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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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소개로 책을 샀다. 표지에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부제를 보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마도 교양강좌였나 본데, 굳이 공대생이라는 대상을 넣은 것과 '가슴'을 울렸다는 표현이 그러했다. 교양강좌에 그 정도의 열렬한 공감이 있었다는 말인가? 저자가 재직하는 한양대가 공대로 유명하다는 것 때문에 공대생을 대표로 넣었을까, 아니면 공대생은 시 같은 것은 잘 읽지도 않으며 더군다나 시를 통하여 웬만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표현한 것일까. 공대생은 아니었지만 내 가슴도 멀쩡할 수 있는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장 '가난한 갈대의 사랑노래'를 읽어 보고는 책을 덮었다. 신경림의 <갈대>와 <가난한 사랑노래>를 설명하는 것이 었는데, 여기저기에서 너무나도 많이 써먹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어떻게 사랑히 변하니?' 같은 내용을 해설로 넣어두었다는 것이 너무 평범하다못해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한동안 이 책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정리(= 책정리)를 하다가 옆으로 켜켜히 쌓아 놓은 책 더미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계속 읽어볼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를 고민했다.


결론적으로는 계속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복효근의 <목련 후기>를 설명한 3장의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부터는 거의 눈을 떼지 못하고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의 도움으로 이어지는 함민복, 정호승, 박노해, 황동규, 박목월, 황지우 시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예전에 대충 읽어내려갔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뻔하고 식상하다고 앞서 불평했던 영화나 다른 시, 소설, 음악, 그림 등을 소재로 설명하려 한 것이 오히려 다양한 관점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작가들의 배경이나 개인사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덕에 각 작품들이 품고 있는 시구에 대해서도 천천히 곱씹어 볼 수 있었는데, 신경림이 <갈대>로 등단한 이후 10년을 절필했다는 것이나, 별을 노래했던 가수 윤형주가 별을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와 육촌지간이라는 점, 황순원의 아들인 황동규가 작곡가를 꿈꾸다가 문학으로 전환했는데 그의 대표작 <즐거운 편지>가 고3 시절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대생에게 바친 시라는 것, 박목월이 그를 흠모하던 여대생의 구애로 제주도에 몇 달을 도피했었고 그의 시 <배경>은 그 사연을 알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일본인 목두꾼들에게 몰매를 맞고 정신이 이상해진 아버지를 둔 김소월의 강박적일 정도의 정상적인 삶 그러나 끝내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아픔 등이 그러하다.


이 책의 백미는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언제 들어도 신선하고 놀라운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을 뜰 때까지 청마(유치환)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정운(이영도)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낸 이만 정성이었을까. 받은 이 정운도 정성이었다. 그녀는 그 많은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정운도 청마에게 얼마나 편지를 보냈는지 그건 알 길이 없지만 정운이 알뜰히 모아 놓은 청마의 편지는 전란 때 불타버린 예전 것을 제하고도 무려 5,000여통! 그의 사후, 당시의 주간지에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같은 제목의 단행본이 출간된다. 그런데 이 러브레터가 책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주문이 몰려들면서 일약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만약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하나의 시를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작품과 매체, 그리고 시인에 대한 배경을 동원하여 시를 온전히 이해하고 감상하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다양한 해석 방법을 즐기는 재미도 있지만, 시를 읽는 다는 것이 단순히 그 시의 글자와 은유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 책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생각해 보라. 별과 내가 서로 마주본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우리 은하계에는 천억 개의 별이, 그리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또 천억 개 정도 있단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수십억 인구 가운데 하나인 나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억겁의 시간 가운데 지금 이 순간, 어쩌면 이미 오래전 티끌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그 별과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렇게 소중한 만남과 관계건만 그 또한 시간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저녁별은 밤이 되면 사라지고 나 또한 그럴 운명이다. - 45쪽

