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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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설마 열린 결말? 준호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말을 맺어 버리니 잠이 확 달아날 정도로 당황스럽다.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아서 이런식이라면 심야버스괴담은 새로운 이야기를 또 만들어 내겠는 걸. 2002번 버스는 타지 말아야겠다. 심야버스라면 예전에 딱 한 번 타 보았는데 생기라고는 없는 지친 모습들을 한 사람들만 가득했었다. 미어 터져서 앉을 자리도 없어 서서 가야만 했던 그 때 상황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편안하다고 할 수 없었다. 지금 심야버스괴담의 장소인 2002번 버스 안도 그 때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승객 수가 별로 없어서 적막하다는 것, 술 취한 승객 하나가 운전하고 있는 기사를 위협하며 승객들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지친 심신을 부려 놓으며 창 밖에 드리워진 어둠을 쳐다보며 집이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렸는데 버스 안은 온갖 추악한 모습을 한 승객들 뿐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 '심야버스괴담'은 현실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들의 행동과 심리를 잘 묘사해 놓았다. 기사 아저씨를 위협했던 승객의 죽음이 이 버스 안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사람을 죽게 해 놓고 자수도 하지 않고 시체를 유기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니 그 어떤 일을 당한다고 해도 당연하다 할지 모르지만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면 이건 문제가 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 자신들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 사건과 자신들간의 연결점은 없을 거라며 살인사건에서 도망쳐 버렸지만 최주임이 취중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선미의 핸드폰을 숙자가 줍고, 미나의 집에 준호가 가게 되면서 이들의 사생활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공범이라는 인식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이 사건 이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한 명씩 죽음을 맞게 된다. 버스를 잘못 탄 죄 밖에 없는데 이런 일을 겪다니, 정말 삶은 알 수 없다. 끔찍하고 무섭다.



최주임과 숙자의 죽음, 그리고 선미의 죽음까지 모두 완전 범죄라고 할 정도로 깨끗하게 처리된다. 아니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가까이에 자신을 죽이는 이가 있는데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이들의 죽음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스터리 하고 공포스럽다. 그러나 '괴담'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분명 숙자가 강수를 죽였는데 왜 강수가 살아있는지, 준호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성 안에 살고 싶다는 욕망,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부른 참사. 살인자에게는 그냥 이유가 필요했던 것 뿐일테지만 이 사건으로 또 한 명의 괴물이 탄생한 것 같아 으스스하다. 이젠 버스 안도 안전하지 않다. 한정적인 공간인 심야버스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이리도 끔찍하다니 집으로 가는 길,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할 작은 공간조차 가질 수 없다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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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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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이. 수아", 아니 "안녕, 수아" 이렇게 인사하는게 맞겠지? 나에게 캄보디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선망의 대상인데 수아에게는 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슬픈 곳이구나. 아빠와 함께 한국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며 끊임없이 한국을 아니 아빠를 그리워 하는 수아는 가이드 일까지 나몰라라 하고 도망가 버린 엄마를 원망한다. 한국에 가기 위해 그동안 착실하게 모아놓은 돈까지 들고 도망간 엄마라니 좀 어이가 없긴 하다. 그렇지만 엄마를 대신해 가이드 일을 하게 된 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엄마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 가이드로 수아 또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쩜빠는 한국인 아버지가 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수아는 엄마와 자신이 있는 캄보디아로 찾아오기는 커녕 연락도 없는 아빠를 기다린다. 이런 수아의 처지가 쩜빠와 비슷하다 할 순 없지만 아직은 어린 이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것은 슬픔과 외로움 따위 떨쳐낼 수 있는 당당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쩜백이, 아니 쩜빠도 엄마 쿤라를 대신해 수아를 도와주기 위해 나섰고 다친 아버지를 대신해 뚝뚝이를 몰게 된 쏙천까지, 아, 정말 이 아이들 어른들 대신해서 제대로 인생 수업을 한다. 쩜빠는 엄마가 아파서, 쏙천은 아빠가 아파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하지만 수아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설정으로 가이드 일을 해 좀 어색하다.



