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요세푸스의 심지뽑기
군중과 권력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강두식. 박병덕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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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선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원이 직선>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는 대중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한 정치가였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을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였다.


81년 생소한 엘리아스 카네티가 노벨상을 받았고, 82년 그의 저서를 구입하였다. 제목은 <군중과 권력>이었다. 군중과 권력은 항상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선동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선동에 의해 군중들은 일사분란하게 외치거나 행동한다.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찍은 <의지의 승리>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가? 1934년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찰영한 이 영화는 엄청난 시각적 효과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거대한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꽉 들어찬 대중들, 그리고 그 사이에 넓게 난 일직선의 공간,  여기를 단 세 사람의 인물이 행진한다. 그 압도적인 화면은 대중과 권력의 속성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에 대한 일사분란한 복종의 정신과 범접할 수 없는 신격화가 화면에 담겨있는 것이다.


이 책은 파시즘에 대한 보고서이지만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대중이란 어찌보면 너무나 단순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집합체인 대중은 욕구를 분출하기를 원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인간적 평등을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타인의 간격에 틈이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좁혀지는 밀집을 사랑하며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이 움직일 방향이 문제인 것이다. 대중은 어찌보면 레밍과 같은 존재일수도 있다. 선두 주자의 안내로 정해진 한 방향으로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단순성을 우리는 중국의 60년대 문화혁명에서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이성은 감성에 의해 소멸되는 하찮은 것일 뿐이다.


군중을 움직이는 권력의 속성은 폭력이다. 이 폭력은 물리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다. 폭력을 수반한 권력은 언제나 속도를 중요시한다. 징기스칸은 늑대의 후손이었고, 파라오는 매였으며 로마황제는 독수리였다. 권력을 장악한 자에게 가장 성가신 존재는 신속함을 방해하는 세력인 것이다. 왜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에서 야당이 탄압을 받아왔는가는 이 속성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의 또 다른 속성은 질문이다. 질문의 긍국적인 목표는 분해이다. 한 인간을 또는 한 집단을 철저히 분해하므로서 그 자체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가장 핵심은 비밀이다. 먹이를 사냥하는 사자를 보라. 그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은폐시킨다. 그러므로서 상대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언제,어디서,어떻게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대에 대한 공포감. 비밀은 두려움과 연결되는 코드이다.


테렌스 데 프레의 <생존자>라는 책에서 "죽음은 결코 승리일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권력의 박해 속에서 수용소에 갖힌 사람 가운데 생존자만이 증언할 수 있다는 생존자들의 외침은 생존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권력은 자신의 약점과 치부를 감추기 위해 모든 증인을 압살하려한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그 시대의 증언자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권력은 대중을 이용해 권력을 얻었지만 살아남은 생존자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심판자가 한 명일지라도 유효한 것이다. 바로 이점을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은 두려워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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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우정혁 > 정말 사실일까?
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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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미철학 하면 두려움마저 느낀다. 명제를 분석하는 그들의 논리는 수학적인 기본 베이스가 전제되어 있기에 보통 명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비트겐슈타인은 왜? 라는 책은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과 물음을 해소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인은 자부하기에 이 책을 꼭 숙독하기를 권한다.

영국의 경험론을(로크, 버클리, 흄) 바탕으로 출발한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중심으로 그들의 학파를 형성한다. 모리츠 슐리크가 그 멤버들의 장임과 동시에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은 그 모임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다. 그 외에도 러셀과 카르납, 괴델, 헴펠, 노이라트, 콰인 등의 수 많은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과학의 대가가 이 모임을 형성하고 있다.

당시의 오스트리아의 빈을 중심으로 하는 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그들의 주된 모토를 '명제의 명료화'와 '과학을 통한 의미의 확실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모든 이전의 철학 체계를 명제의 분석과 경험가능한 검증성의 원리로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문제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편, 이러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모임은 다른 학파의 비판을 사기도 하였는데, 바로 그 자가 칼 포퍼였다. 포퍼는 '반증주의'라는 과학적인 탐구의 방법을 토대로 검증주의에 맞선다. 그리고 1946년 10월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는 캠브리지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속에서 그 둘은 하나의 역사적인 해프닝을 연출한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 사건'이다.

지금까지는 이 책의 서술적인 동기부분을 간략히 옮겨봤다. 이 책은 철학적인 문외한도 쉽게 비엔나 학파의 사상과 21세기 가장 위대한다고 칭송받는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삶과 사상, 그리고 철학의 여정을 소설같이 풀어내고 있다. 이전에 출판된 레이 몽크의 '천재의 의무'보다 더 상세히 그리고 쉽고도 화려한 문체로 위대한 두 학자의 학문적인 모든 태도를 소상히 적어내고 있다.

