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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도 익숙한 제목때문에 읽지도 않은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최근 영화화 된 <살인자의 기억법>은 벌써 몇 년 전 그 책이 출간된 초기에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 책에서는 제목이 주는 익숙함 외에는 도무지 떠오르는 잔상이 없었다. 착오로 같은 책을 두번 읽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책을 사서 펴보았다. (다행이었다. 읽지 않았던 책이다)
5장의 목차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가 초기에 제시하는 세 편의 그림 <마라의 죽음>, <유디트>, <사르다나팔의 죽음>과 동일한 소제목을 하나씩 담고 있다. 그림이 아닌 제목은 3장과 4장의 에비앙과 미미로, 이는 유디트와 같은 등장인물(여성)의 별칭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마라의 죽음>과 <사르다나팔의 죽음> 사이에서 유디트, 에비앙, 미미라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남성으로 추정되는 화자가 접한 죽음들이 왜 유독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도 화자도 남성이기에 죽음, 에로티시즘, 여성을 하나로 묶어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액자식 구성인 이 소설 1장 <마라의 죽음>에서는 자살을 기도하는 이들을 고객으로 맞이하고 그 행위를 돕는 화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그는 신이 되고 싶어 한다. 신이 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은 창작과 살인을 행하는 것이다. <마라의 죽음>은 후에 '미미의 죽음'으로 형상화 되고, <사르다나팔의 죽음>은 유디트, 에비앙, 미미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 자신으로 형상화된다.
한계령 어느 국도에서 폭설로 갖힌 채, 차 안에서 C와 유디트가 나누는 대화는, 현재의 밀폐된 공간에서의 탈출을 넘어선 '극'적인 장소의 갈망으로 이어진다. 이곳이 아닌 '북극'을 갈망하는 유디트와 C의 대화, 결국 사라져 찾을 수 없는 유디트의 자취는 현학적이고 몽롱하여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후 화자는 유디트를 북극(죽음)으로 안내한다. 유디트의 만남은 그녀의 죽음으로 끝을 맺지만,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클림트의 <유디트>를 보기 위해 떠난 비엔나에서 에비앙을 만나게 된다. 비록 에비앙을 직접적인 죽음으로 이끌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홍콩으로 돌아갔을지를 궁금해 하는 그는 에비앙에게서도 죽음의 그림자를 엿보기라도 한 듯 하다.
비엔나에서 돌아온 그는 C와 유디트, 유디트와 K, K와 미미로 이어지는 관계를 통하여 다시 한번 유디트를 둘러싼 이들을 접하게 된다. K와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한 미미 또한 유디트와 같이 자살할 수 있도록 도운 후 그는 소설의 끝을 맺으며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글의 맨 마지막 문장이자, 제목 밑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부제가 보인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그는 다른 장소에서 또다른 에비앙을, 또 다른 상처를, 또 다른 죽음을 만나게 될까.
자코뱅 당의 거두였던 마라가 죽은 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다비드는 자코뱅의 미학을 알고 있었다.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은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공포를 창출하는 자는 초연해야 한다. 자신이 유포한 공포의 에너지가 종국엔 그 자신마저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기요틴에 의해 목이 잘렸다. - 8, 9쪽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 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 16쪽
"너도 똑같구나. 그런 질문이나 해대고 말야. 넌 이해 못 해. 그리고 앞으로 이딴 거 묻지 마. 난 뭐 물어보는 인간들 질색이야. 질문이 많은 남자들은 숨길 게 많은 놈들이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될걸 꼭 남에게 묻는단 말야." - 39쪽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유쾌하다.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책을 읽어도 되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어떤 부채의식에도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다. 반대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일은 불쾌하다. 그 시간은 사람을 조급하고 비굴하게 만든다. - 93쪽
"인간들은 불멸에 대한 강박 때문에 참된 아름다움을 박제하죠. 그들은 죽은 예술에 길들여진 노예들이에요." -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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