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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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이쁘고 향기로운 것을 알면서도 언제부터인가 누가 꽃을 사준다고 하면 꽃이 시들어가는것을 보기 싫어 꽃보다는 다른 것을 사달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꽃이 시들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툭 떨어지는 능소화라면? 오히려 더 처연한 모습에 그저 붉은 꽃잎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려 그대로 내 마음에 박혀버릴 것 같다. 하늘에서만 피는 꽃을 너무 아름다워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꺾어간 여인을 팔목수라가 쫓는다. 머리는 사람 몸통만 하고 눈 4개의 구척의 몸을 한 앞뒤가 같은 모습의 끔찍한 모습을 한 팔목수라. 정말 꿈에 볼까 무섭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려가는 놈이라면 가까이 오는 것조차 겁이 나고 빌어서라도 데려가지 말라 눈물로 호소해야만 하는데 동정심이라곤 없는 팔목수라에게 통하지도 않으니 그녀가 선택한 길은 그래서 하나뿐이었겠지.  

4백년만에 무덤안에 고스란히 존재하는 미라를 발견했다. 그 안에 원이 엄마가 쓴 편지와 함께. 일기형식이지만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묻을때 같이 옆에 놓아둔 편지였다. 같이 묻어준 편지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드나 그 편지는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4백년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달리 생각하면 섬짓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속에 슬픔이 쌓인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내게 위험이 닥쳐 피하려고 기를 써도 내 앞에 오롯이 닥쳐오는 운명이란 녀석은 역시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일까.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계산에 넣어진 나의 운명이라면? 정말 힘이 쭉 빠진다. 응태와 여늬의 사랑은 피하려한 운명에 의해 만나진듯한 느낌이 든다. 부모보다 앞서 간다는 응태의 사주를 바꾸기 위해 박색에 성질이 더러운 여인네를 아내로 맞이하면 피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에 그런 여인을 찾다 보니 만난 여늬이기에 오히려 잘난 가문의 여식을 응태의 짝으로 맺어줬다면 운명을 거스를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안타까운 두사람의 사랑.   

팔목수라는 필자의 말대로 역신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늬의 편지글에 자주 등장하는 팔목수라의 정체는 설화의 내용에 버금가는 하늘나라가 있고 또 전생이 있는 듯 여겨져 슬픈 사랑이야기에 더해져 한층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가 보다. 죽었어야 할 여늬가 덤으로 생명을 얻었을때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란 생각에 집안에서만 기거한 그녀에게 소화꽃은 모든 것이었다. 담밖으로 고개를 내민 소화꽃이 부른이도 자신의 배필인 응태였으니 너무나 소중하여 꺾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소화꽃의 향기로 그녀를 찾아다니는 팔목수라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을때 난 가슴 조마조마 하며 "설마......조금만 조금만.."쿵쾅거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역시 불행은 피해갈 수 없는가. 왜 단 하나의 소화꽃을 그대로 뒀단 말인가.  

집안에서 정해준 배필과 혼례를 올리지만 이미 그 전에 첫눈에 마음속에 꽉 들어차 버린 두사람의 사랑은 아마 이것으로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팔목수라에게 잡혀갈 여늬를 온몸을 던져 막는 응태는 여늬 곁에서 시름시름 앓고 여늬의 정성에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떠나가 버린다. "날 대신 데려가라"는 말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솔직히 난 이것이 불만이었다. 모든 원인이 그녀에게 있건만 그저 지아비를 데려가지 마라 눈물만 흘릴뿐이니 죽는것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 무서운 응태에게 그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저 응태를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  

