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 SOS - 반드시 성공하는 금연, 다이어트 비법
이중석 지음 / 순수와탐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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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벼운 심리교양서나 뇌과학에 기반한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는다. 예컨대, 전자는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관련 에세이, 프로이트 혹은 융 심리학 입문 같은 류고, 후자는 베스트셀러를 거쳐간 <습관의 힘>, <트리거>, <그릿> 등이다.  신간 <심리학 SOS>는 후자인데, 저자 약력이 독특하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로 일했고, 그 후에 벤쳐기업 CEO를 역임했다. 이른바 회계사 엘리트 코스의 정석을 밟아왔다. 저자는 왜 의지력을 십 년간 연구하고 책으로 엮었을까. 결실이 궁금했다.



'SOS'는 널 구해주겠어! 식의 흔한 자기계발서 너스레가 아니라, ​Simulation - Observation - Selection ​모형의 약자다. 모형에 따르면, "의지력은 내적 욕구의 발화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에 대응할 행동 계획을 지속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P.127) 의지력은 일반적으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처럼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하는 마음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힘", 즉 인내하는 힘으로 이해되거나, 만족 지연 능력 혹은 경제학에서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재는 할인률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피상적이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다.(의지력에 접근하는 잘못된 길)


저자에 따르면, SOS 모형은 인류 의식의 진화에서 온 키워드다. 생물학적으로 뇌의 형태가 발달한 시기는 5억 년 전이다. 당시엔 무의식이 지배했다. 반면에, '이성의 뇌'인 전두엽이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은 불과 20만 년 전이다. 과연 무엇이 힘이 셀까. 5억 년을 지배한 본능과 무의식이다. 인간의 전통은 지킬 박사보다 하이드에 가깝다. 그러니 통제 강박에서 벗어나 의식의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한다.(3장 당신 잘못이 아니다)

 

SOS 모형은 인류가 의식을 진화하는 데 중요한 발화점이 된 "자기 관찰"(observation)과 "시뮬레이션"(simulation) 능력에 주목한다. 결국 무의식과 본능에 반하여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힘은 의식에서 나온다. 구체적으로 관찰은 트리거(방아쇠 효과)로 유명한 '자각 훈련', 수잰 세거스트롬 심리학 교수의 '멈춤 - 계획 반응', 불교에서 '깨어있기' 혹은 '마음챙김'으로 설명한다.(5장 하이드를 관찰하다) 시뮬레이션은 이케가야 유지의 '마트료시카 구조'와 '리커전', 몬터규 박사의 '앞선 모형', 심리학에서 '실행 의도'와 '만약에 계획'으로 풀어낸다.(6장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다)7장 '의지력의 본질과 SOS 연습 모형'으로 종합한다.



기대 이상으로 학술적이다. <시크릿> 식의 단순한 자기 암시 또는 다른 자기계발서 류의 무한 긍정을 생각한다면 조금 놀라게 된다. 뒷면에 주석이나 '더 읽을거리'에 나온 참고서적들을 보면 얇은 책으로 엮은 것이 신기해진다. 얇은 두께는 새해에 가볍게 읽고 의지력을 다시금 불살라 보라는 저자의 배려였을까. 그러나 알짜배기 개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서 오히려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장기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차, 포와 같은 좋은 기물들을 엮었는데, 단순히 행마법은 이런 것이다 하고 넘어간 격이랄까. 물론 개념 소개가 주가 아니다. 저자가 고심한 끝에 개발한 실전 장기 포석인 SOS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였으니 할 말은 없다. 의지력이란 주제나 뇌과학에 관심이 많다면 다양한 개념과 책을 만나는 촉매체가 되겠다. '더 읽을거리'와 주석을 참고하면 좋다.

