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텔의 종조부 솔리망 씨가 죽지 않았다면 이 책은 한 편의 동화처럼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연보라색의 집을 짓는 상상을 하면서도 에텔은 행복했으니까. 꽤 오래 이곳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종조부 솔리망은 유일하게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그것은 삶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다가왔기에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랑에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에텔의 모습에 안도하게 되었다고 할까. 때문에 그녀의 사랑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제니스와의 위험스러운 우정에 더 긴장감을 느꼈다. 에텔은 어린 시절 제니스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제니스에게 색다른 관심을 가진 것일까. 사랑?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니스와의 모든 것에 질투를 느끼는 에텔을 보면서 이건 사랑이 아닌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이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워지고 점점 여성스러워지는 제니스를 보는 것에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솔리망 씨가 살아있었을 때 에텔은 자신의 감정 어느 한 부분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부모의 불화, 불안정한 세상에 불안을 느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솔리망 씨의 죽음은 에텔의 한 부분을 앗아가 버린다. 그 중에 하나가 세월이다. 솔리망 씨가 죽은 후 그에게 재산을 상속받은 에텔이 이 모든 재산을 아버지 알렉상드르가 탕진하기까지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의 포화속에 놓여진 에텔에게 작은 희망마저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어린 소녀였던 에텔이 단숨에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현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제니스와 함께 했던 어린 날의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되돌아 보기엔 이마저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질 정도로 삶은 가혹하다. 이런 중에 에텔에게 찾아온 사랑은 마음의 안정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이 사랑이라도 없었다면 에텔이 너무 가여워진다. 에텔의 어머니 쥐스틴은 수동적인 여성으로 에텔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알렉상드르와 잦은 다툼을 하면서도 남편이 에텔이 물려 받은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묵과하고 남편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또한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사기꾼들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었을 때 그 재산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모두 에텔에게 시련만 안겨줄 뿐이다. 전쟁도 에텔에게는 절망만 안겨줄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 쥐스틴처럼 모든 것에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면 이 책의 결말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이는 에텔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삶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성임에도 여성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 '황금물고기'에서도 감탄한 일인데 어째 여자인 나보다도 더 이렇게 감성적으로 쓸 수 있는지 놀랍다. '허기의 간주곡'에서 에텔이 겪은 일이 아주 힘들고 불행한 일임에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이 이 책을 한 편의 서정적인 작품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처한 불행한 운명에 함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해야 함에도 한 편의 동화가 행복하게 마무리 될 것처럼 모든 일이 잘 될 것처럼 안심하게 된다. '황금 물고기'에 등장한 주인공 라일라가 이 '허기의 간주곡' 책 제목에 더 잘 어울리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역경을 이겨낸 라일라 역시 그다지 비참한 모습으로 기억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에텔과 라일라 모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