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교를 마치는 것만이 졸업의 의미는 아닌가 보다. 스물 여섯살때 자살한 이토, 그의 딸 아야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피에도 자살유전자가 있다는것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했던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자살했다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억을 들려달라고 찾아온 아야를 와타나베는 좋은 기억들을 들려주어 지켜주고 싶다. 추억이 없기에 아직 그사람일뿐 아버지는 아닌 아야에게 친구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건만 자신이 간직한 이토의 기억은 단 2주만으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자살했는지 이유도 모른다.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전 이토는 담배를 세 개 피우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작스러운 친구 이토의 죽음, 아야도 와타나베도 이토의 관계를 마무리 짓지 못하여 졸업을 하지 못한 상태. 그가 죽은 날 죽은 자리에 아야와 함께 함으로써 이 두사람은 이토의 관계에선 졸업식을 하게 된다. 그리워 할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인데 이토는 자신의 삶에서 졸업을 하지 못하고 삶을 일찍 끊어내 버렸지만 와타나베는 천천히 가더라도 꼭 완주하고 싶다. 비록 중년의 나이로 회사에서의 입지가 좁아 힘들긴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의 기억을 갖고 싶은 아야로 인해 이토를 기억함으로써 와타나베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으리라.

 

이 책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모두 죽음에 관계가 있다. 죽음은 인생에 있어 졸업과 같은 것이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떠나보내든, 폐암에 걸린 아버지를 떠나보내든 원수같은 사이였어도 아무리 섭섭한 일이 있었어도 모두 털어내고 묵은 감정을 다 벗어버리고 보내드린다. 화해, 죽음에 이르면 무엇을 못할까, 살인을 했다 해도 가족이라면 용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에서는 잔잔하게 흘러가던 내 마음을 울려버렸다. 이젠 학교 졸업식도 자율에 맡겨 더이상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 지네"를 부르지 않는데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사리에 어긋난 짓이지. 너무 되바라졌어"라며 못마땅해 하셨고 학생들을 늘 엄히 다루어 병상에 있어도 찾아오는 제자 하나 없었으니 아들된 입장에서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들은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지네" 음악을 틀어드린다. 그리고 뒤에서 "선생님"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나고 제자에게 외면받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건만 그에게도 찾아오는 제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왜그리 눈물이 나던지.

 

나도 자식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기에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면 거기에 동조하면서 봤건만 이 책으로 인해 부모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어떤 행동이든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깨달았다고나 할까. "천국에 가서도 쭉 케이치 군 어머니란다'라고 남긴 케이치의 새엄마 하루의 글을 보면 부모이기에 먼저 자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힘든 세상일에 지쳤을때 역시 내가 쉴 곳은 부모님이 계신 가족이라는 울타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로가 감정을 할퀴어대지만 세월이 지나 화해하는 모습이 매순간 내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졸업'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20대, 30대, 40대 어느것하나 처음 겪는 인생의 고비에서 부모님의 죽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오고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감정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오게 되니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가족이니까 이유를 대며 손을 내밀 필요는 없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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