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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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재로 삼음 책을 그리 즐겨 읽지는 않지만, 제목에 계속 눈이 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제목이 그대로 읽히지 않고, "천 개의 바람이 되어"로 바뀐 채 내 눈에 박히고 있었다. 마침 4월이었다. 3년만에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찬란한 봄에 나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첫장을 펴니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라고 쓰인 한편의 시가 적혀 있다. 무슨 뜻인지 머리로 채 이해하기도 전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마시고 내쉬는 숨결이 이제 더 이상 나를 통하지 않는, 그저 허공을 떠도는 바람이 되는 순간이라니...


책은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신경외과 의사인 그가 폐암 진단을 받게된 순간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기까지의 생각과 성장과정을 담았다. 2부에서는 전도유망한 그가 레지던트 생활을 막 마치려 할 때 암 진단을 받게 되고, 투병생활과 의사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시간들이 담겨 있다. 결론은 이미 예상했지만, 남아 있는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호전되던 그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다.


에필로그는 아내의 몫으로 남겨졌던 것으로 보아, 10년의 삶이 남았다면 의사생활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고, 1년이 남았다면 책을 쓰고 싶다고 했던 그에게는 아마도 이 책을 끝맺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과 홀로 남겨진 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의 조합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던 간에 절묘한 구성으로 각기 다른 관점에서의 감정을 자극한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는 참았던 감정이 그대로 주저 앉는 것을 느꼈다. 가장 사적인 친밀감이 있는 사람인 아내가 목격자로서 한자 한자 써내려간 남편의 소멸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절박한 순간이지만 격렬하지 않은 담담한 서술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작가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성숙'이란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주어진 삶을 훌륭하게 사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동일한 뜻의 단어가 형용사로 쓰여 삶을 비출 것인지, 부사로 쓰여 산다는 행위를 비출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 같다. 부스러진 희망, 애절한 사랑, 준비되지 않은 이별, 그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해 버리거나 스스로 과열되지 않는 것, 주어진 날들을 견디어 내는 것은 슬프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일이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105, 106쪽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 140, 141쪽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 161쪽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통계를 지나치게 파고드는 건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뇌에 빠지는 일은 생존 가능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164쪽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 169쪽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179, 180쪽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게 뭔지는 몰라도, 나는 히포크라테스나 마이모니데스, 오슬러도 가르쳐 주지 않은 뭔가를 배웠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 197, 198쪽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 201쪽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방법론은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영원불변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손쉽게 조작하기 위해, 현상을 다루기 쉬운 단위들로 축속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만든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핵심적인 감정과 과학 이론 사이의 간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 어떤 사상 체계도 인간 경험을 온전하게 담을 수 없다. 형이상학은 계시(啓示)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 201, 202쪽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어느 쪽이든 그 야망은 과거의 것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돈, 지위, <전도서>의 설교자가 설명한 그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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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6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성숙한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주어진 삶을 알차게 보내고, 타인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성숙합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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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몇 권의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으며, 이 사회의 남성으로서 너무 당연하게 살아왔던(젠더 감수성 없는) 나로써는 이해할 수도 없는 담론(록산 게이의 표현을 빌자면 대문자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척'하느라 피곤했었는지, 올해는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명확히 이분된 성 대립 구조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여자도 아니고 남자들의 사회적 관계에 잘 적응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인 내가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재어보는 일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내가 '한남충'이거나 '꼰대'인 것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반면,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주장하기에는 그 근거가 매우 불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 사회 남성들의 어떤 면이 싫다고 해서, 남성보다는 여성과 대화하거나 일하는 것이 편하다고 해서, 가사 분담을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간은 차라리 내가 남자이고, 아재이자, 꼰대의 길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게 오히려 나았다. "남자들이란..."으로 시작되는 비난에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대신, 나라는 사람이 포함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로 했다. 몇 권의 책을 읽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가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기존의 책들보다는 조금 가벼운 담론을 접하고 싶었고, 마침내 적당한 책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는 '남자인 너는 모른다. 그러니 배워라' 같은 논조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감이나 부담을 갖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결혼 후 아이를 낳아 전업주부의 생활을 하고 있는 김지영 씨의 일대기를 그렸다. 일대기라고는 했지만 1982년 출생부터 2016년 현재까지를 몇 토막으로 나누어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그의 삶을 엿보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 씨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작가가 설명하듯 82년생 중에서 가장 많은 여성의 이름을 선정한 것에는, 그만큼 이 여자의 삶이 특별하거나 독특한 것이 아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읽다보면 이것이 소설이라기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만큼 우리가 비현실적인 (혹은 소설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태어날 때부터 성별이 무엇인지를 걱정해야 하고, 형제 중 남자가 있다면 당연히 후순위로 밀려나야 하고, 괴롭히는 남자아이가 있어도 그것이 좋다는 표현으로 여기며 감내해야 하고,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위협을 받았을 때에는 오히려 자신의 행실에 대한 꾸지람을 듣고,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왜 그리 많은지... 가부장적 제도의 정점인 결혼 이후에는 자신은 가사의 주된 존재로, 남편은 돕는 존재로 구분되어 모든 일을 당연히 처리해야 하고, 직장에서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버린 채 악착같이 매달려야 하고, 육아를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의 적성과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생의 전주기, 삶의 곳곳에 묻어 있는 여성으로서의 불리함과 차별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당연시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언젠가 생각 없이 "나도 여성으로 한 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만약 이러한 현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과연 그렇게 쉬운 말이 나왔을까 싶다. 내게는 그동안의 책 속에서 읽었던 정돈된 이론과 논리적 표현들보다도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여자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비단 한 여자에만 국한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더 큰 울림으로 와 닿았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김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 25쪽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 32쪽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구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궁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여덟 살 김지영 씨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 41, 42쪽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의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옷차림이나 근무 태도를 핑계로, 알바비를 담보로 접근해 오는 업주들, 돈을 내면서 상품과 함께 어린 여자를 희롱할 권리도 샀다고 착각하는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 - 64, 65쪽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 69쪽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비하느라 지금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야 해?" - 72쪽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 100, 101쪽

