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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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텔의 종조부 솔리망 씨가 죽지 않았다면 이 책은 한 편의 동화처럼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연보라색의 집을 짓는 상상을 하면서도 에텔은 행복했으니까. 꽤 오래 이곳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종조부 솔리망은 유일하게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그것은 삶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다가왔기에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에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에텔의 모습에 안도하게 되었다고 할까. 때문에 그녀의 사랑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니스와의 위험스러운 우정에 더 긴장감을 느꼈다.

 

에텔은 어린 시절 제니스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제니스에게 색다른 관심을 가진 것일까. 사랑?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니스와의 모든 것에 질투를 느끼는 에텔을 보면서 이건 사랑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지고 점점 여성스러워지는 제니스를 보는 것에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솔리망 씨가 살아있었을 때 에텔은 자신의 감정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부모의 불화, 불안정한 세상에 불안을 느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솔리망 씨의 죽음은 에텔의 한 부분을 앗아가 버린다. 그 중에 하나가 세월이다. 솔리망 씨가 죽은 후 그에게 재산을 상속받은 에텔이 이 모든 재산을 아버지 알렉상드르가 탕진하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의 포화속에 놓여진 에텔에게 작은 희망마저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어린 소녀였던 에텔이 단숨에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현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제니스와 함께 했던 어린 날의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되돌아 보기엔 이마저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질 정도로 삶은 가혹하다. 이런 중에 에텔에게 찾아온 사랑은 마음의 안정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이 사랑이라도 없었다면 에텔이 너무 가여워진다.

 

