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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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만큼 사실적인 상황과 감정의 묘사를 그려낼 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 상황이, 그 장소가, 그곳에서의 냄새가 어느새 밀려온다. 내겐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신뢰가는 작가이다. 대개 단편집의 제목은 그 단행본에 실린 여러 단편 중 대표적인 것을 내세우기 마련인데, 이번 책은 그렇지 않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이 단편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통하는 어떤 상황에 대한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살뜰함으로 아파트를 얻은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를 잃은 부부(입동), 주워키운 개의 약값으로 최신형 휴대폰을 구매하는 즐거움에 빠졌다가 결국 동생같은 개를 잃은 소년(노찬성과 에반), 공시생으로 만나게 되어 동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현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 공시생이된 남자와 결국에는 이별하는 한 여성(건너편), 다른 교수의 허물을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도 결국 그 학교에 임용되지 못한 시간강사(풍경의 쓸모), 아들의 심성이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을 의심하며 아들이 그동안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음을 알아채가는 엄마(가리는 손), 제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남편의 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오고 마는 아내(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같은 시간과 공간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체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단편들 중 <침묵의 미래>는 읽어보아도 나로써는 잘 이해가 안되는 터라 어떻게 다른 작품과 같이 연결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단편들을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로 여기는 것은 매우 게으른 단정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상정해버리는 '평범'이야말로 개인이 이상적으로 상상하는 꽤 괜찮은 삶의 상황일뿐, 실재(實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범과 비범의 시각은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어서, 어찌보면 '일반'이라고 통칭해버릴 수 있는 사람이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평범함의 반의어로서의 특별함이란 상황의 차이가 아닌 상황을 대하는 태도로 귀결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편들에 등장하는 이들은 다른 '무리'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 모든 상황을 표현해준다. 더욱이 그것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계절에 대한 체감이다. 안은 무상하게 변하는데, 밖의 내게는 아직도 오지 않은 계절, 여전히 멈추어 있거나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저편... 세상은 변했으되 나만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체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의 내 머릿속에는 '바깥은 여름'이라는 이 짧은 제목이 지워지지 않은 채 계속 맴돌고 있다.

아내에게는 정착의 사실뿐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 - 16쪽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20쪽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도 던져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 하는 것처럼 보였다. - 36, 37쪽

보드라운 뺨과 맑은 침을 가진 찬성과 달리 할머니는 늙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늙는다는 건 육체가 점점 액체화되는 걸 뜻했다. 탄력을 잃고 물컹해진 몸 밖으로 땀과 고름, 침과 눈물, 피가 연신 새어나오는 걸 의미했다. - 50쪽

일본 어느 도시에서는 벚꽃이 피었다 하고, 뉴욕 한낮 기온도 십팔 도를 넘었다 했다. 여러모로 올 겨울은 겨울 같지 않았다.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 86, 87쪽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 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 158쪽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 173쪽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 213, 214쪽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 214쪽

- 밖에 있으면 안에서 쌓은 게, 안에 있으면 밖에서 만든 게 부러운 모양이더라. 공부하는 사람들. -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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