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 - 평생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48가지 공통점
도쓰카 다카마사 지음, 김대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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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대체적으로 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이 뻔한 내용을 어떻게 가공하여 전달가능한 메시지로 만드는가는 저자의 이미지나 역량에 달려 있다. 이미지에 집중하는 저자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내세운다. 일반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했을 법한 실제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을 그만의 독창적인 메시지로 변환시키려 한다. 이 책이 그러하다. 저자가 갖고 있는 골드만 삭스, 하버드 MBA, 맥킨지와 같은 화려한 경력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기대하게 된다. 제목에 '기본'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라는 제목을 보면, 두 가지 키워드를 만나게 된다.

 

첫째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다. 이것만 보면 저자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인터뷰하거나 아니면 그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만 같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버드 MBA의 잔 리브킨 교수나 맥킨지의 (무명의) 선배가 등장할 뿐이다. 즉 이것은 저자 개인이 골드만 삭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맥킨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일화일 뿐이지, 명실상부한 세계의 인재들을 등장시킨 것은 아니다. 책 제목이 과장되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기본'이다. "당신의 기본은 무엇입니까?"라는 서문을 통하여 저자는 독자가 중요시하고 있는 '기본'에 대해 살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본'을 설파하는데 이미 알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는 것과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렵다는 두 요소들을 포함한 '기본'에 대해 48가지를 열거해놓고 있다. 열거된 48가지는, (심하게 말하면) 목차만 읽어보아도 충분한 것들이다. 소제목 이하 본문을 읽으면 뭔가 특별한 설명이나 해설이 있을 것 같지만, 저자의 글쓰기는 일단 주장을 던져 놓고 다소 중언부언을 하는 느낌이다. 그가 중요시하는 화법인 '3가지 장점'을 억지로 붙여가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들이 초안을 수작업으로 한 이후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1. 생각하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다, 2. 수정이 빨라진다, 3. 본질에 초점을 맞춘다, 라는 장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컴퓨터 작업으로는 할 수 없는 수작업의 고유한 장점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내 입장에서는 저자의 '기본'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 투자"하라면서,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정한 인간관계를 믿는다"라는 추상적인 요청을 하는 것이나 "선배, 상사와의 술자리를 피하지 않는다"라는 해묵은 주장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노라면 실망스럽다. 게다가 머리가 가장 맑은 아침 시간대에는 메일 답장과 같은 단순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메일의 회신 속도가 당신에 대해 말해 준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기도 한다(오전 8시에 메일 답장을 완료해서 일을 마쳤다는 에피소드이다).

 

(48개나 되는 '기본'을 열거하느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글의 전개도 다소 무리가 있다. 제1장(사람과의 관계에 투자한다)과 제2장(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가꾸는 일에 힘쓴다)의 내용들은 비록 뻔한 소리일지언정 그가 말하는 '기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제3장(시간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업무술)부터 논조가 약간 바뀌더니 제4장에서는 "성과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 노하우", 제5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료로 회의에 기여한다"와 같이 무엇에 대한 기본인지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3장 이후에는 갑자기 맥킨지식 일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느낌이다. 좋은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기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맥킨지식 업무 방법이 모든 업무의 기본이라는 것인가?

 

결론은 이 책이 제목에서 받는 기대감에 비해 그 구성이나 내용은 많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기본에 대한 느낌을 되살리고 싶다면, 이 책의 목차를 몇번쯤 조용히 되새겨 보는 것을 족하다.

맥킨지의 컨설턴트가 주문처럼 외우는 두 가지 말이 있다. 첫 번째는 "So what?(그래서, 뭐?)", 두 번째는 "Why so?(그게 왜?)"이다. 전자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 때 `다음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지?`하고 또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내게 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하늘->비->우산`의 논의이다.

1. "잔뜩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어." -> "So what?(그래서 어떻다고?)"
2. "비가 올지도 몰라." -> "So what?(그래서 어떻다고?)"
3. "우산을 갖고 나가자."

