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말하는 소설작법(!)

타고난 재능이 거의 없이도 위대해진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위대한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천재가 되었다. ... 그들은 모두 하나의 커다란 전체를 만드는 일을 감행하기 전에, 우선 부분을 완전히 만드는 것을 배우는 숙련된 장인의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여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2페이지를 넘지는 않지만 거기에 포함된 모든 단어가 필연적이라고 할 만큼 명확한 소설을 백 개 이상 습작해보라: 가장 함축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일화의 형식을 배울 때까지 매일 일화를 쓰도록 하라. 인간의 유형과 성격을 수집하거나 윤색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 특히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유심히 바라보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에게 말을 자주 하고 남이 말하는 것을 귀를 쫑긋 세워 듣도록 하라. 풍경화가와 의상 디자이너처럼 여행하라. 잘 표현되면 예술적 효과를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개개의 학문에서 발췌하라. 끝으로 인간 행위의 동기에 대해 잘 생각하고 이 점에서 가르침을 주게 될 어떤 지침도 냉대하지 말고 밤낮으로 이런 것들의 수집가가 되라. 이같은 다양한 훈련으로 2.30년을 보내라.: 그후에는 작업실에서 창작된 것이 거리의 빛 속으로 나가도 좋다. ... 때때로 이런 예술적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이성과 성격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엔 운명과 필요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 미래의 거장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여 그의 손으로 하는 작업의 모든 조건을 거쳐 단계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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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체성,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17
이현재 지음 / 책세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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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아온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갈수록 여자가 뭔지 모르겠다. 한때 페미니즘 책들을 섭렵하며 여성의 연대를 꿈꾸기도 하고, 여성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믿기도 했으나, 생활의 굴레에서 그 꿈과 믿음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다.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도 매력적이었지만, 역시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이 회의에 빠진 나를 잡아당겼다. 책은 잘 읽혔다. 특히 보부아르, 길리건, 이리가레이, 버틀러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여성주의 사상을 개관하며, 이들의 힘과 한계를 깔끔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데 이 책의 문제틀이 서 있는 지점, 즉 여성주의에 인정이론을 결합하여 여성철학을 전개하는 대목에선 자꾸만 발을 헛짚은 느낌이 든다. 남성은 여성을 타자로 배제함으로써 스스로 주체로 서는데, 여성은 왜 남성을 타자로 배제하는 대신 자신의 여성성을 타자로 배제하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치마 입기를 거부하는 잔 다르크'의  패배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저자는 인정이론을 통해 여성이 왜 여성성을 인정하지 못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도는 충분히 시도되고 있지 않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인정이론이 여성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남성이라는 타자를 타자로 인식해야 함과 동시에 전통적으로 타자로 규정된 여성 자체를 스스로가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여성은 남성의 주체성에 압도된 나머지 남성을 타자로 인식하는 데서도 어려움을 겪으며, 오히려 여성 자신을 타자로 받아들이는 데 훨씬 익숙하다. 때문에 여성의 인정투쟁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이현재는 여성주의가 처한 딜레마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그가 인정이론이라는 틀에 매달리는 대신 현실에서 목도한 이 딜레마 자체가 던지는 질문에 매달린다면, 그리고 그 질문을 지금처럼 성실하게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면, 아마 다음 작업쯤에서 분명 여성철학의 면모를 더 잘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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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린 헌트 지음, 조한욱 옮김 / 새물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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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표적인 문화사가 린 헌트의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이끈 자유주의자들이 새로운 권력을 세우기 위해 기존의 국가=가족 관념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가족로망스를 구현했는지 추적한다. 절대주의에서 국왕 통치는 가부장적 가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즉, 국왕은 아버지였고, 따라서 루이 16세의 처형은 공개적인 아버지 살해였다. 아버지를 죽인 혁명파는 이제 새로운 가족 로망스를 창조한다. 즉, 혁명기 가족로망스들은 정치세계를 새롭게 상상하고 가부장적 권위에서 벗어난 정체를 상상하기 위한 창조적 노력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가족로망스의 핵심은 '형제애'였다. 형제애는 가부장적 권위와의 단절을 뜻했고, 죽은 아버지 대신 새 아버지를 찾은 다른 혁명-일테면 미국혁명, 한국사에서 보여진 미완의 혁명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가족로망스가 발전하면서 여성의 지위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떠오른다. 형제애의 가족로망스가 확립되면서 여성은 배제되고, 이제 여성의 위치는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축소된다. 린 헌트는 사드를 이런 가족로망스가 마주치거나 해결해야 할 극한을 제시한 인물로 소개한다. 그러나 사드의 비유와 상징들은 형제애라는 로망스의 한계를 보여주거나 비틀기를 시도한 점에서 유의미할지 모르나 그 이상은 없다. 그에게도 여성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 가부장과 형제애라는 남성 담론의 조롱, 공격으로서 사드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여성 담론을 시도하거나 상상한 적은 없다. 이런 점에서 사드는 부친 살해의 정점이며, 새로운 부친 탄생을 막기 위해 모친 살해를 감행한 극단아였다. 문제는 여성을 포함한 새로운 비전, 상상, 이미지를 프랑스 혁명파도 사드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여성의 무의식이 반영된 가족로망스는 아직도 실현된 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혁명의 짧은 시기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이 책은 대단한 통찰력을 보여주며, 섬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참신하면서도 섣부른 비약이 없다. 또한 한국 사회의 지독한 가부장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실마리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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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들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그렇게 영화화된 작품들은 일세를 풍미한 명작으로 통하니 원작자로선 행운이다.