엄마가 가이드 일을 팽개치고 도망간 사연이야 나중에 되면 알게 되지만 수아가 타인을 통해 자신의 닫힌 기억을 열게 되는 것은 씁쓸하다. 한 마디로 너무 무책임한 엄마다. 수아도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홀로 겪고 있는데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겨 버리다니 에흐, 어쨌든 수아가 엄마보다 가이드 일을 더 잘하니 박수를 보내자. 무엇보다 수아는 엄마보다 솔직하다. 모르는 것은 쩜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가이드 일이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고 관광객들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 한다. 이것으로 관광객들에게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진심이 통하기 시작한다.



밤 하늘에 있는 별빛들이 선명해 보이고 맨발로 흙길을 걸을 수 있는 이 곳이 한국보다 사는 것이 불편하긴 해도 한국보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수아가 맡게 된 관광객들이 캄보디아의 겉모습만 보고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쏙천의 집 안 곳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도 맡고, 이 나라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캄보디아의 모습까지 보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삼콜 할배의 덕이기도 하다. 수아에게 '망고'라는 별명을 붙여 준 삼콜 할배, 이 할배 덕분으로 수아가 덜 외로웠을 것이다. 뭐, 수아는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힘들 때 도움 준 건 맞으니까. 캄보디아에 가면 수아를 만날 수 있을까. 해가 지는 캄보디아의 모습을 보고 싶은데. 수아와 엄마는 지금도 빚 갚느라 힘들겠지?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섭섭하이, 수아, 쩜빠, 쏙천, 삼콜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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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아빠 푸른숲 어린이 문학 23
김남중 지음, 김무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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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바탕으로 그린 동화 같은 이야기. 현주의 가족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우리들 이야기다. 그렇지만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는 것에서 동화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삶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맺고 싶으니까.



현주의 아빠 정대면 씨는 무엇이 불만인지 매일 술 타령이다. 동네 슈퍼에서 "술 더 내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집에 도착해서도 술 타령은 끝이 없다. 그런 아빠를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 그러나 이제 엄마도 많이 지쳤나 보다. 이제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이혼'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통닭집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 같은 이 사람이 정말 아빠의 술을 끊게 할 수 있을까. 낯선 이에게서 술을 끊게 해 준다며 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받은 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엄마와 현주는 이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뭐, 계획은 그럴듯 하다. 건강검진을 받게 한 후 암이라고 속인 후 술을 끊게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2천만원이라는 돈을 내야 하는 것이 이거 영, 사기치는 것 같다. 결론은 아빠를 상대로 사기치는 것이긴 하지만 술 마시지 않는 아빠를 볼 수 있다면 이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이대로 놔 둔다면 현주의 가족은 붕괴될지도 모른다. 술이 깨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 때문에 현주는 아빠가 너무 싫다. 아빠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지만 현실은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혹 아빠의 '암' 진단이 사실이면 어쩌나 걱정되더니 기어이 일은 벌어지고 만다. 독자들이 쓸데없는 걱정에 정대면 씨가 '암' 진단을 받은 후 충격을 받아 건강이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 정도로 사태는 점점 힘들어진다. 현주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만 꼭 이런 식으로 소중함을 알아가야 하는 것인지. 에흐. 하여간에 우리 아빠 죽기만 해 봐. 가만 안 둘거야.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힘껏 말해 본다. 아, 이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라서 싫다.



