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그리울 때 보라 - 책을 부르는 책 책과 책임 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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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책을 보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부터 책 소개를 통하여 독서의 길안내를 받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이 사람처럼 나도 서평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때문에 서평이 주는 느낌도 다르기 마련이다. 책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목적에 충실한 글이 있는가 하면,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저자의 느낌만을 열거해 놓은 글, 책 너머의 깊이 있는 배경이나 지식까지 연결해주는 글, 책의 내용과 현실의 문제점을 기막히게 엮어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글까지.


그러나 이렇게 서평을 찾는 다양한 이유와 서평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서평이라면 모름지기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으니, 나는 그것을 '소개하는 책을 독자가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정적으로 말하면, 서평의 근본적 목적은 그것이 다른 글의 평가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서평을 통하여 본래의 책(원본)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평은 나를 그 너머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인쇄술이 발전하기 이전에 이야기는 대개는 구전(口傳)되었으며, 글을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본을 필사(筆寫)하는 것뿐이었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며 멀리 시집간 딸에게 소설을 필사하여 선물로 주는 아버지처럼 저자는 우리에게 (필사는 아니지만) 생각의 전달이라는 방식으로 원본의 감동을 전달하려는 것 같다. 기교가 아닌 진심을 강조하는 저자의 서평을 덮으며, 이제 나는 그와의 공감을 넓히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서로 공명할 수 있도록 여기에서 소개한 책들을 펼쳐보려 한다.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 조선 후기 문장가 심노숭(1762-1837)이 아내를 잃고 지은 <누원(淚原)>의 첫머리에 던진 질문이다. 눈에 있다면 물이 웅덩이에 고인 듯 모인 것인지, 마음에 있다면 피가 맥을 타고 돌듯 하는 것인지 고쳐 따졌다. - 33쪽
심노숭은 눈물이 마음에서도 나오고 눈에서도 나온다고 했다. 구름을 눈, 땅을 마음에 비유한다면 눈물은 비와 같다는 것이다. 비는 구름과 땅을 통하는 기(氣)의 감응에 의해 내리되, 구름에도 속하지 않고 땅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심노숭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물을 흘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느꺼움이다. 상(喪)을 당해 참담한 지금 이 순간은 물론이고 여러 해를 지나 흥겨운 악기들이 들어찬 자리에 머물 때, 업무를 보느라 서류가 책상에 가득할 때, 술에 취해 비틀거릴 때, 잡기를 여유롭게 즐길 때, 그러니까 눈물과 전혀 무관한 그때에도 마음이 갑자기 북받친다는 것이다. 그 느꺼움의 순간, 심노숭은 죽은 아내가 곁에 왔음을 느낀다고 적었다. - 34쪽

밥벌이와 상식이란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긴 변화들을 어린 왕자는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묻고 되돌린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낙오될까 두려워 제 발밑만 살피고 고개 들어 뭇별들을 보지 못할 때 두려움이 아름다움을 누르고, 어린 왕자가 곁에 머물렀다는 사실마저도 잊힐 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아직,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40쪽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물음은 두 가지 다른 빛깔을 띤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따위 짓을 하느냐는 분노의 표출이 첫번째다. 가해자들이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국가를 위해 회사를 위해 혹은 사사로운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고 피해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분노는 폭발한다. 또다른 빛깔은 날카롭고 뜨겁진 않으나 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 이에게 끈질기게 되돌아온다. 당장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 썩어빠진 세상을 외면하진 않았던가. 끔찍한 불행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일 수도 있었음을 실감하였으니,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되어야만 할까. - 43쪽

역사 속 인물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틈이다. 가령 고려 말 승려 신돈에 관한 소설을 짓는다면 공화국의 국민인 나와 왕조의 백성인 그, 21세기의 나와 14세기의 그, 서울에 사는 나와 개성에 사는 그의 틈은 깊이도 넓이도 제각각이다.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이란 단어에 모두 `사이 간(間)`이 들어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틈은 어쩌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내 겪게 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틈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 읽고 걷고 따져 듣는다. 그러나 결코 나는 신돈이 아니며 신돈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틈 앞에서 스스로 묻곤 한다. 이와 같은 시도는 부질없는 글 장난이 아닐까. - 46쪽

