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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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엔 농촌을 텔레비전을 통해서야 볼 수가 있다. 어린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길에서 소를 볼수도 있었는데 요즘 할머니 댁에 가보면 번듯하게 지어놓은 주택들 사이로 더이상 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도 이젠 도시화 되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농촌을 가보고 싶은 이유는 도시와는 다르게 인심도 후할 것이고 '오로로 콩밭에서 붙잡아서' 표지에 있는 것처럼 쏟아질듯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시아나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순박하다. 인구는 겨우 300명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청년회 회원들이 모였으나 이 여덟명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단지 이 마을을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충분할까. 도쿄에서 대학을 다닌 최고 지식인 신이치가 광고대리점에 의뢰해 마을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고 의견을 내고 자금을 내어 광고대리점을 찾아나서게 된다. 제발 광고대리점이 순박한 이 사람들을 속여먹지나 않았음 좋겠다. 너무나 어수룩해 보여서 딱 사기당할 것 같은 사람들이니 말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리는게 핵심이라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자고 했을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웃음이 나지만 정말 순수하다고 생각된다. "우시아나호 사우루스"라고 우시아나호에 공룡을 출현시키자는 '유니버설 광고사'직원들의 말에 "그 사우루스는 어디서 데려오는겨?"라고 순박하게 물어보는 사람들 상상해 보면 정말 유쾌해지지 않는가. 공룡을 어디서 데려온단 말인가. 바보스럽기까지 하지만 남을 속이며 살아오지 않은 깨끗한 심성을 엿볼수 있어 내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거짓말로 시작되지만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따운 텔레비전 방송국 앵커 와키사카 료코가 이 곳으로 시집오다니 농촌총각들이 결혼을 못하는 현실에서 정말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공룡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외지 사람들이 몰려와 이 마을의 총각과 결혼한 처녀도 있으니 무엇보다 가족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앞으로 늘어난다는 소식이 반갑다.

 

이 마을엔 명물도 많고 '오로로콩'도 식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녀 마을을 여전히 유명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이지만 오지의 깡촌인 이곳에서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지켜진 것들이 많기에 이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귀한 자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곰베새의 출현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물론 이곳 사람들은 귀한새인줄도 모르고 먹고 있으니 알고 있었다면 도시사람들처럼 발빠르게 상품화 시켰을까. 물론 아니었겠지. 지금 '유니버설 광고사' 사람들은 바쁘다. 곰베새를 찾으러 떠났거든.

 

그래도 우시아나에 들렀다 온 사람들은 모두가 변하는 것 같다. 쇼핑 카탈로그에 나올 건강속옷이나 찍던 가가미가 우시아나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의 평온해 보이는 삶을 찍는 것을 보면 세상일에 초연해 보이는 우시아나를 아무런 욕심없이 좋아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해진다. 책을 읽은 나도 이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물욕을 가지는 것이 부질없을 것 같은 이곳에 다녀오면 나도 변하려나. 조금 넉넉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역시 곰베새라 불리는 도도새에게 관심이 가는 것을 보니 욕심 많은 이 마음때문에 우시아나가 변해버릴 것 같아 발걸음을 하지 않는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복주머니꽃이라도 캐내어 팔아볼까 하는 욕심도 생기는 것을 보면 역시 어쩔수 없는 속물덩어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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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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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쿠다 히데오는 어떤 심각한 문제라도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사람인가 보다. 도모미에 대한 설레는 감정을 망상으로 발전시키는 하루히코의 모습은 솔직히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표면화 되었을때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히코는 중년의 나이긴 하지만 입사하는 여직원중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울때 설레는 감정을 가짐으로써 가슴이 콩닥거리는 젊은시절의 열정을 다시금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귀엽다고까지 느껴진다. 도모미가 야마구치와 함께 있는 상상을 할땐 눈은 시계로 계속 향하게 되고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과 결국 도모미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묘사가 너무 탁월하다. 하루히코처럼 똑같은 감정에 조바심내는 야마구치의 모습 또한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습이라 웃음이 나온다.

 

치고받고 싸움까지 하는 이 두사람이 우습긴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서 좋다. 결혼한 유부남이긴 하지만 설레는 상대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하고 좋아한다고 고백하려고 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이런 어수룩한 모습을 마누라에게 다 들켜버리긴 하지만 그만큼 꾸밈없는 모습이기에 남편을 이해하는 노리코의 넓은 마음도 이뻐보인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아마도 머리카락을 다 뽑아 버릴지도 모른다. 나 또한 멋진 사람에게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고 몰래 간직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용서를 못하는 옹졸한 사람인 것이다.