`접는 우산을 갖고 나가자`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한 번 더 "So what?"을 반복한다. 그러면 "접는 우산을 넣을 수 있는 큰 가방을 갖고 가자."라는 말이 따라온다. 맥킨지의 컨설턴트는 모든 과정에서 이렇게 "So what을 다섯 번 반복하라."라고 교육받는다.
반면에 어떤 과제에 직면했을 때는 "Why so?"가 도움이 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표면적인 부분에서부터 심층적인 부분으로 세세하게 파고 들어간다. - 85, 86쪽

맥킨지 컨설턴트들이 잘 쓰는 말버릇 중에 "포인트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가 있다. 내가 직접 맥킨지에서 일하면서 `포인트를 세 가지로 정리하는 이유`에 대해 배워 보니 이러한 말버릇이 생기는 이류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맥킨지에서는 `포인트를 세 가지로 정리하는 사고 훈련`을 반복하면서 논리사고력, 시간 관리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단련시킨다. - 92쪽

시간마다 달라지는 생산성을 적극적으로 염두에 두고 스케줄을 짜면 효율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나는 다음 세 가지를 특히 염두에 두고 있다.

1. 아침 첫 한 시간은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나 아이디어 떠올리기에 사용한다.
2. 메일 처리는 절대 아침 시간에 하지 않는다. 이동 중 시간이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오후 시간대에 처리한다.
3. 그날 할 일은 전날 퇴근 전에 미리 정리하고, 아침 업무를 시작할 때는 확인만 한다.

아침에 출근해 가장 머리가 맑은 그 한 시간 동안 막혔던 일의 해결책을 찾아본다. 혹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시간으로 삼는다. 또는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사용해도 좋다.
모처럼의 귀중한 아침 시간대에 무심코 하기 쉬운 업무는 메일의 답장을 보내는 일이다. 혹은 그날 무슨 일을 진행해야 할지 정리하는 일이다. 머리가 가장 맑은 시간대에는 소위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 단순 업무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침의 첫 업무를 시작할 때는 머리를 회전시킬 필요가 있는 일에 할당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 129, 130쪽

나는 퇴근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미리 정리하고, 출근하면 우선순위의 첫 번째 일부터 처리하려고 머리와 마음의 준비를 해보았다. 놀랍게도 이 간단한 습관은 일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었다. 퇴근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미리 정리해 놓으면 다음 날 아침에 집을 나선 순간부터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머릿속에서 되새겨 볼 수 있고 그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 133, 134쪽

맥킨지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흑백이 기본이다. 단색만으로도 충분히 클라이언트를 설득시킬 자료를 작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자료 내용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할 때 컬러로 보완하려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그 경우는 배색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의 표현,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도표의 배치가 효과적인가 등으로 판단해야 한다. - 184쪽

맥킨지의 컨설턴트는 맥킨 노트를 쓸 때 반드시 연필을 사용한다. 손쉽게 수정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표의 형태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연필을 이용해 손쉽게 도표를 그리면서 어떤 형태의 도표가 효과적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도표의 초안을 그를 때는 반드시 맥킨 노트를 사용하고, 몇 번이고 수정해서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도표를 완성한다.
컨설턴트는 연필로 초안을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컴퓨터를 켠다. - 193쪽