그 외에도 당시 히틀러의 세계대전이라는 상황적인 조건과 유대인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위에서 소개한 이 두학자외의 사상가들의 논리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렇게 부유란 집의 자식이는 것은 알고 있었도,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몰랐는데, 이 책에는 자세한 학자들의 사진과 첨부 자료를 소상히 담고 있다.) 또한 포퍼를 좋하하시는 분들에게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과연 그가 전체주의를 그냥 싫어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인가? 등등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괴델의 정리'라든가, '노이라트의 배' 또는 헴펠의 패러독스' 그리고 '러셀의 기술이론'등등을 보다 더 쉬운 소재로 형상화하고 있다. 오늘날 영미를 중심으로 영미철학을 이끌었던 사상의 전말과 그것을 통한 심리철학적인 맥락도 그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위에서 열거한 학자들의 저서를 읽는 것은 곤욕스럽고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를 정도의 논리를 구사하고 있기에- 기존에 나와있는 무니츠의 '현대분석철학' 보다는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영미철학의 전통과 그 시대적인 소산의 사상을 가장 쉽고도 진지하게 접근을 원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모른다고 무턱대고 폄하하거나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우월하다는 식의 논리는 이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21세기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 서구냐 동양이냐는 식의 분할과 그 와중에 한국의 사상이라는 정체성의 논리보다는 우선은 배우려는 진지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참으로 좋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나 또한 손에 잡은지 하루만에 다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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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부지깽이는 빙산의 일각
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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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비트겐슈타인이 초조한 모습으로 부지깽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며", "자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그걸 지휘봉처럼 휘둘렀다"라고 회상한다. 그러다가 윤리학의 지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때 비트겐슈타인은 포퍼에게 도덕적 규범의 예를 하나 들어보라고 요구했다. 포퍼는 "나는 대답했다. '초청 연사를 부지깽이로 위협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 대답에 격분한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를 내동댕이 치고 문을 쾅 닫으며 방을 나가버렸다."라고 기술하고 있다."」(15)

1946년 10월 25일, 케임브리지 대학의 작은 회의실에서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 10분간 격렬한 논쟁이 붙었다. 종내에는 비트겐슈타인이 포퍼를 부지깽이로 위협했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도대체 비트겐슈타인은 왜? 부지깽이를 들었을까?!

서두에 박력있는 문체로 사건을 묘사한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회원들의 엇갈리는 진술들, 수십 년 뒤 포퍼는 자서전에서 의혹스러운 그날의 회상 기록을 한다. 저자들은 그 일치하지 않는 진술들에서 두 철학자의 특징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매혹의 카리스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과 포퍼, 이 두 맞수를 공평하게 다루려 할 때 부딪히게 되는 한 가지 문제는 비트겐슈타인 사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마법의 힘이라고밖에는 달리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어떤 힘이 그에게 있다는 사실이다.」(37) 케인즈 교수는 케임브리지에 비트겐슈타인이 도착하자 이렇게 말했다. "신이 도착했다. 나는 5시 15분에 도착한 기차에서 신을 만났다." 비트겐슈타인의 제자들은 그가 벽을 통과할 것이라고 말하면 그 말을 믿어버렸다. 「이때 나는 의자의 팔걸이를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손목이 하얗게 될 정도였다. 나는 그가 정말로 벽을 지나갈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지붕이 무너질까봐 걱정했다. 그것은 그가 지닌 마력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마력의 일부는 이처럼 거의 모든 것을 마술처럼 환기시킬 수 있다는 데 있었다.」(40)

반면 포퍼는 「한 사람은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모습이었고 다른 사람은 왜소하고 평범해 보였기 때문에 전자가 포퍼일 것 같았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실은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 두 번째 사람이 포퍼였다.」(41)

저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두 철학자의 고향 빈으로 독자를 데려 간다. 그 10분을 위해 아예 뽕을 뽑자는 심산. 비트겐슈타인家는 오스트리아에서 로스차일드家 다음으로 부자였다. 예술의 도시 빈의 최상류층. 비트겐슈타인의 집은 브람스와 쇤베르크와 말러 등이 드나드는 음악 살롱이었다. 또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비트겐슈타인의 누이가 결혼할 당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유대인이었음에도 막대한 재산 덕분에 양차 대전을 무사히 넘겼을 정도의 가문 출생 막내 귀공자 비트겐슈타인.

