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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이 유명 과학자 13인을 인터뷰한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를 한 달 새 두 번 읽었다. 처음엔 제목 때문에, 두 번째는 내용 때문에.
전에도 그랬지만 얼마 전부터 부쩍 내 자신이 먼지처럼 느껴졌다. 나만이 아니라 세상 전부가 티끌처럼, 아니 티끌만도 못하게 여겨지며 도대체 사람이 뭔지, 왜 이렇게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을 읽는 순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별이 남긴 먼지라면 내가 먼지 같다고 느낀 것도 당연하구나 싶었다.
사람이 곤궁해지면 사소한 것에서도 위로를 얻는 법. 사소한 위로에 힘입어 책장을 넘겼다. 서문에 적힌 대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300여 쪽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 답을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얼마쯤은 그렇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은 우주학자 마틴 리스가 말했듯 “별이 남긴 원자쓰레기”이고, “별의 내부에서 수소와 헬륨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과학에 따르면 우리는, 나도 그대도 별에서 왔다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라니 사뭇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그 별이란 것이, 지구별도 마찬가지지만,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란 걸 알면 마냥 멋진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별의 탄생에도 별이 낳은 우리의 탄생에도 아무 목적이나 의미가 없으니까.
현대 우주과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을 빌리면, “자연법칙 속에는 우주에서 우리의 자리를 특별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다른 자연물에 비해 특별히 의미 있는 존재도 아니고, 신의 각별한 피조물도 아니다. 그저 별이 남긴 우연한 먼지일 뿐.
우연한 먼지라니, 쓸쓸하다. 더구나 우리 존재가 우연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면 굳이 애쓰며 살 필요가 있나 싶다. 한데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깨달은 와인버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왜 그럴까? 와인버그 왈, 객관적으로는 의미가 없어도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고” 그 노력이 삶을 의미 있게 하기 때문이란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신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는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을 찾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면서도, 인간은 자연법칙이 왜 지금 이대로인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며, 과학은 세계를 움직이는 한 축인 우연을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다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마틴 리스는 물리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가 우주물질에 대해 아는 것은 4%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신경과학자 한나 모니어는 과학이 뇌의 모든 세부를 이해해도 뇌 전체를 이해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듯 세계를 전부 다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앎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티끌 같은 지식이 모이면 태산도 오를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반세기 전, 혁명이 실패하고 날로 초라해지는 세상에서 시인은 탄식했다.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중에서). 정말이지 이 크고 단단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고 허약한 존재인지!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작고 하찮은 인간들의 탄식과 열망이 쌓여 적지 않은 성취를 이루었음을. 그리고 때론 먼지도 힘이 된다는 것을. 더구나 이 먼지는 보통 먼지가 아닌 별에서 온 먼지,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