에텔의 어머니 쥐스틴은 수동적인 여성으로 에텔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알렉상드르와 잦은 다툼을 하면서도 남편이 에텔이 물려 받은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묵과하고 남편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또한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을 때 그 재산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모두 에텔에게 시련만 안겨줄 뿐이다. 전쟁도 에텔에게는 절망만 안겨줄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 쥐스틴처럼 모든 것에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면 이 책의 결말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이는 에텔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삶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성임에도 여성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 '황금물고기'에서도 감탄한 일인데 어째 여자인 나보다도 더 이렇게 감성적으로 쓸 수 있는지 놀랍다. '허기의 간주곡'에서 에텔이 겪은 일이 아주 힘들고 불행한 일임에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이 이 책을 한 편의 서정적인 작품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처한 불행한 운명에 함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해야 함에도 한 편의 동화가 행복하게 마무리 될 것처럼 모든 일이 잘 될 것처럼 안심하게 된다. '황금 물고기'에 등장한 주인공 라일라가 이 '허기의 간주곡' 책 제목에 더 잘 어울리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역경을 이겨낸 라일라 역시 그다지 비참한 모습으로 기억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에텔과 라일라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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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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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매케일렙의 심장이 내 손 안에서 아니, 매케일렙의 몸 안에서 쿵쿵쿵쿵 뛰고 있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이클 코넬리가 책 제목에서도 충분히 이 책이 어떤 책이라는 것을, 그 흐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었으나 이 또한 나에게는 와 닿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야 그동안 지나치고 놓친 것들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매케일렙이 악의 수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나는 매케일렙이 괴물이 된다고 해도 이 책의 첫 장을 망설임 없이 넘겼을 것이다. 넘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케일렙과 상관없이 전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범인의 살인동기 무엇이었는지 너무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블러드 워크'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의 살인 동기가 이해되지 않는다. 잡히지 않고 살려면 매케일렙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텐데 범인은 FBI를 그만둔 그를 왜 세상으로 나오게 한 것일까. 매케일렙 또한 자신과 똑같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질문을 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육감이 그렇게 말한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악의 수혜자가 된 매케일렙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범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겠지만 매케일렙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한다. '악'에 노출된 모든 이들이 '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 나는? 이런 질문은 나중에,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우선 나와 매케일렙과의 만남부터 떠올려 봐야겠다. 매케일렙이 FBI시절 연쇄살인범 '시인'을 상대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매케일렙과 나의 만남은 '블러드 워크'에서 처음 만나는 것 같다. 매케일렙이라는 이름이 낯설기 때문인데 그와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해도 할 수 없다. 해리 보슈 시리즈에서 언급되는 미키 할러 2세(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주인공. 또 미키 할러는 해리 보슈의 이복 형제), '블러드 워크'에서도 윈스턴이 매케일렙에게 언급하는 미키 할러 2세, 이렇듯 마이클 코넬리가 창작한 주인공들은 책이 끝나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생생하게 나의 주위에서 살아 숨쉬고 있으니 누구를 어디에서 만났든 그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현재가 중요하다.(나의 기억력의 문제를 이런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도망간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해리 보슈 시리즈 '블랙 에코', '블랙 아이스'를 읽었기에 '블러드 워크'에 매케일렙이 아닌 해리 보슈가 등장했다면 이 책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해 보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결말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범인을 대면했을 때 하는 행동은 둘 다 똑같았을 테니까. 범인을 향한 증오심, 악에 대항하는 행동은 매케일렙과 해리 둘다 비슷하다. 그러나 해리는 매케일렙처럼 높은 탑처럼 쌓인 서류들을 진득하게 앉아서 읽을만한 인내심은 조금 부족하다.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저돌적인 면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매케일렙은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런 두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정의'를 위해 법을 어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 먼저 챙기다가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소중한 사람도, 사랑도 잃게 되니까. 선 응징 후 조치를 취한다. 이점이 독자들이 마이클 코넬리의 책에 열광하는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블러드 워크'를 읽기 전 '시인의 계곡'의 몇 장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매케일렙을 만나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매케일렙이 죽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범인의 힘이 두려워 범인과 매케일렙의 대면하는 장면부터 빠르게 넘겨 보았다. 이같은 행동을 하고 난 뒤에 나는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데, 긴장감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느낀 것이다. 죽은 자들이 등장하고 그 죽음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책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활발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낯설다. 잦은 만남으로 서로가 점차 익숙해지고 그들과 나 사이에 유대감이 생겨 더 이상의 불행을 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블러드 워크'를 읽은 후 '시인의 계곡'을 읽으려 했으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어 매케일렙과의 만남은 이 책으로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아직은 '시인의 계곡'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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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2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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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아이스크림 이름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었는데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실비아가 말해준 조심하라는 뜻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블랙 아이스'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제 2편에 해당된다. (방금 내 손가락이 해리 포터라고 썼다가 지웠다. 이게 왠일? 아직도 해리 보슈라는 말이 입에, 아니 손에 붙지 않는가 보다.) 이 책은 경찰인 칼렉시코 무어가 산탄총에 의해 죽고 난 후 해리 보슈가 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2편에서 이렇게 독자들의 기운을 다 빼버리면 다음 시리즈는 어떻게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 세 개의 사건이 하나로 이어지고 이 모든 퍼즐을 해리만이 풀 수 있게 한 설정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원 톱을 내세워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블랙 에코'를 읽고 난 후 해리의 입지가 불안정해서 2편부터는 사립탐정으로 나서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아무도 해리를 건드릴 수 없었던가 보다. 독자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아주 깔끔하게 사건을 처리해내는 솜씨에 해리를 내쫓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큰 힘을 쓰지도 못하고 나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들은 '블랙 아이스'에서도 해리가 내미는 진실에 무릎을 꿇고야 만다. 이점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진실이 묻혀지더라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든다.

 

일단 '블랙 아이스'를 읽으면서 머릿속을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든 문제들 중 하나는 무어의 죽음이었는데 '무어가 자살했느냐, 타살이냐'의 문제는 자살은 아니고 타살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것만이 문제가 되었다면 이렇게 머릿속이 엄청난 해일이 몰려온 듯 초토화 되지는 않았을텐데 칼렉시코 무어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쳐 진실을 알아내는 사람은 역시 해리 보슈뿐이라 그만이 독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줄 수 있어 해리 혼자서 모든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겠다. 항복!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얌전하게 책장만 넘기기로 마음을 굳혔다. (두 손은 내려야 책을 읽을 수 있으려나.)