김은실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 여자 동료와 후배들이 회사를 나갈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요즘은 미안하다고 했다. 회식은 사실 대부분 불필요한 자리였고,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출장은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 문제였다. 출산, 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 관리직급이 된 후로 가장 먼저 불필요한 회식이나 야유회, 워크숍 등의 행사를 없앴고, 남녀 불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보장했다. - 112, 113쪽

안 그래도 김지영 씨는 졸업반이 되어 취업 준비를 시작한 남자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같은 상황일 때, 남자 친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손끝이 저리도록 애틋했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일상도 전쟁이었고, 긴장을 놓으면 당장 피투성이가 될 순간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 119쪽

"그냥 하나 낳자. 어차피 언젠가 낳을 텐데 싫은 소리 참을 거 없이, 한 살이라도 젋었을 때 낳아서 키우자."
정대현 씨는 마치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자, 라든가 클림트의 ‘키스‘퍼즐 액자를 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말했다. 적어도 김지영 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구체적인 가족계획이라든가 출산 시기를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정대현 씨도 김지영 씨도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정대현 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지영 씨는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 135쪽

김지영 씨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러니까 출산 이후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과 벌써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을 남편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정대현 씨는 차분히 아내의 말을 듣고 적절한 순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대?"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 136, 137쪽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 144쪽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재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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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에게 고맙다 : 가장 흔한 말, 정작 나에게 하지 못한 인사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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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산 책은 아닌데 책장에 이런 제목의 책이 꽂여 있는 것이 의아했다. 모르긴 몰라도 혜민 같은 이들을 좋아하는 집의 누군가가 사 놓고 구석에 박아둔 것이리라. 책장 자리도 확보할 겸 책을 빼서 한번 훑어보았다.

 

사소함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게으르게 살아도 괜찮다, 빈틈이 필요하다, 누구나 외롭다, 힘들 땐 힘들다고 해라, 진심이 통한다고 믿는다 따위의 말에 살을 붙이고 줄바꾸기를 많이 해서 서너 페이지로 편집하였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패러디 한 것 같은 "내가 만일 삶을 다시 살수 있다면 (...) 삶의 매 순간순간 집중하리라" 같은 구절을 시처럼 써 놓은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뿜고 말았다. 자기 블로그에나 게시할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펴내다니... 게다가 누구의 사진인지도 모를 예쁜 사진들을 군데군데 배치해서 페이지 수를 늘리고 (이런 사진들을 무료로 공개하는 경우가 많으니 저작권 문제는 해결을 한 건가?), 어디서 들었을 법한 말들을 몇 줄씩 써 놓는 그런 류의 책이었다.