하나의 차트에 하나의 메시지를 담으면서 데이터를 만든다는 발상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해서 메시지를 이끌어내느냐가 아니라 메시지를 가장 먼저 완성하고, 그다음에 메시지를 위한 데이터를 준비해야 한다.
우선 메시지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 메시지를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데이터를 찾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때부터 자료실에서 찾든, 구글에서 검색하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보를 찾아낸다. 그리고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차트를 작성한다. - 198,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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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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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김정운 교수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읽고 나서이다. 책에서 그는 행복의 구체성에 대해 강력히 주장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 언급된 책이 바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었다. 이 주장에 격하게 동감하며, 드디어 <행복의 기원>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행복이란 좋아 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김정운 교수는 '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거창하거나 추상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걸 누가 몰라?', '연구의 결과가 고작 이거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순한 결론을 얻게 되는 것 외에도, 이 책을 읽으며 행복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구체화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따라가는 것은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언제부턴가 '부자가 되는 것'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사람들의 목표가 바뀐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이 행복이라는 것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행복해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이 행복의 도구로 복권당첨을 생각하듯이. 그렇다면 이것은 부자라는 단어를 행복으로 치환한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 여전히 물질에 의한 만족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이것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설득한다면, 잡히지 않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즐기지도 못한 채 그렇게 큰 희생을 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알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땅 속에 묻힌 보물을 파내는데 열중하느라 눈 앞에서 팔랑 거리며 날아다니는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당장 삽자루를 버리고 만원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반면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다.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또, 이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이 중요한 행복의 속성을 이해하기 전에 행복의 비결이나 기술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 역으로, 이 본질적 모습을 이해하면 행복이라는 것이 어쩌면 매우 단순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너무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행복의 본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 9쪽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철학자들의 주장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모든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 이유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매우 비과학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10쪽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팀 윌슨(Tim Wilson)은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 같은 낯선 존재라고 했다(Wilson, 2002).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면 인간을 그저 `생각하는 단백질 덩어리`로 착각하며 살게 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문제도 생각이라는 아주 좁은 테두리 안에서 논하게 되고, 결국 행복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게 된다. - 23쪽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행복을 이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보다 중요한 원인을 못 보게 만들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주술사의 현란한 기우제 춤 때문에 비가 온다고 믿었다. 춤은 눈에 띄지만, 비의 원인은 아니다. - 27, 2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행복을 뭔가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보았다. 이 철학적 관점이 빚어낸 행복의 모습이 2천 년간 큰 흔들림 없이 유지돼왔고, 이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오랜 관점과 진화론은 정면 대립된다. 앞서 보았듯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도구다. 밀러에 의하면,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고차원의 정선적인 특성도 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다. 보다 진화론적인 해석은 피카소라는 한 생명체가 그의 본질적인 목적(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위해 창의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의 정신적 산물들은 사실 몸의 번성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 59, 60쪽

생명체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존재 이유도 벌, 선인장, 꽃게와 마찬가지로 생존이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것을 행복과 연결시키면 당연하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 71쪽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행복감(쾌감)은 사회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지난 30년간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행복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도 확고한 결론은 무엇일까? 긴 시간 행복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고민을 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98쪽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 111, 113쪽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상가 라 루시프코(La Rouchefecould)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 - 116, 117쪽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적응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생물학적 이유다. 그리고 수십 년의 연구에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훨씬 행복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버리기 때문이다. (...)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유학 시절, 지도 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잇따.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123, 125쪽

최근 등장하는 행복 지침들은 이런 식으로 행복의 증상을 원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긍정성 또한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는 증상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어느 정도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상당 부분 타고난 기질이다(Archontaki, Lewis & Bates, 2013).

첫째, 성격. 행복한 사람들은 월등히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성이 높았다. 둘째, 대인관계. 행복지수 상위 그룹의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사실 두 가지 특징의 공통분모는 `사회성`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 140쪽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타인이 모든 판단 기준이 되면 내 행복마저도 왠지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행복의 본질이 뒤바뀌는 것이다.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다. - 171쪽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람(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혁명적이다.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Kenrick & Griskevicius, 2013). - 184쪽

우선,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189쪽
둘째,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인간만큼 쾌감을 다양한 곳에서 느끼는 동물이 없다. 쇼팽과 셰익스피어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190쪽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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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3-13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제목을 김정운의 책에서 보았어요. 좋은책 같습니다

붉은눈 2016-03-13 20:21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책을 읽으며 좋은 책을 소개 받는 것도 소소한 기쁨인 것 같아요.

희망여행 2016-05-08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는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감합니다. 그 사람에 중독되어 있는 나의 뇌에 대하여

붉은눈 2016-05-08 07:31   좋아요 0 | URL
이미 좋은 사람과의 행복에 중독 되셨나 보네요. 따로 이 책을 읽으실 필요는 없겠는데요? 계속 행복을 키워 나가시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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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부끄럽게도 나 역시 요즘 시대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거의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던 사람(남자) 중 하나였다. 더 나아가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에 대하여 예전 할머니나 어머니 때와 같은 차별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당연하게 '차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냐며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었다. 게다가 이것을 '경험하지도 않은 피해의식'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남자라서 당연하게 주어진 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았고 의례히 차별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이'가 사실은 '차별'이었음을 인식하지 않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여성이 받고 있는 차별에 대하여 지금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름 '평등'한 관념을 갖고 여성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내게, 이 사회의 남성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얕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큰 '착각'임을 이 책이 일깨워주었다. 가끔 설거지나 하고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면서 그러한 역할 분담이 성평등이라고 착각한 채 나 스스로에게 평등이라는 훈장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을까.


