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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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않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 9쪽

오랫동안 나는 이런 활수(滑手)의 상태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몸이 건강해지니까 그런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달리기 시작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달리기 자체에 몰입하는 시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전혀 뛰고 싶지 않은데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몸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아마도 매일 뭔가를 끝낸다는 그 사실에서 이 기쁨이 오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고통과 경험이 혼재하는 가운데, 거기 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자발적으로 고통이 아니라 경험을 선택할 때, 그리고 달리기가 끝나고 난 뒤 자신의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때, 그렇게 매일 그 일을 반복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삶을 만끽하려는 이 넉넉한 활수의 상태가 생기는 것이라고. - 26, 27쪽

유행가의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물론 더 좋은 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아무튼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좋아하자. 그게 바로 평생 최고의 노래만 듣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최고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물론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건 매 순간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산다면, 옛날에 좋아하던 유행가들을 들을 때처럼 특정한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이다.
결국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 30, 31쪽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리고, 쉽게 상처 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원래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 42쪽

그날 이후로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됐을까? 아마도 "너를 안다, 정말 잘 안다, 네가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다, 네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밤들을 여러 번 보낸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하물며 누군가의 인생이 정의로운지 비겁한지, 성공인지 실패인지 말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 45쪽

"가까운 사이인데도 난 당신을 몰라요.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그러니 한 번 더 말해주세요." 그 말에 당신이 한 번 더 말하기 시작하면, 설사 그 말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 번 더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한 번 더 말하고 내가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관계는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우리 사이를 유지하는 건 막 힘이 없는 소통이 아니라 그저 행위들, 말하는 행위, 그리고 듣는 행위들일지도 모른다. - 49쪽

지금은 이제 슬픈 맛 다 알기에
말하려다 그만둔다
말하려다 그만두고
아! 서늘해서 좋은 가을이어라 했지요.
而今識盡愁滋味
欲設還休
欲設還休
却道天凉好個秋 - 58쪽

그러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해서 하기 싫은 일을 반드시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까 하기 싫은 일은 더구나 하지 말아야지. - 83쪽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이유는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기 때문에. 20대가 사는 세상은 아직 탄생한 지 30년도 지나지 않은 세상이다. 지속 시간이 짧으니 삶에는 인과보다는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60대가 사는 세계는 벌써 70년 가까이 지속된 세계다. 시간이 그 정도 지속되면 결과를 통해서 원인을 따져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담배를 피운다고 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늙은이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수두룩하다. 그러니 두 세계가 다를 수밖에. 노인들의 행복은 거기서 비롯한다고 한다. 그들은 예측가능한 세계에 살기 때문에. - 89쪽

내가 사 온 보석바를 보더니 친구도 "어, 보석바가 아직도 나오네"라며 반색했다. 사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만나는 친구였다. 둘이서 어렸을 때 먹었던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한참 떠들었다. 물론 보석바를 먹던 시절의 이야기도. 그때 나는 깨달았다.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 161쪽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결혼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그건 내 쪽에 달린 문제니까. 마찬가지로 마라톤 완주가 아니라 매일 달리기를 원해야만 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 207쪽

"뉴잉글랜드의 기후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 거친 날씨와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 흐릿한 날씨, 얼음 벌판에 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듯한 누르스름한 날씨가 있으면, 또한 화창하게 맑은 날씨,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날씨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이걸 써먹어 본다. 30대 후반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시절이다. 끝없이 일어나는 일들과 당장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 암울하고 불안한 앞날, 외로움에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퇴근길의 나날이 있으면, 또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밤들, 내일의 일들이 기대되는 완벽한 나날도 있다. 아, 그렇구나. 훌륭하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그런 것이었구나. - 230쪽

이제 그 길은 혼자 걸어도 괜찮은 길이라기보다는 혼자 걸어야만 좋은 길이 된다. - 237쪽

일본에서 신사에 들렀을 때,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재미삼아 소원을 빌었다. 주택가 옆 작은 신사를 빠져나오는데 일본인 친구가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더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나기를, 그리고 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고 대답했다. 예컨대 어떤 일이냐고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날씨처럼, 늘 살아서 뛰어다니는 짐승들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그처럼 단 한순간도 내가 아는 나로 살아가지 않기를, 그러니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나를 사로잡는 것들이 있으면 그 언제라도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 246, 247쪽