반면 포퍼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지만 마찬가지 유대인이었던 관계로 나치에게 재산이 몰수 당했다. 포퍼는 학업을 포기해야했고 막노동을 했고, 결국은 뉴질랜드로 망명한다…

성공 과정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비트겐슈타인은 공학도였다. 수학에 관심이 있어 논리 철학으로 한창 명성 날리던 러셀의 책을 읽고는 편지를 쓰게 되고 만나고 대번에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이 천재인 것을 알고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했고. 그를 이해하거나 그를 세상에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62) 그러나 몇 년 후 이 천재는 스승 러셀을 무시한다. 「걱정 마세요. 절대로 이해 못 하시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65), 「그는 1차 대전 이후 러셀의 모든 철학적 연구가 형편없는 것이라는 얘기도 서슴지 않고 했다.」(66)

그러나 포퍼는 러셀을 존경했다. 「피터 먼즈는 러셀에 대한 포퍼의 태도가 "거의 영웅 숭배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평가한다.」(71) 포퍼는 비트겐슈타인과는 달리 열심히 작업했지만 그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뒤늦게야 출판되었다.

빈 학파는 비트겐슈타인을 '숭배'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빈 학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포퍼는 빈 학파에 속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결국 끼지 못했다. 후에 포퍼는 혼자서 빈 학파를 박살내버린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언어의 오해에서 오는 부산물일 뿐이라고 했다.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없다고 못박았다. 「사람들은 철학이 결코 진보하지 않으며 우리는 아직도 고대 그리스인들과 똑같은 철학적 문제에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입이 닳도록 하는 사람들도 정작 왜 그런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가 계속 같은 질문은 던지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275) 반면, 포퍼에게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없고 언어적 수수께끼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가 "즐겨 혐오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287)

이상의 내용을 염두하자면 포퍼에게 비트겐슈타인은 「학문적 적수 이상의 존재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존경받는 변호사의 아들에게조차 닿을 수 없었던 화려한 빈을 상징했다. 포퍼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사회적 지위와 부가 존경받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던 제국의 도시, 인플레이션이 낳은 가난에도 꿈쩍하지 않고 나치마저 매수할 수 있었던 별천지를 보았다. 이 세계는 가난 때문에 뒤처지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해야 했던 자신의 상황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198)

모든 것을 깔보는 천재와 이인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저돌적인 도전자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은 이러한 제조건에 의해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단, 비트겐슈타인은 포퍼를 몰랐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포퍼는 달랐다. 「포퍼는 어서 시작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는 에너지가 솟구쳤고 가슴은 쿵쿵 뛰었으며 더 많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철학이 말의 유희일 뿐이라는 쓰레기 같은 관념을 일소해버릴 것이다. 눈뜨고 못 보아줄 정도로 잘난 척 하는 이 선동가를 해치우리라.」, 「고귀한 자가 추락할 것이다. 빈 학파를 정신적으로 이끌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던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저택의 홀을 왔다갔다하며 사색하는 외로운 천재.」, 「오늘밤 승리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사과해야 하리라.」(302-303)

두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고 치밀한 기획/구성력을 발휘한다. 비트겐슈타인 추종자 측과 포퍼 측의 엇갈리는 그 날의 부지깽이 사건을 엄청난 괴력(?)으로 파고 들어 '서사'를 화알짝 전개시킨다. 이것은 추리 소설인가?! 오, 이렇게 철학적이고 역사적이고 매력적인 서사를 가진 추리 소설이 있었나?… 철학의 대중화를 꾀함인가?… 재밌다, 너무나 재밌다,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게다가 파트마다 삽입된 매력적인 사진들은 어떻구… 한 사건을 핵으로 두고 자박자박 살을 붙이는 저자들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며, 그 유쾌한 지적 유희의 독서삼매에 빠질 기회를 그대도 반가이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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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시비돌이 > 우리의 기억은 건강한가?
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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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에 불과하다', '기억은 현재의 나를 일깨우기 위해 있는거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10분 전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의 환자다. 그래서 그는 그 순간순간 기억해야할 것들을 포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두고, 그 느낌을 쪽지에 적어두거나 중요한 것은 심지어 문신으로 새겨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록이 진실이 아닐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기록은 사실이 아니라 그 기록을 적을때의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상당부분 지워가면서 살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경우 예전의 기억을 왜곡해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경우는 어떤 원인으로든 첫 번째 수술에 불만을 가져서 재수술을 하는 경우에 흔히 보게 되는데 '전 아주 쪼금만 세웠거든요'라고 말하던 환자도 과거에 수술했던 보형물을 제거한 후의 자기 코를 보고는 아연 실색하는 경우도 많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조작된 기억을 믿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기록에 많은 의존을 한다. 그러나 그 기록이라는 것 역시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 또는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생각(진실이 아닌)을 주로 기록한다는 측면에서 자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억일 소지는 충분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왜?'라는 책에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유럽 지성사에서 유명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 스캔들'을 여러 사람과 자료를 통해 추리형식으로 논증한 책이다.

