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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증언이라는 자체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어느 정도 인정된다. 더구나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는 저자의 말은 강한 경고처럼 우리의 머릿속을 파고 든다.
그러나 책의 구성과 편집의 문제는 이러한 가치를 상당부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책은 망자의 땅(I), 조물주(II), 슬픔의 탄식(III)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각 장의 제목과 그 세부 내용과의 명확한 연계를 찾기가 어렵다. "사람은 악을 통해서만 완벽해지며 솔직한 사랑의 말에 마음을 열 만큼 단순하다"라는 소제목이 망자의 땅이라는 장과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오래 전에 숨어버렸지만 다시 나갈 방법도 만들지 않았다"는 표현은 조물주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글의 구성도 매우 혼란스럽다. 첫 에피소드인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 하나'는 그나마 읽을만 하다. 이후의 글들은 정말 두서 없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이다. '같이 울고 밥 먹자고 영혼이 하늘에서 부른다'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손님이 오셨네! 좋은 분들이 오셨어! 점을 쳤을 때는 아무런 징조가 없었는데. (...)" 이후에는 맥락없는 대화의 연속이다. "다 살아서 넘기고, 견뎌냈지", "에그, 생각하기도 싫어. 무서워. 우린 쫓겨났어, 군인들이 쫓아냈어.", "비행기, 헬리콥터가 무더기로 있었어.", "영감이 농장모임에서 돌아와서 말했어" (...) 도대체 등장인물이 몇 명이며 누구인지, 이게 인터뷰인지 회상인지 전혀 모르고 읽어나가다가 글이 끝나면 '안나 파블로프나 아르튜센코, 에바 아다모브나 아르튜센토.... 고멜 주 나로블랸스키 지역 벨리 베레크 마을 주민'이라고 표시하고 마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편집의 오류와 오타도 거슬린다.
이 책은 각 소제목의 글이 끝나면 해당 증언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형식인데, 하나의 글이 끝나고 다음 글이 시작된 중간에 증언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편집의 오류가 있다.
예를 들면 65쪽에서는
'증언하고 싶다. 1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제 영원히 - 지나이다 예도키모브나 코발렌카 주민'
이라고 써 있어. 이제 영원히? 뭘 어쩌자는 거지? 이게 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장을 보니,
문에 기록된 삶이라는 제목의 장은 첫 문장이 '나와 함께 할 것이다.'로 시작한다. 이 무슨...
연결해보면 '산 사람과도 죽은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라는 글은 '증언하고 싶다' 앞에서 이미 끝을 맺은 것이다. '내 슬픔이 어떤지 알겠어? 사람들한테 알려줄 때쯤이면 나는 죽고 없을 수도 있어. 땅속에 있겠지. 뿌리 아래...'에서. 그리고 '증언하고 싶다'는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으로 했어야 했다. '증언하고 싶다. 1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제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로.
"나한테 도움이 되고 설명르 해준 책은 한 군도 없'엇'어요."와 같은 단순한 오타도 있다. - 159쪽
결론은 그 취지에 비해 내용과 구성면에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너무 많고, 따라서 체르노빌에 대한 공감을 느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첫 번째 핵 수업은 체르노빌이었다. 체르노빌에 대한 경고는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체르노빌을 전체주의로 해석했다. 소련의 핵 원자로가 불완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기술적으로 낙후했기 때문이라고, 러시아인의 안일함과 도둑질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핵의 신화 자체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충격은 빨리 사라졌다. 방사선은 바로 죽이지 않는다. 5년이 지난 후에는 암에 걸려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 환경단체가 수집한 통계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 후 150만 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한다. - 5쪽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핵 수업을 받고 있다. 하나도 아닌 11기의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났다.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후쿠시마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같은 대열에 서게 되었다.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은 똑같이 사람을 죽이는 공범이 되어버렸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이 `평화적 핵` 앞에 무력해졌다. 재난의 반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몇 시간, 아니 몇 분 만에 쓰나미가 도시 전체를 태평양으로 휩쓸고 갔다. 우리가 진보라고 불렀던 곳에는 겨우 잔해만 남았다. 진보라는 신기루의 무덤만...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일본의 원전 보호 체계도 규모 9.0의 강진 앞에서는 아기 옷에 불과했다. 배냇저고리처럼 약했다. - 5쪽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 8쪽
나는 체르노빌의 증인이다. 무서운 전쟁과 혁명이 20세기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체르노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0년이나 흘렀지만,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또는 미래인지, 나는 아직도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그 사건은 너무나도 쉽게 진부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사한 공포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마 나는 체르노빌을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체르노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선(先)지식이다. 왜냐하면 체르노빌로 인해 사람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던 방식과 갈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시간에 대한 주관을 이야기 속에 담는다. 그런데 체르노빌은 그 자체가 시간의 재앙이었다. 우리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5만, 10만, 20만 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인생의 관점으로 볼 때,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 아직은 낯설기만 한 그 악몽의 의미를 이해하고 연구할 능력이 되는가? -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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