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원두커피래요. 원두커피래요"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내 이름이 왜 이런 것인지 서러워하며 눈물, 콧물 질질 짜곤 했을 것 같은 장원두는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을 추억했을 때 입가에 미소가 머물만한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 그 시절의 장원두는 원두커피란 말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훗날 마사오가 지어준 별명인 '떡보'가 더 잘 어울리는 그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화 속의 인물 마사오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마사오의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지역'으로 구불구불 올라가고 내려가는 버스 속에서 졸면서 운전하는 기사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며 옛 일을 떠올려야 하는 추억이 아닐 것이기에 이 상황이 화가날 만도 하건만 오히려 이렇게나마 조금씩 시간 속에 기억을 놓아 버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에겐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쉽지 않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티끌 하나까지도.

 

장원두에 의해 나의 뇌리속에 깊숙히 박혀 있는 이미지 때문인지 '마사오'란 이름은 '지역'안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의 제왕이라도 되는 것 같다. 이름에 이미 황제, 왕, 제왕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 같다. 항아리 속 같은 '지역'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람들의 신화가 되어 버린 마사오의 전성기였던 한 시절을 노래하는데 실상은 마사오를 닮고 싶고 마사오를 동경했던 어린 날의 원두와 그의 친구들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으로 향하는 원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지역을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현재 마사오가 없는 지역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궁금해 이곳에 자신을 스며들게 할 수 밖에 없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오늘은 마사오가....." 하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야기를 꺼내는 원두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마사오'에 대한 이야기는 시끄러운 교실을 조용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마사오를 동경했는가. 마사오를 빼 놓고서는 지역의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기에 몸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날씨 이야기를 하듯 그런 자연스러움? 그런데 대체 그가 어떤 존재이기에? 소문 속에서 부풀려진,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일 수도 있지만 원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분명 지역을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재였다. 신화와 역사의 중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마사오는 이제 역사 속에서, 이렇게 책 속에서 활자화 되어 세상이 기억하게 된다.

 

조직 간의 암투, 싸움은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이게 거친 남자들의 세계란 말인가. 아니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흔히 이 곳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자는 힘이 센 사람에게 안긴다. 성실한 원두의 품에 안기면 좋으련만 여자 대통령을 꿈꾸는 세희에게 원두는 대통령이 될 싹수는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다면 재천이는 그랬단 말인가. 아니, 원두에게는 결정적으로 세희를 끌어 안을 수 있는 큰 가슴이 없었다. 소문에 의해 만들어진 세희의 이미지는 원두에게 품에 안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장미향을 머금은 세희가 원두에게 첫사랑이 아니어서가 결코 아니다. 원두가 세희와 데이트를 한 그날 오후 그는 세희를 3시까지 사랑했다.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봐라. 원두가 우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딱딱하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무슨 청문회 같지 않은가. 그랬나? 그랬다. 온통 이런 말 뿐인 것 같다. 여기에 사랑이 있었나. 짐작만 있었다. 그리고는 끝인 것이다.

 

재천과 원두의 관계는 칼로 물을 끊을 때처럼 쉽게 끊어지지가 않는다. 마사오의 기억을 공유하는 한 이들의 관계를 끝이 날 수가 없다. 장례식장의 휑한 빈소에서 원두는 사라져가는 신화와 역사가, 자신의 지난 날을 보았다. 그러나 아직은 끝날 수 없는 이야기도 보았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외로움을 안고, 그런 자신을 감싸 안아준 광자가 있는, 여전히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희가 이 곳에서 원두까지 연결된 인연의 끈을 끊지 못하게 한다. 마사오를 기억하는 한 그는 지역을 떠날 수 없다. 이것이 원두가 나에게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들이다.

 

내 눈동자 속에 면허증도 없이 자신을 운전하고 들어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렀다는 세희, 그녀를 표현한 원두의 마음만이 빛나 보이는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원두가 아니었으면 묻혀 버렸을 이야기들. 이제 새로운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 책이 아닌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이 책을 왕좌가 비에 맞지 않게 우산을 받치고 있는 한 남자에 의해, 그 사연에 대한 궁금증으로인해 낯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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