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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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란 사람 참 괜찮다. 나도 그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환상속의 '그'와 함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손글씨가 아닌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 받는 요즘 시대에 잘못 온 메일에 답장을 하며 대응해주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 에미가 "라이크"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보낸 메일주소를 잘못 적어 레오에게 계속 보내지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는 두 사람.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집안의 갇힌 공간속에 컴퓨터의 네모난 모니터를 노려보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지.

 

레오와 에미가 메일을 주고 받는 날짜와 시간이 있었다면 이 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그저 '다음날, 8분뒤, 55초후' 등으로 표현되어 계속 이어지는 둘만의 대화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몇 초 후에 메일 답장을 쓸거면 채팅을 하면 될텐데, 라이크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보내는 메일주소도 저장해뒀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 일상생활을 뒤로한 채 메일을 주고 받는 것에 집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쩌면 '사랑'을 키워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메일주고받기 게임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순간 끝날지도 모른다. 자신의 환상속에 그려온 에미와 레오의 각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는 직접 대면했을 때 아무리 이상적으로 생겼다 하더라도 자신이 그린 이미지에 맞지 않을 것이기에 에미는 레오를 만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실 에미가 결혼한 사람이고 애가 있다고 이야기 해도 난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끝에 이르러 "거짓말을 했다"고 이야기 하며 레오와 열정적인 사랑을 키워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미의 점점 부풀어오른 레오에 대한 마음이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가 되어 두 사람이 더이상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없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에미가 자신의 친구인 '미아'를 소개시켜주고 둘 관계에 대해 집착해서 묻는 것을 보며 그녀의 감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레오에게 빠져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레오 또한 메일속의 세계지만 일정한 선을 넘어버려 정말 위태로워 보일 정도였다. 결국 에미의 남편인 '베른하르트'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메일을 보냄으로써 에미와 레오의 사랑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에미처럼 나도 이 일에 집착하며 한편으로 끊임없이 놓여나길 원했을 것이다. 하루종일 레오에 대한 생각만 하고 메일이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될 정도여서 마음은 메일을 계속 주고받길 원하면서도 반대로 이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두 사람 역시 그러했고 이 관계가 영원히 갈 순 없었다. 새벽 바람이 불때면 잠들지 못하는 에미, 레오는 마음속의 연인이 되어 많은 위로가 되어 준다. 끝내 레오를 만나지 않고 메일만을 주고받고자 했던 에미를 보며 그녀가 레오를 만나 함께 보낸 시간들로 행복해졌을까, 불행해졌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더 지독한 외로움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새 마음속에 레오가 꽉 들어차 버렸으니까.

 

그녀만을 바라보는 남편 베른하르트의 마음 또한 어떨지 짐작이 가기에 처음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두 사람의 메일이 아픔이 되어 내 마음속에 머물다 사라진다. 분명한 끝이 있음을 아는 지금, 나에게 누군가 메일속 친구를 제안한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빠져들게 될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밀지 않을까. 그 '인연'과 '사랑'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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