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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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에도 난이도가 있다면 이 책은 어느 정도에 해당할까.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되는 SF 소설을 독자인 나로서는 백프로 이해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난이도의 평점을 정해 봤는데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난이도 별 5개정도였고 마지막까지 다 읽은 지금은 난이도 별 3개쯤으로 생각된다. 각 단편들의 성격은 비슷했다. 뜬금없이 결말이 나오고 그 뒤에 사건들이 등장할 때도 있었고 차근차근 처음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들도 있었지만 툭툭 내뱉은 작가 특유의 성격은 각 단편들마다 사라지지 않았다.

 

각 단편들 중에 [여우골] 한 편 만이 SF 소설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 책이 '듀나 단편 소설집'이라고 했을 때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님에도 꼭 이 책속에 SF 소설만 들어 있어야 할 것 같아 조금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단편 [여우골]을 읽으며 익숙한 내용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괜찮았다, 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무서운 이야기라 이 단편도 읽는 동안도 썩 여유롭진 않았다.

 

단편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책 제목으로 정한만큼 이 단편에 대한 애정이 클 터인데, 단편 [안개 바다]와도 시대적 상황이 비슷한 단편인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는 작가의 세계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작품이다. 브로콜리 평원에서 만난 북한 사람, 그 누가 되었든 우주에서 만나면 적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브로콜리 평원에서 북한 사람을 만난다는 설정이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곳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에 헛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북한 사람 진호가 아이들과 함께 도망가지 않고 굳이 청수와 대면한 것은 뼛속 깊이 새겨진 역사가 그리 만든 것은 아닐까. 아이들만으로도 청수를 손쉽게 죽일 수 있었기에 진호의 죽음은 헛된 죽음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세계가 발전하고 우주에까지 식민지를 건설하여 살아갈 수 있다 해도 결국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처럼 인류는 문명을 이루기 훨씬 전의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가게 되어 굳이 지금 현재보다 편리한 미래를 꿈꾸고 싶지 않게 한다. 환경에 맞게 몸이 점점 바뀌고 (퇴화한다고 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래 살 수 있게 된다 해도, 우주에서 살 수 있게 된다 해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SF 소설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태어난다. 현재를 바탕에 두고 미래를 꿈꿔야 하기에 독자들이 읽기에도 크게 무리가 따르지 않은 작품들이 등장하지만 이 점이 SF 소설 장르들의 단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엔 미래를 그리라면 어김없이 로보트가 등장하고 UFO가 날아다녔다. 지금도 그 때와 달리 큰 변화는 없지만 로보트가 등장하는 것은 영화나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해져서 굳이 미래를 떠올리지 않아도 눈 앞에 그려져 오히려 SF와 미스터리가 접목된 작품들이 더 미래와 가깝게 느껴진다. 더 편리해져 있을 미래에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리 억울해 할 것은 없단 얘기다. 뭐, 이렇게 말해도 우주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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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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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이 있다는게 현실에서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거야? 트렁크에서 음악듣고, 게임도 하고, 독서도 하며, 잠까지 자는 '트렁커'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기에 꽤 유쾌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게임하듯 발랄하게 고백한다는 내용치고는 상당히 끔찍하고 어두워서 당혹스럽다. '름'의 상처에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겠나. 름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이 어디 그냥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일이던가. 내 기억속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름'의 이야기와 그의 아버지의 끔찍한 기억들이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힐까 무섭다. 작가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고 무슨 방법이 생기나. 이런 내용인줄 알았으면 안 읽었을텐데 하며 원망하면 뭐하나 다 부질없는 일이다. 작가의 얼굴에 이런 내용이요, 하고 써 있지도 않으니 끝까지 읽은 나의 잘못이다.  

 