움직임은 그 상황을 경험한 이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추락은 불안이요 공포다. 떨어질 것을 알기에 선뜻 두 발을 지상에서 떠지 못한다. 그렇지만 또한 비상은 파괴요 설렘이다. 일상에 갇히지 않고, 단 한 번 짧은 순간만이라도 저 야구공처럼 저 날치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싶은 뜨거운 갈망이다. - 59쪽

삐딱함을 아낀다. 상식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의외로 공이 많이 든다. 인생을 왜 그리 어렵게 사느냐고, 세상을 너무 어둡게만 보지 말라는 충고도 뒤따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삐딱함이 없이는 작가도 없다. - 61쪽

나는 줄곧 글을 쓰는 테크닉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독자들로부터 `태도`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수많은 풍경 중에서 자신만의 풍경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옮기고자 분투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물론 양귀자 선생님께 배운 것이다. - 67, 68쪽

인간은 별을 우러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족속이다. 별을 가슴에 품고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땅을 열망하며 두 발을 떼는 무모한 짐승이란 뜻이다. 바람이 분다. 날아야겠다. - 100쪽

나 역시 등단 직후엔 그랬다. 내가 쓰는 장편 소설의 성패에 예민했으며, 결과가 나온 후엔 그다음 장편소설로 곧장 달려가서 또 어떤 승부를 보려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몰두할 때, 어느 영화인으로부터 짧은 충고를 들었다. "소비되지 마시길!" - 102쪽

소설 <야간비행>(소담출판사, 2000)에서 항공우편국 책임자 리비에르는 강조했다. "법칙을 이끌어내는 건 경험입니다. 법칙을 아는 것이 결코 경험을 능가할 수 없지요." - 111쪽

인생이란 내면의 소리를 만드는 나날이 아닐까. 세상의 소리는 많지만 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소리는 지극히 적다. 어떤 소리는 매일 찾아와도 스치듯 사라지고 어떤 소리는 일생에 단 한 번 닿더라도 심신을 온통 울려댄 후 내 안에 머무른다. 그렇게 바뀐 내면의 소리는 또 언젠가 바깥으로 흘러나가 타인의 영혼을 울리고 그 내면에 둥지를 튼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 신비로운 안과 밖의 공명(空鳴)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 115쪽

세상의 모든 여행기는 <열하일기>(돌베개, 2009)와 <왕오천축국전> 사이에 놓인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새로움들을 다채로운 형식과 문체로 오롯이 담아낸 것이 <열하일기>라면, 그 모든 다양함에서 핵심만 뽑아내어 간명한 단 하나의 형식과 문체로 정리한 것이 <왕오천축국전>이다. 또한 혜초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과 여행중에 전해 들은 정보들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적었다. 체험과 견문이 뒤섞여 실제 여정을 파악하기 힘든 몇몇 여행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직함이다. - 122쪽

같은 병을 앓고 싶다는 말보다 더 가슴 절절한 말이 있을까. 같이 `죽는` 일은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같이 `앓는` 일은 서로를 품고 이해하는 제법 긴 `동안`이다. 그의 병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에 감내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으리. 흔히 사랑 이야기에 질병이 동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병이 결핵이든 암이든, 사랑 이야기에는 궁극적으로 함께 아파하고픈 갈망과 더이상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절망이 교차한다.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몸과 몸을 같은 상태로 만드는 식이다. - 177쪽

블랑쇼에 따르면 작가에게 이로운 상황이란 영원히 찾아들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전부 바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자기의 시간을 글쓰는 것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작업도 존재하지 않는 또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것,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 속에 돌입하는 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 186쪽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은 참으로 옳다. 때로는 스스로 용기를 내어 낯선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이끌리기도 한다. 계기가 무엇이든, 길 위에 올라선 다음에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공자님도 길 위에서 배우고 길 위에서 가르치며 길 위에서 자고 먹고 마시며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않았던가. 삶의 이치를 `길 도(道)`로 압축하여 표현해온 것이 예사롭지 않다. -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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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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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 이와 같은 울림을 주는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습관적이며 자발적인 복종을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인이 된다. 우리가 독재자에 대한 굴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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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읽을 것인가 - '모든 읽기'에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 지음 / 스마트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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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적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상태가 유지될 때까지는 독서법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긴 읽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지금 내 방식이 적절한가, 이것 말고 다른 방식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는가.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쩌면 책을 선택하고, 읽고, 책장을 덮는 내내 이런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처음엔 책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을 사고, 읽고, 모았다. 그러다가 내가 제대로 읽지도 않고 방치해놓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서는 이내 방식을 바꾸었다. 책을 선별해서 사는 것이었다. 철학, 미술, 생태와 환경 중심의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했다. 책을 읽기는 읽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책의 제목과 저자는 기억이 나는데, 내가 그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책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권 당 한 문장은 남기자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어느덧 욕심이 생겨 바로 그 순간 공감했던 문장, 읽을 수록 멋진 문장, 새로운 깨달음을 준 문장, 언젠가 써먹을 것 같은 문장 등에 밑줄을 긋다보니 이 또한 길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밑줄 그은 문장이 많을 수록 그 책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는 여지도 많아져 기억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제대로 요약하거나 정리한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을 남기지 않는 것에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독서법에 대한 방법들을 뇌과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의 이론을 통하여 잘 정리해놓은 책이다. 내가 앞서 고민했거나 시행했던 독서법들이 거의 다 담겨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 독서법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에 방향도 제시해준다.