 

신종 마약 '블랙 아이스'를 둘러싼 이권 다툼,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들의 죽음. 이 모든 것이 해리 보슈를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파운즈는 실적을 올리고자 해리를 이용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해리를 무어의 죽음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게 하였으니 아무도 보이지 않은 곳에 가서 파운즈가 운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겠다. 사실 파운즈의 지시가 없었어도 해리 혼자서 충분히 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갔을테니 이렇게 생각하면 파운즈가 좀 덜 억울할라나. 해리가 좀 이기적이긴 해도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니까 이 또한 파운즈가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다. 아랫사람이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고 자기 말을 안들으면 화가 나긴 하겠지만 실력이 좋으니까 이해하고 앞으로는 해리가 하는 일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줬으면 좋겠다. 해리를 괴롭히는 사람으로는 어빙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2편에서도 해리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부터 외로웠던 해리에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 것은 좋은데 왜 이렇게 아픈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라 끌리는 것인지, 발랄한 아가씨가 해리 보슈의 곁에 머무르면 안되는 것일까. 이게 그리 큰 욕심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해리가 12월의 마지막 날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안심이 된다.

 

이제 해리 보슈 시리즈 3편을 읽기 전에 잠시 해리 보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질까 한다. 너무 긴장하며 따라 다녔더니 숨이 막혀서 말이다. '블러드 워크'를 읽을 생각인데 이 책도 살짝 들여다 보니 해리 보슈 못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 같다. 막혔던 숨이 '블러드 워크'에서 터져야 할텐데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어쨌든 해리 보슈는 조만간 또 만나게 될 것이다. '블러드 워크' 다음에 '시인의 계곡'을 읽을테니까. 올해는 해리 보슈와 함께, 나의 하루들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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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0
야마다 에이미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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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뜬금없이 등장하는 고사카 히토미 씨의 죽음에 대한 글, 아마도 독자들 중 그 누구도 이 글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 때부터 알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뒤에 가서 또 등장하는 다른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글이 어떤 의미였는지 책을 중간까지 봤을 때야 이 글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되면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때부턴 다섯 명의 아이들 히토미, 치호, 신타, 무료, 모토코의 성장을 담고 있는 글로 생각하고 가볍게 읽었던 마음가짐을 버리게 된다. '성장소설이 아니었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을 담아놓은 책이야' 나의 마음이 속삭인다. 야마다 에미이의 "학문"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성장해가는 아이들이 '성'에 눈을 뜨며 이성을 사랑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을 다 읽게 되면 "학문"이란 책 제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며 흡족한 마음이 된다.

 

후토미라 부르며 언제나 히토미를 지켜주는 신타, 가난하지만 절대 기죽지 않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그게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니,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 알고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많이 놀랬다. "그래 신타, 너는 나쁜 남자였구나" 히토미가 아닌 다른 여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안 후 나는 신타를 이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뒤에 히토미도 그녀에게 신타는 단지 동경의 대상일 뿐이라 신타가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했었다는 글을 본 후 곧 이 생각을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서로의 인연의 고리들을 이용하며 가장 치열했던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고 단지, 이성에 눈을 뜨는 과정을 함께 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일 뿐, 어른들의 눈으로 보며 누구와 누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료와 모토코를 보면서 신타와 히토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끝까지 버리지 못했다.

 

나도 히토미, 신타, 치호, 무료, 모토코들과 같이 이런 어린 시절을 겪었다면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면, 살아가는데 좀 더 힘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어린 시절이, 추억이 부럽다.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럽다. 세상을 모두 가지고 싶었던 꿈을 크게 펼쳐 보지 못했던 신타에게 가난은 큰 걸림돌이었다. 가장 친한 아이들을 대할 때도,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갈 때도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지 못했지만 히토미가 목격한 신타의 눈물은, 지금까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었는지 보여줘 나의 가슴까지 먹먹하게 만든다. 무료를 위해, 아니 자신을 위해 미래를 계획하는 모토코, 늘 달콤한 잠에 빠지는 치호, 모두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손에 탄생된 주인공들이지만 어른이 되어서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알게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모습과 겹쳐져, 아, 이렇게 살았구나 하며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그들다운 삶을 살았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어도 더 이상의 가슴앓이는 없었다.   

