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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고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읽으면서 이노우에 야스시 작가를 알게 되었다. 책에 야스시작가의 소설 <공자>를 소개하는데, 한국 독자에겐 생소할지 모르나 일본 국민작가로 자국내 문학상은 물론 노벨상 후보에 거론될 정도의 문호라고 한다. 특히 <시로밤바>같은 자전적 소설과 <둔황>,<공자> 등의 역사물이 유명하다.
둔황(敦煌)은 옛 실크로드 중국 간쑤성에 위치한 막고굴로, 20세기 초 다량의 불교 경전과 문화 유산이 대량 발굴된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제국주의 시절 도굴당한 문화재들이 서양으로 건너가 불교 문화 발전에 기여했고, 현재는 둔황학이란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발전하였다.
소설 <둔황>은 둔황 막고굴의 연원을 작가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송나라 선비 조행덕은 과거 시험장에서 졸다가 입신양명 기회를 놓친다. 망연자실하며 저잣거리를 거닐던 중, 인신매매를 당한 나체의 서하 여자를 구해주고 낯선 문자가 적힌 통행증을 받는다. 운명에 몸을 맡기고 무작정 서하로 떠나는 길. 졸지에 한인 선비는 서하 병사가 된다. 위구르 왕족 여인을 만나 연인이 되고 숨겨주지만, 여인은 발각되고 서하왕 이원호의 첩이 된다. 여인은 연정을 지키기 위해 그가 보는 성벽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그를 서하로 이끌고, 위구르 여인과 비극적인 인연은 어디서 온 것인가. 조행덕은 점점 불교에 귀의한다. 여인을 향한 공양이자 불멸에 대한 갈망이었다.
다사다난한 여정. 조행덕은 사주에서 서하군이었다 송나라군에 귀속되고 다시 서하군이 되는 요지경의 연속이다. 그러던중 조행덕은 한학을 익히고 문리를 깨우친 덕에 서하 불교 중흥 역사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도시 사주는 실크로드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서하에서 동란이 크게 일어나고, 참화 속에서 조행덕은 결심한다. 자신이 필사했던 경전과 사주 사찰 내의 경전을 목숨을 걸고 천불동에 숨기기로. 경전은 조행덕에게 기연을 통해 만난 수많은 인연의 결실이자 구원을 향한 염원이었다. 그가 천불동에 숨긴 경전들은 20세기에 발굴된다. 바로 인류 문화유산인 둔황 막고굴이다.
20세기에 실크로드 사막에서 발굴된 불교학의 보고이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작가는 둔황 막고굴에 얽힌 사연을 소설로 창조해냈다. 한 선비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연속된 기연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막대한 경전을 보존하게 된 이야기. 그가 갈구했던 보편과 영원함은 경전으로 남았다. 서역 사막에서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그것은 한 편의 역사가 된다. <둔황>을 덮고 나서 경외감이 밀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