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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김정운(전 교수, 곧 '화백'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의 책은 거의 다 사서 읽는 편이다.
우선 그의 글은 읽기 쉽고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글의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편하게 계단 하나를 올라선 느낌이다. (읽기 쉽게 쓴 글은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편견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가 가끔 글에서 괄호까지 쳐가며 깨알 같은 자랑을 하듯, 어려운 심리학적 개념을 그처럼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또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그의 글은 재미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글에는 어쩌면 평소에 그대로 말할 것만 같은 어투가 녹아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말을 하듯 써내려간 그의 글은 그가 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더욱이 그의 글은 솔직하다. 내 주변의 50대들 중에서 자신을 '아저씨'로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억지스럽게 자신을 보다 젊은 범주로 꾸역꾸역 밀어 넣거나 (정말 꼰대는) 자기를 저너머 60대쯤으로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정운은 자신이 대한민국 50대의 소심하고 성질머리 더러운 아저씨임을 인정하며 글을 쓴다. 때문에 그의 글에는 무수한 공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그를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직을 연금 수령을 위한 재직기간 전에 때려쳤다는 멋(?) 때문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을 배우고는 성인만화를 그리고 싶다던 괴짜 같은 면목때문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알고, 내면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저자들은 독자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번도 독자의 자리에 서질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언어는 무상하고 비현실적이다. 몸으로 겪어내지 않은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운은 다르다. 그는 이미 경험한 것들을 말하고 쓴다. 그래서인지 그가 말하는 구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행복론'에는 절로 공감이 간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 8쪽
서구의 근대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까지 나누면 세상의 모든 구성 원리가 설명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한다. 자연과학에서는 모든 물질의 가장 최소 단위인 `원자(atom)`를 생각해낸다. `atom`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atomus`에서 나온 단어다. 자연과학적 세계관에 따라 인간 사회도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피부를 통해 바깥세상과 구별되는 마지막 단위인 개인을 만들어낸다. 심리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각 단위들이 전체의 한 부분이 될 때는 최소 단위의 성질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다. 자연과학도 마찬가지다. 가장 작은 부분이라고 여겨졌던 원자의 세계도 양자역학이 시작되면서 `환상`이었음이 밝혀진다.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개인을 단위로 인간의 심리는 설명되지 않는다. 근대심리학의 원자주의는 막힌 길이다. 각 개인들이 만나는 `상호성`이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 심리를 분석하는 기본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심리학의 출발점이다. - 28, 29쪽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여자에게 화장은 연기자의 분장과 마찬가지다.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 맞춰 화장의 톤을 결정하고, 입을 옷에 따라 색조를 결정한다. 남자는 그 맥락에 포함되는 작은 요소 하나에 불과하다. - 36쪽
수용소나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대 뒤, 즉 배후 공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숨을 공간이 없다. - 37쪽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일주일을 7일로 나누고, 한 달은 4주로 분리하고, 일 년은 열두달로 분해했다. 그렇게 시간을 각 단위로 나누면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해는 매번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그래서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담배도 끊고, 살도 빼기로 결심하는 거다. 지난해를 아무리 망쳤다고 해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즐겁다. - 45쪽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문제는, 불안하면 세상을 자꾸 좁혀서 본다는 사실이다. - 65쪽
세상일에는 접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과 회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은 회피동기(`그렇게 하면 손해를 본다`)로 설명해야 유리하고, 결과가 나중에 나오는 것일수록 접근동기(`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로 설명해야 유리하다고 히긴스는 주장한다. - 69쪽
접근동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회피동기는 일을 치밀하게 한다.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려면 긍정적 정서를 동반하는 접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놀듯이 일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치밀함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은 회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터진다`와 같이 위협을 주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왜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는가를 접근동기-회피동기로 설명하면 아주 잘 이해된다. - 70쪽
김수영의 시가 가진 저항과 진보의 신념이 옳다고 박인환을 현실을 외면한 철없는 서구 추종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박인환의 시가 아름답다고 김수영의 시가 가진 경직성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김수여의 시만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바인환의 시만이 진짜라고 하는 주장만큼이나 황당하다. 문학과 예술은 산만하고 다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아무튼 한 가지만 옳다는 확신에 찬 이들이 제일 무서운 거다. - 82쪽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거다. 그 돈으로 뭘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 112쪽