 

"마돈나" 이 책에는 자식의 모습도 보이고 나이가 들어 중년의 모습이 된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회사에서는 과장이나 국장의 자리에 있는 어느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지만 가정에서는 나약하기 그지 없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늙어버린 아버지의 등을 보며 아버지의 외로움을 짐작하는 아들의 모습이 세월이 흘러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중의 일이지만 마음이 슬퍼진다. 요시오는 회사원이 되어 가족을 위해 애쓰는 동안 자신의 꿈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길 없고 아들은 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대학조차 포기한다고 한다. 부모된 입장으로 자신처럼 회사원이 되어 성공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월급쟁이가 된게 정말 좋았느냐고" 되묻는 아들의 모습은 상급자에게 굽실거리고 힘들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지만 이지마 부장의 만행에 불끈하여 싸움까지 하게 되니 아들의 꿈을 무작정 꺽을 수가 없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사노조차 이지마 부장에게 맞춰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사회는 인생은 그런것이라고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것은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몸부림이지 않을까. 쓸쓸한 마음이 느껴진다.

 

직장을 다니다보면 전통이나 관례니 하여 어느정도 부정한 일에 타협도 하게 된다.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이런 관행을 타파하고 싶지만 역시나 더 높은 성공을 위하여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성공을 위해 굽히는 모습엔 실망도 하게 되지만 남편의 어깨에, 우리들의 아버지의 어깨에 놓여있는 짐의 무게가 그것을 내팽겨칠 수 없게 묵직하게 누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적한 파티오에서 책을 읽는 노인의 모습이 노부히사에겐 시골에 홀로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인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다른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면 마음이 편하련만 하루라도 파티오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어김없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이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서 어찌 지내고 계신지 아버지가 외로우실까 늘 마음이 쓰인다. 나 또한 홀로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자주 연락 드리지 못하는 못난 딸이라 그저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위안삼아 보지만 변명일뿐, 왜이리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일까.

 

"보스"에서는 여성이 상급자로 왔을때 조직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여주지만 역시나 직장에서 갖게 되는 갈등을 잘 그려내 준것 같다. 이땅의 남성들과 그리고 그 곳에서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고뇌를 함께 본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해지지만 이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마돈나"로 인해 조금은 즐거워지기도 한다. 왠지 힘이 불끈 생겨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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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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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허삼관을 '자라 대가리'라고 부른다. 큰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아내 허옥란이 결혼전에 정을 통한 하소용의 아이이기 때문에 9년을 모르고 키워온 허삼관이 바보같다고 붙여준 말이다. 점점 커 갈수록 하소용을 닮는 일락이의 모습을 보니 부정도 못하겠다. 물론 요즘같이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면 정확히 알수 있겠지만 허삼관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모두 세워놓고 비교할 뿐이다. 일락이가 자신과는 닮지 않았으나 형제들은 서로 닮았다고 자식이라 우겨본다. 큰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지라 얼마나 마음이 헛헛할지 이 행동으로 짐작이 된다.

 

마누라는 아이 낳는 고통에 허삼관에게 욕설을 퍼 붓지만 허삼관은 자식 생기는게 얼마나 좋으면 이름을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로 짓겠는가. 피를 팔아 삼십오원을 받아 꽈배기 서씨라 이름불리는 미인이었던 아내 허옥란과 결혼하여 순탄하게 살아온 삶이었다. 문화대혁명때 힘든 시련이 있었지만 허삼관의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잘 버텨나갔건만 일락이가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시간 가족을 괴롭히게 된다. 옥수수죽만 먹은지 50여일이 지나고 보니 가족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허삼관은 피를 팔아 일락이만 제외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이 행동이 어른으로써 얼마나 유치해 보이던지. 그러나 나에게 닥친 일이었다고 해도 이보다 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찌 장담할까. 고구마 하나를 먹고도 허기진 배를 안은채 가족들을 찾아다니는 일락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거리에서 국수를 사주면 아버지로 부르겠다고 말하는 일락이의 모습은 그대로 슬픔이 되어 허삼관의 마음을 울린다. 힘이 빠진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사 먹이러 걸어가는 허삼관은 이로써 일락이를 오롯이 자신의 아들로 마음까지 인정한다. 역시 길러준 정이던가.