 

남자애들이 뭘 숨기면 십중팔구 '그것'에 관한 이야기, 여자애들이 뭘 감추면 이것 역시 십중팔구 '그것'에 관한 이야기. '성'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게만 보였다. 어른들이 숨기며 소근거리고 이야기하는 '그것'에 대한 느낌은 욕망의 한 덩어리로만 보이지만 신타, 히토미, 치호, 무료, 모토코가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겪을 수 있는,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보여 정말 잘 자라고 있구나 내심 감격하게 되는 어떤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나까지 순수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이 책은 정말 멋진 한 편의 청춘소설, 성장소설이라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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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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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은궐 저자가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뒷 편의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 이어 속편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 끝을 맺었지만 그동안 용하의 알 듯, 모를 듯 자신의 신변에 대해 의미심장하게 던지는 말들로 인해 독자들은 긴 여운을 느끼고 무언가 미흡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한편으론 책이 또 나올 수도 있겠다고 기대하게 된다.

 

선준, 윤희, 재신, 용하가 주축이 되어 이끌어가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보다 그 작품성이 뛰어나 역시 원작소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윤희가 선준과 혼례를 올렸으나 우례를 치르지 않아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함으로 선준과 윤희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윤식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그 결말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다. 과연 자연스럽게 결말을 맺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아울러 재신과 다운의 사랑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이것 또한 궁금한데 지금 내가 질문한 것들은 수많은 질문들 중에 몇 되지 않는다. 작가 정은궐은 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모두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반드시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의 뒷 이야기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식구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는다는 이유로 윤희가 윤식으로 살아가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한 욕망은 선준의 사랑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학문에 대한 열정, 여자이기에 갈 수 없는 길,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자 하는 열망은 윤식에게 자신의 이름을 돌려줘야 함에도 선뜻 내어줄 수가 없다. 내어줄 수가 없다고 변명한다. 선준의 말대로 자신의 아내자리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건가. 복에 겨운 투정이다. 선준의 아내자리가 보통 자리인가. 권력의 중심에 있는 영의정의 아들 선준과 사돈을 맺고 싶어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듯 왜 윤식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놓지 못하는 것인가. 선준과 함께 하는 것만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욕심은 끝을 모른다.

 

윤희와 선준의 로맨스에, 재신의 윤희를 향한 마음에 윤식의 자리를 생각지 못했다. 서영의 "당신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에 "김윤식입니다"라고 답할 수도 없는 윤식의 처지, 그는 그동안 얼마나 암담했을 것인가. 나오는 것은 눈물 뿐이었을 것이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충분히 불행한 결말로 끝맺을 수 있었다. 윤희와 그녀의 가족들이 죽어 나가고, 윤희를 살리기 위해 선준과 재신, 용하가 뛰어 들고,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결말을 떠올릴 수 있지만 '왕'의 자비로움과 선준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모두 행복해지는 결말을 맞는다. 재신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고, 용하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는 듯 하지만 벗들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모두 행복했을 것이다. 그동안 윤희가 여자라는 것이 들통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독자들만 죽어 나갔을 뿐이다.

 

몇 년의 세월만으로도 윤희가 윤식으로 살아간 시간이 잊혀질 수 있을까. 향안랑 4인방들 외에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가 몇 될 것 같은데 그대로 묻혀질 수 있을까. 이제 완전한 윤식의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윤식의 결심이,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 위해 떠나는 윤희의 모습에 겹쳐져 불안해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완전하게 끝을 맺지 못했다. 삶은 계속 이어지므로 이렇게 끝맺어도 된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나는 향안랑 4인방과 윤식이 펼쳐가게 될 세상이 궁금하다. 나도 그들과 같은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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