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슬에서 풀리다 - 해방기 책의 문화사
이중연 지음 / 혜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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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연은 내가 늘 챙겨 보는 저자다. 읽은 책은 단 한 권, <책의 운명>. 두껍고, 요즘 내용보다 편집보다 중요해지는 디자인과는 담을 쌓은 참 무지막지한 책인데, 이 책을 읽고 오랫만에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저작을 기다렸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얼마전 나온 신간을 찾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이 나온 걸 오래도록 몰랐다. 교재를 주로 내는 출판사에서 나온 까닭에 광고가 전혀 안 된 탓도 있지만, 내 게으름 탓이 더 크다. 어쨌거나 늦게나마 알았으니 읽자, 하고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이런 책은 반드시 도서관에 구비되어 마땅하니까.

<책, 사슬에서 풀리다>는 책으로 보는 해방 직후의 문화사다. 과문한 탓인지, 이런 주제를 갖고 작업한 예를 아직 보지 못했다. 책의 전반부는 자료적 가치는 있으나 재미는 적다. 그래도 잊혀진 출판인 배종국에 관한 짧은 평전은 단숨에 읽힌다. 뭣보다 시인과 소설가 등 작가는 기억해도 그걸 출판한 출판인은 문화인의 궤적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우리의 풍토를 꼬집으며, 성실과 애정으로 그들의 흔적을 살려내려는 저자의 마음이 기껍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건,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쓴 책 이야기. 특히 국립도서관 사서와의 가상대담은 형식도 내용도 새로웠다. 남북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철저한 자료에 입각해 해방직후 금서의 문화사를 써내려간 점은 설득력이 있다. 금서는 무엇보다 권력의 문제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방식은 또한 얼마나 다양한가. 미군정이 금서 라는 통제를 유보한 반면, 진보의 이데올로기로 출발했던 북한 사회주의 정권이 이미 해방직후에 금서와 분서(일본책의 대량수거, 말살)를 시행함으로써 스스로를 배반했다는 사실은 해방직후를 보던 내 자신의 낡은 관념을 다시 생각케한다. 결국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것에 담긴 염원일 것이며, 그것을 행동하는 사람과 삶일 것이다. 그러니 적국인 일본책이기에 폐기한다는 단순함이 순진함으로 포장될 수 없는 폭력이 되는 것이겠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책을 주제로 꾸준히 저술활동을 계속하는 저자가 그 마음을 잃지 않도록, 최소한의 지원은 부디 이루어지기를. 그만한 문화적 풍요와 배치는 이루어지고 있기를, 안간힘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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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여, 조용하라. 사람의 생각이여, 쉬어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파악하려 함에 있어 이해력은 미치지 않는다. 동참이 필요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주석> 중에서

나약한 정신은 구체를 통해서 진리로 향한다.   -쌩드니의 시에서

진리는 지식이 아니라 '동참''구체'라는 경험을 통해 획득된다는 이야기. 진리는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이든 이들이,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타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경험에 의한 진리 획득을 당연시하는 순간, 이 금언들은 순식간에 추레해진다. 그런데, 애시당초 진리라는 게 손에 잡히는 것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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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깜짝할 새, 서른 해가 흘렀다. 나는 바람을 잡고 싶었다. 헌데 오히려 바람이 날 잡으려는 걸 느낀다.

  -순원뽀어의 <고문의 류머티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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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천재는 요절한다는 생각 땜에 일찍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천재가 아니고 따라서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오래 잘 살고 싶다. 가늘고 길게, 오래 살아야만 보통사람들이 힘들게 도달한 경지를 맛이라도 볼 것 같다. 그러면서 어느 사이 요절을 잊었더랬다. 그런데 어제 주문한 '엘리엇 스미스'와 '에바 캐시디'의 씨디를 받아놓고 한 곡 한 곡 듣다보니 아, 이상하다, 둘다 요절했구나! 그런데 음악이 그들이 요절 때문에 꼭 슬프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느낌이 강렬해서, 그래서 오랫만에 '요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 그들의 음악에 턱없는 아우라를 씌운 것은 아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미 자기 생의 극한까지 살아낸 사람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의미를 보태지 않는다. 죽음을 넘은 음악을 오랫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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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미인 -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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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이 새로운 투자종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 대신 그림이란다. 세상은 정말 순식간에 바뀐다. 미술을 한다면 배고플 거라는 말은 그럼, 다 옛말이 된 걸까? 글쎄... 암튼 키울 싹을 키우고 돈이 갈 데로 갔으면 좋겠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아나운서 김지은이 썼다는 말에 사실 기대를 안했다. 아나운서와 현대미술이 썩 어울리는 조합 같지도 않았고, 괜한 이름값에 필자의 미모를 앞세운 그런 책인가 싶었는데, 읽어본 순간 깜짝 놀랐다. 현대미술에 대해선 거리감에 심지어 거부감까지 갖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아주 친절하고 다정하게 현대미술을 얘기해주는 가정교사 같았다. 개인적 감상 혹은 일기 같은 것까지 들어 있어서 어떤 점에서 좀 난삽해 보이는 책인데, 일단 처음부터 하나씩 읽어내려가면 그 모든 게 다 아우러져 다정한 울림을 준다. 가장 큰 장점은 현대 한국 미술가들의 꽤 넓은 스펙트럼을 일견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의 표현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의 진지함은 똑같았다. 부디 젊은 그들이 자본의 공세를 이기고 -이 책에 소개된 낸시 랭은 자본을 이용한다는 패기에 스스로 이용당하는 면모를 이미 보이고 있으니- 끝까지 이 진지함을 잃지 않기를!

사족을 하나 단다면, 비록 이 책이 한국 현대미술만을 다루고 있지만 한젬마식의 미술 교양서보다 더 미술을 접하는 바른 길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어설픈 입문이나 교양서보다 때론 이런 식의 주제별 접근이 좋은 입문의 길이 되기도 한다는 걸 가르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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