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이 있다는게 현실에서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거야? 트렁크에서 음악듣고, 게임도 하고, 독서도 하며, 잠까지 자는 '트렁커'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기에 꽤 유쾌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게임하듯 발랄하게 고백한다는 내용치고는 상당히 끔찍하고 어두워서 당혹스럽다. '름'의 상처에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겠나. 름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이 어디 그냥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일이던가. 내 기억속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름'의 이야기와 그의 아버지의 끔찍한 기억들이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힐까 무섭다. 작가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고 무슨 방법이 생기나. 이런 내용인줄 알았으면 안 읽었을텐데 하며 원망하면 뭐하나 다 부질없는 일이다. 작가의 얼굴에 이런 내용이요, 하고 써 있지도 않으니 끝까지 읽은 나의 잘못이다.  

 

'치킨차차차'라는 게임을 통해 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정은 온두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용기를 내게 만들며, 트렁크가 아닌 밝은 햇살이 비추는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치유의 힘을 가진다. 그러나 죽음, 폭력 등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모든 사건들을 담아 놓아 게임을 할 때마다 하나씩 고백하는 설정은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분명 유모차를 판매하는 온두의 일에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온두가 "그놈의 인공지능"이라고 말해도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며 인라인을 타거나, 오르막이 있는 곳에서 유모차를 손에서 놓쳐 아기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일 같은 것이 소설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어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던가. 그런데 온두의 기억속에 있는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뉴스에서, 다른 장르의 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을 '트렁커'라는 책에서 대면하는 것에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꿈 속의 일인지, 온두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인지 모른다 했을 때 외면해 버렸다면 '이름'과 '온두'의 일에 가슴 아프지 않았을텐데 좀 더 일찍이 이 책을 덮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잡아 끌었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트렁크'는 우리들에게 범죄의 냄새를 풍기는 장소다. 추리, 스릴러 장르의 책을 많이 읽은 탓이겠지만 트렁크에는 차에 필요한 부품이나 납치를 하고 시체를 싣고 다니는 그런 장소로 기억될 뿐이다. 트렁크가 닫히고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열 수 없는 그런 장소. 하지만 '트렁커'에서는 트렁크에서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독자들도 이곳에서 몸을 뉘어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편안한 장소로 말이다. 트렁크 문이 닫히면 숨이 막힐 것 같지만 두 사람이 들어가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면 꽤 넓을 것이고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으며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안락한 장소로 변했다. 그러나 이곳도 현실과 떨어질 수는 없었다. 상처를 트렁크 밖에 두고 들어갈 수 없었으며 과거, 현재, 미래도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는 트렁크에는 '사랑'만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이름과 온두가 트렁크에도 사랑이 깃들 수 있게 했다. 용서와 치유의 힘으로. 다행히 '이름'과 '온두'의 결말이 따뜻해 나의 기억속에 있는 '트렁커'에 대한 나쁜 기억들도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내가 본 달은 지금의 온두가 바라보는 노른자처럼 밝다. 언제까지나 그랬음 좋겠다. 온두와 이름이 더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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