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자. 시마다 소지, 작가의 말대로 독자들에게 '우메자와 가 점성술 살인사건'의 모든 증거들이 낱낱이 공개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은 오로지 이시오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존하여 범인을 밝혀낼 수 밖에 없었기에 독자들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낸 작가의 행동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점성술 살인사건이란 전대미문의 엄청난 살인사건이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서야 해결이 난 것은 오로지 탐정 미타라이의 공이라 할 수 있으나 '점성술'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미타라이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며 미타라이에 의해 이 사건의 모든 퍼즐들이 제자리를 찾았어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독자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지금 나는 울분을 어디에다 퍼붓고 있는 것인가. 에효.

 

'이방의 기사'로 미타라이와 이시오카를 처음 만났기에 이 두 사람이 콤비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제법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이번 사건은 사건의 진상을 백프로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 작가와 독자들간에 공감대 형성도 되지 않아 이건 뭐 어려운 문제만 잔뜩 적혀져 있는 교과서를 읽는 듯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이시오카와 미타라이가 주고 받는 대화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 없었으니 마지막 책장까지 아는 것이 없어 답답했다.

 

헤이키치가 '아조트'를 만들기 위해 딸들을 죽였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닌 것이 그가 점성술에 사로잡혔다고 하니까 믿기지 않는 일은 아니다. 허나 '우메자와 가 점성술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헤이키치가 죽었으니 대체 범인은 누구란 것인지. 미타라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 사건은 굉장히 단순하다. 범인이 누구인지 금세 알 수 있는 그런 사건인데 왜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해결 되어야만 했는가를 따져 보자면 이는 미타라이가 해결하기 위해 그런 것일 테지만, 처음부터 꼼꼼하게 수사를 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범인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 사건이 40년 이상 걸려서 해결될 줄 몰랐다고. 그만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었건만 불행하게도(범인에게는) 세월이 이렇게나 흘러서야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우메자와 가 점성술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지금의 시대에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지문감식이니 뭐니, 증거물 보존해서 파고들다 보면 범인이 40년 이상이 지나서야 밝혀지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40년 전에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서 미타라이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다. 세상 일에 관심이 없던 미타라이가 이다에게 의뢰를 받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이 사건에 뛰어든 이유는 한 경찰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살인자에 의해 철저하게 이용 당하여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편안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기에 미타라이는 이 사건의 살인자를 밝혀낸다. 하지만 이 같은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이 사건의 범인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미타라이의 진심이다.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미타라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으니까. '우메자와 가 점성술 살인사건'은 한 가족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것으로 독자들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사건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멋지다 열일곱
한창욱 지음 / 예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재하보다 두 배는 많이 살아온 내가 재하처럼 드림레이스를 한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변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생각들이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길을 분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질주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으니까. 이 책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십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방학이 시작되면 큰 원을 하나 그리고 계획을 꼼꼼하게 그려 넣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리한 계획으로 하루도 못 넘기고 포기해 버렸던 그 날, 나에게도 다연이가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갑자기 왜 이렇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성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잘 나가는 농구선수였다고는 하지만 재하는 열등생이었다. '두카티 999R'을 갖고 싶은 꿈을 가진 아주, 아주 평범한 소년. 솔직히 작은 가게를 하는 어머니와 대학을 중퇴하고 직장을 다니는 누나와 함께 사는 재하에게 '두카티 999R'은 말그대로 꿈일 뿐이다. 그저 하루, 하루가 늘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재하의 미래도 반전이 없는 한 같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멋지다 열일곱"은 한 편의 소설이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책들과 비슷하지만 행복해지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이 담겨져 있는 자기계발서가 일러주는 대로 하면 어떻게 미래가 바뀔 수 있는지 이를 소설로 엮어 재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기에 "~해야 한다"는 다른 장르의 자기계발서보다 "멋지다 열일곱"이 큰 공감을 얻는다. '나의 일대기'를 시작으로 재하가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 재하가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눈 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재하와 함께 등장하는 살인 사건에 연루된 강철의 이야기와 소년 가장이 되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창수, 열등생에서 전교 1등을 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한 태훈이, 그리고 꼭 바다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저바다' 정동우, 이들 모두가 모여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픔을 겪는 다연이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는지 보여주고 있어 성장소설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재하가 바이크를 훔쳐서 타고 달릴 때만해도 그의 삶은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분명 그는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책이 재하가 범죄자가 되어 끝이 났다면 다른 소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편의 소설로 사람들에게 그저 그렇게 읽혀지고 잊혀졌겠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질주하는 재하의 삶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도 희망을, 열정을 선사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아직 늦지 않았잖아? 숨쉬며 살아가는 날이 남아 있는 한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있잖아? 꼭 열일곱이 아니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 나에게 작은 용기를 내게 하는 이 책을 지금 만났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나의 삶에도 "멋지다 열일곱"이 다연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 주지 않을까. 재하가 다연이와 함께 하는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하고 나하고 둥둥아기그림책 2
유문조 글, 유승하 그림 / 길벗어린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라는 동요가 떠오르는 책이다. 아빠하고 나하고 책은 이 동요하고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 느낌은 비슷하지 않을까. 책 제목이 엄마하고 나하고이었다면 포근한 느낌이 들었을 텐데 아빠하고 나하고의 느낌은 든든한 울타리 속에 있는 듯 하다. 독자인 나도 그 울타리에 있는 듯 든든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아빠들이 큰 산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아무튼 험한 세상을 막아주는 것 같다. 아기들이 예쁘게 자랄 수 있게.