'독아(獨我)'에서는 뇌의 가소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성장형 사고방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독서임을 주장한다. '다독(多讀)'에서는 독서라는 어려운 행동이 뇌에 적합하지 않은 힘든 일이어서 독서에 실패하는 일이 많다는 점과 초보자는 우선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자신을 묶어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다독을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책들을 묶어 읽는 계독(系讀)을 제안한다. '남독(濫讀)'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를 통하여 낯선 생각을 접하고 이를 기존의 생각과 연결하여 생각의 외연을 확장할 것을 권한다. 제노비스 사건을 통하여 하나의 사건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이 낯선 시각에 의하여 어떻게 수정되고 재정리 되는지를 보여준다. '만독(慢讀)'에서는 아이들의 독서는 많은 양을 다그치는 것보다 느리게 시작하여 자세히 읽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관독(觀讀)'에서는 관점을 취하는 독서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면 책의 내용도 정리되지 않고 글도 잘 안써지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으면 각 챕터와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관점을 지키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재독(再讀)'을 통한 기억의 환원, '필독(筆讀)'을 통한 글쓰기의 준비, '낭독(朗讀)'을 통한 퇴고, '난독(難讀)'의 극복 및 '엄독(奄讀)'을 통한 읽는 행위의 초월과 독서의 자기화를 설명한다.

독서법으로 무슨 책 한권이 나올까라는 생각에 읽을 때는 쉬웠지만, 열거해보니 이 정도로 다양한 독서방법과 단계가 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독서법을 제시하는 다른 책들에 비하여 '나는 이렇게 읽었다'라는 류의 자랑이나 '이렇게 읽어라' 따위의 강권이 없어서 (물론 최상의 경지로 '엄독'을 염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독서법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뇌가 그 방향대로 해부학적으로 변한다. 뇌의 가소성은 우리 모두 자신을 성장형 자아로 인식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정체성은 바닥에 검게 굳어 딱 달라붙은 껌딱지 같은 것이 아니다. 조지 버나드 쇼가 "삶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정체성이라는 불변하는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정체성이 바로 본질이다. 인식이 변하면 본질도 바뀐다. - 44쪽

독서라는 과정은 또한 단순히 문자를 시각적으로 읽는 것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정신활동 중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 하나이다(E. B. 휴이). 1980년대에 멀린 위트록 박사는 독서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씌어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과 감정의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들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 - 52쪽

남독은 우리에게 세 가지 변화를 준다. 남독을 하게 되면 당신은 까칠해지고(비판적 사고), 엉뚱해지며(창의적 인간), 겸손해질(세계의 확장) 것이다. - 94쪽

"오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들추어 보게 되는 것은 그것들이 사라져 버린 날에 대해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거처와 연못의 그림자가 그 책장 위에 비치는 것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가 예전에 들추어 보았던 책을 다시 일게 되는 이유는 지나간 내 과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176쪽

낭독은 글을 제대로 검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눈으로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결점들이 소리를 내어 읽었을 때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휘는 적절한지, 문맥은 매끄러운지, 논리는 잘 맞는지, 낭독을 통해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유시민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고 못나고 흉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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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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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더 이상 노예가 되길 거부하는 순간, 이 굴욕적인 세상은 사라진다. 스스로 복종한 자, 그들은 독재자와 공범이다. 아무도 복종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결코 그 어떤 권력도 발휘할 수 없다. 그가 지닌 모든 권력은 바로 자발적 복종을 바친 자들이 건네준 것이기 때문이다. 복종을 멈춰라. 그 순간 당신은 자유인이다. - 30쪽. 역자서문

