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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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부끄럽게도 나 역시 요즘 시대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거의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던 사람(남자) 중 하나였다. 더 나아가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에 대하여 예전 할머니나 어머니 때와 같은 차별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당연하게 '차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냐며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었다. 게다가 이것을 '경험하지도 않은 피해의식'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남자라서 당연하게 주어진 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았고 의례히 차별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이'가 사실은 '차별'이었음을 인식하지 않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여성이 받고 있는 차별에 대하여 지금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름 '평등'한 관념을 갖고 여성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내게, 이 사회의 남성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얕은 생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큰 '착각'임을 이 책이 일깨워주었다. 가끔 설거지나 하고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면서 그러한 역할 분담이 성평등이라고 착각한 채 나 스스로에게 평등이라는 훈장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을까.


올 초에 읽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더불어 내게 비로소 '젠더'의 개념에 대해 일깨워준 값진 책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 16쪽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 21쪽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도록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호감 가는 사람이 될지 걱정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내선 안 되고 공격적이어선 안 되고 터프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지만 더구나 돌아서서는 똑같은 행동을 한 남자들을 칭찬하거나 면책해줍니다. 전세계 어디에나 여자들에게 남자의 마음을 끌거나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잡지며 책이 넘쳐납니다. 그에 비해 남자들에게 여자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글은 훨씬 적습니다. - 27쪽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지 때문입니다. - 31쪽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 37, 39쪽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 44쪽

젠더와 계급은 다른 문제입니다. 가난한 남자들은 부자의 특권은 누리지 못할지라도 남자의 특권은 여전히 누립니다. 나는 흑인 남성들과 이야기했던 경험을 통해 억압에는 여러 체제가 존재한다는 것과 억압체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서로 깜깜하게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한번은 내가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웬 남자가 묻더군요. "당신은 왜 자신을 여성으로만 봅니까? 왜 그냥 인간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침묵시키는 방편입니다. 물론 나는 인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겪게 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여담인데, 내게 그렇게 물었던 남자는 흑인 남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대고 나는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지요. 왜 당신은 그냥 남자나 그냥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말하지 않나요? 왜 하필 흑인 남성으로서의 경험을 말하나요?) - 47,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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