'치킨차차차'라는 게임을 통해 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정은 온두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용기를 내게 만들며, 트렁크가 아닌 밝은 햇살이 비추는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치유의 힘을 가진다. 그러나 죽음, 폭력 등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모든 사건들을 담아 놓아 게임을 할 때마다 하나씩 고백하는 설정은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분명 유모차를 판매하는 온두의 일에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온두가 "그놈의 인공지능"이라고 말해도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며 인라인을 타거나, 오르막이 있는 곳에서 유모차를 손에서 놓쳐 아기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일 같은 것이 소설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어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던가. 그런데 온두의 기억속에 있는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뉴스에서, 다른 장르의 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을 '트렁커'라는 책에서 대면하는 것에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꿈 속의 일인지, 온두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인지 모른다 했을 때 외면해 버렸다면 '이름'과 '온두'의 일에 가슴 아프지 않았을텐데 좀 더 일찍이 이 책을 덮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잡아 끌었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트렁크'는 우리들에게 범죄의 냄새를 풍기는 장소다. 추리, 스릴러 장르의 책을 많이 읽은 탓이겠지만 트렁크에는 차에 필요한 부품이나 납치를 하고 시체를 싣고 다니는 그런 장소로 기억될 뿐이다. 트렁크가 닫히고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열 수 없는 그런 장소. 하지만 '트렁커'에서는 트렁크에서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독자들도 이곳에서 몸을 뉘어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편안한 장소로 말이다. 트렁크 문이 닫히면 숨이 막힐 것 같지만 두 사람이 들어가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면 꽤 넓을 것이고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으며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안락한 장소로 변했다. 그러나 이곳도 현실과 떨어질 수는 없었다. 상처를 트렁크 밖에 두고 들어갈 수 없었으며 과거, 현재, 미래도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는 트렁크에는 '사랑'만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이름과 온두가 트렁크에도 사랑이 깃들 수 있게 했다. 용서와 치유의 힘으로. 다행히 '이름'과 '온두'의 결말이 따뜻해 나의 기억속에 있는 '트렁커'에 대한 나쁜 기억들도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내가 본 달은 지금의 온두가 바라보는 노른자처럼 밝다. 언제까지나 그랬음 좋겠다. 온두와 이름이 더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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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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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엇,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핸드폰끼리의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되면 풋,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리얼궁상만화라는 것을 처음 대하고 "궁상 좀 그만 떨지" 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슬픔이 가슴에 켜켜이 쌓이게 되면 웃음이 터져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얼굴이 잠깐 일그러지다 말 뿐이다. 대체 어디다 시선을 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은 사회에 첫 발을 떼어 놓지 않은 주인공들이 벌써 이렇게 힘들어서야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보이겠다. 분명 색깔이 들어간 그림인데도 화사하다는 느낌이 없다. 그래도 죽을만큼 힘든 삶이라도 가끔 웃게 될 때도 있는 법,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아주 잘 살려 놓았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슴 녹용이만큼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가. 아니 세상의 나쁜 점을 정확하게 콕 집어낸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무서운 녀석이다. 늘 궁상인 최군과 재호, 정군이 손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도 녹용이는 갖은 애교를 떨어야 얻어내는 것을 보면서 삶이 그리 불공평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니,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간다. 책장을 덮어야 할까. 

 

녹용이는 실제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여자들에게 작업할 때 사슴피 필요하지 않냐고 하는 것을 보면 이들 중에 가장 유머감각이 뛰어나니 말이다. 사슴피를 많이 뽑아내면 죽느냐고 오열하는 연기를 할 때는 정말 연기가 수준급이었다. 주인공들의 모습이 좀 더 잘생겼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리얼궁상만화인만큼 이들이 습지생태에서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맞춰진 캐릭터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가끔 최군의 멋진 모습을 보긴 했지만 습지에서 살아남으려면 눈빛도 이렇게 변할 수 밖에 없을 거다. 최군, 재호는 눈만 쳐다봐도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 것인지. 컴퓨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몽찬이도 이 습지에서 함께 기거하는데 나는 그가 귀신인 줄 알았다. 왜 느닷없이 컴퓨터에서 나오냐고. 그런데 이녀석도 역시 사람이었던 거다. 뿔로 술을 사 먹은 녹용이까지 이 집에는 정말 제대로된 인물들이 없지만 가장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이들이기도 하다. 그새 벌써 정이 듬뿍 들었군.  

 

최규석에게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지만 '대한민국 원주민', '울기엔 좀 애매한', '습지생태보고서'의 만화속에까지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으면 만화를 그리는 일이 즐거우냐고 물어 보고 싶지만 이들 만화가 나에게 힘을 내라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이 질문은 그냥 묻어 둘까 한다. 어린 시절 순정만화를 보며 가슴 설레였던 시간이 언제 있었냐는 듯 늘 현실에 묻혀 살아왔지만 역시 만화는 나의 순수한 일면을 드러나게 한다. 아닐 거라고? 아님 말고. 늙어서도 꼭 읽고 싶은 책이 이 만화 장르인데 눈이 침침해서 글이 작은 만화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월이 더 흘러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만화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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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비가 내리는 나라 꿈터 지식지혜 시리즈 7
이동태 글, 박일구 그림 / 꿈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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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은 참 아름답다. 잔혹동화, 암흑동화라고 해서 결말이 무시무시한 것들도 있지만 동화 속 세상은 지금의 현실보다 아름답다. 색깔비가 내리는 나라라니 전혀 상상도 못해 봤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살아가지만 봄이면 왜 꽃이 피는지, 여름이 되면 왜 나뭇잎이 푸르러지는지, 가을이 되면 단풍은 왜 지는지 알지 못했다.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리는 이유조차 과학적으로만 알 뿐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생겨난 현상인 줄 알지 못했다. 물론 책 속 동화속에서 말이다. 꽃이 피면 봄이구나, 단풍이 지면 가을이구나 하며 살아왔다. 아이에게 이렇게 색깔비가 내려 계절이 변한다고 알려주면 안되겠지만 이곳이 동화속 세상이고 아직은 세상이 무서운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색빨비가 내리는 나라'를 보여준다고 해도 큰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동화속에서도 어른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분홍비를 내려 온 나라에 꽃향기를 가득하게 하고 여름이면 녹색비를 내려 풀과 나무들이 쑥쑥 자라게 하며 가을이면 주황비가 내려 나뭇잎들이 단풍이 드는 이 아름다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두 가지, 세 가지씩의 비가 내리면 좋겠다며 작은 구름에게 말하다니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건지.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과 비슷하게 생긴 이 작은 구름은 참 착하기도 하다.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니 말이다. 손도 발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오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겠지.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세 개의 계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겨울만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세상이 하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이곳에서 하얗게 눈이 내리는 겨울은 이 세상의 암흑과 다르지 않다. 춥다. 너무 춥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추운 겨울이 되어 버린 색깔비가 내리는 나라. 이렇게 세상이 온통 계속 얼어붙으면 사람들을 볼 수 없게 되어 버릴 것 같다.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까지 얼어버릴 정도로 이 곳의 추위는 대단하다. 세 가지 색깔이 합쳐지면 이렇게 하얗게 되나? 빨리 분홍비가 내려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작은 구름을 찾으러 사람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현실과 다르게 한 번은 기회가 주어지는 동화 속 세상, 이제 작은 구름에 의해 색깔비가 다시 내리게 되었다. 우리들에게도 삶이 조금은 너그러우면 좋을텐데. 조그만 욕심이 어떤 화를 가져오는지 알게 되는 현실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이 살아가기에도 너무 가혹하다.