 

분명히 자신을 닮은 일락이를 하소용은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의 머리를 돌로 쳐서 상처입힌 일락이의 친아버지 하소용을 대신하여 자신의 피를 팔아 치료비를 대신 내는 허삼관, 아이에게 상처될 말을 툭툭 내뱉지만 역시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시골에 가서 일하던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다 죽어갈때에도 멀리 상하이까지 가며 연이어 피를 팔다가 죽을뻔 하지 않았는가. 일락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다른 지역마다 찾아가서 피를 뽑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하소용이 트럭에 치여 사경을 헤맬때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를 아들이 한시간을 외쳐야 영혼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며 하소용의 처가 일락이를 달라고 했을때 허삼관은 하소용의 영혼을 부르러 가라고 일락이를 보낸다. 속으로 얼마나 가슴아팠을까. 한편으론 일락이가 하소용의 아들로 인정받은것 같아 다행이다 싶지만 끝내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죽은 하소용을 보면 허삼관을 아버지로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일락이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하소용이 죽은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하니 내가 너무 감정적인 것일까. 그래도 일락이가 간염으로 죽어갈깨 하소용의 처와 딸들이 도움을 주지 않는가. 역시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가족을 위해 돈이 필요할때면 서슴없이 피를 팔아 돈을 구해 온 허삼관,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고 싶어 피를 뽑으러 가지만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 않는다. 아이들도 장성하고 이제야 자신을 위해 피를 뽑고자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받아주지 않아 가슴속에 쌓였던 감정들이 터져나와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에겐 아내와 아들들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생명을 팔아 가족들을 살린 허삼관이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여생을 누려도 괜찮으리라. 아내와 함께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마시는 그를 보고 있으니 옛일이, 그 힘들었던 삶이 이젠 까마득히 먼일처럼 느껴진다. 어느 부모든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목숨도 내놓겠지만 피를 팔아 삶을 고단하게 이어가는 허삼관의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그래도 피를 팔고 받는 돈이 삼십오원이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몸이라도 팔아 살아갈 수 있게 삼십오원이라는 돈이 크게 소용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노년은 더 큰 불행없이 허삼관과 허옥란이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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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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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교를 마치는 것만이 졸업의 의미는 아닌가 보다. 스물 여섯살때 자살한 이토, 그의 딸 아야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피에도 자살유전자가 있다는것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했던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자살했다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억을 들려달라고 찾아온 아야를 와타나베는 좋은 기억들을 들려주어 지켜주고 싶다. 추억이 없기에 아직 그사람일뿐 아버지는 아닌 아야에게 친구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건만 자신이 간직한 이토의 기억은 단 2주만으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자살했는지 이유도 모른다.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전 이토는 담배를 세 개 피우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작스러운 친구 이토의 죽음, 아야도 와타나베도 이토의 관계를 마무리 짓지 못하여 졸업을 하지 못한 상태. 그가 죽은 날 죽은 자리에 아야와 함께 함으로써 이 두사람은 이토의 관계에선 졸업식을 하게 된다. 그리워 할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인데 이토는 자신의 삶에서 졸업을 하지 못하고 삶을 일찍 끊어내 버렸지만 와타나베는 천천히 가더라도 꼭 완주하고 싶다. 비록 중년의 나이로 회사에서의 입지가 좁아 힘들긴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의 기억을 갖고 싶은 아야로 인해 이토를 기억함으로써 와타나베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으리라.

 

이 책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모두 죽음에 관계가 있다. 죽음은 인생에 있어 졸업과 같은 것이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떠나보내든, 폐암에 걸린 아버지를 떠나보내든 원수같은 사이였어도 아무리 섭섭한 일이 있었어도 모두 털어내고 묵은 감정을 다 벗어버리고 보내드린다. 화해, 죽음에 이르면 무엇을 못할까, 살인을 했다 해도 가족이라면 용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에서는 잔잔하게 흘러가던 내 마음을 울려버렸다. 이젠 학교 졸업식도 자율에 맡겨 더이상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 지네"를 부르지 않는데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사리에 어긋난 짓이지. 너무 되바라졌어"라며 못마땅해 하셨고 학생들을 늘 엄히 다루어 병상에 있어도 찾아오는 제자 하나 없었으니 아들된 입장에서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들은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지네" 음악을 틀어드린다. 그리고 뒤에서 "선생님"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나고 제자에게 외면받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건만 그에게도 찾아오는 제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왜그리 눈물이 나던지.

