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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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책 읽는 일은 도가 아니다.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로 난 길이다.-11쪽

저자들도 말하듯이 "청소년들이 20대에 독립을 하거나 더 일찍 동거를 시작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 자체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20대 독립'이 불가능한 사회는 그만큼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꽉 막혀 있고,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장치들을 갖추지 못한"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지체시키는 비효율적인 사회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의 등장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저자들은 묻는다. "10대 후반에 독립하고 동거를 경험하녀서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선진국이 10대와 지체 현상 속에서 종속된 존재로서 어둡게 20대 초반을 맞는 우리나라의 10대들이 경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인가?"-18-19쪽

현재 취직난으로 고투하는 우리나라의 20대들은 IMF를 맞았을 때 10대였다. 이 지지리도 운 없는 세대는 IMF 이후 파상적으로 진척되어 온 세계화와 현 정부가 벌인 잘못된 경제정책의 이중 희생자다. 노무현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조 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독과점을 부추겼는데, 이것은 중소기업을 육성했던 박정희나 '벤처기업'에 주력했던 김대중의 경제 정책과 역행한다. 중소기업은 그 자체가 사회적 안전망이랄 수 있으며, 자영업은 자본주의의 마지막 비상탈출구다. 하지만 독과점과 프렌차이징이 젊은이가 차지해야 할 새로운 일자리를 치워버리고 창업 시장에 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생존이 걸린 10퍼센터의 구직을 위해 20대끼리 과잉 경쟁을 벌이는 한편 나머지 90퍼센트는 비정규직을 감수하거나 실업자가 되었다.-19쪽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성취된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에서 문학은 대중문화에 투항하거나 그저 과민한 자의식만을 표현한다. 결정적으로 작가와 평론가들은 대학과 출판계에 안주하거나 투신하여 스스로 제도가 됨으로써, 사회적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내가 알리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한겨례 2007년 10월 27일자) 하지만 그걸 책잡아 '종언'이 주는 문제의식의 핵심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한 사람만이 그랬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37-38쪽

복거일이나 고종석의 저작을 읽으면서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책을 온전히 읽은 게 아니다. 참된 독서란 내 앞에 주어진 개별적인 책을 읽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책을 생성한 유무형의 생산 현장 전체를 읽는 일이다. 강조하기가 새삼스러울 만큼 평범한 이 교훈이야말로 피에르 바야르가 말하고자 했던 역설적인 주제라고 감히 말한다면, 저자가 의도하지 않는 나의 오독일 것이다.-43쪽

"일기의 방식은 삶의 방식이다"고 자자가 쓴 바대로, 어떤 책을 어떤 속도로 또 얼마나 읽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나의 삶과 밀접히 연동된다. 실제로 사회인이 되기 이전의 책과 사회인이 되고 나서의 책이 완연히 다른 것은, 나의 삶이 어떤 책을 선택하고 기피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 아닌가?-49쪽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관음증' 환자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며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똑같이 환자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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