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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ㅣ 우리 시대의 고전 15
르네 지라르 지음, 김진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평점 :
저는 지라르의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지라르 저작들의 결론과 같은 입장에 위치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들은 읽지 않았지만, 핵심 주장들을 먼저 요약을 한 후 이 책에 대해서도 진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저서는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로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인간 욕망의 구조를 밝혀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향해서 자발적으로 욕망한다는 자율적 욕망을 믿는 것은 ‘낭만적 거짓’이며, 타인이라는 모델(중개자)의 욕망을 모방하는 타율적인 욕망, 즉 모방 욕망임을 인정하는 것이 ‘소설적 진실’이라는 것이 결론입니다(243 페이지).
첫 번째 저서에서 인간의 욕망이 모방욕망임을 밝혀낸 지라르는 두 번째 저서인 〈폭력과 성스러움〉- 이 책 제목을 패러디한 책이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이죠 - 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 욕망의 모방 대상인 모델이 가까운 동료(짝패)가 될 때, 이 동료들 사이에는 선망과 질투, 증오 등의 감정이 생겨나고 갈등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폭력의 씨앗이 된다고 합니다. 이 폭력은 상호 폭력으로 인류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아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개인들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는 무차별 상태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이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를 유지시킬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발생하는데,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것입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사회가 무차별적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의 책임자로 한 사람을 지목하여 사회의 상호적 폭력을 그에게로 집중시킴으로써 다시 평화를 회복하는 메커니즘입니다. 모방적인 상호 폭력을 피하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일종의 방책이 희생양 메커니즘인데, 세계 도처의 인류학적 자료와 신화, 민담 등을 통해 이 메커니즘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저서인 〈희생양〉에서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규칙성을 밝혀내려고 하면서 인간 문화의 근본 구조를 드러내는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문화의 근저에는 집단 구성원의 만장일치적 폭력인 박해와 살해가 있고, 이 집단 살해를 전해주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지라르는 ‘박해의 텍스트’라고 부르며, 역사적인 기록이나 민담, 신화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나타나는데 이런 기록들은 모두 그 집단 살해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집단살해에 성공한 살해자들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살해당한 자들의 입장은 완전히 배제되어 진실을 왜곡하였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 저서에서 희생양 메커니즘이 통용될 수 있는 구체적인 환경과 과정을 여러 신화와 문헌 속에서 찾아내면서, 거기에 성경이라는 기독교의 텍스트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하나의 희생양의 죽음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지라르 책들의 요약입니다. 너무 길었죠? 본론은 더 길어 질 것 같은데, 일단 나가봅시다. 지라르의 네 번째 저서인 이 책에서는, 신화와 성경을 상세하게 상호 비교하면서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한 그 차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신화적 텍스트(아폴로니우스 신화)는 집단폭력의 희생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지어서 그 집단에 의해 살해를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텍스트는 집단폭력의 희생자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즉, 무고하게 살해를 당하고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신화의 해석은 환상이고 거짓이며, 성경의 해석이 정확하고 진실이라고 하면서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화와 성경의 기록이 실제 일어난 일로 해석을 합니다.
신화적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그 사회 자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신화의 기록자 자신이 신화적 폭력 뒤에 있는 군중 현상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이러한 신화적 사회는 폭력에 전염되어 과도하게 모방에 빠져들어 그들의 희생물이 죄가 있고, 그래서 그로 인해 자신들이 다시 화해한다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화해로 인해 희생물은 최종적으로 찾아온 평화를 가져다준 존재로 떠받들어져서 신격화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만이 이런 환상을 극복할 수 있는데, 성서를 쓴 사람들이 이러한 환상을 극복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처음에는 신화와 유사한 모방 전염에 빠져 다른 군중들처럼 정신을 못차리다가 나중에는 특이한 경험을 통해 모방 전염을 넘어서서 희생물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아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 예로 구약에서는 요셉이 있고, 신약에서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지라르의 두 번째로 중요한 개념은 사탄을 인간의 이러한 ‘모방욕망’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약의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은 이러한 인간의 모방욕망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들은 날 때부터 이웃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욕망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인간 집단 가운데는 아주 강한 경쟁적 갈등의 성향이 있고, 이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위기나 폭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우리 욕망의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사탄의 실체를 인용해보겠습니다. “거기서 거짓을 끌어내오는 악마의 ‘정수’는 바로 실체가 하나도 없는 강렬한 모방일 뿐이다. 악마에게는 고정된 기초가 없으며 ‘존재’는 더더욱 없다. 자신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악마는 신의 피조물에 붙어서 기생해야 한다. 이렇듯 악마는 완전히 모방적인 존재라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61 페이지)
저자는, 신약으로 와서 예수 자신도 이러한 인간의 모방욕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금지하기 보다는 대상을 바꾸어 모방하라고 이야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항상 금지의 언어가 아닌 모방하는 모델의 언어로 자신을 모방하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모방 경쟁을 피하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욕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의 삶이나 방식이나 습관을 모방하라는 뜻은 아니고, 금욕법칙도 아니며, 그것은 예수가 욕망하는 것, 즉 그 자신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욕망은 무엇입니까? 가능한 한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는다는 목표로 그를 인도하는 정신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아버지를 모방하는데 온 힘을 바치고, 우리에게 그를 모방하라고 권하는 것은 결국 예수의 모방을 모방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책에 대한 소개를 하였는데, 다른 중요한 내용들도 많이 있지만 이것으로 정리를 하고, 그러면 이 책에 대한 평을 간략하게 해보겠습니다. 장점 먼저 이야기하면, 지라르는 이 책에서뿐만 아니라 이전 책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모방욕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걸쳐 이에 대한 신화, 민담, 성경 등을 분석하면서 입증하려고 애를 썼는데, 아주 탁월하고도 정확하게 인간의 욕망의 구조를 밝혀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깊이 공감하고 있고, 이런 시각으로 사물을 보거나 현상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장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무고하다는 것을 인류학적으로 옹호하였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지만 당시 이스라엘 군중들의 모방욕망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을 당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의 모방을 모방하라는 충고는 깊이 새겨 들을만합니다. 현실 교회의 목사보다도 더 은혜적이기까지 하구요.
그러면, 지라르의 문제점은 없느냐? 제가 보기에 먼저 사탄을 실체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모방욕망이 사탄이 아니라 사탄이 인간의 배후에서 이러한 모방욕망을 충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기록도 사탄을 실체로 보고 있구요.
다른 문제점은 기독교를 옹호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무고한 희생을 강조합니다만 이것을 신화의 해석과 비교하다보니, 너무 수동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희생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능동적으로 걸어간 길이라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구약의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되어 요한계시록에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이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어서 이해하는 데 있어서 번역에 대한 애로사항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욕망에 관심있는 분이나, ‘희생양’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세요.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