 

일단 책을 폈으면 끝까지 읽는다, 아무리 안 좋은 책이라도 한 대목 정도는 내게 도움이 될만한 것을 남긴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킨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재빨리 읽고 덮어버렸다. 요즘은 어째 이런 말랑말랑한 글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 "힘내"라고 말을 건네지만
어떻게 힘을 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위로라고 건네는 한마디일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힘을 낸 나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는 단지,
‘힘‘을 낼 수 있는 힘이 없어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건데... - 84쪽

책도 비슷하다. 낯설게 느껴지는 책도 막상 읽다 보면, 단 한 줄이라도 배울 수 있는 구절이 있고 영감을 주는 단어가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당신이라는 사람, 한번 읽어 내려가 보자‘라는 마음만 갖는다면, 적어도 알게 모르게 품고 있던 상대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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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3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 수집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본 문장들이 제법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짧은 문장이 SNS 글쓰기의 대세라고 하지만, 출처 없이 문장만 달랑 올리는 모습이 탐탁치 않습니다.

lemonakt 2017-09-18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느낀 바를 그대로 적어주셨네요. 정말 공감합니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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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빨강머리 앤'이라는 만화를 즐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내게도 몇몇 장면은 떠오른다. 항상 '글쎄다'라고 말하는 통통하고 등이 구부정한 매튜 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초록색 지붕 집으로 오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앤, 엄격한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혼줄이 나서 울먹이던 앤, 앤의 빨간 머리를 빗대어 '홍당무'라고 놀리던 길버트의 머리를 간이 칠판으로 내리치던 앤, 소매가 부푼 블라우스를 입고 싶다고 종종대던 앤, 다이애나와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던 앤... 제목만 떠올리더라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이런 장면들에 나 스스로도 놀라며 책을 집어 들었다. 단순한 스토리를 짜집기한 책이었다면 휙 한번 훑어보고 그대로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 페이지 남짓한 프롤로그를 읽은 후에는 빨강머리 앤의 장면과 작가의 삶의 관점을 한번 따라가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목차는 크게 다섯 장으로 나누어진다. 각 장의 제목은 그 장에 속한 대표적인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우연을 기다리는 힘'은 앤이 마릴다의 집에 입양되면서 벌어지는 낯설고 어색한 몇 가지의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앤의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는 '빨강머리'에 대하여 컴플렉스를 없애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던 앤이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지금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이라는 것. '고독을 좋아한다는 거짓말'에서는 앤이 유리에 비친 자신을 캐시 모리스라는 상상속의 인물로 설정하고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고 마릴라에게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고독을 좋아한다는 말은 이미 같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통찰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슬픔 공부법',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한다' 또한 앤이 성장해가면서 익숙했던 에이본리를 떠나 퀸 학원이 있는 대도시로 가고, 그동안 경쟁관계로만 의식하고 있던 길버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매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과 이에 대한 관조적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실패하고 지쳐버린 자신의 인생에서 앤의 말을 되새긴 것이 끝내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앤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앤의 말을 받아적던 작가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실망할 것도 없으니까."라는 린드 아주머니의 말에 반대하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했던 앤처럼 다시 한 번 실망하더라도 그동안 꿈꾸어 왔던 것을 다시 한번 기대해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앤이 스스로 '고독'이라로 칭했던 자아의 내피를 비로소 벗고 자신의 삶을 직면한 것과 같은 작가 자신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기다리고 고대하는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게 실제 우리의 하루다. 하지만 그럴 때 앤의 말을 꺼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 22쪽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게 하는 힘 아닐까. 시간은 느리지만 결국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나무를 자라게 한다. 나는 그것이 시간이 하는 일이라 믿는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조금씩 너그럽고 상냥하게 키운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거울을 보며 어느 날 당신도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아! 정말 좋다! 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 - 27, 28쪽

야망에는 결코 끝이 없는 것 같아.
바로 그게 야망의 제일 좋은 점이지.
하나의 목표를 이루자마자
또 다른 목표가 더 높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야망은 가질 값어치가 있지만 손에 넣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야.
자기부정, 불안, 실망이라는
그 나름대로의 장애물을 거쳐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니까. - 52쪽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보다 중요한 건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다. 세상을 천천히 응시하는 일은 나의 마음을 꼼꼼히 읽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정말로 ‘나의 야망‘인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몰려 쫓기듯 하고 있는 일을 자기 의욕적으로 착각하고 나를 소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일이다. -55,56쪽

삶을 야구에 비유하자면, 나는 이제 홈런을 치겠다는 야망보다는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 연습을 거르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 살면서 중요한 건 어쩌면 타율이 아니라 출루율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좋은 볼을 보고 ‘안타‘를 욕심내기보다, 먼저 출루해 나간 사람을 위해 ‘번트‘를 쳐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안타‘ 찬스에 ‘번트‘를 칠 수 있는 선수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더 큰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사람은 종종 다른 사람이 내리지 못하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야망의 기준이 ‘나‘에게서 ‘우리‘로 확장되는 것이다. - 56쪽