떠난자보다 남은자의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연한 그들의 사랑보다 "왜 그랬냐. 왜?" 라는 말밖에 터져나오지 않는다. 여늬의 선택도 그녀의 인생도 모두 다 슬픔이다. 4백년만에 알게 된 그들의 인연은 빨리 사랑하고 식어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행복한 결말을 좋아하는 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할때 슬픔보다는 기쁨이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길 소원한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 또한 크다는 것을 알지만 주인공이 죽는 그런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주인공 가까이에서 나도 행복한 사랑을 찾아 오래오래 살아가는 그런 배역을 맡고 싶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의 주인공이라도 말이다. 여름에 핀다는 소화꽃. 하늘을 이기길 바래 여늬가 지어준 능소화. 아마 아직도 여늬 무덤가에 핀 붉은 능소화는 여전히 응태를 부르고 있겠지. 두 손 잡고 함께 거닐면서 옛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오늘은 남편을 생각하며 여늬처럼 편지를 한통 써 두고 싶다. 능소화 향기를 맡으며. 오랜시간이 지나 내 편지도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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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수집가 1
자비네 티슬러 지음, 권혁준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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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도 한여름밤을 오싹하게 만든다. 역시나 제목으로 어떤 내용일까 대충 짐작하고 읽었음에도 아이가 희생될때마다 온몸이 떨리는듯 하여 사건을 마주할 수가 없다. 취미로 우표수집이나 동전모으기 등을 한다는건 들어봤지만 아동수집이라니 아이를 수집한다기 보단 기념할만한 아이의 송곳니를 수집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 이런 사람과 한 하늘 아래 숨쉬고 있다는 것이 겁나고 두렵기만 하다. 대중매체를 통해 이런 범죄는 늘상 있어왔고 사람들은 '나의 아이는 이런일이 생기지 말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할 것인가. 너무도 끔찍하여 누구에게도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 책이란 가상공간이지만 내 가까이에서 일어난듯 가슴이 떨려온다.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고 정신적 세계관이 닫혀버린 알프레드, 아마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형이 살아있었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아니 십대에 도로에서 달리는 차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까. 아마 어떤 계기였든 그 시기는 늦춰질 수 있었겠지만 잔혹한 그의 행동으로 아이들은 한명씩 희생되었을 것이다. 벤야민을 만나고 이 아이를 데려가기까지 구체적으로 사건서술이 이루어지나 다행스럽게도 어떻게 죽이는지 세세한 언급이 없다. 여린 아이가 희생되는 것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을테니까. 조마조마해서 슬슬 피하며 책장을 넘겼다. 다른아이에게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그저 사람들이 대화하는 속에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뿐이다.  

독일에서 3명의 아이들을 죽이고 이탈리아에서 또 살인을 저지르는 알프레드 그래서 마라이케와 카르스텐은 범인의 흔적을 놓치고 그저 다른일로 수감되었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늘어놓을뿐이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쭉 늘어지는 느낌이다. 펠릭스가 사라지고 아이가 살아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고 다시 그 곳으로 오는 안네. 알프레드는 이름을 엔리코로 바꾸고 여전히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인듯 죽음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다는 생각아래 아이들을 죽인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에게 집을 사게 되는 확율은 대체 얼마나 될까. 이런 설정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형사나 경찰들이 살인자의 자취를 찾아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살해된 아이의 부모를 중심으로 아주 우연한 기회에 펠릭스가 죽을때 목격했던 말도 잘 못하는 알로라란 여인에 의해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다니 기동력있게 형사들이 사건을 풀어갈 줄 알았는데 설정이 솔직히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겠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같은 자세의 사체들. 연쇄살인으로 보여져 의욕있게 마라이케가 덤벼들지만 범인을 가까이에서 놓치고 범인을 잡겠다는 열정 또한 보이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더이상의 희생을 막겠다는 생각이 없다니. 이탈리아에서의 아동들이 실종되는 사건을 보고 휴가를 범인이 있는 곳으로 오는 마라이케 가족들. 범인을 중심으로 속속 관계된 사람들이 모이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는 듯 보여 일순 긴장감을 주지만 여전히 수동적으로 보이는 형사 마라이케의 모습에 실망스럽기만 하다. 희생된 아이의 부모가 범인을 잡았다고밖에 할 수 없으니 그저 수색하고 범인을 쫓아 잡는것만 하는 것은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독자로서는 늘어지는 시간들속에 점점 지쳐만 간다.  

이제는 더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안도감만 가지면 되는 걸까.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이야기에 한동안 멍하기만 하니 조금은 범인이 고통스러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히려 결말은 범인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 것이 아닌가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든다. 행복한 가족의 울타리안에서 아이들을 잘 키워야겠고 이런 범죄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히 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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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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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역시 새로운 게임의 일종인것일까. 크리스마스날 태양의 눈부심속에 서 있는 에이코, 도키코, 히우라 이 세사람을 바라보는 다카하시는 새로운 가족을 맞으며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만들어진 행복이라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한 장면, 아무것도 모르는 다카하시에게는 오롯이 느낄수 있는 행복감일테지만 말이다. 도키코의 아버지가 빨래꾼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따라가면서 에이코와 도키코 이 두 모녀의 생활은 점점 위태해지는 듯 하다. 십 몇년이 넘도록 찾지 않은 남편에 대한 존재. 그저 바람이 나서 나가버린것이라고 믿고 싶은 에이코는 자신마저 그렇게 사라질까 두려울뿐이다. 왜 이들에게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지 점점 명확해진다고 생각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안개속을 헤매이는 느낌이다. '빛의 제국'에서 열 편의 단편이야기들중 흑과 백이 서로 뒤집고 뒤집히는 게임을 연상시키는 오셀로게임이라는 제목의 짧은 이야기를 '엔드게임'이라는 큰 무대로 에이코와 도키코, 하지메 이 세 가족을 옮겨놓았다.   

