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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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과 진실사이에서 고민하는 '서정' 못지 않게 나도 민준과 우진은 어떤 관계일까, 정말 궁금하다. 다른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가는 나를 어찌하면 좋으냐. 그렇지만 궁금한 것을 어쩌라고. 요즘 드라마 "온에어"를 보면 배우들 캐스팅 과정과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 책속에 "A" 잡지사 기자 서정의 이야기도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를 보여주기에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즐겁다. 화려한 사람들 속에서 잠도 몇시간 못 자고 배우 인터뷰건으로 1년간 그 배우를 쫓아다녀야 하는 힘든 직장 생활이지만 서정은 일에 중독된 사람마냥 자부심을 가지고 일에 임한다.

 

이 소설은 여성들이라면 좋아 할 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 어릴 때 수영을 가르쳐 준 우진이 세월이 흘러도 그녀를 잊지 않고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내 가슴도 설레인다. 글의 초반 서정의 직장생활로 시선을 끌었다면 중반부터는 민준과 서정, 민준과 우진, 서정과 우진의 관계를 통해 갈등과 로맨스까지 가미되어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직장에서 성공하는 서정의 모습만 보여줬다면 다른 책들과 달랐을까. "스타일"속의 인물들은 드라마나 책을 통해서 자주 보아왔던 이미지기에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물론 우진을 등장시킴으로써 민준에게 호감을 느끼는 서정과 삼각관계로 흘러갈수도 있을 갈등을 조성하고 민준과 우진의 관계가 어떠한지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서정과 우진을 맺어줌으로써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내 마음속에 무엇이 이렇게 허기지게 하는 것일까. 멋진 남자와 주인공이 맺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물론 조금은 지루하게 전개되었던 글들이 우진이 나타남으로써 더 재밌어지긴 했지만 역시나 통속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다는게 아쉽게 느껴지나 보다. 패션지 8년차 이서정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속에 땀흘리며 뛰어다니는 서정의 이미지가 사라진듯 해서 안타깝다. 직장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간의 갈등,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족을 잃었던 아픔, 음식을 매개로 우진에게 상처를 위로 받는 서정의 모습 등은 서로 연결된 사건들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배우 장동건, 송강호 등의 이야기나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사건을 통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느끼게 하지만 서정이 근무하는 잡지사 이야기는 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대한민국이 맞긴 한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내가 얼마나 이런 쪽으로 무지한지 깨닫게 된다. 우진과 선을 본 후 7년만에 만난 두 사람의 떨어져 있었던 시간들, 어린 시절부터 쭉 이어온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반지가 걸려있는 목걸이를 걸어주는 로맨틱한 장면에선 나도 열광하게 되지만 주방에서 직접 사람들과 부딪치며 일을 해야 인터뷰에 응해주겠다는 우진의 모습과 칼질이 서툴러 손가락이 잘려버린 서정의 이야기가 왜 필요했는지, 어린시절부터 계속 서정만 생각한 우진의 마음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 보인다. 톡톡 튀는 서정 특유의 대사는 재밌고 유쾌했지만 그래서 조금 아쉬움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우진과 서정의 로맨스가 더 이어지길 바랬던 것인지, 이야기들이 흘러가다 멈춘다는 인상이 많이 남아서 그랬는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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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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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란 사람 참 괜찮다. 나도 그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환상속의 '그'와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손글씨가 아닌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 받는 요즘 시대에 잘못 온 메일에 답장을 하며 대응해주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 에미가 "라이크"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보낸 메일주소를 잘못 적어 레오에게 계속 보내지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는 두 사람.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집안의 갇힌 공간속에 컴퓨터의 네모난 모니터를 노려보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지.

 

