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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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10쪽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프랭클 박사는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19쪽

나는 동료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던 어느 날 밤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잠을 자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도 악몽이나 황홀경에 시달리는 사람을 딱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그 불쌍한 사람을 깨우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놀라면서 그를 흔들어 깨우려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 순간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나쁜 꿈일지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용소의 현실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곳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이려고 했다니… - 65, 66쪽

한번 유추를 해보자.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67쪽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했다. 게다가 심각한 무감각 현상이 팽배해 있었다. 무감각은 수감자들의 감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 107쪽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리 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 121, 122쪽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휘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 131쪽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138쪽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 138, 139쪽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 139쪽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 142쪽

인간의 실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되어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 181쪽

로고테라피에서 이렇게 책임감을 강조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이 말처럼 인간의 책임감을 자극하기에 좋은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첫째 현재가 지나간 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둘째, 그 지나간 과거가 아직도 변경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교훈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유한성’은 물론 그가 자신과 자신의 삶으로부터 성취해낸 성과의 ‘궁극성’과도 대면하게 만든다. - 181, 182쪽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 183, 184쪽

인간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것이다. 이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자.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 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 - 198쪽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겠는가? 그 젊은이에게 놓여 있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미래 때문에? "천만의 말씀"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 198, 199쪽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듯이 사람이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두 번째는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미는 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에디트 바이스코프 요엘슨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무엇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을 성취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로고테라피 치료 상의 개념’이 정말로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적인 경험의 세계를 희생시키면서 외적인 성취의 세계에만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로 들어가는 세 번재 길이다.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 230, 231쪽

이 말이 곧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시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2장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시련에서 여전히 유용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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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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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말을 바꾸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역사를 신성한 정의를 찾아서 점점 더 정의를 향해 가깝게 (혹은 일거에) 걸어온 인간 정신의 험난한 도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맞춰 그것을 강요하는 억압도구 혹은 포장하는 이데올로기로 생각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정의의 역사’를 보면서 정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 46쪽

켈젠은 살인자가 살인자로 되는 것은 법이 그를 살인자로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법이 내린 규정을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들다.
(...)
우리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법정이 판단한 진실은 모두 법정의 진실일 뿐 진정한 사실관계는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켈젠 주장의 근거를 발견할 수는 있다. - 80쪽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사람들이 한 개인을 그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갇혀 있는 내부의 시선으로 내부를 보는 것으로는 절대로 내부현실의 한계를 인식할 수 없다.
(...)
마르크스는 법을 정치, 이데올로기와 같은 ‘상부구조’로 은유했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 경제구조다. 법은 경제구조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은 경제구조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법은 중세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세상을 건설했던 자연법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이 내린 인간의 순수한 ‘이성’이 발현된 관념의 산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된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법실증주의자들이 몸을 사리면서 변명하는 것처럼 법 그 자체만을 순수하게 연구하더라도 충분히 그 뜻을 올바르게 해석․적용할 수 있는 진공상태의 중립적인 규범도 아닌 것이다. - 90, 91, 92쪽

마르크스는 공산사회가 오면 법이 ‘고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을 생각하면 법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법의 고사’는 사회의 모든 규범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을 옭아매는 계급적 ‘강제규범’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사회가 실제로 온다면 굳이 사적 소유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공산주의 공동체를 위한 모든 규범도 자발적으로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실천되는 순간, 기존의 공산주의 규범은 이미 마르크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던 그런 법이 아니다. 한마디로 마르크스의 실현되지 못한 예언은, 자본주의적 강제법은 사라지고 공산주의적 도덕규범이 역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꿈같은 이상이었다. - 92쪽

법은 언제나 자신이 규정한 규범의 힘으로 세상이 완벽하게 그렇게 규제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탁상공론을 좋아하는 권력자일수록 법만 만들어놓으면 세상이 법대로 될 것으로 상상한다. 그들이 세상을 향해 "유토피아가 있으라!"는 법을 만들이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막상 세상에 태어난 법규범은 아주 혹독하게 자신을 검증해 가야만 한다. 모든 법규범은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별개의 힘과 맞서 그 ‘모순’을 이겨내는 힘이 있어야만 비로소 규범력을 가진 법이 된다. 그 힘이 없으면 동성동본금혼법처럼 주기적인 한시법으로 위반자를 인정해주는 굴욕을 겪다가 결국 법으로서 수명을 다하고 퇴출될 수밖에 없다. -214쪽