만일 오랜 병상의 세월을 보내는 노인이 있다면 존중하라. 그 모습을 결코 추하다 하지 마라.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과 결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 힘겹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헤어짐은 헤어짐다워야 한다. 오랜 사랑의 무게는 시간의 절약을 미덕으로 삼지 않는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기능적이지만, 인사에 인사를 거듭하고 나서도, 적어도 동네 어구까지 나가서 떠나는 이의 꼭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드느 ㄴ것이야 말로 인간에 대한 참된 예의다. 그것이 작별이다. - 67쪽

통증을 모르면 우리는 죽는다. 심지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을 것이다. 그러니 슬픔을 아는 자는 정녕 복이 있도다. 슬픔은 슬픔을 고칠 줄 알게 해 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감의 능력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지도 모르고 있는 이미 죽은 사회다. 그래서 신은, 그리고 시인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에게 슬픔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것이다. 고통을 모르는 이에게 고통을 느끼게 해 주고, 슬픔을 모르는 이에게 슬픔을 느끼게 해 주는 일은, 그러므로 저주가 아니라 사랑이다. - 92쪽

내 사랑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매일같이 변함없이 일어나서 사소해 보일 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굉장한 일이 또 있을까? 오늘 해가 지지 않으면, 오늘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큰일 아닌가? 그 엄청난 일이, 그것도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것은 실로 경이(驚異)라고 해야 옳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화자는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게다. 등 뒤에 서서 얼굴 한번 제대로 비치지 못한 처지지만 그대에게 은근히, 그러나 당당히,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게다. 내 사소한 사랑이야말로 위대하지 않은가? 다만 늘 그대 뒤에 있기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하게, 늘 그대 앉은 배경에 있기에 그대가 몰라줄 뿐. - 111쪽

당신을 구원하는 것은 극점에 빛나는 오로라도, 대양을 뒤집는 태풍도 아니다. 당신이 온전히 빛나도록 배경이 되어 주는 해 질 녘 노을, 당신의 땀을 닦아 주는 바람일 게다. 당신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그때 가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의 등 뒤에서 벗어나 그대 앞에 서리라. 그리고 그대를 불러 보리라.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을 지켜 온 자이니 말이다. 그대여, 그때 가거들랑 나를 인정하고 내게 의지하라. 나처럼 당신을 오랫동안 조용히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기다린 자가 있던가. 지금 사소해 보이는 내 존재가 과연 그때도 사소할 것이냐. 나는 해지고 바람이 부는 그런 사람, 당신을 지키는 그대 등 뒤의 사람인 것이다. - 112쪽

모든 기다림은 결국 시간과 변화의 문제다. <어린완자> 여우의 말이 기억나는가? 기다림이란 오늘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어제와 늘 같이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변화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이미 지나간 버스를 기다리는 것일 테다. 안타까워도 그것이 진실인데, 무서운 것은 과연 그 버스가 지나갔는지 여부를 알 길이 없다는 데 있다. 기다림에 녹이 슨 채, 그러다 우리는 죽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가끔 인생은 두렵다. - 153쪽

특히 <산유화>의 `저만치`라는 시어처럼 김소월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어도 드물다. 그는 늘 자신이 추구하고 욕망하는 대상으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다. 그것이 바로 여기, 내 눈앞에 피어 있으면, 똑 따면 그만이다. 그것이 바로 저기, 도저히 손이 가닿을 곳 없는 곳에 있으면 쳐다보지 않고 포기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꽃은 꼭 `저만치` 피어 있는 게다. 그냥 가자니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딸 수 있을 것 같고, 따려고 하자니 건너편 절벽에 홀로 피어 있는 꽃이라 위험해 뵈기도 하고. 아마 또 그렇게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시간만 흐르고 그는 돌아서야 했을 것이다. 그의 운명처럼. 그래서 늘 그의 시를 읽으면 읽는 우리가 답답해지고 한이 맺히는 듯하다. -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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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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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는다. 저 별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니 내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겨난 것일 텐데, 그렇다면 저 별은 도대체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소년의 궁금증엔 해답이 없다. 그는 들고 있던 플래시의 불을 밝혀 별을 겨눈다. 이 빛도 언젠가 저 별에 가 닿겠지. 내가 죽고 내 손자가 죽고 그 손자의 손자가 죽으면... 물론 이런 가정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빛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우주다. - 127쪽