레오와 에미가 메일을 주고 받는 날짜와 시간이 있었다면 이 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그저 '다음날, 8분뒤, 55초후' 등으로 표현되어 계속 이어지는 둘만의 대화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몇 초 후에 메일 답장을 쓸거면 채팅을 하면 될텐데, 라이크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보내는 메일주소도 저장해뒀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 일상생활을 뒤로한 채 메일을 주고 받는 것에 집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쩌면 '사랑'을 키워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메일주고받기 게임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순간 끝날지도 모른다. 자신의 환상속에 그려온 에미와 레오의 각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는 직접 대면했을 때 아무리 이상적으로 생겼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린 이미지에 맞지 않을 것이기에 에미는 레오를 만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실 에미가 결혼한 사람이고 애가 있다고 이야기 해도 난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끝에 이르러 "거짓말을 했다"고 이야기 하며 레오와 열정적인 사랑을 키워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미의 점점 부풀어오른 레오에 대한 마음이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가 되어 두 사람이 더이상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없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에미가 자신의 친구인 '미아'를 소개시켜주고 둘 관계에 대해 집착해서 묻는 것을 보며 그녀의 감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레오에게 빠져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레오 또한 메일속의 세계지만 일정한 선을 넘어버려 정말 위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결국 에미의 남편인 '베른하르트'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메일을 보냄으로써 에미와 레오의 사랑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에미처럼 나도 이 일에 집착하며 한편으로 끊임없이 놓여나길 원했을 것이다. 하루종일 레오에 대한 생각만 하고 메일이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될 정도여서 마음은 메일을 계속 주고받길 원하면서도 반대로 이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 역시 그러했고 이 관계가 영원히 갈 순 없었다. 새벽 바람이 불때면 잠들지 못하는 에미, 레오는 마음속의 연인이 되어 많은 위로가 되어 준다. 끝내 레오를 만나지 않고 메일만을 주고받고자 했던 에미를 보며 그녀가 레오를 만나 함께 보낸 시간들로 행복해졌을까, 불행해졌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더 지독한 외로움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새 마음속에 레오가 꽉 들어차 버렸으니까.

 

그녀만을 바라보는 남편 베른하르트의 마음 또한 어떨지 짐작이 가기에 처음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두 사람의 메일이 아픔이 되어 내 마음속에 머물다 사라진다. 분명한 끝이 있음을 아는 지금, 나에게 누군가 메일속 친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빠져들게 될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지 않을까. 그 '인연'과 '사랑'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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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꼭 알아야 할 모든 것
정영희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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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꼭 여자들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과 자신의 생각들을 책속에 녹여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기에 여자, 남자 가려서 읽어야 할 책은 아니다. 그런데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까. 제목을 이렇게 붙임으로써 남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을텐데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많기도 하고 저자 자신이 여자이기에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책 내용과 다른 제목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고 왜 붙였을까, 다른 제목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20대에 꼭 해야 할 일들"이나 이 책처럼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고 이름붙이면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니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떤 이유이든간에 이 책 안에는 건강상식은 물론이고 여러 정보 사이트의 주소를 친절하게 올려 놓아 그 정보이용을 쉽게 할 수 있게 했으며 문답을 통해 자신의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알아볼 수 있는 기준도 마련해 준다.  

 

이 책 한권만 있어도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타인에게 '나'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지 않고 성인이니 혼자 영화도 보고 밥도 먹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저자의 멘토인 김영미 피디가 이혼한 후 돈 700만원과 어린 아들과 함께 남겨진 뒤 그녀가 어떻게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유명인이 될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함으로써 아직 나도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그래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특히나 유용한 정보를 주는 이 책은 괜시리 결혼한 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걸러서 읽게 되는게 조금 아쉽다. 특정인들에게 부합할만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지식들과 정보로 여자들에게 다른 삶에 대한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니 밑줄 그어가며 받아적고 싶은 글이 많지만 나의 기준에 맞춰 글을 읽게 되니 조금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때로 외국으로 훌쩍 떠나보라"란 글만 해도 그저 그림의 떡일뿐 좀처럼 행동에 옮기기 힘든 '사치'에 들어가는 품목이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가정에 묶여있든 결혼을 하지 않았든 가까운 곳 여행가기도 쉽지 않기에 괜한 반발심이 생기게 된다. "초라한 노처녀와 화려한 싱글녀의 차이"나 "사랑, 결혼"을 주제로 한 글들을 통해서도 이 책은 몇몇 젊은 여성들을 겨냥해서 쓴 글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니 제목을 "여자가..."라고 붙인것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읽으라거나 20, 30대 여성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이야기 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래, 이건 결혼한 사람의 푸념이라고 해 두자. 결혼전에 좀 더 화려하게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미 선택의 폭이 줄어 들었음에 불평한다고 봐도 되겠다. "알파걸", "골드미스"란 단어가 낯설게 다가오는 내게 이 책은 다른 이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요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여자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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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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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라면 성이 남성일텐데 "내 소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마"라고 이야기 하다니 처음엔 어리둥절하여 이게 무슨 내용인가 했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의 표지를 보며 동화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의 이피스 신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여 무척 기대하며 읽었는데 처음부터 등장한 글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것을 느낀다.