 


이 세상에서 내 아들이 가장 예쁘지만 책 아빠하고 나하고 그림 속에 나오는 동물 아기들 모두 귀엽고 예쁘다. 동물 아빠들은 아가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표현한다.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하고 아가와 함께 나서는 길에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지금 아기들은 커서 아빠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하겠지? 아빠처럼 키가 클거야, 아빠처럼 힘이 세 질거야 등 자라면서는 바뀌겠지만 처음에는 롤모델이 아빠일 것이다.


 


어린 펭귄을 썰매에 태우고 끌어주는 아빠 펭귄, 얼룩말 아빠는 아기 말과 함께 달린다. 자신의 입 속에 아기 악어를 앉히고 걸어가는 아빠 악어 등 이 세상의 모든 아빠와 아기의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고릴라가 아가 고릴라들을 팔에 매달고 있는 모습은 우리 인간 아빠들도 자주 하는 것이다. 발바닥 크기 재어 보는 아빠 곰, 아가 곰의 모습도 우리들이 자주 하는 놀이인데 이는 여느 동물 가족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에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현실에서 동물들은 자식들에게 다르게 애정을 표현하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그냥 책 속의 그림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동물들 중에 가장 힘에 센 동물은 아마도 사자일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빠들끼리 싸우면 사자가 단연 돋보이는 힘을 보여주겠지만 만약 아기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자식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만큼 모두 강한 아빠들이다. 우리 아들은 개를 좋아해서 '아빠하고 나하고'의 뒷표지에 있는 아빠 개와 아가 개 그림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만졌는데 아직은 이 그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저 동물 두 마리들이 책장마다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떤 동물들인지조차 모르지만 이것이 작게는 가족을 알아가고, 크게는 세상을 알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가족이란 따뜻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복 수사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주재소에 부임하여 근무하는 이야기는 사사키 조의 다른 책 [경관의 피]로 익숙한 내용이다.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제복 수사]라고 했지만 시골 마을 주재소에 부임한 카와쿠보 아츠시는 사건이 일어나도 수사에 관여할 수가 없다. 단지 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동네의 치안을 담당하는 정도로 주민 가까이에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거나 사건 발생시 위에 보고하는 일을 할 뿐이다. 강력계 형사였던 카와쿠보가 시모베츠 주재소에 내려오게 된 것은 개인으로 볼 때 불행한 일이나 이 마을 입장에서는 환영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곳 방법협회에서는 사건화 될 수 있는 일을 철저하게 은닉하고 동네 사람들끼리도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 등 아주 폐쇄적으로 대응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카와쿠보에게는 결코 장애가 될 수 없다. 그는 강력계에 있었던 실력을 발휘하여 13년 전에 일어난 여자아이 유괴사건까지 해결해 버리는 배테랑 경찰이다. 13년 전에도 카와쿠보가 이 곳 시모베츠 주재소에 근무했었다면 아야카는 지금 아주 예쁘게 자라있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이 마을에서는 사건이 벌어지면 마을의 폐쇄성으로인해 가족들 중 누가 죽어도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 채 마을을 떠나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는 무능한 경찰들이 사건을 맡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이들은 의욕도 없으면서 카와쿠보가 전해주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등 아주 편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카와쿠보는 수사에 참여할 순 없지만 그 나름대로 사건을 파헤치고 전체적인 사건의 윤곽을 그려내는 등 범인이 누구인지 가려내어 직접 처리하기도 하기때문에 독자들의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그러나 범인들을 법으로 응징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다.