어리석은 의문은 또 있다. 창공의 새에게도 그림자가 있을까? 저렇게 작고 가벼운 것에게 어찌 그림자처럼 거추장스런 것이 달려 있으랴 싶은 것이다. 그러나 새에게도 분명 그림자가 있다. 날아가는 새떼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아주 가끔, 뭔가 검고 어두운 것이 휙 지나간다. 너무 찰나여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잘 모르기 십상이다. 달이 해를 가리는 걸 일식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새가 해를 가리는 이런 현상은 무어라 할까. 물론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 새 그림자가 해를 가리는 일도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은 것이다. - 127, 128쪽

그림자는 광원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물체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빛을 가로막으면 그 뒤엔 그림자가 생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엔 언제나 내가 있다. - 128쪽

"남자들이 왜 기를 쓰고 성공하려고 하는지 알아?"
"몰라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서야." - 177, 178쪽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뇌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성기가 힘차게 발기하는 느낌을. 저 지중해 어딘가에 있다는 누드비치에 처음 당도한 관광객처럼 독자들은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책은 밝게 웃으며 어서 오라고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요염한 그 책들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암시를 풍기면서 손만 대면 가랑이를 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르가슴이 멀지 않았다. 바야흐로 우리의 뇌는 팽창하여 부풀어오르는 중이다. 우리는 허겁지겁 아무 책이나 뽑아 펼쳐댄다. 외설스런 장면이다. 그러나 이 누드비치의 풍경이 눈에 익으면 어느새 정신의 성기는 늘어지고 광대무변해 보였던 가능성의 세계는 일 제곱미터 면적의 책상으로 한정된다. 졸음이 쏟아지거나 식욕이 생긴다.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한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퀴퀴한 냄새도 비로소 코를 간지럽힌다. 그때쯤 되면 사람들은 잡지 서가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아직 낡지 않은 것들이 주는 달콤함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 201, 202쪽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더는 피곤한 게 없는 삶. 그런 사람에게 인생이란, 다소 예외가 있기는 해도,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다. 규정속도를 지키면서 꾸준히 가기만 하면 목적지에 대다르는 것이다. -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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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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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훑어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으므로 또 다른 책을 벌여놓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빨려들어간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신 없이 진행되는 사건과 이것을 재치 있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입담. 결국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이 책을 다 읽고 말았다.