독재자의 권력이란 그 권력에 종속된 다른 모든 이들이 그에게 건네준 힘일 뿐이다. 다른 모든 이들이 독재자를 참고 견디는 한, 그의 권력이 부리는 횡포는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이 독재자에게 저항하지 않더라도, 단지 견뎌내기를 멈추기만 해도, 독재자는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해악도 끼칠 수 없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대단한 힘을 가진 척하는 한 인간의 명성에 홀리거나 마법에 사로잡힌 듯 목이 눌린 채 비천하게 복종한다는 사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 분명하나 흔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프고 놀라울 뿐이다. 독재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는 혼자이고, 사랑받을 만한 어떤 장점도 지니지 않았다. 그는 민중들에게 비인간적이고 잔혹할 뿐이다. - 36, 37쪽

다시 독재자에게로 말머리를 돌려보자. 그와 싸울 필요는 없다. 그를 패배시킬 필요도 없다. 독재자는 스스로 굴복한다. 민중이 독재자에 대한 굴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독재자는 스스로 무너진다. 그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필요도 없다. 단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된다. 나라가 그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짓만 안 하면 된다.
우리는 민중 스스로가 자신을 방치하고 비탄의 수렁에 빠지도록 놔두는 것을 종종 본다. 굴종을 멈추면 그것으로 일단락된다. 민중은 흔히 자발적으로 굴종을 택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자른다. 노예가 될지 자유인이 될지를 선택하는 것은 민중 자신이다. 자유를 버리고 멍에를 짊어지며 잘 정비된 법률하에 권력의 보호 아래로 기어 들어가는 것은 동시에 근심과 압제, 불의 그리고 오직 독재자 한 사람만의 기쁨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46, 47쪽

천부(天賦)의 권한인 자유를 되찾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것은 짐승에서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잇겠다. 만일 누군가가 자유를 되찾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나는 그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할 것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가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큰 용맹심을 발휘할 것조차도 바라지 않는다. 그가 들어온 `자유로운 삶`이라는 의심스러운 희망을 실현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천한 현재의 삶을 안전하게 누리면서 사는 편을 선호한다면, 나는 이 또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그것을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된다. 단지 그것을 원한다는 의지만이 필요하다는데, 이 단순한 희망만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인데, 그것을 너무 비싼 대가라고 부를 사람이 있을까? - 47, 48쪽

그대들 자신이 그대들 위에서 군림할 특권을 그에게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그 많은 눈을 그는 어디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 자신이 바로 그의 눈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을 가격하는 그 많은 팔을 그는 어디서 얻었겠는가. 그대들 자신이 그의 팔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의 마을을 짓밟는 발을 그는 어디서 구했겠는가. 그대들 자신이 그의 발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들 스스로가 그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무슨 힘으로 그대들을 지배할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이 그를 용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감히 그대들에게 달려들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 52, 53쪽

나는 그대들이 독재자를 밀어내고 흔들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기를 원할 뿐이다. 그때 그대들은 디딤돌을 뽑아낸 거대한 동상처럼 자신의 무게로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 나는 독재자의 꼴을 보게 될 것이다. - 54쪽

우리는 여기서 자발적 복종의 일차적 근거가 습관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말이 길드는 과정과 같다. 말에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 재갈을 갖고 장난질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장비와 장신구를 뽐낸다. - 81쪽

반듯한 오성과 맑은 정신을 지닌 이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발치 앞만을 바라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들은 사안의 전후를 살피는 데 주의를 기울이며,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통찰하기 위해 과거를 떠올린다. 정돈된 두뇌의 소유자는 탐구와 지식으로 사고의 힘을 더욱 연마한다. 자유가 완전히 사라져 세상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때조차 이들은 자유를 상상하고 정신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자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어 아무리 잘 포장해서 들이대도 굴종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 83쪽