[에덴의 동쪽] [분노의 포도]는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악령 같은 작품들. 특히 헨리 폰다 주연의 [분노의 포도]는 그 흑백 화면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을 당시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명작 시리즈로 읽었는데, 2단 조판으로 4백쪽이 넘는 대작이었다. 요즘같으면 2권도 모자라 3권으로 분권했을 작품인데, 중학 겨울방학 때 이 소설을 그야말로 어금니 아끼듯 야금야금 읽었다. 당신 인생의 책이 뭐요? 라고 물으면 두말 않고 이 책을 떠올리겠지만, 아마 내놓고 말하기엔 주저할텐데, 그 소설을 온몸으로 읽었던 그 시절의 열정이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선 오히려 [생쥐와 인간]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

 극장에서 개봉한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브 마이스앤 맨] 비디오를 보고 새삼 존 스타인벡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그리고 어느새 비루해진 삶을 돌아봤다. 연극배우 출신의 게리 시니즈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이 영화에는 귀기어린 배우 존 말코비치가 단순해서 비극적인 영혼의 레니 역으로 예의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원작의 깊이야 말할 것 없지만 그저 이 둘의 앙상블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여료가 아깝지 않다. 팝콘이나 새우깡을 먹으면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영화이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일은 없지만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하염없이 방바닥에 앉아 있게 되는 대책없는 영화다. 중학생 이상이면 소설도 영화도 볼 수 있으니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소설 읽고 영화 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만하다.  

생쥐와 인간의 소중한 계획은 / 너무 자주 뒤틀려버리곤 한다 / 그리하여 약속된 기쁨 대신 / 슬픔과 고통에 찬 덧없음만을 남겨주네.  소설의 모티프가 된 로버트 번즈의 시구처럼, 아무리 영악하게 굴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허방은 있는 법. 어쩌면 그 때문에 이 지긋지긋한 '사람'과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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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발견 - 깔끔하고 똑똑한 돼지의 문화사
새러 래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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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하다. 몇 달 전 최석운의 전시회를 본 이후로 돼지에 꽂힌 터라 두말없이 빌렸다. 사진이 많은 대형 판형의 책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는 없다. 천진한 돼지의 사진들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돼지의 역사, 혹은 돼지의 인간 활용사를 읽다보면 이 천진한 돼지들을 똑바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돼지는 인간이 감히 역사를 시작할 꿈도 꾸지 않은 4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한 포유동물이며, 수만 개의 심장을 비롯해 피와 뼈와 털까지 모조리 인간에게 제공하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동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에게 하는 짓이란...어린 돼지새끼를 능지처참한 최근의 의식은 인간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돼지 피를 필요로 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일 뿐이다. 

희생이 되기에는 너무도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돼지. [돼지의 발견]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첫 발자욱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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