 전지구적이고, 전우주적이기 때문에...
5. 주인공의 말을 믿지 않은 자동차정비공처럼, 인간은 심판이 임박하였으니 나를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마치 소돔성에 있던 롯의 사위가 소돔멸망 소식을 농담으로 여겼듯이.... 그러나 심판이 막상 닥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만사에 때가 있다고, 하였지 않은가요?
6. 이 심판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습니다. 주인공도 죽다가 살아났지 않던가요? 우리도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심판 그대로, 죽다가 살아나는 방법만이 살 길입니다. 주님이 살려주어야 삽니다.
7. 영화에서는 요행으로 미생물이 지구를 구합니다만, 실제 심판 때는 이런 요행이 통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멸망합니다. 가상현실 갔죠? 하기야 우리가 어떻게 보지 않고 이것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8. 그러면 지구가 멸망하면 그것으로 끝인가요? 아니죠. 다시 만들죠. 이것을 재창조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거야 저는 모르죠. 방법은 모르고, 사실만 안다는 것입니다.
9. 그러면, 어짜피 죽을 인생 멋대로 살자? 아니죠. 인간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계속 멋대로 살았습니다. 지구 멸망한다고 멋대로 살지는 않죠.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죠? 심판주이신 예수믿고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이 너무 간단하고 황당한가요? 영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