어쨌든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런 것이다. 위법이 전혀, 완벽하게 없다는 것은 사실상 법과 현실이 모순 없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규범적 의식작용을 통해 세상을 더욱 진보시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법을 개정하는 것은 위법을 예상하면서도 규범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의도하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위법을 통해 현실의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다. 즉 적극적 의미든 소극적 의미든 위법은 법개정의 추동력이다. - 219, 220쪽

폭력에 대한 문화는 어떤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 분석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폭력에 대한 관념은 역사이면서 문화이고 문화이면서 또 법이 된다. 만약 경찰이 역사 속에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부끄러운 역사가 없었다면 민주경찰을 상대로 술주정 폭행을 하는 비정상적인 법문화도 생겨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재벌을 쉽게 풀어주는 비상식적인 법문화가 없다면 강간범을 솜방망이로 처벌하는 관대한 법문화도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서로 무관해보이지만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 245쪽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이 하늘의 의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의지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 법은 인간의 관념적 의지로 폐지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시대적 한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담지하고 있는 물질적 생산관계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간통한 여인이 내적 성찰 속에서 자기반성을 하여 율법을 지키듯이 노동자가 내적 성찰에 의해 자본주의 법을 지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은 그 자체가 투쟁의 대상이다. 설령 법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입법투쟁이 성공한다하더라도 법 자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꿈꿀 수는 없다. 법은 공산혁명 후에는 궁극적으로 말라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51쪽

어떻게 그런 ‘법의 고사’가 가능한가? 법이 국가의 강제력을 사용해 계급적 착취를 실현코자 하는 ‘지배계급의 의지’라면 그 계급적 지배관계가 사라지는 날, 법이 사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법이라는 강제력을 통해 지켜야 할 이해관계가 무엇이겠는가? 공산사회에서 우리가 정의내린 그런 법의 존재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할 사실은 마르크스가 말한 ‘법’은 부르주아적 착취를 위한 강제규범이라는 점이다. 모든 자발적 규범, 즉 레닌이 강조했듯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 먼 사람들’을 사랑하는 공산주의적 도덕규범은 오히려 공산사회의 전제가 된다. -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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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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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해 준 이야기, 네가 지어낸 이야기가 나는 다 좋고, 더 덧붙일 게 없구나. 다만 배꼽에 대해서만은 어쩌면…… 배꼽이 없는 여자의 전형이 너에게는 천사지. 나한테는 하와, 최초의 여자란다. 하와는 배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한순간의 기분, 창조자의 기분에서 태어났어. 최초의 탯줄은 바로 그녀의 음부, 배꼽 없는 여자의 음부에서 나온 거야. 성경에 나온 말대로라면 거기서 다른 줄들도 나왔어, 줄 끄트머리마다 작은 남자나 여자를 매달고서. 남자들의 몸은 연속성을 지니지 못한 채 전혀 소용이 없었는데, 여자들의 성기에서는 저마다 끄트머리에 다른 여자나 남자가 달린 다른 줄이 나왔고, 이 모든 게 수백 번 수천 번 반복돼서 거대한 나무, 무한히 많은 몸들로 이루어진 나무, 가지가 하늘에 닿는 나무로 변했단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나무가 자그마한 여자 하나, 최초의 여자, 배꼽 없는 저 가여운 하와의 음부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렴." - 103, 104쪽

알랭이 계속 말했다. "이 네 가지 황금 지점은 각각 하나의 에로틱한 메시지를 나타내. 그러면 배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에로틱한 메시지는 뭘까?"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한 가지는 분명해. 허벅지나 엉덩이, 가슴하고는 다르게 배꼽은 그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 여자가 아닌 어떤 것에 대해 말한다는 거야."
"뭐에 대해서?"
"태아."
"태아라, 그렇지." 라몽이 인정했다.
그리고 알랭이 말했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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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스타일 - 지적생활인의 공감 최재천 스타일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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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랭엄이 이 책을 일반 독자를 겨냥하여 집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더 엄청난 폐해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지 않은, 그래서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독자에게 학문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그것도 다분히 선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 방식을 빌어 서술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이 같은 종류의 책을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된 분야의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이들이 주로 읽을 책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들이 학술적인 원문을 참조하지 않고 이렇듯 어설프게 여과된 지식을 소화하여 각자 자기 학문에 응용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 186쪽

