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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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이 뭔지 알아? 정말 시건방지게 질문을 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잠자코 들어줬으면 좋겠어. 이름이 예뻐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을 떠올렸다면 그냥 옛날의 꽃섬을 떠올리며 그곳을 그리워하는 땜통과 딱부리처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테지만 나는 성격이 그리 유순하지 못한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기어이 말해주고 싶어. "이곳은, 꽃섬은말야. 쓰레기 매립장이야." 놀랐나 보군. 이 말을 듣고 한동안 말도 못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리워하게 될 곳이 어딘지 알아? 김서방네 사람들이 일구고 있는 옛날 '꽃섬'이야. 이곳이 쓰레기 매립장이 되기 전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지 땜통이 이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게 이해가 되더라니까. 안될 말이지. 이곳은 그냥 없는 세상으로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리워 하면 안되는데 땜통이 불쌍해서 어쩌지. 땜통 뒤통수의 화상 흉터가 이렇게 가슴을 시리게 할 줄 몰랐어.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짓무른 그곳이 또 아프면 안되잖아. 어눌하지만 속은 깊은 이녀석이 난 처음부터 좋았어. 딱부리에게 "형"이라고 할 때 내 가슴이 다 뭉클하더라니까. 이녀석 그동안 외로웠구나 싶었거든. 뜨내기처럼 이리 저리 흔들리고 사는 삶이라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았어.

 

쓰레기매립지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것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내가 겪어보지 않았다고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살아온 우리네 역사가 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데 정말 이곳은 내게 너무나 낯선 세상이야. 그런데 여기에도 '삶'이 있어. 세상에 버려진 온갖 것들이 오는 곳이지만 있을 건 다 있어. 딱부리는 자신마저 쓰레기처럼 버려진 것 같이 생각되지만 땜통이라는 동생도 생기고 새하얀 얼굴의 예쁜 소녀를 보며 설레기도 해. 이 소녀를 보면 수치심을 느끼지만 딱부리가 자신이 사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소녀를 보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내맘대로 생각하기로 했어. 라면과 떡을 타러 가는 줄이 줄어드는 것의 곤혹스러움, 하필 이 예쁜 소녀가 이것을 나눠주니 딱부리의 그 때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되지만. 이것이 드라마라면 딱부리가 멋지게 성장해 이 소녀와 만나는 장면을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워.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뭔지 알아? 지금은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해서 나가니까 '꽃섬'이란 곳이 없을거야. 없을거야. 없을거야. 이런 자기변명을 계속 했는데 이젠 지쳐버렸어. '꽃섬'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그곳에서 나는 온갖 것들이 뒤섞인 냄새에 미쳐서 내내 '이곳이 지옥이로구나' 했다니까. 내 가슴속에 꽉 들어찬 이 낯선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쓰레기 매립지에서 나온 먹을거리로 끓인 '꽃섬탕'을 먹는 아이들, 땜통, 두더지, 딱부리라고 불리는 것만봐도 이곳은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니까. 김서방네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낯익은 세상이야.

 

딱부리 엄마가 아수라를 따라 나섰을 때 흔희 그 뒷 이야기는 상상이 가. 더 나아간다면 딱부리 아빠가 나타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만 딱부리 아빠가 여기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좀 나은 결말을 생각해 본다면 땜통의 아버지와 딱부리 엄마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가 되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이것도 힘들어. 그래도 아수라가 경찰서에 잡혀 가고 딱부리 엄마와 땜통이 면회 갔을 때 아수라가 땜통에게 "이젠 느이 엄마다. 말 잘 듣고......" 하는데 뭔가 가슴 속에서 울컥 하더라구. 나도 위안을 얻었어. 가족이 생긴거잖아. 그전에는 가족이 아니었나? 하면 음.......여기 사람들은 자주 옮기니까 함께 생활한다고 처음부터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거야.

 

성탄절에는 도시들이 온통 반짝 거려. 꽃섬은 아마 온통 시커멓겠지. 쓰레기들이 제각각 색채를 지니고 있어도 여기는 온통 뿌옇게 보여. 또 이곳과 마주대하고 싶지 않은 나의 나쁜 마음이 나오는 거겠지. 딱부리와 땜통이 시내에 나가 옷을 사 입고 목욕을 하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어. 딱부리는 자신이 보아온 세상을 땜통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땜통에게 이곳은 혀에서 녹아내리는 초콜릿 같이 달콤하게 보이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 게임기 하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땜통도 우리 아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땜통은 빼빼엄마네 있을 때가 행복해 보여.  

 

땜통, 아니 영길아. 이름을 부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인데 오히려 내가 발을 디디고 선 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쓰레기장에서 나온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이곳, 도깨비 같은 세상이 정말 이 땅에 있었던 것 맞지? 다른 세상도 봤던 너, 혹시 네가 갈 수 없는 다른 세상을 그리워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살아가는 이곳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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