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읽을 것인가 - '모든 읽기'에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 지음 / 스마트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적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상태가 유지될 때까지는 독서법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긴 읽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지금 내 방식이 적절한가, 이것 말고 다른 방식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는가.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쩌면 책을 선택하고, 읽고, 책장을 덮는 내내 이런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처음엔 책만 많이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리지 않고 이 책 저 책을 사고, 읽고, 모았다. 그러다가 내가 제대로 읽지도 않고 방치해놓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서는 이내 방식을 바꾸었다. 책을 선별해서 사는 것이었다. 철학, 미술, 생태와 환경 중심의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했다. 책을 읽기는 읽는데, 나중에 돌아보면 책의 제목과 저자는 기억이 나는데, 내가 그 책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책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권 당 한 문장은 남기자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어느덧 욕심이 생겨 바로 그 순간 공감했던 문장, 읽을 수록 멋진 문장, 새로운 깨달음을 준 문장, 언젠가 써먹을 것 같은 문장 등에 밑줄을 긋다보니 이 또한 길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밑줄 그은 문장이 많을 수록 그 책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는 여지도 많아져 기억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제대로 요약하거나 정리한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을 남기지 않는 것에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독서법에 대한 방법들을 뇌과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의 이론을 통하여 잘 정리해놓은 책이다. 내가 앞서 고민했거나 시행했던 독서법들이 거의 다 담겨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 독서법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에 방향도 제시해준다.

'독아(獨我)'에서는 뇌의 가소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성장형 사고방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독서임을 주장한다. '다독(多讀)'에서는 독서라는 어려운 행동이 뇌에 적합하지 않은 힘든 일이어서 독서에 실패하는 일이 많다는 점과 초보자는 우선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자신을 묶어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다독을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책들을 묶어 읽는 계독(系讀)을 제안한다. '남독(濫讀)'에서는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를 통하여 낯선 생각을 접하고 이를 기존의 생각과 연결하여 생각의 외연을 확장할 것을 권한다. 제노비스 사건을 통하여 하나의 사건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이 낯선 시각에 의하여 어떻게 수정되고 재정리 되는지를 보여준다. '만독(慢讀)'에서는 아이들의 독서는 많은 양을 다그치는 것보다 느리게 시작하여 자세히 읽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관독(觀讀)'에서는 관점을 취하는 독서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면 책의 내용도 정리되지 않고 글도 잘 안써지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으면 각 챕터와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관점을 지키며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재독(再讀)'을 통한 기억의 환원, '필독(筆讀)'을 통한 글쓰기의 준비, '낭독(朗讀)'을 통한 퇴고, '난독(難讀)'의 극복 및 '엄독(奄讀)'을 통한 읽는 행위의 초월과 독서의 자기화를 설명한다.

독서법으로 무슨 책 한권이 나올까라는 생각에 읽을 때는 쉬웠지만, 열거해보니 이 정도로 다양한 독서방법과 단계가 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독서법을 제시하는 다른 책들에 비하여 '나는 이렇게 읽었다'라는 류의 자랑이나 '이렇게 읽어라' 따위의 강권이 없어서 (물론 최상의 경지로 '엄독'을 염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독서법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뇌가 그 방향대로 해부학적으로 변한다. 뇌의 가소성은 우리 모두 자신을 성장형 자아로 인식할 수 있는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정체성은 바닥에 검게 굳어 딱 달라붙은 껌딱지 같은 것이 아니다. 조지 버나드 쇼가 "삶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정체성이라는 불변하는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정체성이 바로 본질이다. 인식이 변하면 본질도 바뀐다. - 44쪽

독서라는 과정은 또한 단순히 문자를 시각적으로 읽는 것만이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정신활동 중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 중 하나이다(E. B. 휴이). 1980년대에 멀린 위트록 박사는 독서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 글로 씌어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독서는 뇌의 다양한 정보원, 특히 시각과 청각, 언어와 개념 영역을 기억과 감정의 부분들과 연결하고 통합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통합을 위해서는 뇌의 각 영역들이 최소한의 성숙도를 확보해야 한다. - 52쪽

남독은 우리에게 세 가지 변화를 준다. 남독을 하게 되면 당신은 까칠해지고(비판적 사고), 엉뚱해지며(창의적 인간), 겸손해질(세계의 확장) 것이다. - 94쪽

"오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들추어 보게 되는 것은 그것들이 사라져 버린 날에 대해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거처와 연못의 그림자가 그 책장 위에 비치는 것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가 예전에 들추어 보았던 책을 다시 일게 되는 이유는 지나간 내 과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176쪽

낭독은 글을 제대로 검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눈으로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결점들이 소리를 내어 읽었을 때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휘는 적절한지, 문맥은 매끄러운지, 논리는 잘 맞는지, 낭독을 통해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유시민 또한 비슷한 말을 했다.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고 못나고 흉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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