다만 독자들에게 중요한 결론을 내릴 때마다 학문적인 증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에 대한 학계의 객관적인 평가를 본인의 논리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최근 들어 서양 학계에는 과학의 대중화라는 기치 아래 많은 과학자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교양서를 펴내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제일의 임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중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독자들이니 전문가로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다. 발견된 사실을 독자들에게 쉽게 그러나 자세히 모두 알려주고 함께 생각하게 하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를 진정으로 꾀하는 길이다. - 187쪽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인간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등장하여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지구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찍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찍는다고 했을 때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영에 가깝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 탄생한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다. 진화의 역사를 통해 일어난 여러 우연한 사건들의 결과일 뿐이다. 그 옛날 생명의 늪을 떠돌던, 자기복제를 할 줄 알던 신기한 화학물질 DNA가 만들어낸 많은 생명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진화에는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다. 진화의 역사에 새로운 길을 연 모든 사건은 다 근시안적이고 우연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일단 DNA의 구조 속에 기록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충실한 복제와 번역을 수행한다. - 205, 206쪽

진리의 행보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진리는 화학, 지질학, 인류학, 미학, 음악 등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마구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어느 한 전공 분야에 틀어박힌 채 평생 진리를 탐구한답시고 앉아 있다. 더는 이런 구도로는 진리를 탐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 233쪽

풍요로운 시대가 오면 아무도 안 떨어질 수도 있다. 잘리지만 않으면 살아남는 게 진화이다. 그런데 마치 우리는 1등을 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최적자생존이 아닌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r)인데 말이다.
두 친구가 산에 올라가 곰을 만나 도망을 가는데 한 명이 구두끈을 고쳐 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친구가 "소용없다. 우리가 곰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에 그 친구는 "내가 곰보다 빨리 달리려는 것이 아니라 너보다 빨리 달리려는 거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친구보다 한 발짝만 앞서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 261쪽

진화(evolution)의 다른 말은 다양화(diversification)이다. -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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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 - 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네 꿈을 먹는 짐승을 조심하라."라는 코스타리카 인디언 속담이 있다. - 82쪽

닭은 잠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임기’를 다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명의 숨을 이어온 알 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tler)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알이 닭을 낳는다. - 160쪽

옥스퍼드 대학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제는 과학계의 고전이 된 그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살아 숨 쉬는 우리는 사실 태초에서 지금까지 여러 다른 생명체의 몸을 빌려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온 DNA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다. 도킨스는 그래서 DNA를 가리켜 ‘불멸의 나선(immortal coil)’이라 부르고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를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라 부른다. - 161쪽

자연의 도살 현장에는 언제나 경제주의자 즉 인간중심주의자와 환경주의자 즉 생물중심주의자 간의 각축이 벌어진다. 조금 살만하다 싶을 때에는 환경주의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듯 싶다가 경제 지표가 조금만 나빠지기 시작하면 황급히 인간중심주의 논리로 복귀하고 만다. 급기야 우리는 열대우림 15곳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종의 절멸 위험에 처해 있는 ‘중요 지점(hotspots)’ 25곳을 지정하여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전생물학자들은 생명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들을 ‘하마’라는 뜻의 머리글자 ‘HIPPO’로 요약한다. 서식처 파괴(Habitat destruction), 침입종(Invasive species), 오염(Pollution), 인구(Population), 과수확(Overharvesting)이 그것이다. - 214쪽

병을 안고 그저 오래 살기만 한다고 좋을 리 없다. ‘건강 악화와 수명 연장을 바꾼 거래’는 결코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성공적인 노화’이다. 이른바 건강 수명을 늘려야 한다. 80세든 150세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질병이나 노쇠에 시달리지 않고 정력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별 고통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화끈한 섹스도 한 번 즐기고 말이다. - 266,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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