내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귀를 기울이고 냄새를 맡고 형태와 색을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면, 두려움과 공포와 절망과 좌절이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걸. 내 절망과 좌절은 과거에 있거나, 두려움과 공포는 미래에 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감각적 세계뿐이라는 걸. -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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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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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욕망의 주체는 금지를 수용하지만, 동시에 금지된 것을 욕망하면서 탄생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라캉은 "법과 억압된 욕망은 동일한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프로이트가 발견했던 것이다"(<에크리 Ecrits>)라고 이야기했던 겁니다. 따라서 욕망의 주체는 분열된 주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 34쪽

성관계를 맺을 때 강박증자, 즉 남성에게 여성은 `대상 a`의 우연적인 용기나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핑크는 지적합니다. 당연히 남성에게 여성은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것"일 뿐입니다. 핑크의 지적은 강박증에 대한 라캉의 논의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캉도 강조했던 적이 있습니다. "남자에게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매춘부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남성에게 여성이란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이 없는 존재로 드러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강박증자로서 남성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순간은 단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이 당당하게 그녀만의 욕망을 피력할 때입니다. - 39, 40쪽

핑크는 이어서 히스테리는 강박증과는 반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강박증자에게 중요한 것이 자신의 욕망이었다면, 히스테리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반대로 타자의 욕망입니다. 히스테리 구조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은 상대방 남성이 욕망하는 대상, 즉 `대상 a`가 되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상대방 남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려는 노력 자체는 여성의 실존에서 갈등 요인으로 기능하게 될 겁니다. 히스테리가 신경증에 속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지요. - 40쪽

이리가레이는 여성은 남성과는 구별되는 존재라는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볼 때, 여성의 법적인 지위가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평등해져가고 있는" 중이지요. 그렇지만 이리가레이는 평등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폭력성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부정하는 논리를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리가레이에 따르면, 남녀평등 이념 속에서 평등이란 잣대는 여전히 남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녀평등이란 미명이 "민중의 아편"과 같다고 이야기했던 겁니다. 남성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만들어가게 되면,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남성적 정체성을 내면화하기 때문이지요. - 72, 73쪽

베유의 통찰에 따르면, 노동자의 지위는 육체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명이 도래하지 않는다면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육체를 움직여본 사람은 알 겁니다. 인간이 혼자 있을 때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지를 말이지요. 돌 하나를 옮기려고 해도 타자와 관계하여 힘을 모아야만 합니다. 당연히 육체노동은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하고, 동시에 타자와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베유도 강조했던 겁니다. "육체노동이 최고의 가치인 것은 생산하는 물건과의 관계가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 101, 102쪽

사랑은 타자를 신과 같은 절대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가 나를 나만큼 사랑해주기를 강제할 수 없고, 단지 바라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기도의 이면에 사실 내 기도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숨은 욕망이 있는 것처럼, 내 사랑도 그에 걸맞은 대가를 무의식적으로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이 아닌가요? - 186쪽

흥미로운 것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에만 삶도 분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바깥과 직면했을 때에만 안은 안으로서 규정될 수 있는 법이니까요. 타자를 만나지 못하면 자신을 자신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죽음이라는 바깥과 직면해 있는 동안에만, 삶은 삶으로서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블랑쇼는 인간이란 바깥ㅌ과 직면할 때에만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이해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지적이 옳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 타자 혹은 차이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레비나스와 낭시가 강조했던 개념 `엑스포지숑exposition`도 바로 이런 사태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깥ex`에 대해 `서 있는position`것이 존재의 비밀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바깥과 직면하면서 삶을 살아내는 존재입니다. 결국 우리는 `무`에 직면해야만 `존재`를 확보할 수 있는 비극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242쪽