의지력은 내적 욕구의 발화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에 대응할 행동 계획을 지속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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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2-12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서평 잘 읽었습니다~^^
세번째 문단에 인류의 역사가 5억년이라고 되어있는데 오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ㅎ

캐모마일 2017-02-12 15:42   좋아요 0 | URL
아 네 조언 감사드립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ㅎㅎㅎㅎ

캐모마일 2017-02-12 15:46   좋아요 1 | URL
인류 역사가 오억 년이 아니라 생물체에서 뇌의 형태가 발생하여 무의식이 생긴지가 오억 년 전이었다고 나와있네요. 덕분에 큰 실수 수정합니다. 휴...(안도의 한숨)

고양이라디오 2017-02-13 01:01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ㅎ 덕분에 저도 더 자세히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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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읽으면서 이노우에 야스시 작가를 알게 되었다. 책에 야스시작가의 소설  <공자>를 소개하는데, 한국 독자에겐 생소할지 모르나 일본 국민작가로 자국내 문학상은 물론 노벨상 후보에 거론될 정도의 문호라고 한다. 특히 <시로밤바>같은 자전적 소설과 <둔황>,<공자> 등의 역사물이 유명하다.



둔황(敦煌)은 옛 실크로드 중국 간쑤성에 위치한 막고굴로, 20세기 초 다량의 불교 경전과 문화 유산이 대량 발굴된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제국주의 시절 도굴당한 문화재들이 서양으로 건너가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했고, 현재는 둔황학이란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소설 <둔황>은 둔황 막고굴의 연원을 작가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송나라 선비 조행덕은 과거 시험장에서 졸다가 입신양명 기회를 놓친다. 망연자실하며 저잣거리를 거닐던 중, 인신매매를 당한 나체의 서하 여자를 구해주고 낯선 문자가 적힌 통행증을 받는다. 운명에 몸을 맡기고 무작정 서하로 떠나는 길. 졸지에 한인 선비는 서하 병사가 된다.  위구르 왕족 여인을 만나 연인이 되고 숨겨주지만, 여인은 발각되고 서하왕 이원호의 첩이 된다. 여인은 연정을 지키기 위해 그가 보는 성벽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그를 서하로 이끌고, 위구르 여인과 비극적인 인연은 어디서 온 것인가. 조행덕은 점점 불교에 귀의한다. 여인을 향한 공양이자 불멸에 대한 갈망이었다.



다사다난한 여정. 조행덕은 사주에서 서하군이었다 송나라군에 귀속되고 다시 서하군이 되는 요지경의 연속이다. 그러던중 조행덕은 한학을 익히고 문리를 깨우친 덕에 서하 불교 중흥 역사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도시 사주는 실크로드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서하에서 동란이 크게 일어나고, 참화 속에서 조행덕은 결심한다. 자신이 필사했던 경전과 사주 사찰 내의 경전을 목숨을 걸고 천불동에 숨기기로. 경전은 조행덕에게 기연을 통해 만난 수많은 인연의 결실이자 구원을 향한 염원이었다. 그가 천불동에 숨긴 경전들은 20세기에 발굴된다. 바로 인류 문화유산인 둔황 막고굴이다.



20세기에 실크로드 사막에서 발굴된 불교학의 보고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작가는 둔황 막고굴에 얽힌 사연을 소설로 창조해냈다. 한 선비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연속된 기연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막대한 경전을 보존하게 된 이야기. 그가 갈구했던 보편과 영원함은 경전으로 남았다. 서역 사막에서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그것은 한 편의 역사가 된다. <둔황>을 덮고 나서 경외감이 밀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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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식 2017-01-17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며 얻는 보너스가 또 다른 작가를 만나는 것 같아요. 전에 최재전 교수 인터뷰를 보는데 이런 식으로 한권한권 분야와 장르를 높여가는 독서법도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캐모마일 2017-01-17 12:46   좋아요 1 | URL
유용한 조언 감사합니다.

캐모마일 2017-01-17 20:07   좋아요 1 | URL
특히 신영복 교수님 책은 고전부터 시작해서 많은 작가를 만나게 되네요. 생각해보니 그것도 재미고 유용한 독서법이었군요...감사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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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입 속의 검은 잎은 기형도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심야 영화를 보다가 요절한 시인. 제임스 딘처럼 문단과 독자는 오래도록 그를 기리고 있다. 專門家」, 빈 집」, 홀린 사람」, 엄마 걱정」 을 학창 시절 배웠다. 평이했다. 사회 의식을 가진, 젊어서 생을 마감한 덕에 고평가받는 시인인 줄로만 알았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을 관람하고 시집을 샀다. 그리고 인생 시집 중 하나가 되었다. 질투는 나의 힘」은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내 심정을 이리도 절절히 새겼을까. 꿈은 창대했으나 현실은 비루했고, 할 말은 넘쳤으나 경청해 줄 상대는 없었다. 사랑 받고 싶었다. 그러나 자아를 잊고 무엇을, 스스로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 대학 시절」



