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정체성,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17
이현재 지음 / 책세상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아온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갈수록 여자가 뭔지 모르겠다. 한때 페미니즘 책들을 섭렵하며 여성의 연대를 꿈꾸기도 하고, 여성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믿기도 했으나, 생활의 굴레에서 그 꿈과 믿음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그럴 때 이 책을 만났다.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라는 질문도 매력적이었지만, 역시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이 회의에 빠진 나를 잡아당겼다. 책은 잘 읽혔다. 특히 보부아르, 길리건, 이리가레이, 버틀러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여성주의 사상을 개관하며, 이들의 힘과 한계를 깔끔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데 이 책의 문제틀이 서 있는 지점, 즉 여성주의에 인정이론을 결합하여 여성철학을 전개하는 대목에선 자꾸만 발을 헛짚은 느낌이 든다. 남성은 여성을 타자로 배제함으로써 스스로 주체로 서는데, 여성은 왜 남성을 타자로 배제하는 대신 자신의 여성성을 타자로 배제하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치마 입기를 거부하는 잔 다르크'의  패배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저자는 인정이론을 통해 여성이 왜 여성성을 인정하지 못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도는 충분히 시도되고 있지 않다.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인정이론이 여성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남성이라는 타자를 타자로 인식해야 함과 동시에 전통적으로 타자로 규정된 여성 자체를 스스로가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여성은 남성의 주체성에 압도된 나머지 남성을 타자로 인식하는 데서도 어려움을 겪으며, 오히려 여성 자신을 타자로 받아들이는 데 훨씬 익숙하다. 때문에 여성의 인정투쟁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이현재는 여성주의가 처한 딜레마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그가 인정이론이라는 틀에 매달리는 대신 현실에서 목도한 이 딜레마 자체가 던지는 질문에 매달린다면, 그리고 그 질문을 지금처럼 성실하게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면, 아마 다음 작업쯤에서 분명 여성철학의 면모를 더 잘 보여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