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깨달은 건,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부모의 이혼 등의 특수성 또한 1부터 100 사이에 놓고 볼 때 10 이하일 것이라는 거다. 어쩌면 5 이하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오는 불행함의 정도도 어쩌면 5 이하일 수도 있겠다. 내가 느끼기에 나는 정말 죽도록 괴로웠지만 세상은 넓고 괴로운 사람은 무한히 많으며내가 가진 정도의 괴로움이란 해변가의 모래 정도로 흔해 빠진일밖에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엄살쟁이란 걸 깨닫자 약이 그닥 먹고 싶지 않았다. 대신 부작용이 하나 생겼는데 무슨 일에든 별로 감흥이 없다는 거다.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모든 일이 둔탁한 울림으로 멀게 다가온다. 아빠는 아빠고 엄마는 엄마이며 나는 나다. 우린 모두 독립된 세 명의 다른 인간일 뿐이다. 도미노처럼 서로 기대어 다 같이 자빠질 이유가 없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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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향수 냄새가 바람에 실려 포자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쉴새없이 빠르게 속닥거리며 움직이는 입술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그 아이들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비밀스러운 동굴의 입구처럼 입안의 검은 암흑이 보이다 사라지다 한다. 내가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날숨에 실려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 P42

우유 냄새와 아이의 땀 냄새, 축축하고 더운 습기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어둡고 폐쇄적인 구석진 방들. 가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모퉁이 같은 장소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와 단둘이 그리로 몸을 완전히 구겨 넣는 일 같은 거였다. 그 안에서 엄마들은 아무도 모르게 늙어 가고 아이들은 자란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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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삶을 견디는 나름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었다. 뒷자리 여자는 안 돼.‘라는 말을 연발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유형이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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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모임을 떠난 사람들이 불행하기를 내심 바라는지도 모른다. 자기는 어떻게든 버티며 남아 있는데 떠난 사람들이 행복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떠난 사람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애써 불행을 연기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사람들의 행복과 행운을 빌어주는 영화 장면이 늘 감동적인 것은 그게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 P120

1학년 때의 그 친구 말이 떠올랐다. 떠난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 그냥 떠난 사람일 뿐이다. 남아 있는 사람도 위너가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사람일 뿐이다.  - P122

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 P137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럴 때면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계속 쓰면 되고, 되고 싶지 않으면 안 쓰면 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면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 학생들은 ‘하고 싶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의 마음. 나는 누구에게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몰랐고, 알아도 줄 수 없었다. - P141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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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아내가 엄마의 말에 매번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그 ‘앎‘의 정확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부모에게 부여한 앎의 권력(자식의 ‘명목상의‘
저자라는 권위)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엄마는 자식을 정말로 잘 알았던 것이 아니라 ‘자식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력‘, 즉 다른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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