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게임 도코노 이야기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삶은 역시 새로운 게임의 일종인것일까. 크리스마스날 태양의 눈부심속에 서 있는 에이코, 도키코, 히우라 이 세사람을 바라보는 다카하시는 새로운 가족을 맞으며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만들어진 행복이라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한 장면, 아무것도 모르는 다카하시에게는 오롯이 느낄수 있는 행복감일테지만 말이다. 도키코의 아버지가 빨래꾼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따라가면서 에이코와 도키코 이 두 모녀의 생활은 점점 위태해지는 듯 하다. 십 몇년이 넘도록 찾지 않은 남편에 대한 존재. 그저 바람이 나서 나가버린것이라고 믿고 싶은 에이코는 자신마저 그렇게 사라질까 두려울뿐이다. 왜 이들에게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지 점점 명확해진다고 생각했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안개속을 헤매이는 느낌이다. '빛의 제국'에서 열 편의 단편이야기들중 흑과 백이 서로 뒤집고 뒤집히는 게임을 연상시키는 오셀로게임이라는 제목의 짧은 이야기를 '엔드게임'이라는 큰 무대로 에이코와 도키코, 하지메 이 세 가족을 옮겨놓았다.   

어린시절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음속에서 닫아버린 도키코, 그녀가 보게 되는 은색 볼링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마인 에이코는 사람 머리가 있어야할 자리에 딸기가 얹어진것을 본다. 먼저 뒤집히기 전에 뒤집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환상을 본다느니 망상이라느니 쉽게 떠들겠지.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것이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란것을 알기에 동조하며 읽을뿐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 함께 한 이들이 몇 십년전에 사라진 남편을 찾을 수 있는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보지 않다니. 조금 답답하다. 우연히 거리에서 보게 된 남편의 얼굴. 점점 혼란스럽고 뒷걸음치며 도망가고 싶었으나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권력을 탐하지도 말고 재야에 묻혀 살아가야 하는 도코노인들은 일족간의 결혼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족이라는 기억을 심어주어 함께 하고 싶은 이때문에 이 모든일이 벌어졌는가. 역시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인 것일까. 조금 쉽게 풀려나간다고 생각했으나 이 모든 것이 또한 만들어진 기억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것도 쉬운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지 뒤집고 뒤집히는 게임이 아닌 것이다. 서로 뒤집고 뒤집히다가 전혀 다른 세계에 와 버린 사람들을 보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뭐가 거짓이고 참인걸까. 적과 아군도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출현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할 상황, 그러나 그들의 기억이 빨래꾼에게 세탁되어 산 1년간은 분명 평화롭고 행복했기에 모든 진실이 드러나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기만당하는 것은 에이코와 결혼하는 다카하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과 화합하기 힘들었던 히우라와 함께 하는 모습은 생경스럽다.  

이들이 본 담쟁이덩쿨, 딸기, 은색 볼링핀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역시 도키코가 언급했던 '타인의 정신적으로 일그러진 부분에 반응하는 것'일까. 내 안에 일그러진 무엇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보여질까. 그들 눈에 나도 입안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줄기가 뻗어나오고 점점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래전에 나도 뒤집혔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즐거워진다. 책을 덮고나서도 이 이야기에 놓여나지 못하는 모습이라니 감정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은 아마 오랫동안 하이지마 가 사람들에게 순수한 모습으로 비춰지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좀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울진 모르지만 뒤틀린 부분이 보여지니까 좀 보듬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뒤집어서 억누르는것이 아닌 감싸안아주는 새로운 게임을 해 보는 것도 보람될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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