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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독해라는 것이 있을까? 책의 진리를 남김없이 드러내는 최종적인 독서. 그런 독서가 있다면 책은 태어나는 즉시 죽을 것이다. 모든 시간에는 맹점이 있듯이, 모든 독해에는 맹점이 있다. 우리의 눈이 맹점이 없이는 아예 볼 수 없듯이, 모든 독해는 그 무언가를 자신의 맹점 속에 감추어야 책의 진리를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맹점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그 역시 고유의 맹점을 가진 다른 독해이다. 때문에 책은 다시 읽혀져야 하고, 그 독해는 영원히 완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진중권의 앙겔루스 노부스 중 여는 글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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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의 "선택"은 주권자의 자유로운 행위의 표현이며 결코 피택자에게 어떤 의무(빚)가 있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인간들은 선택할 때에 일반적으로 먼저 심사숙고하는 것이 상례인데, 야웨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실 때에 다른 민족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서는 구약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신명기 서두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 입장을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즉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다"(7:7)고 말한다. 야웨는 이스라엘보다 "강대국 열국"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다(4:38).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이 도덕적으로 무가치하고 목이 곧은 백성임을 지적한다(9:4-6, 10:14-16).

이스라엘과 야웨의 결합을 역사적으로 가능케 했던 출애굽 사건의 긍정적인 이유로서 한 가지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즉 야웨가 그들의 족장을 사랑하고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신의에 대한 언급이 그것이다. "야웨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셨느니라"(7:8). 여기에서 우리는 야웨의 비합리적이고 자유의지적인 사랑의 결정이 이미 족장시대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더 이상 그 배후의 사정을 알아볼 수는 없다.

발터 침멀리의 <구약신학> 중 하나님의 선택 일부 발체(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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