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선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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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선 최고의 책벌레로 꼽히는 이덕무를 처음 만난 건 이 책을 통해서다. 고전을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글을 읽는 것은 행복하다. 그래서 종종 옛 산문을 찾아 읽곤 했는데, 박지원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이후로 이 책이 제일 맘에 와 닿았다.

분량이 적당해서 고전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맞춤하고, 번역과 주석도 읽기에 편하다. 이 책이 나오고 2년쯤 지나서 [책만 보는 바보]라는 청소년용 책이 나왔는데, 그 책도 좋다. 이덕무의 글을 더 많이 읽고 싶으면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를 골라도 좋다. 이런 책들을 읽고 창덕궁 후원의 규장각을 오르면 가슴이 뻐근하다. 지난 가을, 우연히 창덕궁을 찾았는데 마침 특별행사 기간이라 주합루를 직접 오를 수 있었다. 가파른 층계를 오르며 아, 이곳으로 이덕무가 매일 오르내렸겠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옛글의 소개와 소비가 온통 조선 후기로만 집중되는 건 아쉽다. 그 시기의 에너지라는 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과장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 당시의 역사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든다. 이런 글로 시작해서 고전 읽기의 가지를 더 넓게 뻗어가도 좋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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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 영화의 상상력은 어떻게 미술을 훔쳤나
한창호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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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에 연재될 때 이따금 봤는데, 그때도 느꼈지만 역시 좀 서먹하다. 주로 예술영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노력이 아니면 주변에서 보기가 쉽지 않은 영화들이다. 영화를 좋아하긴 해도 마니아는 아닌 나는 당연히 본 영화보다 안 본 영화가 더 많았다. 그래도 글을 읽다가 '와, 보고 싶다' 할 수도 있을텐데, 글도 좀 묵직한 편이고 다루는 영화도 워낙 문제작들이라 그런지 볼 엄두가 날 나지 않는다.   

한 편 한 편의 영화에 영향을 미쳤거나 연상되는 미술 작품들을 얘기하는 방식은 새롭다. 감독들이 얼마나 미술에 조예가 깊은지, 영화와 미술의 관련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공부하는 느낌인데, 딱 거기까지고 신명이 없다. 평론을 매혹적으로 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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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세. 서둘러서는 안 되네. 머리를 너무 써서는 안 되네. 참을성이 있어야 하네. 세상은 참을성 앞에 고개를 숙인다는 걸 알고 있나? 힘차게, 죽을 때까지 밀고 가는 걸세. 그것뿐이야. 결코 상대를 밀면 안 되네. 상대는 계속해서 나타나기 마련일세. 소는 초연하게 밀고 가네. 무엇을 미느냐고 묻는다면 말해주지. 인간을 미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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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라는 배는 짐을 많이 실으면 실을수록 더욱 깊어진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불공정함은 불가피하다. 삶의 가치에 관한 모든 판단은 비논리적으로 발전해왔으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따라서 불공정한 존재이며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주어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동정심을 가지려면 강력한 상상력이 없어선 안 된다. 이렇게 도덕은 지성의 우수함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희망은 재앙 중에서도 최악의 재앙이다. 왜냐면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행위를 허영으로, 평범한 행위를 습관으로, 소인배적인 행위를 공포 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잘못 판단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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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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