이제 아빠는 건강에도 신경 쓰고 가족들에게도 헌신적인 아빠가 되었다.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이제 술은 멀리 하게 되겠지. 아빠의 입원으로 만나게 된 선우, 선우와 함께 한 시간의 소중함 그러나 그만큼 '죽음'이라는 단어도 가까이에 다가온 듯 한 두려움을 느꼈지만 선우도 병을 잘 이겨낼 것이다. 현주의 바람대로 "이대로만 살게 해 주세요"란 간절함이 통해 현주의 가족도, 선우에게도 더이상의 불행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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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람 1 - 미스테리심리썰렁물 시즌 3 강풀 미스터리 심리썰렁물
강풀 글.그림 / 문학세계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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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이 사는 곳이 우주공간은 아닐터, 그들도 우리 곁에서 우리와 똑같이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살아가고 있을텐데 지금까지 나는 이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뉴스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것이라 여겼었고 보지 않고 외면하면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되는 것처럼 모른척 해 왔다. 그런데 강풀의 '이웃 사람'은 이런 무관심으로인해 무고한 한 생명이 죽어갈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저 사람 수상해. 별 일 아니겠지. 신경 끄자" 이런 말로 변명하며 외면해 버리고 용기를 내지 못했을 때 이미 나의 이웃은 한 사람씩 죽어가는 것이다. "에이, 이거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니야? 아무일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의심해서 신고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될 수도 있고 더군다나 경찰들이 증거도 없는 일에 신경이나 쓰겠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들 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경계해야 하는 것이 맞다.



열흘에 한 번씩 피자를 시킨 2동 101호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들은 지하에서 들려온 '탕', '탕'하는 소리들, 가방을 사 간 사람이 수표에 타인의 이름을 도용해 이서한 것을 알게 된 가게 주인, 경비원이 화장실에서 발견한 흰색 머리카락 등 수많은 증거들이 있으나 수상하게만 생각하고 외면해 버린 것으로 인해 이 빌라에서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져 가게 된다.



강풀의 '이웃 사람'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지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시작한다. 첫 장면은 죽은 딸이 일주일 째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 여인의 독백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을 '열흘 전'으로 돌려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범인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이웃'에 대한 공포심을 고조시킨다. 큰 가방을 사는 남자에게 시선이 머물었을 때 이미 독자들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 버리지만 별일 아닌 것으로 끝나길 기대하며 외면해 버린다. 저 큰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갈지 아니까. 좀 작지만 가방 두 개에 넣으면 된다고 했을 때 범인이 어떻게 할지 이미 머릿속에 떠올라 버려도 그가 무섭게 생겼지만 씩 웃으면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로 보일 거야, 라고 끊임없이 되뇌인다. 곳곳에 드러난 증거와 행동들로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끔찍함에 나는 비겁해지기로 한다.



언제부터 '이웃'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리기 시작했을까. 어린 시절 이웃과 음식을 함께 나눠 먹던 시절에는 '이웃'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떠올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살인범이 나와 같은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섭지만 누가 살인범인지 알 수 없어 그 익명성 때문에 더 무섭다. "엄마"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어, 어, 어".......라는 말만 하며 범인에게 끌려가는 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코 앞에 집이 있지만 닫힌 문 밖에서 "엄마"라고 외쳐부르지 못한 아이는 비겁한 내가 외면해 버려 죽게 되었다. 이제 이 아이는 가족이 된 새 엄마 가까이에 다가설수도 더이상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자, 이제 나는 이 수상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외면해버리면 나도 범인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이제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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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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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이 뭔지 알아? 정말 시건방지게 질문을 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잠자코 들어줬으면 좋겠어. 이름이 예뻐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을 떠올렸다면 그냥 옛날의 꽃섬을 떠올리며 그곳을 그리워하는 땜통과 딱부리처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테지만 나는 성격이 그리 유순하지 못한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기어이 말해주고 싶어. "이곳은, 꽃섬은말야. 쓰레기 매립장이야." 놀랐나 보군. 이 말을 듣고 한동안 말도 못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리워하게 될 곳이 어딘지 알아? 김서방네 사람들이 일구고 있는 옛날 '꽃섬'이야. 이곳이 쓰레기 매립장이 되기 전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지 땜통이 이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게 이해가 되더라니까. 안될 말이지. 이곳은 그냥 없는 세상으로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리워 하면 안되는데 땜통이 불쌍해서 어쩌지. 땜통 뒤통수의 화상 흉터가 이렇게 가슴을 시리게 할 줄 몰랐어.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짓무른 그곳이 또 아프면 안되잖아. 어눌하지만 속은 깊은 이녀석이 난 처음부터 좋았어. 딱부리에게 "형"이라고 할 때 내 가슴이 다 뭉클하더라니까. 이녀석 그동안 외로웠구나 싶었거든. 뜨내기처럼 이리 저리 흔들리고 사는 삶이라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았어.