이제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멸의 역작을 쓰길 바라기보다,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매일 쓰고, 매일 읽는 사람이게 해달라고 말이다.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영화 <희생>에서 말한 것도 그런 것이다. 화장실 변기 안에 물 한 컵을 붓는 사소한 행위조차 매일 하는 것에는 신성함이 깃든다. - 60쪽

삶은 내가 원하던 것과 늘 다른 식의 선택을 요구했다. - 96쪽

우리가 사랑이란 명사에 ‘빠졌다‘는 조금 특별한 동사를 쓰는 것은 사랑이 ‘젖어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와 만나, 크나큰 낙차를 경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풍덩~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쿨‘하고 ‘드라이‘한 사랑 같은 건 이제 잘 믿지 않게 됐는데, 그건 물기가 없는 곳에선 어떤 생명도 자라지 않는 이치와 같다. 생명이라곤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사막에 선인장이 존재하는 건,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때문이다. 진짜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 113쪽

무엇을 원한다는 건 그것에 따른 고통도 함께 원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 171쪽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자아 중심적인 강박이 나를 망치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현재를 망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좋아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아닐까. - 181, 184쪽

나는 직업을 꿈과 연결시켜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좌절하게 만드는 요즘 세태를 생각했다. 그리고 직업이란 ‘내‘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는 일이란 생각에 이르자, 사람들이 느끼는 ‘자아실현‘과 ‘직업‘ 사이의 괴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 184쪽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끝내 알아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결핍 안에서 공기가 되어 서로를 옥죄지 않고, 숨 쉬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옆에 없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위성처럼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따뜻해지는 사랑. 이것이야말로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이다. - 218쪽

앞일을 생각하는 건 즐거운 일이에요.
이루어질 수 없을지는 몰라도 미리 생각해보는 건 자유거든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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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1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간머리 앤> 완역본이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동서문화사 번역본이 개판이라고 들었거든요.. ^^;;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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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그의 두번째 책을 읽는 것이지만, TV를 보지 않는 나는 여전히 허지웅을 잘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그의 책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나 낯설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기고 싶은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때문이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에는 별 다른 주저함은 없었다. 제목 또한 눈길을 끌었다. '나의 친애하는 적'. 나는 유무형의 싸움에 있어서 한번도 내 상대편을 존중할만한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건 내가 비뚤어진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내가 그동안 상대해 왔던 이들의 수준이 다 고만고만해서 였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제목을 통하여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심취하는 일"을 경계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어려운 신독(愼獨)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3부 '끓는점'이라는 소제목은 거기에 속한 대표적인 글의 제목을 땄다. 물론 이러한 소제목들이 각 부에 속한 글들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대강적인 분류를 하자면, 1부는 저자의 생활과 연관된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다'라는 제목 아래 그의 아버지, 엄마(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 데이비드 보위, 팀 커리, 도널드 서덜랜드, 신해철, 앤서니 퍼킨스 등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주었던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3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이 주로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의 구성을 나, 나의 주변, 사회로 확장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주간지와 월간지 기자로 일했다는 경력 때문인지,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많다. 영화의 내용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글도 있고, 영화의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강한 호감을 드러내는 글도 있고, 영화의 존재가치와 사회와의 연계성에 대해 언급한 글도 있다. 저자가 언급한 영화들을 다 섭렵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영화적 취향이 그리 강하거나 필수적인 영화들을 찾아 보는 성격이 아닌, 더군다나 가끔 서평은 읽고 참고하지만 영화평은 전혀 읽지 않는 나로서는 그것들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였다. 만약 이 책이 영화에 대한 그동안의 평론을 엮은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나 고시원 이야기 같이, 매스컴을 통해 그를 잘 접하지 않는 내게 익숙한 에피소드가 있다는 점은,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그의 첫 에세이인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언급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신해철과의 인연, 그와의 안타까운 이별에 대해서는 공감하겠으나, 그와 관련된 에세이가 2편이나 (그것도 상당히 중복적인 표현으로) 된다는 점, 후반부로 갈수록 앞 뒷글의 흐름에 맞지 않는 한 페이지정도의 글이 드문드문 보인다는 점은, 책의 처음에 비해 뒤로갈수록 안타깝게도 글의 분량이나 짜임새가 성기어진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에세이를 쓸 때 그것을 어떤 소재로 구성할지는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악의 평범성' 같은 소재는 다른 사회적인 에세이에서도 너무 자주 접하는 소재여서 식상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버지, 엄마, 청소, 편의점 아르바이트, 트위터 등 개인적인 배경과 일상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 몇 편은 꽤 마음에 들었다(덕분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처음 책을 폈을 때는 개성이 강하고 편향적인 것 같았던 그의 시선이, 책을 덮으면서는 결국 자신을 경계하며 남을 살펴보게 하고,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고, 거듭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런 시선과 더불어 한정된 분량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이끌어내는 그의 재량이 부럽기도 했지만, 만약 그의 세번째 에세이가 나온다면 굳이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나 자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 심취하면 쉽게 뜨거워지고 자기 사정과 감정만이 특별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사정에만 너그럽다보면 남의 사정은 나보다 덜한 별것 아닌 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괴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주변 세계를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 6쪽