올 초에 읽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더불어 내게 비로소 '젠더'의 개념에 대해 일깨워준 값진 책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 16쪽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 21쪽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도록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호감 가는 사람이 될지 걱정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내선 안 되고 공격적이어선 안 되고 터프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지만 더구나 돌아서서는 똑같은 행동을 한 남자들을 칭찬하거나 면책해줍니다. 전세계 어디에나 여자들에게 남자의 마음을 끌거나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잡지며 책이 넘쳐납니다. 그에 비해 남자들에게 여자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글은 훨씬 적습니다. - 27쪽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지 때문입니다. - 31쪽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 37, 39쪽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 44쪽

젠더와 계급은 다른 문제입니다. 가난한 남자들은 부자의 특권은 누리지 못할지라도 남자의 특권은 여전히 누립니다. 나는 흑인 남성들과 이야기했던 경험을 통해 억압에는 여러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과 억압체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서로 깜깜하게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한번은 내가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웬 남자가 묻더군요.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게 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여담인데, 내게 그렇게 물었던 남자는 흑인 남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대고 나는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지요. 왜 당신은 그냥 남자나 그냥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말하지 않나요? 왜 하필 흑인 남성으로서의 경험을 말하나요?) - 47,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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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당신의 미래는 오늘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시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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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뻔한 것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게는 특히 공부방법이 그러하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지가 꽤 지난 시점에서도 공부방법론에 대한 책들은 내게 여전한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많은 공부방법론을 읽어 본 결과 전혀 새로운 방법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상황과 성격에 맞게 방법을 조절하여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수밖에.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는 그 '독한' 제목과는 달리 현 시대의 분위기와 뇌과학적 분석 결과를 통하여 진짜 공부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공해주는 공부 테크닉도 참고해볼만 하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공부가 필요한지를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서론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 위한 마음 다짐으로는 적절한 조언이 된다.

또한 공부는 우선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써먹기 위하여 하는 것이 진짜 공부가 된다.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는 것은 가장 위험하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공부를 통하여 충분히 젊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은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방법이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거부감을 줄이면서 우선 시작하여 일정한 궤도에 자신을 올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짧고 강하게 계획하고 반복한다. 금방 잊어버릴지언정 이러한 투입은 어느덧 잠재의식과 연결되어 전혀 새로운 창조적 도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공부하자!

창조는 결코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자료가 뇌 속에 들어가야 거기서 새롭고 좋은 발상이 나온다. 무슨 수를 쓰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었기에 그런 기적적인 창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 34, 35쪽

공부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만약의 일을 위한 대비가 아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다. 해 두면 언젠가 쓰일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쓰일, 꼭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 42쪽

그러니 싫은 공부도 의지만 있다면 끈기와 참을성으로 버티며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싫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참고 하면 그 순간부터 공부가 안 된다. 힘들다는 생각에만 주의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의 의지나 끈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호르몬의 분비와 뇌 시스템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작심삼일!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위대한 생리학자이자 뇌과학자였다. - 72쪽

아무리 싫은 일이라도 일단 시작하면 자연스레 그 일의 흐름을 타서 차츰 몰입하게 되고, 그러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좋아지게 된다. 남다른 의욕이 있어 시작하는 게 아니고 시작하면 의욕이 생기는 것이다. 이게 신기한 뇌의 기전이다. 일단 시작하면 다음은 절로 계속하게 되는 관성의 법칙, 그리고 작업흥분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 73쪽

대뇌 신피질은 `공부해야 한다`, `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독려하지만 동물적인 변연계가 반발한다.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싫은 공부를 하기 위해선 여기를 잘 달래야 한다. 거창한 공부 계획일수록 변연계의 두려움은 더 커진다. 고로 작은 계획으로 시작해야 변연계의 경보발령을 막을 수 있다. 동물 뇌는 싫은 것에 반발한다. 공부도 싫은 것이라고 느끼면 당연히 동물 뇌가 반발한다. 싫은 일을 해야 할 땐 변연계를 자극하면 안 된다. 아주 작은 계획이라고 변연계를 속여야 한다. - 76, 77쪽