 

쓰레기매립지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내가 겪어보지 않았다고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살아온 우리네 역사가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데 정말 이곳은 내게 너무나 낯선 세상이야. 그런데 여기에도 '삶'이 있어. 세상에 버려진 온갖 것들이 오는 곳이지만 있을 건 다 있어. 딱부리는 자신마저 쓰레기처럼 버려진 것 같이 생각되지만 땜통이라는 동생도 생기고 새하얀 얼굴의 예쁜 소녀를 보며 설레기도 해. 이 소녀를 보면 수치심을 느끼지만 딱부리가 자신이 사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소녀를 보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내맘대로 생각하기로 했어. 라면과 떡을 타러 가는 줄이 줄어드는 것의 곤혹스러움, 하필 이 예쁜 소녀가 이것을 나눠주니 딱부리의 그 때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되지만. 이것이 드라마라면 딱부리가 멋지게 성장해 이 소녀와 만나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워.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뭔지 알아? 지금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해서 나가니까 '꽃섬'이란 곳이 없을거야. 없을거야. 없을거야. 이런 자기변명을 계속 했는데 이젠 지쳐버렸어. '꽃섬'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그곳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뒤섞인 냄새에 미쳐서 내내 '이곳이 지옥이로구나' 했다니까. 내 가슴속에 꽉 들어찬 이 낯선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쓰레기 매립지에서 나온 먹을거리로 끓인 '꽃섬탕'을 먹는 아이들, 땜통, 두더지, 딱부리라고 불리는 것만봐도 이곳은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니까. 김서방네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낯익은 세상이야.

 

딱부리 엄마가 아수라를 따라 나섰을 때 흔희 그 뒷 이야기는 상상이 가. 더 나아간다면 딱부리 아빠가 나타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만 딱부리 아빠가 여기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좀 나은 결말을 생각해 본다면 땜통의 아버지와 딱부리 엄마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가 되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이것도 힘들어. 그래도 아수라가 경찰서에 잡혀 가고 딱부리 엄마와 땜통이 면회 갔을 때 아수라가 땜통에게 "이젠 느이 엄마다. 말 잘 듣고......" 하는데 뭔가 가슴 속에서 울컥 하더라구. 나도 위안을 얻었어. 가족이 생긴거잖아. 그전에는 가족이 아니었나? 하면 음.......여기 사람들은 자주 옮기니까 함께 생활한다고 처음부터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거야.

 

성탄절에는 도시들이 온통 반짝 거려. 꽃섬은 아마 온통 시커멓겠지. 쓰레기들이 제각각 색채를 지니고 있어도 여기는 온통 뿌옇게 보여. 또 이곳과 마주대하고 싶지 않은 나의 나쁜 마음이 나오는 거겠지. 딱부리와 땜통이 시내에 나가 옷을 사 입고 목욕을 하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어. 딱부리는 자신이 보아온 세상을 땜통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땜통에게 이곳은 혀에서 녹아내리는 초콜릿 같이 달콤하게 보이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 게임기 하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땜통도 우리 아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땜통은 빼빼엄마네 있을 때가 행복해 보여.  

 

땜통, 아니 영길아. 이름을 부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인데 오히려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쓰레기장에서 나온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이곳, 도깨비 같은 세상이 정말 이 땅에 있었던 것 맞지? 다른 세상도 봤던 너, 혹시 네가 갈 수 없는 다른 세상을 그리워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살아가는 이곳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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