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로그 - 십계, 키에슬로프스키, 그리고 자유에 관한 성찰
김용규 지음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용규씨의 책 “데칼로그”는 특이한 책입니다. 부제가 말해주듯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십계명을 해석하는데, 폴란드의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라는 연작영화를 소재로 하여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데칼로그는 그리스어로 ‘십계명’을 말합니다. 책의 구성은 각 계명에 따라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위 계명에 대한 기독교사에 있었던 십계명에 대한 해석들을 설명한 후, 저자가 주장하는 존재론적 해석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이 입장으로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에 대한 영화평도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존재론적 해석이 설득력이 있는 게 저자가 신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이고, 본문 뒤에 첨부된 만만치 않은 미주와 전문용어 해설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공을 들인 저작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키에슬로프스키 영화감독도 상당한 내공을 보여주고 있는데,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권의 신학 책에 대해서 섭렵하였다고 하는군요. 나중에 보니 영화계에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감독이였습니다. 제가 다행히 비디오를 보았더니 기존의 도덕적 해석으로는 “데칼로그” 영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저자의 설명을 따라 존재론적으로 해석을 하니 이해가 가더군요. 즉,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영화는 존재론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책의 대략을 살펴볼까요? 저자는 십계명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크게 윤리적인 해석과 크뤼제만이 주장한 사회적 해석과 자신이 주장하는 존재론적 해석으로 나누고, 윤리적, 사회적 해석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후 존재론적 해석에 대한 타당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윤리적인 해석은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일부 기독교에 받아들이는 해석으로써 십계명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타당성을 간직한 윤리서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할 도덕이라는 것이지요.


크뤼제만이 주장하는 사회적 해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종되었던 애굽땅에서 출애굽(구원)시킨 후에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자유를 보존하라는 취지로 십계명을 주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크뤼제만의 책 제목이 ‘자유의 보존’입니다.) “각각의 계명들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할 때 그들을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윤리적 금지행위가 아닌 사랑의 구체적 실현으로 이해해야 하고, 종교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이 책의 핵심인 존재론적 해석은 무엇일까요? 먼저 저자는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는 있는 자이다’(출3:14)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역사상 ‘존재론’의 전통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십계명도 이 노선에 따라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계명을 예로 들면, 신은 존재이고 창조주이고, 인격적이며, 유일자이지만 다른 우상은 ‘존재물’이고 어떤 열망의 형상화이기 때문에 이를 섬긴다는 것은 그 어떤 존재물이나 그에 대한 열망에 스스로 구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존재’로서 자유를 주는 자이기 때문에 우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라는 것이 1계명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데칼로그 1>은 주인공이 현대인의 여러 우상 중 ‘계산적 이성’을 신으로 섬겨 그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자의 십계명 해석에 동의를 하는가요? 저는 이해는 가지만 동의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십계명(율법도 마찬가지)을 달리 해석하기 때문이지요. 십계명은 저자의 말대로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구원)시킨 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계명을 통하여 확인하고 유지하라는 내용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계명들(뿐만 아니라 다른 율법들도)을 지킬 수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법을 함께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계명과 제사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계명을 어겼고, 그래서 늘 속죄가 이루어져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속죄제사도 나중에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탐욕과 외식으로 그들의 죄만 더할 뿐이였던 것이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이고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지키지도 못할 계명을 주었단 말인가요?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율법에는 흠이 없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실상에 있는데, 그것은 탐욕이였습니다. 저자도 간파하였듯이 이 탐욕 때문에 인간은 십계명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탐욕을 불교에서는 욕심이라고도 하고, 현대철학에서는 욕망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 탐욕(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이 탐욕을 이길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증거합니다. 설명이 너무 길어졌으나, 결과적으로 십계명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폭로하고 이를 통하여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참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있으나, 이를 완전히 이룰 인간이 없다는 것에서 인간의 절망이 있으며, 온몸으로, 죽기까지 이 계명을 지킨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또한 인간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십계명에 대한 복음적인 해석입니다.


어째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제 말에도 동의하기가 힘드시죠? 하지만 이것이 제가 십계명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이해(전제)이기 때문에 저는 이러한 전제에서 이 책을 읽었고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인 책이므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양장본이라 책값이 조금 비싸서....


사족 하나, 저희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 “데칼로그” 영화(총10개)를 특선영화코너에서 한참을 찾았는데, 드디어 찾아내고는 위 비디오 2개를 빌리려고 하니까 주인아저씨가 저보고 이 영화감독을 아세요? 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영화감독은 모르고 이 영화는 안다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주인아저씨 왈, 이 영화비디오는 엄청 귀한 거라서 시내의 비디오 가게에서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이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더라구요.


사족 둘, 우연히 시립도서관 자료검색에서 이 “데칼로그”를 입력하였더니 세상에나! 글쎄 이 연작영화가 DVD 5장으로 비치되어 있더라구요. 위 영화는 보고 싶으나 주위 비디오 가게에 위 비디오 테이프가 없으신 분들은 공공도서관 자료검색에서 검색을 해보시지요. 그러면 혹시나?


사족 셋, 저자의 십계명 구분은 개신교에서의 구분법과 약간 틀립니다.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구분법을 따랐는데, 개신교에서의 2계명에 해당하는 우상숭배금지 조항이 카톨릭에서는 1계명에 포함되었고, 개신교에서의 10계명에 해당하는 이웃의 것에 대한 탐심 조항을 카톨릭에서는 2개로 나누어 이웃의 아내에 대한 탐심 조항과 이웃의 소유에 대한 탐심 조항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7계명인 도적질하지 말라는 조항을 물건이 아닌 사람 도적질을 의미한다고 하는군요. 고대 노예 사회에서 자유인을 납치하여 파는 행위를 금하였다는 것이지요. 일리가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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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13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보니, 정말 읽고 싶군요! 당장 사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