격정적 호르몬은 과다 분비될 때 문제인 반면, 세로토닌은 적어서 문제다. 세로토닌은 예민한 신경 물질이어서 한 번에 소량만 방출되며 분비 시간도 아주 짧다. 채 30분이 안 되며 효과가 지속되는 것도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다.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을 30분으로 잘라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 84쪽

많은 걸 공부하고 기억하면서 잠재의식 속의 창고를 채워야 한다. 그러면서 뇌가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성공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모두 우리가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기다려야 한다. 무의식 속에서 숙성되어 어느 순간 문제가 풀려 `아!` 하고 섬광이 의식 속으로 떠오를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창조는 좋은 와인처럼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 133쪽

마찬가지로 공부도 중간 진도를 체크하고 자신을 독려할 작은 목표가 있어야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 공부라는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는 방법은 저만큼 앞에 보이는 작은 목표, 중간 목표점을 정하는 것이다. 목표가 눈에 보이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공부가 더 쉽고 편한 일이 된다. - 145쪽

공부는 핵심만 파악하면 된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핵심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대충 훑어보다가 어려운 부분은 건너뛴다. 시간이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자세히 읽자. 대충 읽기의 핵심은 읽는 속도에 완급을 두는 것이다.
빨리 읽다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면 어쩌나 하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속도를 늦추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많이 읽는 편이 더 낫다. - 188쪽

듣고 읽은 걸 그대로 입력해선 안 된다. 내 기존 지식을 동원해 비판, 보완하고 새로 편집, 요약한 걸 선택적으로 입력해 기억창고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이게 크리에이티브 리딩(Creative Reading), 크리에이티브 리스닝(Creative Listening), 창조적 입력이다. - 190쪽

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의지력으로 기억력을 높이되, 그 의지가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도록 적당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 201쪽

문제는 첫날 하루다. 중고등학교의 45분 수업을 기준으로 한다면 45분 공부하고 5분 복습한 후 10분간 휴식을 취하자. 45분 공부한 후 5분 동안 공부한 부분을 눈으로 슬쩍 훑어본다. 그야말로 `눈만 걸친다`. 이것이 첫 단계 복습이다. 모르는 부분은 책을 보고 다시 확인하거나 머릿속에서 반추한다. 이런 복습은 5분이면 충분하다. 이 5분이 짧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시험 결과, 더 나아가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결정적 순간이다.
두 번째 복습은 취침 전에 한다. 그날 공부한 분량의 전체를 훑어보고 기억이 잘 안 되는 부분은 밑줄을 그어 놓는다. 그날 얼마나 많은 양을 공부했든 30분이면 복습 시간으로는 충분하다.
세 번째 복습은 1주일 후에 한다. 지난주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보는데 이것은 기억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이다. 새로 들어온 정보가 그 전에 익혀 놓은 기억의 재생을 방해하기 때문에 `한 주 앞서 공부`한 내용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이 세 단계를 게을리했다가는 책상 앞에 붙어 있던 그 힘든 노력이 기억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 204, 205쪽

우리가 피해야 할 한 가지, 자기 한계 설정이다. 내가 가진 게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그것이 전부가 된다. 그리고 발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이게 우리 인생의 덫이다. 자기 한계의 함정에 빠지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강점 지능을 찾아 깨워야 한다. 이게 창조적 학습의 출발이요, 기본이다. -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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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금지, 에바로드 - 2014 제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연합뉴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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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에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에 왜 미치게 되었는가?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여러 가지 이유들은 각자의 의미에 맞추어 더 깊거나 혹은 넓어진다. 그래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깊이'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로서 '오덕/덕후'(이)가 된다. 그러나 돌아보면 결국 그 의미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만화에 빠져들어 그 내용을 분석하고 캐릭터들을 사랑하며 세계관을 이해한 한 오덕이 해당 만화의 제작사에서 제시한 스탬프 랠리에 도전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실제 다큐를 모델로 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보면 사건에 대한 재편집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마음을 둘 곳 없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흔들림을 그려낸 20대의 성장소설과도 같은 느낌이다. 기존 세대가 갖고 있는 성공이라는 이상과 그것을 위한 갖은 의미들에서 벗어나, 딱히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재미 있어서, 즐거워서 그것에 흠뻑 빠져들어버린 에반게리온 오덕의 실화를 소설적인 요소와 적절히 가미하여 탁월하게 그려냈다.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 말 한 마디, 책 한권, 영화 한 편 일 수 있듯이, 도대체가 설명도 안 되고 이유도 잘 모르겠는 만화 한 편이 어떤 이에게는 삶의 요소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심사위원들의 평대로 "실존인물이 가진 이야기성에 의존한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에반게리온 열광 세대의 감성과 체험을 깊이 이해하고, 인물에 시대상과 인생을 입히는 시선이며 이야기를 리듬감 있게 끌고 가는 작가적 역량이 탁월했다."

