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빌려드립니다 - 구글 베이비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 <카트>를 보았다. 영화의 소재는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하나가 되어 싸웠던 2007년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영화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억울한 일을 겪고 그토록 힘든 싸움을 하는 동안 나는 뭘 했나 싶어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꼭 그래서 운 건 아니었다. 나를 더 울컥하게 만든 건 고통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는 그들의 뜨거운 우정이었다. 그 우정이 부럽고, 한때 내 것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잃어버린 연대의 삶이 그리워서 오래 울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내가 자본에 의해 아웃소싱당한 노동자들을 부러워할 만큼 내 삶으로부터 아웃소싱되어 있다는 것을. 일 년 전에 나온 책을 그제야 펴들었다. 앨리 러셀 혹실드의 <나를 빌려드립니다>. ‘아웃소싱된 자신(The Outsourced Self)’이라는 원제 그대로, 지금 내 모습이 거기 있었다.

 

대표작 <감정노동>(1983)에서 항공기 여승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정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폭로했던 혹실드는 이 책에서 불과 30년 만에 여성의 감정노동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의 희로애락을 상품으로 만든 자본주의의 가공할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 현장은 미국에서 인도까지 전 세계를 아우르며, 출생부터 죽음까지 삶의 전 과정을 포괄한다.

 

거기서 사람들은 데이트를 주선하고 연애기술을 가르쳐주는 러브 코치의 도움으로 만나고, 웨딩 플래너를 고용해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 치료사의 상담을 받으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멀리 인도의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고, 베이비 플래너와 파티 플래너, 필리핀 유모를 고용해 아이를 키우고, 고민이 있거나 외로울 때는 ‘임대 친구’를 부르고, 노인 돌보미와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노년을 지낸 뒤, 죽으면 상조회사의 장례서비스를 받는다. 그렇게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을 시장에 의뢰하고, 사랑과 우정, 슬픔과 추억까지도 타인에게 외주를 주면서 살다가 죽는다.

 

자본의 전략으로 시작된 아웃소싱이 삶을 지배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내 삶이 갈수록 적막해지는 이유를 알았다. 돈으로 임대 친구를 사지만 않았을 뿐, 나 역시 혹실드가 만난 사람들처럼 가족이나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하기보다는 자주 들르는 찻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담사를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묻고 따지거나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버거우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관계가 편했다. 그 관계의 부질없음에 쓸쓸해하면서도 행여 돈이 없어서 그런 관계를 살 ‘자유’조차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지금의 나였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알았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을 살 자유를 잃고 자신을 팔 자유만을 갖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왔음을, 타인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맡기면서도 그들 전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정작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잊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런 내게 혹실드는 말한다.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를 찾아가 네가 뭘 원하는지 묻거나 아니면 잃어버린 연대를 회복하라고. 시장이냐 사람이냐, 결국 그것이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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