행복하려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야 한다. - 114쪽
난무하는 자기계발서의 추상적 언어로 아무리 자기최면을 걸어도, 자신의 구체적 생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뿐만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모든 가치와 이념이 그렇다. 추상적 언어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체적 어휘로 번역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될 수 없다면 그건 순 가짜다.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 114쪽
숟가락을 잡으면 뜨게 되고,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된다. 도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도구는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아주 편하고 기분 좋게 앉을 수 있는, 뒤로 자빠지는 의자로 규정되는 의식이란 바로 `소통과 관용`이다. - 123쪽
논리적 설득보다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서적 설득이 훨씬 더 잘 작동하는 이유도 바로 이 감정이입 능력 때문이다. 논리는 인지적 과정이다. 설득의 대상과 주체가 분명하게 나뉜다. 웬만큼 강력한 권위와 논리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없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을 설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논리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논리적 굴복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래, 당신 말 다 맞아. 그래서?`하는 것이다. 논리는 이해했지만 절대 승복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감정이입에 기초한 정서적 설득은 강력하다.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란 `함께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함께` 느낀 것이기에 논리적 설명은 오히려 구차한 것이 된다. - 158쪽
금지는 사람을 좌절케 한다. 모든 종류의 금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주체로서의 삶은 바로 끝난다. - 165쪽
시기심은 열등한 사람만의 감정이 아니다. 열등한 사람과 간격이 좁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월한 사라의 시기심이 더 무섭다. `있는 사람이 더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감정을 독일의 `시기심 전문가(?)` 롤프 하우블(Rolf Haubl, 1951~)은 `간격시기심(Abstandneid)`이라고 정의한다. 한참 `아랫것`이 어느새 부쩍 자라 자기 자리를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한 윗사람의 불안이 적개심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프로이트가 수제자인 융의 급성장을 견디지 못해 자기 학파에서 쫓아내고, 평생 증오했던 경우가 바로 그렇다. - 174쪽
`내 편 - 네 편`의 이분법은 존재가 불안한 이들의 특징이다.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반대편에 적을 만들어야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는 까닭이다. - 184쪽
`두려움`은 일본의 집단심리학적 특징이다. 일본인이 친절한 이유도 두렵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해진 룰 안에서만 친절하기 때문이다. 그 틀을 벗어나면 태도가 돌변한다. 일본에서는 친절도 상호작용의 규칙 같은 거다. 규칙을 어겼을 때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친절하다는 듯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친절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 207쪽
발달심리학자 피아제는 우리의 지식은 인지구조에 기초해서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인지구조를 구성하는 쉐마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끊임없이 재구조화된다. 이 재구조화의 과정을 피아제는 조절(assimilation)과 동화(accommodation)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조절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쉐마에 맞춰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동화는 새로운 경험이 자신의 쉐마로 설명되지 않을 때, 기존의 쉐마를 수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절과 동화를 통해 인간의 인지구조는 균형 상태(equilibrium)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새로운 자극이 있어도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지구조를 전혀 바꾸지 않는 경우를 편견이라고 한다. `조절`만 일어나고 `동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다. 이분법적 사고도 전형적인 편견의 한 유형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인지구조의 불균형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어야 하는 거다. - 213쪽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쫓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 318쪽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욕망의 모방`이다. 우리가 그렇게 집요하게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실제로는 남들의 욕망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흉내 내야 하는 타인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메커니즘은 사회적 갈등을 끝없이 야기한다. 이 갈등은 희생양을 찾아 집단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문명의 기원은 바로 이 같은 `희생양 제의`라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두려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생기는 질투로 인해 눈을 부릅뜨고 적을 찾아내는 한국 사회다. 그렇게 `발명된 적`에 집단 린치를 가하며, 자신은 지극히 정의롭고 선한 존재로 합리화한다. - 321쪽
바로 그거였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수업이나 각종 모임, 약속 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했으며,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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