어린시절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음속에서 닫아버린 도키코, 그녀가 보게 되는 은색 볼링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마인 에이코는 사람 머리가 있어야할 자리에 딸기가 얹어진것을 본다. 먼저 뒤집히기 전에 뒤집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환상을 본다느니 망상이라느니 쉽게 떠들겠지.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것이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란것을 알기에 동조하며 읽을뿐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 함께 한 이들이 몇 십년전에 사라진 남편을 찾을 수 있는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보지 않다니. 조금 답답하다. 우연히 거리에서 보게 된 남편의 얼굴. 점점 혼란스럽고 뒷걸음치며 도망가고 싶었으나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권력을 탐하지도 말고 재야에 묻혀 살아가야 하는 도코노인들은 일족간의 결혼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족이라는 기억을 심어주어 함께 하고 싶은 이때문에 이 모든일이 벌어졌는가. 역시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인 것일까. 조금 쉽게 풀려나간다고 생각했으나 이 모든 것이 또한 만들어진 기억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것도 쉬운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지 뒤집고 뒤집히는 게임이 아닌 것이다. 서로 뒤집고 뒤집히다가 전혀 다른 세계에 와 버린 사람들을 보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뭐가 거짓이고 참인걸까. 적과 아군도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출현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할 상황, 그러나 그들의 기억이 빨래꾼에게 세탁되어 산 1년간은 분명 평화롭고 행복했기에 모든 진실이 드러나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기만당하는 것은 에이코와 결혼하는 다카하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과 화합하기 힘들었던 히우라와 함께 하는 모습은 생경스럽다.  

이들이 본 담쟁이덩쿨, 딸기, 은색 볼링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역시 도키코가 언급했던 '타인의 정신적으로 일그러진 부분에 반응하는 것'일까. 내 안에 일그러진 무엇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보여질까. 그들 눈에 나도 입안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줄기가 뻗어나오고 점점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래전에 나도 뒤집혔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즐거워진다. 책을 덮고나서도 이 이야기에 놓여나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감정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아마 오랫동안 하이지마 가 사람들에게 순수한 모습으로 비춰지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좀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울진 모르지만 뒤틀린 부분이 보여지니까 좀 보듬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뒤집어서 억누르는것이 아닌 감싸안아주는 새로운 게임을 해 보는 것도 보람될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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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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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에 이어 내가 만나는 도코노 일족의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할머니 소리를 들으며 나이를 먹은 '미네코'의 회상으로 나에게 들려주는 마키무라가의 사토코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덤덤히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아버지가 주신 공책의 이름을 '민들레 공책'이라고 부르며 기록을 해 두었으나 거의 유실되고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 여름날을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하지만 연분홍 리본을 묶고 함께 학교에 가자고 함께 약속했던 사토코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넣어두는 능력을 가진 도코노 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온다. 자신의 능력이 괴롭긴 하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로 사람들이 마음을 편안해 질 수 있기에 기꺼이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분들을 모은게 우리라고 이야기하는 미쓰히코의 목소리는 어쩌면 슬프기도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나도 숙연해진다. '나'라는 주체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길 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시선으로 보자면 여러 사람의 모습을 넣어둔 도코노인들은 주인 없는 몸을 가진 듯 보일 수도 있지만 많은이들의 삶을 넣어둔 큰 서랍을 가졌기에 자신을 불태우고 다른이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다르다고 냉대할 수 없게 하는 힘을 가진다.   