체제가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단지 우리는 주어진 배역을 연기하는 불쌍한 꼭두각시나 광대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구경꾼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더 적게 살아가게 된다"라는 기 드보로의 지적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세계 혹은 타자들과 직접 부딪쳐야만 합니다. 설령 체제가 제공한 제스처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계와 직접 부딪치면 되는 겁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흉내 내고 있는 제스처가 나의 삶에 어떤 행복과 힘을 주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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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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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 345, 346쪽

"욕망이 없다면 잃어버릴 것도 없어. 잃을 게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드림랜드에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잃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적어도 그때보다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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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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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리나 패배 같은 개념이 없다. 오직 변화가 있을 뿐이다.
겨울은 맹위를 떨치며 줄곧 버티려 하나, 결국 꽃과 행복을 가져오는 봄의 도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여름 또한 온기가 땅에 유익하다 믿으며 따뜻한 나날을 영윈히 지속시키려 하나, 결국 땅을 쉬게 하는 가을의 도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가젤은 풀을 먹고,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이런 현상을 통해 신께서 보여주시려는 것은 누가 제일 강한 존재인가가 아니라 죽음과 생명의 순환이다.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저 거쳐가야 할 단계가 있을 뿐이다. 이 이치를 깨달을 때 우리 마음은 자유로워지며, 역경의 시기를 받아들이게 되고, 영광의 순간에 도취되어 그 순간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된다.
역경의 시기도, 영광의 순간도 다 지나간다. 힘든 시절이 지나면 좋은 시절이 온다. 우리가 육신에서 해방되어 ‘신성한 힘’을 찾아낼 때까지 이 순환은 계속된다. - 30쪽

포기하는 사람이 패자이고, 그 외에는 모두 승리자이다.
언젠가 그대가 귀기울여 듣는 자들을 향해 역경의 시절을 자랑스레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행동할 적기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마라.
상처를 자랑스럽게 여겨라.

상처는 피부에 새겨진 훈장이다. 상처는 그대가 오랫동안 전장에서 경험을 쌓았음을 나타내는 증표이므로, 적들은 그 상처를 보고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와의 충돌을 피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 때도 종종 있을 것이다.
상처를 낸 칼보다 상처 그 자체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 33쪽

패배자는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선택한 사람이다.
패배는 특정한 전투나 전쟁에서 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아예 싸우러 나가지도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패배했다고 느낀다. 실패는 애초에 무언가를 꿈꿀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대화지 마라. 그러면 실망도 없을 것이다’가 실패의 표어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끝에 우리는 다시 떨치고 일어나 싸우러 나간다. 그러나 실패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평생 그렇게 좌절한 채로 살아갈 뿐이다. - 37, 38쪽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일은 다를 거야.’
그러나 내일이 오면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질문이 마음에 떠오른다. ‘해봐야 소용없으면 어쩌지?’
그래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싸움에 져본 적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인생에서 승자가 될 일도 없으니. - 40쪽

홀로인 때가 없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면 내면의 공허를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내면의 공허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에는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광대한 세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존재하고 있지만 너무나 새롭고 강력한 세계이기에, 우리는 차마 그 존재를 인정하길 두려워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보다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 44쪽

그들은 종교라는 것이 신비를 공유하기 위해 생겨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을 억압하거나 개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세상에 왔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의 기적은 일상의 삶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 54쪽

쓸모없는 삶이란 없다. 모든 영혼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 지상에 내려온 것이다.
진정으로 타인을 돕는 사람들은 억지로 쓸모 있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유익한 삶을 이끌어갈 뿐이다.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모범을 보이며 살아간다.
자신이 늘 바라온 삶을 사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타인에 대한 비판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집중하라. 그런 삶이 대단찮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만물을 주관하는 신의 관점에서는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그런 삶이야말로 세상을 개선하려는 신의 뜻에 부합한다. 따라서 신은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매일 더 많은 축복을 내릴 것이다. - 56, 57쪽