 

나도 자식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기에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면 거기에 동조하면서 봤건만 이 책으로 인해 부모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어떤 행동이든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깨달았다고나 할까. "천국에 가서도 쭉 케이치 군 어머니란다'라고 남긴 케이치의 새엄마 하루의 글을 보면 부모이기에 먼저 자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힘든 세상일에 지쳤을때 역시 내가 쉴 곳은 부모님이 계신 가족이라는 울타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로가 감정을 할퀴어대지만 세월이 지나 화해하는 모습이 매순간 내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졸업'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20대, 30대, 40대 어느것하나 처음 겪는 인생의 고비에서 부모님의 죽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오고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감정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오게 되니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가족이니까 이유를 대며 손을 내밀 필요는 없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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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 유씨
박지은 지음 / 풀그림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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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무엇을 남기는가?" 아무것도 남긴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죽음에도 '허망함'을 남기고 죽는다니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리움을 남기고 간다면 더 없이 좋은 죽음이려나. 그리움이 오히려 상처가 되니 그저 나 자신이 더 오래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삶에 대한 원통함만 가지고 떠나면 되려나. 태어날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어린시절 첫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저 어느 순간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고 원해서 태어난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이르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살게 되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영원히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고자 노력하고 죽을때 고통없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건지 죽음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지 모를 삶을 살아가기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60년을 죽은 사람의 염을 한 '염쟁이 유씨' 인생을 보는 눈이 좀 남다를까. 하루 하루가 소중할 것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해 줄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죽어간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고픈 심정이 되지 않을까. 시체에 염을 하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간혹 꿈에 나타나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염을 하면서 보게되는 그들의 몸을 보고 인생에 대해 조금 알아갈뿐 더 깊은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대대로 염을 한 집안이라 자신은 절대 염하는 직업을 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3년만 따라다니라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보니 이 일이 천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이 싫어했던 염 하는 직업, 아들은 시키고 싶지 않아 어렸을때부터 시체놀이를 하고 놀던 아들녀석이 이 일을 하고 싶다 자청했을때 3년간 다른 일 해 보고 오라고 쫓아내 버렸다. 이것이 부모 마음이겠지. 그러나 염쟁이 유씨는 왜 아버지가 그토록 염하는 일을 시키고자 했던가. 원고청탁을 넣은 주순신 기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눈을 떠 보니 아직 이승이다. 유부남을 좋아하여 마음 둘 곳도 없는 그녀가 죽어버리겠다 마음 먹고 약을 먹었으나 죽지 못하고 살았을때 염쟁이 유씨를 인터뷰 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아마도 삶을 다시 보게 되지 않겠는가 예측해 볼 수 있겠다. 염쟁이 유씨는 그간 사연있는 시체들의 염을 하면서 겪게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등 하나하나 들려주면서 자신의 인생도 풀어낸다. 이제는 마지막 염을 하고 이 일을 손에서 놓아야겠다 생각했기에 그동안 쌓였던 인연의 고리들을 하나씩 끊어내는지도 모르겠다. 사연없는 삶이 어디있겠냐만은 죽고나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이야기들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도 들어 깊이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많은 세월을 전부 다 풀어놓지는 못하고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해 주다 보니 하나씩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드나 보다. 이야기를 들으며 주순신 기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빗대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점점 삶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죽으면 안된다"라는 말보다 이런 이야기들이 가슴을 울리니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은 그녀에겐 더없이 소중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왜 염쟁이 유씨는 마지막 염을 하고 이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먼길을 달려왔을지도 모르는데 왜 아들이 9년이나 지나 돌아왔는지 그 사연에 대한 언급이 없어 조금 허망하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그렇겠지. 3년만 다른일을 해 보고 오라던 자신의 말을 듣고 떠난 아들이 3년이 지나고도 오지 않을때 "그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한다고 해도 염쟁이만 못하겠어? 잘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보내지 않고 자신과 함께 시체 염하는 일을 했다면 좋았을것을 자신의 욕심으로 너무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역시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건만 '인생'이 무엇인지 어떤것인지 쉽게 알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염쟁이 유씨를 통해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더듬어 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생각 해 본다. 죽으면서 남길 것이 무엇인지 그래도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염쟁이 유씨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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