'넣어두기', '울림' 이란 단어가 이젠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익숙해진 것일까. 천청회에 모여 도코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미쓰히코 가족들의 모습이 미네코에게는 낯설고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도코노인들을 모르나?' 난 그 앞에서 으스대고 싶어진다. 뭐 그렇다고 도코노인들이 나를 알아줄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책에 너무 동화된 것일까 도코노인들이 꼭 존재하는 것처럼 실제처럼 가깝게 느껴지니. 사람들 가까이에서 도와주며 살고 있는 도코노인들.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주는 이들이 모두 도코노인들이겠지.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그 힘을 의롭게 쓰기에 옛날옛적부터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그들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지금에야 조금만 능력이 뛰어나도 으스대며 자랑하기에 정신이 없지만 조용히 그 힘을 숨기고 살아가는 도코노인들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니 존재하지 않아도 그렇게 믿음으로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한 곳이라고 따뜻한 곳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일까, 생시일까, 구분이 가지 않은 신비한 일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코노인들이 나를 넣어둔다면 그들에게 난 어떤 존재로 느껴질까. 세상 사람들에게 큰 빛이 되는 존재는 아니지만 내 가족에게는 소중하기에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그들에게 나를 울려주길 기대하지 않겠는가. 사토코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큰 희생을 할 자신은 없지만 그저 내가 아는 이들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이니 이 한권의 책으로 나의 내면이 조금 변화된 것 같아 이것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을까 한다. 도코노들의 세번째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가슴속에 울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남아 쉽사리 책을 덮지 못하게 하여 오늘은 잠들는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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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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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알아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루마산이라 불리우는 시라카와 산을 오르고 싶어졌다. 인생의 전환점에 선 사람이  이 산에 오르면 중요한 장면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니 철학관에 점 보러 가는 것을 즐겨하진 않지만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까 암시라도 받고 싶은 호기심을 물리칠수가 없다. 전설같지만 신비스러움에 전설이 아닌 실제 내 가까이에 도코노족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나의 시선을 잡는지도 모른다. 뭐 야스히코처럼 자신이 보낸 여인과 친구인 가쓰야가 결혼한다는 암시를 받는 아픔을 받고 싶진 않지만 야스히코의 이번 산행은 아버지의 자취를 더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친구와 사랑했던 여인을 마음에서 버리기 위해 산을 오른게 되어 버렸으니 오죽 슬펐을까.  

이 책은 도코노 일족들의 이야기이다. 한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끝까지 이끄는 방식이 아닌 총 열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여살던 도코노들이 도심속에 흩어살게 되면서 겪는 혼란들.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혼란을 겪겠지만 더불어 살기 보다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들이라 탁월한 능력의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군부에서 실험용으로 쓰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온다. "권력을 갖지 말고, 무리를 짓지 말고, 늘 재야의 존재로 있어라"의 '도코노'라는 말의 유래는 빌딩이 숲을 이루는 현재에선 살아남기도 힘든 처지이니 권력을 탐하지도 않고 재야에 묻혀 학문에 정진한 우리나라의 선비처럼 학처럼 고고한 모습이 떠오르는 도코노족이 멸족되지 않고 살아남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꼭 부패한 이 지구를 구해줄 영웅처럼 느껴지니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문헌에 남아있는 아주 오랜세월을 살아간 '두루미 선생님'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 보낸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살아가기에 아주 큰 존재로 느껴진다. 리쓰와 함께 그의 일족의 파티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함께 가는 미사키를 보는 두루미 선생은 아련한 옛 그리움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미사키냐, 미사키구나". 죽기전에 피리를 아주 잘 불렀던 미사키, 나중에 꼭 돌아오겠다고 말한 미사키가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환생의 개념을 떠나 이들이 뱉는 약속의 의미는 세월이 지나도 꼭 지켜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대체 이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들의 능력은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 이어지는 도코노들의 이야기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도코노들의 두번째 이야기도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될 듯 하다.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가는 듯한 느낌. 그랬다. 하나씩 밝혀지는 그들의 모습이 두렵다기 보다 신비롭고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내가 사는 가까이에도 도코노족이 있을까 두리번 두리번 눈을 빛내며 보게 된다.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들, 방대한 양의 서적을 암기하거나 미래를 콕콕 찝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도코노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얻는게 있는 만큼 잃는것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좋은것 같다. 도코노족에 대한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삼아 들으면서 여름날 밤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두루미 선생님'은 꼭 한번 보고 싶은 걸. 내가 죽어도 존재할 그이기에 조금 시기심도 생기지만. 무한하게 살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니까. 아끼는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건 큰 아픔이겠지만 깊이를 알 수 없을 그의 마음이 보이기에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거 같아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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