프랑스의 질서가 두려움 때문에 신중하고, 재산 모으기에만 정신이 팔려 타인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의 질서라면, 그것은 최악의 무질서다. 무관심은 모든 불의를 허락하기 때문이다. 균형과 화합, 즉 평등과 우애가 없는 질서는 질서가 아니다.
사회적 질서란 통치 세력과 피통치 세력(시민) 사이에 균형관계가 성립되어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한 균형관계의 성립은 보다 고차원의 원칙이 있어야만 이루어진다. 이 원칙이 바로 정의다. 정의 없는 질서는 질서가 아니다. 민중의 이상적 질서는 정부와 시민 사이에 갈등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사회다.
질서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현실의 권력층은 항상 그들 세력의 욕구를 강요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질서를 주장한다. 문제의 앞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통치하기 위해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의미 있는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통치력을 동원해야 한다. 질서가 정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질서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1944년 10월 12일 자 논설 - 148,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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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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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전 교수, 곧 '화백'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의 책은 거의 다 사서 읽는 편이다. 


우선 그의 글은 읽기 쉽고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글의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편하게 계단 하나를 올라선 느낌이다. (읽기 쉽게 쓴 글은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편견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가 가끔 글에서 괄호까지 쳐가며 깨알 같은 자랑을 하듯, 어려운 심리학적 개념을 그처럼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또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그의 글은 재미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글에는 어쩌면 평소에 그대로 말할 것만 같은 어투가 녹아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말을 하듯 써내려간 그의 글은 그가 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더욱이 그의 글은 솔직하다. 내 주변의 50대들 중에서 자신을 '아저씨'로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억지스럽게 자신을 보다 젊은 범주로 꾸역꾸역 밀어 넣거나 (정말 꼰대는) 자기를 저너머 60대쯤으로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정운은 자신이 대한민국 50대의 소심하고 성질머리 더러운 아저씨임을 인정하며 글을 쓴다. 때문에 그의 글에는 무수한 공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그를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직을 연금 수령을 위한 재직기간 전에 때려쳤다는 멋(?) 때문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을 배우고는 성인만화를 그리고 싶다던 괴짜 같은 면목때문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알고, 내면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독자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번도 독자의 자리에 서질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언어는 무상하고 비현실적이다. 몸으로 겪어내지 않은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운은 다르다. 그는 이미 경험한 것들을 말하고 쓴다. 그래서인지 그가 말하는 구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행복론'에는 절로 공감이 간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 8쪽

서구의 근대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까지 나누면 세상의 모든 구성 원리가 설명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한다.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물질의 가장 최소 단위인 `원자(atom)`를 생각해낸다. `atom`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atomus`에서 나온 단어다.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따라 인간 사회도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피부를 통해 바깥세상과 구별되는 마지막 단위인 개인을 만들어낸다.
심리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각 단위들이 전체의 한 부분이 될 때는 최소 단위의 성질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다. 자연과학도 마찬가지다. 가장 작은 부분이라고 여겨졌던 원자의 세계도 양자역학이 시작되면서 `환상`이었음이 밝혀진다.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개인을 단위로 인간의 심리는 설명되지 않는다. 근대심리학의 원자주의는 막힌 길이다. 각 개인들이 만나는 `상호성`이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 심리를 분석하는 기본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심리학의 출발점이다. - 28, 29쪽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여자에게 화장은 연기자의 분장과 마찬가지다.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 맞춰 화장의 톤을 결정하고, 입을 옷에 따라 색조를 결정한다. 남자는 그 맥락에 포함되는 작은 요소 하나에 불과하다. - 36쪽

수용소나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대 뒤, 즉 배후 공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숨을 공간이 없다. - 37쪽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일주일을 7일로 나누고, 한 달은 4주로 분리하고, 일 년은 열두달로 분해했다. 그렇게 시간을 각 단위로 나누면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해는 매번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그래서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담배도 끊고, 살도 빼기로 결심하는 거다. 지난해를 아무리 망쳤다고 해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즐겁다. - 45쪽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불안하면 세상을 자꾸 좁혀서 본다는 사실이다. - 65쪽

세상일에는 접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과 회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은 회피동기(`그렇게 하면 손해를 본다`)로 설명해야 유리하고, 결과가 나중에 나오는 것일수록 접근동기(`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로 설명해야 유리하다고 히긴스는 주장한다. - 69쪽

접근동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회피동기는 일을 치밀하게 한다.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려면 긍정적 정서를 동반하는 접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놀듯이 일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치밀함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은 회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터진다`와 같이 위협을 주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왜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는가를 접근동기-회피동기로 설명하면 아주 잘 이해된다. - 70쪽