정유정의 소설은 네 권째 읽는다. 처음으로 읽은 것이 <7년의 밤>, 그 다음에는 <28>, <내 심장을 쏴라>, 그리고 이 책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었으니, (비록 <7년의 밤>보다 <28>이 뒤에 출간되었지만) 그의 책을 거의 출간 역순으로 읽은 셈이 된다. 다 읽고 보니, 등대마을과 화양시라는 곳에서 각각 진행되는 <7년의 밤>과 <28>의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Y읍을 벗어나 임자로도 길을 떠나고, 정신병원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와 <내 심장을 쏴라>의 똘끼 있으면서도 좌충우돌 유쾌한 분위기가 서로 닮아 있다. 그의 소설을 초기와 중기로 나눈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가 <7년의 밤> 부터는 다소 음울하게 변한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을 놓고 본다면 화양시의 시위장면과 5.18의 광주가, 등대마을의 댐과 정신병원이 각각 겹쳐 보이기 때문에 <28>과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가 닮아 있는가? 암튼...) 여행이나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로드무비'라고 부르는데, 이 소설은 '로드노블'이라고 불러야 하나(물론 이런 용어는 생소하다). 심사평을 보니 '모험소설'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 있던데 '모험'으로 뒤덮기엔 너무 큰 것도 같고.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한 소년이 등장한다. 친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데, 예기치 못한 사건과 불청객들이 끼어들게 된다. 본의 아니게 한 명의 노인과 두 명의 소년, 한 명의 소녀와 한 마리의 개가 동행하게 되면서 일은 꼬여가고 많은 고비를 넘으며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주인공 '준호'는 아빠의 실종과 뒤이은 엄마의 재혼으로 심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엄마와 아빠의 부재, 그리고 아빠에 대한 연민이라는 설정은 <7년의 밤>의 '서원'과 닮아 있다. 방황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는 방황에 대한 너무나 많은 원인과 이유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빈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보다 온전한 인격을 갖춘 누군가가 아니라, 여행길을 동행하게 된 생경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그들 사이에 놓여있던 낯설고 의뭉스러운 관계들이 점차 이해와 믿음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끼리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만약, 우리 인생에도 스프링캠프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들여다 봤다고 했다. 사라진 '무엇'이 거기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스프링캠프, '정규 리그가 시작되기 전인 이른 봄, 날씨가 따뜻한 지역에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가지는 합숙 훈련'. 인생에서 이런 시기가 과연 있기는 했을까? 그리고 나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치른 스프링캠프 덕분에 그나마 지금의 정규 리그를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내 스프링캠프에서 같이 합숙했던 사람들은? 그들은 나와 다른 리그에서 경기를 잘 치르고 있을까? 우리는 삶이라는 시즌이 끝나기 전에 다른 리그에서 또 한번 만나게 될까? 나는 거기서 잃어버린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 세상에는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 법이거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혜택 받은 자의 예의야. 알아들어, 김준호?" - 119, 120쪽

