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절판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인간'이란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인간이 되는 건(이따금 정말 그런지 아닌지 미심쩍은 경우가 있다고는 해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 자체로, 혹은 그것 자체를 통해서만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한다면, 정말로 무언가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제라도,
'그 무언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라도 일단 무언가를 해본다'라는 게 아닐까요.-31쪽

소설로 쓸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알고 있는 것, 그것뿐이다.-66쪽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72쪽

어떤 것에 대해(소설에 대해서라고 해도 좋겠지요. 혹은 이제부터 쓰려고 하는 무언가에 대해. 만일 무엇을 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써야 좋을지에 대해) 철저히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본다.-78쪽

자신의 이야기를 쓰십시오. 다만, 아주 조금 즐거운 거짓말을 넣어서.-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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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구판절판


침묵은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내 뼈와 살의 원천을 투시하는 어두운 거울 같았다. 그것은 일견 두려운 일이었다. 수도 생활을 각오하며 그 고요함을 동경했으나 침묵의 이 막강한 힘은 예측하지 못했었다. 실제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머뭇거리면서 되돌아보았던 것 같다. 내가 타고 온 기차가 떠나는 기적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나는 내 짧은 젊음을 기차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소음들과 소망을, 열락과 구토를, 초조와 울음을, 선망과 질투들을...... 다시 길고 부드러운 어둠이 내려앉은 복도로 한발을 내딛는데 젖혀진 소음의 휘장 틈으로 처음 알몸뚱이의 내 영혼이 언뜻 보였다.-13쪽

"하필이면 책을 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거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 오, 인간이여. 네가 인간임을 알라! 너의 완전한 겸손은 네가 너를 아는 데 있다.' 휴우, 이럴 때가 제일 힘들어. 베네딕도 성인은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 하셨다는데 낮에 안젤로에게 화를 냈던 게 맘에 걸리네. 요한, 난 어리석은 사람들, 머리 안 돌아가는 사람들, 같은 말 두 번 이상 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참아내지 못하겠어. 생각해봤지, 나 머리 좋아, 나 말귀 금방 알아들어. 그런데 그거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 아니잖아. 다 하느님께 공짜로 받은 거잖아. 안젤로 머리 별로 안 좋은 거 그 애 탓 아니잖아. 하지만 요한, 공부하지 않는 거, 게으른 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걸 보면 참기가 힘이 들어...... 하지만 내가 뭐라고 그 사람들에게 화를 벌컥거리면서 내고 있냔 말이야. 이런 생각 하면 내가 너무 싫고 화가 난다구!"-42-43쪽

머리만으로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아 지금 그런 무모하고 충만한 자신감을 생각하면 사실 약간 오싹하기도 하고 설핏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무모함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히말라야에 오르고, 누가 바다 깊숙한 곳을 탐험하러 떠나며, 누가 빙하의 극지에 과학 기지를 세우고, 누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터무니 없는 말로 한 여자를 제 생(生) 안으로 데려온단 말인가.-49쪽

비판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비판 속에 비판자의 비난이 교묘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판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은 그 비판이 나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하는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 비판이라는 것이 비난을 내포하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염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회개하는 사람을 만들어냈을까?-68쪽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69쪽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어떤 궁극적인 의미, 다시 말해 초월적인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인간은 그 초월적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그저 믿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훗날 나는 빅토르 프랑클이 죽음의 수용소를 체험하고 나와 죽기 전에 쓴 그의 자서전에서 이와 같은 글을 읽고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대결한다고 해도, 우리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능력, 즉 인간의 고통을 인간의 업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증언하면서 삶의 의미를 쟁취할 수 있다."-162-163쪽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165-166쪽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239쪽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호함이다. 모호함 중에서도 진한 불행의 기미를 가진 모호함이다. 기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그것도 그 사건의 여파에 대한 불신, 모호함 때문이며, 그보다 더, 가족의 죽음보다 더 실종이 고통스러운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차악(次惡)의 희망인 체념조차 불가능하게 하니까. -250쪽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그리고 마음보다는 몸이 언제나 먼저 정직하게 상황에 대면한다. 머리로서는 그녀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메일을 읽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255쪽

사랑은 소낙비처럼 그냥 오는 거란다. 등산 도중 산등성이에서 앉아서 쉴 때 난데없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냥 홀연히 다가오는 거야. 선택하는지 안 하는지가 우리의 몫이라고 하지. 그러나 거부할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바람일지도. 어린 나이였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느꼈다.
너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알잖니? 나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이란다. 나는 뼈가 피부 밖에 있는 살미야. 뼈가 피부 밖에 있기에 웬만하면 찔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그런 면에서 그토록 상처 입는 연한 피부를 뼈 밖으로 내어놓고 다니는 포유류가 진화의 우위에 서 있는 건 너무 옳다. 그들은 자주 찔리긴 하지만 곧 떼어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 되니까. 그런 나에게 그 사랑은 치명적이었단다.-263쪽