   '부지깽이 스캔들(?)'이란 1946년 10월 25일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에서 벌어진 토론회 중에 초청발표자 칼 포퍼에게 고성을 지르며, 부지깽이를 휘두른 후 문을 꽝 닫으며 나가버린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한동안 철학계를 뒤흔들었다고 하는데, 당대의 대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였고, 그 자리에 버트란트 러셀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포퍼의 지지자들은 이 사건을 논쟁에서 진 비트겐슈타인이 흥분해서 나가버렸다고 해석했고, 포퍼 역시 자서전 등을 통해 그 날의 승리(?)와 그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두 천재의 엇갈린 삶의 궤적을 통해 두 사람의 스타일과 그 날의 사건을 추리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결론(결국은 추론이 되겠지만)은 악마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던 비트겐슈타인을 꺽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던 정열적인 철학자 칼 포퍼가 비트겐슈타인 마저 꺽었다는 자부심에 따른 과도한 의미부여로 인해 그 날의 기억을 왜곡시킨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흥분하면 소리를 높이고, 부지깽이 같은 것을 들고 흔들어대던 비트겐슈타인에게 그 날의 세미나는 약간 더 흥분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마저 포기한 비트겐슈타인의 초기학설에 대한 반론을 듣고 흥미를 잃고 중간에 자리를 떳다고 훗날 제자에게 밝혔다는 것이다.

   평생 비트겐슈타인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칼 포퍼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운명적인 만남에서의 일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통해 기억을 왜곡시켰다는 '부지깽이 스캔들'의 예를 보면서 새삼 인터넷이 얼마나 무서운(?) 공간 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평생을 준비해 한번의 토론에서 이겼다는 기억을 간직하며 자서전에 글을 남겼던 칼 포퍼가 살던 시대와 달리 우리는 한달에도 몇 번씩,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의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것도 공간적인 제약없이 말이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도 토론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식인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주위에서 가끔 그런 경우를 본다. 현재 벌어진 일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한 후 그것을 진리인 양 받아들이는 경우를 말이다. 그 자신만의 언어로 왜곡된 기억(사실은 해석인)을 되씹으면서 그것에 세뇌되는 경우도 흔히 있는 것 같다. 난 혹시 그렇지 않을까? 다행히 인터넷이란 공간은 수많은 관중들과 감시자가 있어서 좀 더 다양한 시점을 종합한 객관적인 해석을 내릴 여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

  '비트겐슈타인은 왜?'라는 책은 누가 논쟁에서 이기고 지고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한 책은 아니었을 것이다. 악마적 카리스마의 비트겐슈타인과 정열적인 철학자 칼 포퍼가 성장했던 배경과 그 시대 상황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성향을 들여다본 인물평전에 가까운 책일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이 "그(비트겐쉬타인)가 눈사태라면 나는 한 주먹으로 뭉칠 수 있는 눈에 불과할 것이다(이에 비해 포퍼는 러셀에게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라는 고백을 했다는 것을 볼 때 비트겐슈타인의 카리스마에 악마적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비유를 한 평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주류학파였던 '빈 서클'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비트겐슈타인은 이 서클에 관여하지 않고도 대부나 우상처럼 추앙받았지만, 포퍼는 이 서클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고대했으나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포퍼가 빈 서클과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를 외톨이 독설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최상류층 집안(라벨이 그의 동생을 위해 피아노 협주곡을 써주기도 하고, 브람스가 그 집안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담당할 정도로 ^^)에서 태어나 귀족적이고, 오만하고(카리스마는 거기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학문적으로도 아주 쉽게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비트겐슈타인보다는 비교적 어려운 환경에서 많은 노력을 통해 여러가지를 쟁취했고,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열등감(13살이라는 나이차이로 인한 사회적 위치에도 기인했을 것이다)으로 인해 훨씬 더 어렵게 학문적 성과를 이룬 포퍼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최상류층이었던 비트겐슈타인은 당연히(?) 보통사람들의 삶의 대한 성찰이 부족했었을 수 있고, 그에 철학에 대해 "까페" 분위기가 난다고 빈정거린 포퍼에게 단지 출신성분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열등감이 있었다곤 하더라도 포퍼는 그로 인해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위대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등을 저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포퍼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보이지 않는 무시, 편견 등을 극복하고, 동등한 평가를 받는 철학자가 되었지만, 수많은 '살리에리'들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지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그것이 타고난 재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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