"돌아갈 수 없을 땐 돌아보지 마. 그게 미친 짓을 완수하는 미친 자의 자세야. 오케이?" - 323쪽

"하느님은 참 괴상한 방식으로 공평해. 사랑이 있는 쪽에선 사람을 빼앗고 사람이 있는 쪽에서는 사랑을 빼앗아 가고." - 358쪽

푸름 마을을 지나오며 안개섬의 새벽을 생각했어. 우리가 봤던 낯선 것들, 아름다운 것들, 빛나는 것들. 아니 어떤 말도 그들을 칭하는 데 적당하지 않을 거야. 세상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던 그들을, 나는 그냥 `비밀`이라 부르기로 했어. 내 인생의 첫 비밀. 어쩌면 우리가 함께한 며칠은 우리 인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법을 가르친 신의 특별한 수업이었는지도 몰라.
세상에는 신이 내 몫으로 정해 놓은 `비밀`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그렇다고 동의해 줘.
참혹한 대가를 치렀지만 난 자유를 얻었어. 비밀을 찾아가는 법도 배웠어. 그러니 이젠 나를 믿을 테야. 우리들 여행의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 잊지 않을 거야. 나를 무릎 꿇리려 드는 게 있다면 큼직한 감자를 먹여 주겠어. 이래봬도 내가 깡이 좀 되잖아. - 381,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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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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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 이어 올해 '페미니즘'에 관하여 읽은 세번째 책이다. 최근에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저변을 넓이기 위한 노력들이 TED는 물론이고 서적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래서 왠만하면 페미니즘 관련 신간들은 챙겨보려는 욕심이 있다. 이런 책들을 읽을 수록 완전히는 아니라도 '평등'이라는 개념에 조금은 다가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정희진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나쁜(bad)'의 뜻을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족한', '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 못한'이라는 뜻으로 읽힌다고 했다. 즉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말의 뜻은 (남자들에게) 나쁘거나 독한 페미니스트라는 뜻이 아니라, '부족한 페미니스트'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저자인 록산 게이도 책에서 '소문자의 페미니즘(feminism)'과 대문자로 시작하는 '페미니즘(Feminism)' 혹은 '근본주의 페미니즘'을 구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올바른 단 하나의 페미니즘의 관념에 사로잡혀 심지어 여성들 조차도 페미니스트이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곤 하는데, 실상 페미니즘은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매우 이상적인 페미니즘 외에도 각자에 맞는(소문자 형태의)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하며, 평등을 추구하는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왠지 사상이 자유로울 것 같고, 개인주의적인 상식과 태도가 수용되어 있는 미국은 다를 것 같았는데, 그곳에서도 역시 페미니즘에 대한 굳은 편견과 오해는 만연하였다. 이러한 편견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를 확대하는 한편 차별을 너무나도 쉽게 정당화 한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신체에 대한 성적인 희롱,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유를 구속하는 성추행이나 성폭행,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빼앗는 생식의 자유(reproductive freedom) 제한의 예가 책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9페이지 분량의 서문만 읽어보더라도 페미니즘에 대한 편안한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글이 쉽고 간결하다.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서문만 읽는 것으로도 충분할 정도이다. 본문에서는 미국 대중사회에 나타난 여성차별의 문제점들, 이를테면 성폭행, 낙태 제한, 공중파에서의 성희롱을 다루기도 하지만, <헝거게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나를 찾아줘>와 같이 국내에 번역된 소설들을 저자의 소문자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내용도 있다. 젠더를 중심으로 서술된 1부와 2부에 이어 제3부에서는 영화 <헬프>, <장고>, <노예 12년>을 관람평을 통하여 페미니즘을 미국 사회 내에서의 유색 인종 차별이라는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어서, 소설이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기의 생각과 저자의 것을 비교하며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견해들이 불완전한 것이며, 자신도 수시로 흔들리는 모순덩어리의 인간임을 상기시킨다. 처음에는 저자 역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하는 것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차별(본문에서는 "개똥 같은 취급"이라 했다)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대로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보다는 차라리 나쁜 페미니스트로 남는 것이 훨씬 낫다.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점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이런 여자로 남고 싶을 뿐이다. - 14쪽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페미니즘을 부인하곤 했다. 나는 왜 여성들이 아직까지도 페미니즘을 부인하고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려다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지 이해한다. 내가 가끔 손사래를 치며 나는 절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한 이유는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마치 인신공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이 단어가 그런 의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 누가 날 페미니스트라고 불렀을 때 최초로 떠오른 문장은 이것이었다. 왜 그러지? 나 페미니스트 아니야. 나 남자한테 오럴 섹스 해줄 수 있단 말이야. 그때 내 머릿속에는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자일 수 없다는 개념이 들어차 있었다. 물론 십 대와 이십 대는 이외에도 온갖 덜떨어진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었던 시기이긴 하다. - 14, 15쪽

나는 페미니즘을 부인했다. 이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말로 들렸다.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사람이야." 이런 우수꽝스러운 캐리커처는 페미니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 15쪽

나는 페미니즘을 되도록 단순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이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으며 빈틈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페미니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몸을 지킬 자유가 있고 필요할 때는 복잡한 절차 없이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녀가 같은 일을 했을 때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선택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역시 그녀의 권리이기에 존중한다. 하지만 그녀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또한 나의 의무이며, 나라면 하지 않을 법한 선택을 하는 여성들을 지지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 원칙이라고 믿는다. - 16쪽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소문자의 페미니즘(feminism)`과 대문자로 시작하는 `페미니즘(Feminism)` 혹은 `페미니스트(Feminist)` 혹은 단 하나의 진짜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 인류를 지배한다는 `근본주의 페미니즘`의 개념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임을 안 순간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건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 페미니즘은 우리 사이 교집합을 찾기 위해,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 16, 17쪽