시인의 감성은 당연하게도 시대와 불화했다. 하필 플라톤이었을까. 사회구조론이나 혁명론이 아니라 플라톤이었을까. 정의론과 이데아 진리를 추구했던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와 어떤 간격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나뭇잎조차 혁명 감성으로 읽히는 시대, 주변인에게 비애를 느낀다. 감성은 가열차게 시대에 맞서지도, 시대와 동떨어지지도 못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 속의 검은 잎」

이한열 열사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검은 잎은 군부 정권이 물린 재갈일까. 텁텁한 입 속은 ​양심의 발로일까. 민감하고 젊은 감성은 검은 잎이 두렵다고 한다. 시집은 엄마 걱정으로 마무리한다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엄마 걱정」



엄마 걱정은 한 편의 동떨어진 시가 아니다. 프리퀄이다. 유년 시절을 엿본다. 시인의 감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세계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두컴컴한 빈방에서 혼자 채소장수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어른이 되어 사랑을 했고, 시대의 아픔을 맞닥뜨렸다. 세계는 어둡고, 쓸쓸하고, 우울하다.



생각건대, 시인 기형도를 알기 위해선 작품을 단편적으로 접하기보다 유고 시집을 만났으면 한다. 시인의 무던한 말투 속에 묻어 있는 민감한 감성. 사랑, 방황을 읽는다. 시대와 불화하는 양심, 권위에 대한 저항, 쓸쓸한 유년 시절이 가져다 준 태생적인 우울함과 맞닥뜨린다. 배경음악은 김광석 노래를 추천한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입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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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17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빈 집도 좋습니다.. ㅎㅎ

캐모마일 2017-01-17 12:01   좋아요 0 | URL
학창시절 교과서로 배울 때는 몰랐는데, 시집으로 기형도 시인을 만난 후로 다시 읽으니 그 감성이 느껴지고 공감되었습니다.

cyrus 2017-01-17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형도 시집을 읽었을 때 김광석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분들은 대부분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곡을 좋아해요. 저는 기형도 시집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좋아합니다. 김광석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곡을 절대로 지나치지 않습니다. ^^

캐모마일 2017-01-17 12:03   좋아요 1 | URL
저도요!!! 저에겐 왠지 기형도 시인과 김광석 씨가 너무도 잘 어울리게 다가왔씁니다. 거리에서를 들으며 시집을 읽어봐야겠네요.^^

푸른희망 2017-01-1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이 시집은 인생의시집입니다만
펼칠 때마다 마음이 따끔거리네요

캐모마일 2017-01-17 21:56   좋아요 0 | URL
그 따끔거림을 어렴풋이 알듯 하지만... 다시금 여러번 읽어봐야겟네요.
 
서양철학사 (합본, 양장) 서양철학사
군나르 시르베크.닐스 길리에 지음, 윤형식 옮김 / 이학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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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분이라고 한다. 과학철학, 페미니즘, 사민주의 등 독자가 궁금해하는 다양한 조류를 담은 점이 장점 같다. 램브레히트 서양철학사에서 안타까운 점이었다. 반면 영미철학은 도움됐지만. 일단 구매목록에 넣어두었다. 자매품 철학연대표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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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nbeen 2020-07-23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덴마크 아니고 노르웨이 입니다

캐모마일 2020-07-23 18:55   좋아요 0 | URL
네. 정정 감사합니다.

캐모마일 2020-07-23 19:03   좋아요 0 | URL
덕분에 수정하였습니다.
 
철학도해사전 - 그림으로 읽고 텍스트로 정리하는 철학의 정석 우리는 학생이다! 평생공부 시리즈 2
페터 쿤츠만.프란츠 페터 부르카르트.프란츠 비트만 지음, 악셀 바이스 그림, 여상훈 옮김 / 들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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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명한 철학자가 공저한 철학사전이자 철학사. 교양철학계의 세계적 스테디셀러인데, 우리나라에선 한때 절판됐고 중고가가 몇 갑절 뛰기도 했다. 작년 이월에 출간됐고, 이제 주문했다. 유명 철학사 서적과 값이 뛴 절판도서가 많이 출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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