김수영의 시가 가진 저항과 진보의 신념이 옳다고 박인환을 현실을 외면한 철없는 서구 추종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박인환의 시가 아름답다고 김수영의 시가 가진 경직성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김수여의 시만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바인환의 시만이 진짜라고 하는 주장만큼이나 황당하다. 문학과 예술은 산만하고 다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아무튼 한 가지만 옳다는 확신에 찬 이들이 제일 무서운 거다. - 82쪽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거다. 그 돈으로 뭘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 112쪽

행복하려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야 한다. - 114쪽

난무하는 자기계발서의 추상적 언어로 아무리 자기최면을 걸어도, 자신의 구체적 생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뿐만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가치와 이념이 그렇다. 추상적 언어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체적 어휘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건 순 가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 114쪽

숟가락을 잡으면 뜨게 되고,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된다. 도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도구는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아주 편하고 기분 좋게 앉을 수 있는, 뒤로 자빠지는 의자로 규정되는 의식이란 바로 `소통과 관용`이다. - 123쪽

논리적 설득보다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서적 설득이 훨씬 더 잘 작동하는 이유도 바로 이 감정이입 능력 때문이다. 논리는 인지적 과정이다. 설득의 대상과 주체가 분명하게 나뉜다. 웬만큼 강력한 권위와 논리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없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설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논리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논리적 굴복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래, 당신 말 다 맞아. 그래서?`하는 것이다. 논리는 이해했지만 절대 승복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감정이입에 기초한 정서적 설득은 강력하다.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란 `함께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함께` 느낀 것이기에 논리적 설명은 오히려 구차한 것이 된다. - 158쪽

금지는 사람을 좌절케 한다. 모든 종류의 금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주체로서의 삶은 바로 끝난다. - 165쪽

시기심은 열등한 사람만의 감정이 아니다. 열등한 사람과 간격이 좁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월한 사라의 시기심이 더 무섭다. `있는 사람이 더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감정을 독일의 `시기심 전문가(?)` 롤프 하우블(Rolf Haubl, 1951~)은 `간격시기심(Abstandneid)`이라고 정의한다. 한참 `아랫것`이 어느새 부쩍 자라 자기 자리를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한 윗사람의 불안이 적개심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프로이트가 수제자인 융의 급성장을 견디지 못해 자기 학파에서 쫓아내고, 평생 증오했던 경우가 바로 그렇다. - 174쪽

`내 편 - 네 편`의 이분법은 존재가 불안한 이들의 특징이다.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반대편에 적을 만들어야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는 까닭이다. - 184쪽

`두려움`은 일본의 집단심리학적 특징이다. 일본인이 친절한 이유도 두렵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해진 룰 안에서만 친절하기 때문이다. 그 틀을 벗어나면 태도가 돌변한다. 일본에서는 친절도 상호작용의 규칙 같은 거다. 규칙을 어겼을 때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친절하다는 듯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친절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 207쪽

발달심리학자 피아제는 우리의 지식은 인지구조에 기초해서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인지구조를 구성하는 쉐마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끊임없이 재구조화된다.
이 재구조화의 과정을 피아제는 조절(assimilation)과 동화(accommodation)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조절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쉐마에 맞춰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동화는 새로운 경험이 자신의 쉐마로 설명되지 않을 때, 기존의 쉐마를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절과 동화를 통해 인간의 인지구조는 균형 상태(equilibrium)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새로운 자극이 있어도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지구조를 전혀 바꾸지 않는 경우를 편견이라고 한다. `조절`만 일어나고 `동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다. 이분법적 사고도 전형적인 편견의 한 유형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인지구조의 불균형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어야 하는 거다. - 213쪽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쫓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 318쪽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욕망의 모방`이다. 우리가 그렇게 집요하게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실제로는 남들의 욕망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흉내 내야 하는 타인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메커니즘은 사회적 갈등을 끝없이 야기한다. 이 갈등은 희생양을 찾아 집단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문명의 기원은 바로 이 같은 `희생양 제의`라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두려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생기는 질투로 인해 눈을 부릅뜨고 적을 찾아내는 한국 사회다. 그렇게 `발명된 적`에 집단 린치를 가하며, 자신은 지극히 정의롭고 선한 존재로 합리화한다. - 321쪽

바로 그거였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수업이나 각종 모임, 약속 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했으며,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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