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혼나는 일이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모멸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 P23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성을 공유하는 집에서 홀로 다른 성을 지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서구 사회의 전통은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전통은 원래 성을 유지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을주체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피가 섞이지 않은 여성을 가족 안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부계 혈통주의에서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따르지 ‘못한다‘. - P25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해선 며느리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 P26
나에게 계급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발된 구역과 개발되지 않은 구역을 가르는 ‘길‘이었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 이었으며, 학급에서 아이들이 이루고 있는 ‘그룹‘이었다. 내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길과 담과 그룹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사소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어떤 부류와도 ‘우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P45
언제나 혼자인 것과 항상 함께인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견딜 만할까? 스무 살의 내 소원이 서울에 가는 일이었다면 스물여섯 살의 내가 바라는 것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독립과 해방의 공간이기 이전에 나의 눈물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을 권리였다. - P54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 기어이 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동네가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대접하는 사람, 나의 상처가 아픈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나는 매사에 ‘내돈을 써야 하는 일인가‘만 생각하는 사람, 폭력적인 시선으로남을 쳐다보는 사람, 남의 차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 욕설을 퍼붓고 악을 쓰는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떤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 P83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어도 원하는 하나쯤은 성취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혁명가, 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는 될 수 없어도 문학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거라고생각했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혁명가, 모험가, 몽상가, 방랑자, 무정부주의자를 모두 합친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을 버리고쓸모 있는 노동자로 살자고 다짐했을 때, 나는 비로소 서른 살이,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게 어색해진" 나이가 되었다. 대가가 주어지는 일을 하고, 나의 일로써 나의 삶을 영위하며, 집다운 집에 살겠다고, 다른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나도 욕망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 순간이었다. - P92
내가 그 이야기 끝에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비하하면 범준은 또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그것은 내가 삶에 대해 선택권이 없었다거나 비주체적인 사람이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나를 부정하고 비하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오래전부터 그 말이 필요했다. 간절히 그 말을 듣고싶었을 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었던 사건들을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없이 돌아볼 수 있었다. 불운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그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는 있었다. - P120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 P130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언제든 방해받을 수 있다는의미다.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 할머니가 집안일을 시키거나 아빠가 출출하다고 말할 때, 또는 나와 동생이 사소한 것을 요구하는 순간에. - P132
읽는 데에서 나아가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기만의 방이 가지는 의미는 더 각별해진다. 메리 올리버는 말했다.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덧붙이자면 고독은 장소를 요한다. 휴대전화를 꺼놓을 수 있고, 창문을 닫아둘 수있으며,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장소, 실생활과 최대한 먼 장소, 영감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침잠하고몰입할 수 있는 장소.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리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나의 서사를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나에대해 말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한 번 살아내기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뭉뚱그리지 않기.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 분노, 슬픔, 상실, 결핍을 다시 한 번 겪어내기. 그것은 나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다. - P134
내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타인이 내리는 정의, 규정, 낙인을 거부할 수 있다. 내 안에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불가해하고 복잡한 자아가 존재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나는 ‘존재하는 한 이야기하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대로 살고 싶다. 그러나나의 이야기는 나에 대한, 나를 위한 개인적 기록만은 아니다. 자신 안에 갇히는 나르시시즘적 행위가 아니라 나의 삶을 해석하고 사유하기 위해, 그다음에는 스스로를 무한히 확대하고 다른 존재와 연결되기 위해 나는 쓰고 싶다. 자전적 이야기라도그 안에는 사회나 시대, 타자와 관계된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내이야기에서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기 바란다. - P134
그에 따르면 투쟁의 역사는 자리의 역사다.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자리를 요구하는 것, 자리를 지키는 것은 존재를 지키는 것이다. 장소를 점거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축제, 시위, 집단적 애도는길거리나 광장 같은 공적 공간을 점거함으로써 존재를 가시화한다. ‘장소 상실Placeless‘은 한때 특정한 사람들의 예외적 상황이 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현실적 위협이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 건설 사업에 반발하며 포클레인 앞에드러눕는 농민들, 구조 조정에 저항하며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처럼.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이 같은 저항은 광장이나 거리, 크레인이나 철탑 위뿐 아니라 집 안에서도 일어난다. "여성은 이른바 사생활의 영역인집에서도 장소 상실을 겪곤" 하기 때문이다(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여성들은 집 안에서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의 투쟁보다 덜 처절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인다. 내가 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이 공간은 누군가가 확보하고자 애쓰는 공간, 그러나 여전히 실현하지 못한 공간이다. 이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 P138
그러나 누군가가 승진과 출세,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는 식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를고민한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동안 다른 누군가는 집 안에서 하찮고 사소한 일을 감당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빚진다. 후자는 전자에게 기여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지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족 각자가 이룬 것은엄마가 이룬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내가 기억해내는 것은, 엄마가 씁쓸한 얼굴로 이렇게 말할 때뿐이었다. "나는 평생 이룬게 하나도 없구나." - P143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 P198
사람 또한 씨앗이나 모종과도 같아서, ‘나를 어디에 놓아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나의 삶이 어떤 형태로 자라날 것인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는 모종의 타고난 성향과 그가 놓인 환경이 상호작용하게 되는데, 열악한 땅에서도 끝내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있고, 그럼에도 기어이 그것을 놓치고야 말게 하는 환경도 있는것이다. 작가가 살아온 수십 개의 방은 처음에는 위태롭게 쌓여가다가, 무엇이 부끄러움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그 사이사이에아교처럼 스며들어, 어느덧 단단하고 독특한 구조물을 이루게된다. 사람이 집 안에 사는 게 아니라 집이 사람 안에 들었다. - 김하나, 추천의 글 - P211
오랜 시간 집에 머물면서도 ‘아무데도 가지 않는 여행자‘ 처럼, ‘먼 곳을 떠도는 은둔자‘ 처럼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글로써 교류한 덕분이다. 내가 살았던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들에게 배운 방식으로 나의 경험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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