 

[제복 수사]는 다섯 편의 단편들이 담겨져 있는데 첫 번째 단편 '일탈'에서는 일단 카와쿠보에게 미츠오를 죽인 범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지 않았는지 묻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범인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는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있으나 어떤 식으로든 미츠오를 죽인 범인은 죽을 수 밖에 없었을 터라 단지 그 죽음을 더 앞당기지 않았는지 궁금한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미츠오를 죽였는지 물어보는 것은 죽음 직전의 긴박한 상황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대답이었을 것이나 그 상황을 눈 앞에 떠올려보면 끔찍하지 않다 말할 순 없다.

 

도시에서와 달리 이 곳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이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구가 6천 명 정도의 작은 시골 마을이라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확연이 눈에 띌 정도로 마을 사람들간의 응집력이 큰 곳이다. 허니 이곳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외부인이 범인일 확율 보다는 마을 사람들 중에 범인일 확율이 크다.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범인이라니, 정말 섬뜩한 일이다.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살인만큼 그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

 

카와쿠보는 경찰이지만 약한 사람들에게 정이 많은 사람이다. 단편 '깨진 유리'에서는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이에게는 불륜 사실조차 가족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등 경찰로서는 해선 안되는 짓도 서슴치 않고 하는지라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헷갈리기게 되기도 한다. 뭐 이런 일들에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나름 통쾌하니까. 누구라도 가진 자들의 횡포에 약한 자들이 휘둘리는 것에 울분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 이에 카와쿠보가 작은 복수를 하는 것이지만 사실 경찰 신분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제복 수사]는 카와쿠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에 해당한다고 한다. 곧 이어 두 번째 시리즈 [폭설권]이 출간된다고 하는데 카와쿠보가 어떤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시골 마을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이 더 드러나게 될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될까. 주재소에 근무하는 카와쿠보는 시골에서 근무하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순경 아저씨를 떠올리게 해 그가 맡게 되는 사건의 끔찍함을 먼저 떠올리게 되기 보다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들이 독자들은 물론이고 피해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만 그도 많은 것들을 홀로 처리할 순 없을 것이다. 허나 조금쯤은 그에게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jy 2011-03-2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관점은 다르시지만 충분히 공감가는 멋진 리뷰세요^^ 자극받았으니 저도 리뷰를 조만간 작성해야겠지요! 아자아자 힘내자!!!
 