군대가 고등학교보다는 더 나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는 시스템이 온몸으로 "너희들은 뻔한 놈들이야"라고 주장했지만, 군대에서는 "다들 사정이 있는 건 알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뻔하게 있다 가라"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었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선생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스승이고 인격자이고 마음의 어버이이고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최소한 선임병들은 더 거칠긴 했어도 그런 위선은 부리지 않았다. 아무리 멍청하고 고약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내무실 안에서의 위계가 제대한 뒤에도 이어질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 110쪽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신지는 결국 모든 인류의 A.T.필드를 무너뜨리고 아스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잖아요. 그리고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죠. 우리 모두에겐 A.T.필드가 있다, 그 장벽 때문에 외롭고 슬프지만 그 벽이 사라지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게 된다. 에반게리온 전체의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요? 타브리스가 왜 다른 자살 방법을 놔두고 손목을 그었는지 저는 몰라요. 자살할 정도로 절망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 137, 138쪽

`손목을 긋는 건 죽을 마음이 없었다는 뜻`이라는 해석은 굉장히 무례한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남의 자살 방법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의 이유에 대해서도 금방 쉽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짝사랑을 거절당하고 게이라는 사실이 들통 난다고 그게 뭐 죽을 이유까지 된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 하고 말이죠.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남의 삶과 죽음의 가치까지 제멋대로 정해버리게 됩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살아라` 하는 식으로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그런 참견을 할 시간이 있으면 네 일에나 신경 써라`거나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걸 보면 관계의존증이 틀림없어`라고 되받아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차 근거 없는 추측이긴 마찬가지 아닌가요? - 138쪽

세계는 멸망해가고 있었다. 다만 그 멸망의 방식이 결정되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 151쪽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와 그런 여행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내가 물었다.
"글쎄요, 큰 틀에서는 같습니다. 무의미하고, 시간 낭비라는 점에서요. 그래도 차이점이 있다면 일단 순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게 자아 찾기라고 포장한다는 점이겠죠.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두번째 차이점은 결과물이죠. 저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마음을 먹고 가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왔어요. 워낙 손에 잡히는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요. 글쎄, 순례 여행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도 처음부터 여행서 출간이 목적이었던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면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났다고 말씀하시면 안 되죠." - 192쪽

"내 생각에 스탬프 랠리라는 행사는 오덕들에게 딱 어울리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 우리가 한정판에 미치는 이유가 뭐겠어. 한정판 상품이라고 더 퀄리티가 높은 건 아니잖아. 한정판이 일반 상품과 다른 점은, 돈을 아무리 더 줘도 살 기회를 놓치면 살 수 없다는 데 있는 거야. 오덕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의 캐릭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진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어해. 그런 우리들에게 캐릭터 상품은 어딘지 불쾌한 데가 있어. 일단은 그 상품들이 우리 호주머니만 노리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고, 두번째로는 돈만 있으면 누구가 그 캐릭터 상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한정판은 적어도 돈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어야 하고, 판매할 때 가서 줄을 서야 하고, 시사하긴 해도 어쨌든 노력을 들여야 손에 넣을 수 있어. 그런 한정판을 갖고 있으면 캐릭터와 어느 정도 감정적으로 연결된 듯한 착각이 들지. 내가 쏟는 시간과 노력이 있으니까. (...)" - 211,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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