 

색깔비가 내리는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아이야, 너는 어디에 있는지 아니? 아이들 눈에는 보일 것 같은데. 분홍비, 녹색비가 내려도 그냥 다 똑같은 비라고 생각해 버리는 나는 작은 구름이 살고 있는 색깔비가 내리는 나라가 눈 앞에 있어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너무 많이 자라 버렸으니까. 큰 나뭇잎을 머리 위에 가리고 뛰어다닌 어린 시절도, 들판을 뛰어 다닌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는 난, 높게 지어진 빌딩 사이에 갇혀 이렇게 세월을 보내야 하나 보다. 이것보다 더 잔혹한 결말이 어디 있을까. 동화와 현실을 명확히 구분한다는 것이 어째 더 가슴 아프다. 책 속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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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 이외수의 감성산책
이외수 지음, 박경진 그림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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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다니, 인간만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문명을 이룩하고, 더 멀리는 우주에까지 그 관심을 넓히고 있으니 자연을 그 모습 그대로 놔 두지 않고 파괴해 버리는 일이 백해무익한 일이지만서두 이렇게 때론 작가의 상상력만으로도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기도 하니 인간의 상상력을 무조건 나쁘다 말할 수도 없겠다.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니? 어떻게 날개를 달아줘? 달아준들 날아갈 수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이 책의 첫 장을 열게 했다면 이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 나의 등에서도 숨겨져 있던 날개가 돋아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 아님 말고.

 

한 문장, 한 문장 기억하고 싶고, 마음속에 내밀하게 담아 두고 싶은 글들이 참 많다. 잊지 않기 위해 문장이 쓰여진 책장을 찢어 씹어 삼키고 싶지만 책 반 권이라 되는 양을 먹다간 죽을 터라, 힘들 때, 슬플 때 이 책을 펼쳐 조금씩 읽자 기억해 둔다. 작가의 외모와 전혀 다른 느낌의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머릿속에는 어떤 세상이 그려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렇게 독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머릿속에 있는 글들을 지면에 찍어주니 고마울 밖에.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감정과 세월이 묻어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어디 쉬울 것인가.

 

이외수의 '하악하악'을 읽었을 때는 호흡곤란이라도 일어난 양 숨도 쉬지 않고 글을 몰아서 읽게 했지만 이 책은 잠깐, 아니 아주 긴 시간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모든 글이 이외수의 글은 아니었다. 이외수라고 쓰여진 글들만이 그의 글인데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글들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작가의 글이 지면을 차지하고 있으니 괜시리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간다. 내가 쓰지도 않았는데도 그렇다. 왜일까.

 

세상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을 보면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닫아 걸어 놓은 문들 뒤에도, 꼭 닫혀 있는 창문들 너머에도 따뜻한 공간이 있을 것이다. 소리를 내면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 같은 사각형의 방 안에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외로움을 달래지만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이 책 한 권이 나의 앞에 놓임으로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하는 착각에 빠진다. 책 위에 손가락을 가만히 올려 놓으면 어떤 수신호라도 받게 되는 게 아닐까 괜시리 마음이 두근거린다. 지금 UFO가 눈 앞에 나타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혹 이것이 현실이 아닌가.

 

아들 녀석은 이 책 표지 위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관심을 가지지만 나는 만져 보지 않아도 이 고양이가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확인해 보지 않아도 그림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라는게 왜 이렇게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아야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아직은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이 좋은가. 하얀 백지 위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이 좋은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의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므로 후회는 없으나 그래도 가지 못할 길에 대한 그리움은 남는다고 답하리라. 우리들은 늘 이 그리움을 뒤에 남겨두고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잊혀졌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내가 살아갈 이유를 알려준다.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상상력으로는 못해낼 것이 없다.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보다 더 힘들지라도, 온 세상이 감옥 같음에 모두 갇혀서 산다는 것에 헛웃음을 날리며 조금은 즐거워하는 작가처럼 나도 책을 읽으며 여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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