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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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훑어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으므로 또 다른 책을 벌여놓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빨려들어간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신 없이 진행되는 사건과 이것을 재치 있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입담. 결국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이 책을 다 읽고 말았다.


정유정의 소설은 네 권째 읽는다. 처음으로 읽은 것이 <7년의 밤>, 그 다음에는 <28>, <내 심장을 쏴라>, 그리고 이 책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었으니, (비록 <7년의 밤>보다 <28>이 뒤에 출간되었지만) 그의 책을 거의 출간 역순으로 읽은 셈이 된다. 다 읽고 보니, 등대마을과 화양시라는 곳에서 각각 진행되는 <7년의 밤>과 <28>의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Y읍을 벗어나 임자로도 길을 떠나고, 정신병원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와 <내 심장을 쏴라>의 똘끼 있으면서도 좌충우돌 유쾌한 분위기가 서로 닮아 있다. 그의 소설을 초기와 중기로 나눈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분위기가 <7년의 밤> 부터는 다소 음울하게 변한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을 놓고 본다면 화양시의 시위장면과 5.18의 광주가, 등대마을의 댐과 정신병원이 각각 겹쳐 보이기 때문에 <28>과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7년의 밤>과 <내 심장을 쏴라>가 닮아 있는가? 암튼...) 여행이나 탈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로드무비'라고 부르는데, 이 소설은 '로드노블'이라고 불러야 하나(물론 이런 용어는 생소하다). 심사평을 보니 '모험소설'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 있던데 '모험'으로 뒤덮기엔 너무 큰 것도 같고.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한 소년이 등장한다. 친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데, 예기치 못한 사건과 불청객들이 끼어들게 된다. 본의 아니게 한 명의 노인과 두 명의 소년, 한 명의 소녀와 한 마리의 개가 동행하게 되면서 일은 꼬여가고 많은 고비를 넘으며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주인공 '준호'는 아빠의 실종과 뒤이은 엄마의 재혼으로 심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엄마와 아빠의 부재, 그리고 아빠에 대한 연민이라는 설정은 <7년의 밤>의 '서원'과 닮아 있다. 방황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는 방황에 대한 너무나 많은 원인과 이유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빈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보다 온전한 인격을 갖춘 누군가가 아니라, 여행길을 동행하게 된 생경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그들 사이에 놓여있던 낯설고 의뭉스러운 관계들이 점차 이해와 믿음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끼리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만약, 우리 인생에도 스프링캠프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들여다 봤다고 했다. 사라진 '무엇'이 거기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스프링캠프, '정규 리그가 시작되기 전인 이른 봄, 날씨가 따뜻한 지역에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가지는 합숙 훈련'. 인생에서 이런 시기가 과연 있기는 했을까? 그리고 나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치른 스프링캠프 덕분에 그나마 지금의 정규 리그를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내 스프링캠프에서 같이 합숙했던 사람들은? 그들은 나와 다른 리그에서 경기를 잘 치르고 있을까? 우리는 삶이라는 시즌이 끝나기 전에 다른 리그에서 또 한번 만나게 될까? 나는 거기서 잃어버린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 세상에는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 법이거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혜택 받은 자의 예의야. 알아들어, 김준호?" - 119, 120쪽

"돌아갈 수 없을 땐 돌아보지 마. 그게 미친 짓을 완수하는 미친 자의 자세야. 오케이?" - 323쪽

"하느님은 참 괴상한 방식으로 공평해. 사랑이 있는 쪽에선 사람을 빼앗고 사람이 있는 쪽에서는 사랑을 빼앗아 가고." - 358쪽

푸름 마을을 지나오며 안개섬의 새벽을 생각했어. 우리가 봤던 낯선 것들, 아름다운 것들, 빛나는 것들. 아니 어떤 말도 그들을 칭하는 데 적당하지 않을 거야. 세상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던 그들을, 나는 그냥 `비밀`이라 부르기로 했어. 내 인생의 첫 비밀. 어쩌면 우리가 함께한 며칠은 우리 인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법을 가르친 신의 특별한 수업이었는지도 몰라.
세상에는 신이 내 몫으로 정해 놓은 `비밀`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그렇다고 동의해 줘.
참혹한 대가를 치렀지만 난 자유를 얻었어. 비밀을 찾아가는 법도 배웠어. 그러니 이젠 나를 믿을 테야. 우리들 여행의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 잊지 않을 거야. 나를 무릎 꿇리려 드는 게 있다면 큼직한 감자를 먹여 주겠어. 이래봬도 내가 깡이 좀 되잖아. - 381,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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