남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그것을 가볍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 26쪽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 우리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유명한 남자건, 악명 높은 남자건, 전혀 유명하지 않은 남자건 남성이 여성을 학대할 수 있다고 믿게 내버려 두었다. 그럴 때마다 못 본 척했고 핑계를 만들어 냈다. 이 남자들의 나쁜 행동도 괜찮다고 하고 오히려 멋지다고까지 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이 사회에 젊은 여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우리는 이런 메시지들을 너무나 자주, 정기적으로, 일관적으로 전달하면서 당신이 눈을 똑바로 뜬 채, 팔을 벌린 채로 폭력적이고 끔찍한 세상으로 달려가도 된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 46쪽

대게 젠더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프레임 안에서 논의되곤 한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들은 금성에서 왔다. 아니 그렇다고들 한다. 마치 남자와 여자는 태초부터 너무 다르게 태어났기에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젠더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화성과 금성이 실은 같은 태양계 안에 있으며 생각보다 가까운 행성이란 사실을 잊게 된다. 사실 이 두 행성 사이에는 지구나는 하나의 행성 밖에 없으며 둘은 같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같은 광선 안에 머물고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출간된 많은 책들은 젠더에 관해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편협한 시각으로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여 바라보고 젠더 문제를 조금 더 신중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 127쪽

어째서 여성이 더 야심이 넘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표를 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했고, 집 밖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기를 쓰고 싸워야 했고, 성희롱 없는 근무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싸워야 했고, 대학이나 학과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 싸워 왔으며, 작은 자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증명하고 또 증명해 내야 했다. - 130쪽

나는 동정과 연민이 한정된 자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도 않다.
크건. 작건. 비극이. 부르면. 연민이. 응답한다. 가슴이. 응답한다. - 262쪽

아, 불쌍한 페미니즘이여. 페미니즘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운동의 일차적 목표는 모든 분야에서의 양성평등임을 잊지 말자. - 364쪽

한때 내 머릿속에는 페미니스트는 특정한 부류의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확한 신화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전투적이고 정치적이며 인간으로서 완벽하고 남자를 증오하고 유머가 없는 사람들. 이러한 신화에 속았다. 나는 이런 신화에 속지 않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기에 이런 과거가 자랑스럽지 않고 더 이상은 속지 않으려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 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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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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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특유의 감각으로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깊숙히 파고드는 만화가, 최규석.

그의 눈이 밝혀낸 낯선 현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을테지만, 반대로 우리가 느끼는 낯설음이 어쩌면 그가 너무도 견고히 견뎌낸 과거였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없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유치원이나 피아노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때 소풍을 엄마와 함께 가봤거나
생일파티란 걸 해본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분노, 경멸, 조소 등이 한데 뭉쳐진 자그마한 덩어리가 있다.
부모님이 종종 결혼을 재촉하는 요즘 이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내 자식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의 부모는 모두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아버지는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아도 가끔 신문에 얼굴을 들이밀기도 하는 나름 예술가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들 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 섞여 있어
그 아이는 그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엄마가 할머니라 놀림 받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들에게 제 부모나 집을 들킬까봐 숨죽일 일도 없을 것이고
부모는 학교 선생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것이며
어쩌면 그 교사는 제 아비의 만화를 인상 깊게 본 기억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간혹 아버지를 선생님 혹은 작가님 드물게는 화백님이라 부르는
번듯하게 입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들 것이고 이런저런 행사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참가하기도 하리라.
집에는 책도 있고 차도 있고 저만을 위한 방도 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도 않을 것이고
고함을 치지도 술에 절어 살지도 않을 것이고 피를 묻히고 돌아오는 일도 없어서
아이는 아버지의 귀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 아이의 환경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그 아이가 제 환경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제 것으로 여기는,
그것이 세상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는,
타인의 물리적 비참함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알아도 제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한
해맑은 눈으로 지어 보일 그 웃음을 온전히 마주볼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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