 

자신과 그녀의 언니 이모겐이 할아버지에게 옛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회상하는 앤시아. 왠지 전체적으로 이 책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실종되어 무덤까지 만들었지만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으로 생각이 될 정도이니 어느 것하나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없는 것 같다. 언니가 소개 해준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앤시아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대항하는 로빈을 만나 사랑을 키워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로빈이 들려주는 소녀에서 소년으로 변신한 "이피스 신화" 이야기는 성적소수자, 동성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앤시아, 이모겐, 로빈과 이 신화이야기의 연결점을 찾는 것이 나에겐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나'의 마음이 이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시종일관 읽기는 쉬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글들로 인해 불편했다.

 

직장을 뛰쳐나오고 레즈비언과 어울리는 앤시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모겐. 하지만 그녀 또한 '키스'로부터 불법적인 기업 홍보활동을 권유받는 순간 여기에 저항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자신의 마음이세상을 향해 깨어난다. 타인의 시선과 편견, 차별이 없는 새로운 세상,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겠지만 남과 여 성별이 나누어지고 곳곳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것에 대항하는 마음, 이것을 누구나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앤시아, 이모겐, 로빈을 통해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보게 된다. 인간이 왜 태어났는지, 성별은 왜 나누어졌는지 무엇하나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곳에서 또 겪게되는 차별과 편견. 신화속에서는 소녀가 소년이 되는 것에 그저 신화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니까 편견을 가지지 않고 듣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이 두 이야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독자들에게 또 다른 의문을 제시한다. 나는 현대의 사랑과 신화속에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로 인해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다. 나의 편견을 넘어서 이들의 만남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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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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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며 어느새 제목을 마음속으로 따라하고 있었다. "하악하악",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을때 내뱉는 숨소리처럼 들리는 이 말이 봄날 내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속에서 저자가 나에게 던진 물음들이 너무 많아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지만 나 스스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한권의 책으로 인생의 지침서로 삼는다면 조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유머로 가장한 따끔한 글들, 가슴이 순간 뜨끔해졌다. 지금 한가지 질문을 기억해 낸다면 돈을 그려내어 쓸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제일 처음 무엇을 할까? 역시나 집 사고 땅 사고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채우려들지 않겠는가. 이러니 아직 세상을 덜 살았다는 말을 듣는가 보다.

 

콜라병에 담은 간장과 간장병에 담긴 콜라를 맛을 보지 않고서도 구분해 내지 못하는 내가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내린다. '나'란 존재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알 수 없기에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이 세상에 없음을 감사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은 시커멓게 변해버려 그 마음자리마저 찾아볼 수 없을테니까. 이 책에는 세월을 앞서 살아간 사람의 충고와 지금 현대인들에게 딱 꼬집어 말해주고 싶은 것들, 이 사회를 풍자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 조금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글도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꽃노털 옵하'니 '캐안습'이니 내가 잘 안쓰는 글들을 접하다 보니 정말 이외수의 책이 맞아?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된다. 작가라면 어느것 하나 허술하게 넘기는 법이 없겠지만서두 어린 사람들과 대화하면 지지 않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실력을 지녔다. 삶을 유쾌하게 바라보기.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 글엔 인생을 참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어느정도의 삶을 살아가고 경지에 오르게 되면 이렇게 되나. 화나는 일을 겪게 되면 내 성질을 털어내지 못해 바르르 몸을 떨고 목소리마저 덜덜 떨리며 제대로, 정확하게 내 마음을 표현해 내지도 못하고 그런 일을 겪을 때면 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탄을 하는 내가 보인다. "이렇게 말할걸. 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더듬거렸을까" 나 자신이 한심해서 잠도 안온다. 그럴땐 웃으며 여유롭게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딱부러지게 따져 말하고 싶건만 아직 수양이 덜 된 모양이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저자의 삶을 관조하는 이 여유로움이 좋다. 어떤 일에도 유쾌하게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마음이 좋다.

 

꽃들이 세상의 꽃병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글에서 오래 내 눈길이 머문다. 이쁘다고 개나 고양이의 목을 따서 넣어두지는 않는다는 글에 철없이 이쁘다고 땄던 꽃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파왔다. 좋아하면 곁에 두고자 꽃을 꺾고 사랑하면 아껴주고자 꺾지 않고 지켜준다는 말이 생각나서일까. 내가 좋아하고 이뻐해서 아무렇지 않게 곁에 둔 것들이 생각나고 그 물건들이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서글퍼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이지 않을까. 낡고 손때묻었지만 소중히 여기는 존재가 되고 싶었는데 그저 잠깐 보고 버리는 존재가 되지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악하악' 너의 생존법은 무엇이냐. 타인의 시선속에 갇혀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악하악' 내 속에 있는 나쁜것들을 한번의 숨으로 내보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부지런히 마음을 갈고 닦아 세상을 좀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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