아름다움은 같음이 아닌 다름 속에 존재한다. 기다란 목이 없는 기린, 가시 없는 선인장을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은 그 높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산봉우리들의 높이를 전분 똑같이 만들어버리면 더 이상 그런 분위기를 내지 못할 것이고 우리의 우러름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불완전함이다. - 76쪽

인생의 큰 목표는 사랑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 91쪽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내고 단순함과 집중에 초점을 맞추면 우아함을 얻을 수 있다. 자세가 단순할수록 더 좋고, 수수할수록 더 아름답다.
단순함이란 무엇일까? 단순함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고운 이유는 한 가지 색깔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멋진 이유는 표면이 고르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래와 바위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심오하고 완전한지를 알게 되고 그 귀함을 깨닫게 된다.
삶에서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 단순한 것들은 스스로 그 가치를 드러낸다. - 122쪽

나는 잠들어, 삶은 그저 행복이라는 꿈을 꾸었네.
깨어보니 삶은 의무였네.
의무를 다하고 보니 삶은 행복이었네. - 127쪽

성공만을 좇는 사람은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주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강박은 성공을 일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박적으로 일하다보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삶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 137쪽

사랑은, 늘 같은 모습으로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임을, 사랑의 힘은 그 모순됨에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 144, 145쪽

피곤에 지쳐도 마음의 힘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음을, 마음마저 지치면 믿음의 힘에 의지해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사막의 모래들 가운데서 다름의 기적을 볼 수 있게 도와주시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사막의 모래들이 똑같아 보여도 전부 다르듯,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가 다름을 깨닫게 하소서. - 145쪽

증오를 증오로 갚지 말고 정의로움으로 갚아라.
세상은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로 나뉜다.
강한 자들은 승리했을 때 아량을 베푼다.
약한 자들은 승리했을 때 무리를 지어 패자들을 괴롭힌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약해 보이는 자들을 골라 괴롭힌다. 그들은 승리와 패배가 일시적인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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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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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지요. 히틀러에게 받은 명령서에 서명하면서 아이히만은 그 명령을 수행햇을 때 자신의 서명이 그 서명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사유`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서명한 수용소 수감 명령서를 받았을 때 유대인들이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사유`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수용소 공간이 부족해지자 이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야만 한다는 정책이 채택되었을 때, 가스실로 걸어 들어가는 유대인들의 극심한 공포를 그는 `사유`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이히만은 반드시 사유해야만 했을 것을 전혀 `사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78, 79쪽

막스 베버(Max Wever, 1864-1920)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분업과 전문화가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같은 조직에 속해 있어도 우리는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가 <심판(Der Prozess) 1925>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점이지요. - 79쪽

모든 일들이 너무나 전문화되고 분업화되어 있어 우리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인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거의 반성할 틈이 없습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서류를 정리하고 거기에 서명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 서류에는 유대인의 검거와 수용소 수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며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 즉 무사유로 인해서 발생한 악은 도처에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 79, 80쪽

바타이유의 생각은 `금지된 것은 인간에게 강력한 욕망을 부여한다`는 통찰을 전제로 전개됩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 사정으로 인해 지금 내가 구매할 수 없는 핸드백에서 느꼈던 감정과도 유사하게, 가질 수 없는 것은 대개 인간에게 강렬한 열망을 심어 주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금지와 금기의 대상이 성적인 대상에 적용될 때 우리가 가지는 열망이 바로 에로티즘입니다. 따라서 에로티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금지와 금기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이 때문에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이 동물들의 성적인 충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던 겁니다. 동물들에게는 금지나 금기에 대한 의식 혹은 그러한 제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110, 111쪽

바타이유에게 결혼은 `성행위와 존경의 결합된 형태`입니다. 결혼이란 주어진 금기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합법적 성행위 제도입니다. 다시 말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배우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타인과는 결코 성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 충실하면, 다시 말해 금기를 잘 지키면 사회적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이러한 사회적 존경의 논리 이면에는 금기를 넘어서려는 욕망이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경이란 이와 같은 강렬한 금기 위반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려는 미끼라고도 볼 수 있지요. - 114,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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