남의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남 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은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불행할 시간이 있으면 더 많은 걸 책임지고 노력한다. 어른스러운 길이란 건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과, 이후 어른스럽게 책임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 45쪽

청소란 그 공간을 완전히 이해하게 만든다. - 50쪽

돌이켜보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늘 너무 오랫동안 분개했던 것 같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랬다. 거기에는 어떤 오해나 실수가 있더라도 어찌됐든 돌이킬 수 있어야만 진짜 우정이고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사랑과 진짜 우정이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서로 다른 논리들 앞에서 유명무실해진다. 사실 언제든 돌이킬 수 있다는 믿음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람을 좀 비겁하게 만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최소한 내가 실패한 관계들은 대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모두 순순히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가 필요하다. 돌이키고 되돌리는 것에 대한 집착은 좀 느슨하게 내버려두고 말이다. - 53쪽

아마도 사람들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구덩이 안에서 모래를 퍼내는 일을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지루하고 의미 없는 반복에 염증을 느끼던 사람조차 마침내 길들여지고 익숙해져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자아를 성취하며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분투하는 사람보다 일상에 침몰된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인다. 다시 꺼내볼 때마다 전율한다. 마침내 구덩이 밖으로 나설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다시 들어가 당장의 목적에 만족하고 설레어하는 풍경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어느 쪽이 더 옳은 선택일까. 더 권할 수 있는 삶일까. - 112쪽

살다보면 삼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삼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삼루에서 태어난 것도 삼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 126쪽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 127쪽

결국 남은 건 뒤의 말뿐이었다. 맥락은 결코 기록되지 않는다. 과격한 말이었다. 어쩌면 과격하고 선정적인 나중의 말만 남은 게 당연한 노릇인지도 모르겠다. - 190쪽

전에는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까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까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까지 함께 잊어버리기 마련이더라. 그리고 그렇게 까먹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반드시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 말이다. - 191, 192쪽

좋은 다큐는 반드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에 관해 스스로 한번 더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의심의 사유를 통해 관객이 영화를 찬양하게 만드는 대신 관객이 영화에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 종류의 당황은 필연적으로 관객의 고민과 깊은 울림을 이끌어낸다. - 229쪽

무엇을 다루었느냐가 중요하지 작품의 함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이 엄혹한 세상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는 별로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다큐 <자백>에서 과거 군부 독재 시대를 비판하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내가 편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프로파간다라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이들과 동업자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다큐들을 모두 퉁쳐서 함량 미달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좋은 다큐가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세상을 망치는 건 그런 사람들이다. - 229, 230쪽

악의 평범성 개념은 아이히만의 말년 인터뷰와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통해 반박되거나 보충되고 있다. 그러나 위계와 시스템, 적극적인 동조자들이 발견되는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악의 평범성 논쟁, 그리고 <엑스페리먼트>가 남긴 가장 중대하고 어려운 화두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란 그렇게 힘들다. - 261, 262쪽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 만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폭하기보다 설득하고 싸워나가기를 포기할 수 없다. 요즘은 그렇게 원론적인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간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가장 기본적인 믿음들이 세상을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훼손되어 버려지고 있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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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여행 2017-01-26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 몇개일까 궁금했는데 3개. 만족스런 글은 아니었나봐요. 빨간 커버 느낌은 좋았는데..
자기 생각만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계속 소통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생각이 늙지 않도록 하는 가장 쉬운 길이 아닐까요?

희망여행 2017-01-2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루에 혼자 서 있는건 사실 힘든 일이예요. 상대팀 관중의 야유가 계속 들리죠.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