누군가 그랬다. 수도 생활은 포기하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포기하고 기도하고, 또 포기하고 기도하고... 그 말씀을 듣던 할머니가 그랬다.
"수도 생활만 그렇겠니? 사는 게 그렇단다. 포기하고 기도하고 포기하고 기도하고...... 밤새 포기한다고, 버리겠다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누가 다시 주워다가 그 욕망들을 다시 내 안에 넣어놓는지 나는 다시 처음부터 비우고 버린단다. 매일 말이다."-318쪽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355쪽

시간은 모든 것을 마모시킨다. 본질적인 것만 남기고. 결국 젊음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마모되니까. 그러나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마모되지 않았다. 내 사랑은 진심이었다. -371쪽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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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빈곤 - 이기주의는 자본주의의 필요악인가
찰스 핸디 지음, 노혜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품절


나는 우리가 창조한 서구 사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염려스러워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빈부 격차와 기진맥진한 근로자들을 보면 우리가 보다 만족스러운 세상을 향해 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나로서는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경제체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삶까지 하나의 사업으로 바꾸어버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식이 정답처럼 보이지는 않는다.-6-7쪽

문제점은 변화와 시대에 따라 불가피하게 생겨나기 마련이고, 기술과 경제의 성장으로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에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풍족한 사회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삶을 탕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화가 난다. 삶과 삶의 목적에 대한 보다 선험적인 성찰의 부재,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왜곡시키는 경제의 통념이 나는 걱정스럽다. 돈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7-8쪽

자본주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대신 경제적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도 모른다.-9쪽

믿음이란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증명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진리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해를 같이한다면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사실 나는 언젠가 이 세상에 올 커다란 충돌은 국가나 상반된 경제 체계가 아닌 믿음의 체계, 즉 때때로 종교(예를 들어 이슬람교), 때로는 문명(인도와 중국), 그리고 때로는 문화(서구 문화)라 불리는 믿음 체계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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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탐스 스토리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지음, 노진선 옮김 / 세종서적 / 2012년 8월
판매중지


또한 이 여섯 가지의 지침은 당신의 삶과 일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해줄 것이다. 즉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두려움은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고, 돈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고, 단순함이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 목표이며, 신뢰가 사내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특질이고, 마지막으로 기부가 최고의 투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나와 비슷한 부류라면 단순한 사업적 성공 이상의 것, 즉 삶의 의미를 추구할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싶을 것이다.-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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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품절


무릇, 책 읽는 일은 도가 아니다.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다.-11쪽

저자들도 말하듯이 "청소년들이 20대에 독립을 하거나 더 일찍 동거를 시작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20대 독립'이 불가능한 사회는 그만큼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꽉 막혀 있고,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장치들을 갖추지 못한"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지체시키는 비효율적인 사회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의 등장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저자들은 묻는다. "10대 후반에 독립하고 동거를 경험하녀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선진국이 10대와 지체 현상 속에서 종속된 존재로서 어둡게 20대 초반을 맞는 우리나라의 10대들이 경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18-19쪽

현재 취직난으로 고투하는 우리나라의 20대들은 IMF를 맞았을 때 10대였다. 이 지지리도 운 없는 세대는 IMF 이후 파상적으로 진척되어 온 세계화와 현 정부가 벌인 잘못된 경제정책의 이중 희생자다. 노무현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조 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독과점을 부추겼는데, 이것은 중소기업을 육성했던 박정희나 '벤처기업'에 주력했던 김대중의 경제 정책과 역행한다. 중소기업은 그 자체가 사회적 안전망이랄 수 있으며, 자영업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비상탈출구다. 하지만 독과점과 프렌차이징이 젊은이가 차지해야 할 새로운 일자리를 치워버리고 창업 시장에 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생존이 걸린 10퍼센터의 구직을 위해 20대끼리 과잉 경쟁을 벌이는 한편 나머지 90퍼센트는 비정규직을 감수하거나 실업자가 되었다.-19쪽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성취된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에서 문학은 대중문화에 투항하거나 그저 과민한 자의식만을 표현한다. 결정적으로 작가와 평론가들은 대학과 출판계에 안주하거나 투신하여 스스로 제도가 됨으로써, 사회적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내가 알리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한겨례 2007년 10월 27일자) 하지만 그걸 책잡아 '종언'이 주는 문제의식의 핵심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한 사람만이 그랬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37-38쪽

복거일이나 고종석의 저작을 읽으면서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책을 온전히 읽은 게 아니다. 참된 독서란 내 앞에 주어진 개별적인 책을 읽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책을 생성한 유무형의 생산 현장 전체를 읽는 일이다. 강조하기가 새삼스러울 만큼 평범한 이 교훈이야말로 피에르 바야르가 말하고자 했던 역설적인 주제라고 감히 말한다면, 저자가 의도하지 않는 나의 오독일 것이다.-43쪽

"일기의 방식은 삶의 방식이다"고 자자가 쓴 바대로, 어떤 책을 어떤 속도로 또 얼마나 읽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나의 삶과 밀접히 연동된다. 실제로 사회인이 되기 이전의 책과 사회인이 되고 나서의 책이 완연히 다른 것은, 나의 삶이 어떤 책을 선택하고 기피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 아닌가?-49쪽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관음증' 환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며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똑같이 환자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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