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원두커피래요. 원두커피래요"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내 이름이 왜 이런 것인지 서러워하며 눈물, 콧물 질질 짜곤 했을 것 같은 장원두는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을 추억했을 때 입가에 미소가 머물만한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 그 시절의 장원두는 원두커피란 말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훗날 마사오가 지어준 별명인 '떡보'가 더 잘 어울리는 그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화 속의 인물 마사오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마사오의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지역'으로 구불구불 올라가고 내려가는 버스 속에서 졸면서 운전하는 기사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며 옛 일을 떠올려야 하는 추억이 아닐 것이기에 이 상황이 화가날 만도 하건만 오히려 이렇게나마 조금씩 시간 속에 기억을 놓아 버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에겐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티끌 하나까지도.

 

장원두에 의해 나의 뇌리속에 깊숙히 박혀 있는 이미지 때문인지 '마사오'란 이름은 '지역'안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의 제왕이라도 되는 것 같다. 이름에 이미 황제, 왕, 제왕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 같다. 항아리 속 같은 '지역'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람들의 신화가 되어 버린 마사오의 전성기였던 한 시절을 노래하는데 실상은 마사오를 닮고 싶고 마사오를 동경했던 어린 날의 원두와 그의 친구들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으로 향하는 원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지역을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현재 마사오가 없는 지역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궁금해 이곳에 자신을 스며들게 할 수 밖에 없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오늘은 마사오가....." 하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야기를 꺼내는 원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마사오'에 대한 이야기는 시끄러운 교실을 조용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마사오를 동경했는가. 마사오를 빼 놓고서는 지역의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기에 몸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날씨 이야기를 하듯 그런 자연스러움? 그런데 대체 그가 어떤 존재이기에? 소문 속에서 부풀려진,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일 수도 있지만 원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분명 지역을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재였다. 신화와 역사의 중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마사오는 이제 역사 속에서, 이렇게 책 속에서 활자화 되어 세상이 기억하게 된다.

 

조직 간의 암투, 싸움은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이게 거친 남자들의 세계란 말인가. 아니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흔히 이 곳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자는 힘이 센 사람에게 안긴다. 성실한 원두의 품에 안기면 좋으련만 여자 대통령을 꿈꾸는 세희에게 원두는 대통령이 될 싹수는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다면 재천이는 그랬단 말인가. 아니, 원두에게는 결정적으로 세희를 끌어 안을 수 있는 큰 가슴이 없었다. 소문에 의해 만들어진 세희의 이미지는 원두에게 품에 안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장미향을 머금은 세희가 원두에게 첫사랑이 아니어서가 결코 아니다. 원두가 세희와 데이트를 한 그날 오후 그는 세희를 3시까지 사랑했다.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봐라. 원두가 우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딱딱하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무슨 청문회 같지 않은가. 그랬나? 그랬다. 온통 이런 말 뿐인 것 같다. 여기에 사랑이 있었나. 짐작만 있었다. 그리고는 끝인 것이다.

 

재천과 원두의 관계는 칼로 물을 끊을 때처럼 쉽게 끊어지지가 않는다. 마사오의 기억을 공유하는 한 이들의 관계를 끝이 날 수가 없다. 장례식장의 휑한 빈소에서 원두는 사라져가는 신화와 역사가, 자신의 지난 날을 보았다. 그러나 아직은 끝날 수 없는 이야기도 보았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외로움을 안고, 그런 자신을 감싸 안아준 광자가 있는, 여전히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희가 이 곳에서 원두까지 연결된 인연의 끈을 끊지 못하게 한다. 마사오를 기억하는 한 그는 지역을 떠날 수 없다. 이것이 원두가 나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이다.

 

내 눈동자 속에 면허증도 없이 자신을 운전하고 들어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렀다는 세희, 그녀를 표현한 원두의 마음만이 빛나 보이는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원두가 아니었으면 묻혀 버렸을 이야기들. 이제 새로운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 책이 아닌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이 책을 왕좌가 비에 맞지 않게 우산을 받치고 있는 한 남자에 의해, 그 사연에 대한 궁금증으로인해 낯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